2009년 이전 여행/2005 1월(31일) 스페인 포르 모로코

사막에서 외친 "인샬라"

프리 김앤리 2009. 1. 30. 23:26

밤새 몹시 추웠다.

사막이 이리 추울 줄은 정말 몰랐다.

어제 낙타를 타기 전, 나누어 주었던 거적데기가 지난밤의 끔찍한 추위에서 유일하게 나를 지켜내줄 이불이었다는 건 땅거미가 어두워지자마자 깨달았다.

나는 그저 낙타 등에 얹어 앉기가 편하도록 만든 안장정도로 생각했는데...

   

 

 

 

 

 

 

 

 

 

 

 

 

 

 

 

부시 캠핑이라해서 멋진 사막에서의 이국적인 밤을 생각했는데,

사막 한가운데 그저 덮개와 가리개만 주고 자라고 할 줄은 아무도 몰랐다.

 

모래 퍼석퍼석 거리는 거적데기를 아래에 깔고, 또 하나의 거적을 머리 끝까지 덮어쓰고 자는 듯 마는 듯 뒤척였다. 그나마 밤 늦도록 모닥불 주위로 아프리카 특유의 리듬을 탄 놀이가 없었다면 더 힘들었을지 모른다.

 

에콰도르 · 호주 · 프랑스 커플과 우리부부, 그리고 미국인 매튜, 일본 여자 대학생 2명, 프랑스 여자 대학생 2명, 그리고 우리의 Driver 모하메드... 밤새 두드린 젬베. 쉼없는 젬베 리듬을 타고 밤을 겨우 보냈다.

 

  눈을 뜨자 마자 모하메드는 각자 자기의 거적데기를 뒤집어 쓰란다. 그리고는 일출을 보러 가잔다.

 

발이 푹푹 빠지는 사구를 올라 바라본 일출. 세계 각 곳을 돌아다니며 본 일출중에 가장 장엄하였다. 세수도 못한 우리의 몰골은 형편없었지만....

 

 

 

 

 

 

 

 

 

  

 

 

 

 

 

 

 

 

 

 

 

 

 

 

 

사막투어를 마치고 이제 다시 돌아가야 한다. 2박 3일동안의 사하라 사막투어를 마치고 다시 Maracheshi 까지

돌아가야 한다.  프랑스 커플은 사막에서 며칠을 더 보낼 거라고 남고, 일본인 대학생은 Ouarzzate Studio에서 친구집을 방문한다고 남았다.

Ouarzzate를 지나자 모래폭풍이 불기 시작한다. 부시의 이라크 침공 암호가 ‘사막의 폭풍’이라더니만...

또 왜 이곳 사람들은 터번을 쓰는지 알 것 같다. 모래가 얼굴을 때리는게 여간 아픈 게 아니다.

 

여기서 Maracheshi까지는 177Km가 남았단다. 아틀라스 산맥을 넘어야 해서 4시간 정도는 가야 한다.

6시 도착예정. 마라케시에서 따뜻한 저녁 먹고, 야간버스로 Fez로 갈 거다. 이미 예약도 해놓았다.

    

점심을 먹고 마냥 돌아가는 길.

그러나 아틀라스 산맥에서 눈발이 휘날린다.

아프리카에서 눈이라니.

사막에서 평생 가장 추웠던 경험을 한 나는 또다시 황당한 일이 벌어졌다.

2000m 산을 넘어야 하는데...

오늘 밤에 모로코의 고대도시 Fez로 가기 위해 밤 버스를 예약도 해 두었는데...

몇 m나 올라갔을까?

5~600m 정도?

입구에서 경찰이 우리 버스를 막아선다.

 위에는 지금 눈이 제법 내리고 있단다.

 

 

버스 안에 있던 우리의 코웃음.

여기는 사막인데...

사막투어인데...

더군다나 아프리카인데...

참 별난 경험이군...

 

제인은 내일 비행기를 예약해놓았다며 오늘 밤 꼭 다시 마라케시로 돌아가야 한다고 항변한다.

이 정도의 눈을 가지고...

그냥 조금 흩날릴 뿐인데...

Driver 마호메드와 경찰이 몇마디 주고 받더니 별 문제없이 다시 운전하기 시작했다.

그래 무슨 일이 있을라구?

여기는 사하라인데...

어두워지기 전에는 이 산을 넘을 수 있겠지...

 

  버스는 계속 산으로 오른다. 그런데 눈발이 점점 세지기 시작한다.

2,000m 도로 봉우리를 하나 넘어 다시 한 봉우리를 더 넘으려고 하는데 앞에 있는 트럭들이 뒤로 미끄러지는

모습이 보인다.

그리고 도로는 빙판길.

눈발은 점점 굵어지고. 날은 저물고 있는데...

이미 저녁 5시 40분이다.

급기야 차는 아찔한 비탈길에 멈춰섰다.

오른 쪽은 천길 낭떠러지.

앞에 있는 차는 바퀴가 미끄러지고, 한 대는 이미 돌아서 내려가 버렸다.

날은 점점 어두워지고, 눈발은 더욱 거칠어지고

창문은 금방 얼어온다.

 

마호메드에게 조심스럽게 물어본다.

“Do you have snow-chain?"

20인용 미니버스가 불안할 뿐이다. 모두 조용하다.

표정의 변화가 하나도 없던 마호메드가 의외라는 듯 큰소리로 대답한다.

“It's not ski tour, it's desert tour!" " Here is Africa!"

 

사막에 남은 프랑스 커플도 떠오르고, Ouarzzate에 내린 일본인 대학생들도 떠오르고...

‘재수좋은’ ,‘재수 없는’ ‘여행 중 불행..’ 오만가지 신문기사 생각이 다 난다.

아까까지 내일 비행기 때문에 마라케시로 가야한다고 항변하던 제인도 이제 다 괜찮으니 다시 돌아가잖다.

이제 밖은 잘 보이지도 않는다. 하루에 몇 대의 차가 지나다니지도 않는 길에 가로등이 있을 리 없다.

잠시 세워 둔 버스 창으로 살얼음이 끼인다.

 

마라케시에 있는 Boss한테 전화를 하던 마호메드, 걸어두었던 Side Break를 내리며 비장하게 한마디 한다.

“인샬라!!!”

 

‘아!! 인샬라란다’

그순간 차안에 있던 모두 따라서 한다.

"인샬라"

 

어릴 적 그렇게 열심히 다니던 교회의 하나님보다, 한때 들락거리던 성당에서의 하나님보다, 한번씩 절까지 해보던 불교의 부처님보다 지금 마호멧이 외친 “인샬랴‘에서 말하는 저 신을 믿고 싶다.

여지껏 한번도 생각해보지도 않았던 그 신이 우리의 이 길을 보호해줬으면 하는 마음 간절하다. 안데스 산맥에서 비행기 사고로 죽을 고생을 하던 영화 ’Alive'가 왜 이 순간 생각나는 걸까?

산 비탈에 얼어붙은 채 서 있던 4대의 차가 동시에 움직인다. 앞에 두 대, 뒤에 한 대.

아슬아슬한 곡예 운전. 이미 주변은 깜깜해졌다. 오로지 차량의 Head light만이 있을 뿐.

‘인샬라’

2박3일동안 그렇게 쉼없이 떠들어대던 사람들이 모두들 얼어붙은 도로를 비추는 Head light만 주시할 뿐, 아무런 말이 없다.

무거운 긴장감과 그리고 침묵. 간간이 조그만 소리로 “인샬라”만 내뱉을 뿐이다.

언제부터 우리 모두가 무슬림이 되었는지???

 

이젠 돌아갈 수도 없다. 너무나 먼길을 헤치고 오는 것 같다. 차라리 밖이 안보이기 망정이지 천길 낭떠러지가

보인다면 어쩌면 더 미쳐버렸는지 모른다. 알프스에서도 맞지 않았던 눈을... 눈덮힌 산을 보려고 여기 아프리카를 왔는지..

오르막길엔 차라리 낫더니만 아래로만 내려가는 굽이굽이 길이 더 무섭다.

한참을 내려왔을까, 길이 또 막혔다.

마주오던 승용차가 오르막길을 오르지 못해 길을 막고 있다.

‘아니 이놈의 모로코 경찰은 무얼 하고 있는거야?

이렇게 눈이 오면 통제해야 할 거아냐?‘

ㅋㅋ

저 차도 우리 처럼 오늘밤에는 이 산을 꼭 넘어야 한다고 우기고 왔을까

자기들도 지금 우리처럼 무지막지 후회하고 있을까?

자기들도 우리처럼 꼭 다문 입술사이로 “인샬라”만 내뱉고 있을까?

 

서로 마주 오던 차에서 사람들이 모두 내린다. 밖이 영하로 떨어졌건 상관이 없다.

살아야 하니까.

살아가 내려가야 하니까.

우리 차에서는 미국인 매튜가 가장 열심이다. 차가 서면 뛰어내려서 눈도 치우고, 이 차 저 차 뛰어다니며 차를 민다. 그 사이 큰 트럭하나가 옆으로 미끄러진다. 펑펑 쏟아지는 눈 때문에 길은 얼어붙고 있다.

깜깜한 저녁. 어딘지도 모르는 아프리카의 산맥.

“인샬라...”

 

눈덮힌 선인장을 난생 처음 보았다.

선인장에도 눈이 쌓일 수 있구나...

 

두려움으로 가득찬 사람들의 얼굴도 처음 보았다.

그런데 눈이 마주치면 서로가 웃는 모습이 이렇게 따뜻하다는 것도 처음 느낀다.

그래 우리는 같은 시간은 가고 있는 거야, 우리는 지금 함께 있는 거야...

이 여행전에는 한번도 만난적이 없는 우리들. 우리는 무슨 인연으로 이 무서운 밤을 함께 보내고 있는 걸까?

서로를 보면서 쓱 웃어준다.

 

그리고 그 무거운 침묵.

 

얼마를 내려왔을까?

벌써 저녁 8시가 넘었다. 이제는 거의 평지로 내려온 것 같다.

여기쯤이면 이제 차를 세워놓고 밤을 새워도 되겠지.

전혀 흔들림이 없는 모하메드의 침착함이 이렇게 듬직할 수가 없다.

아침 9시부터 운전을 하고 있는데...

조금 정신이 들고 나니 배도 고프다. 온 몸에 긴장이 풀어지면서

평지처럼 보이는 곳에서 따뜻한 차 한잔.

그들이 믿고 있는 신이 우리를 따뜻한 곳으로 인도한 것인가?

이제는 괜찮겠지?

잘하면 Fez로 가는 밤 버스를 탈 수 있을라나?

다 내려왔다는 생각에 버스 안에 있는 사람들이 조금씩 말이 많아지기 시작한다.

 

“We had very great time, exciting time!!!"

“Wow, you guy, Mettue! You are real guy, Strong man!!!"

떠들썩한 이야기, 그리고 웃음...

정말 끝난 줄 알았다.

 

그러나 또 빙판길, 눈...

도로에서 제설차가 맹활약을 하고 있다.

여기 저기 넘어져 있는 차들이 보이고 사람들이 내려 웅성거리고 있다.

우리의 strong guy 매튜는 또 맹활약을 한다.

여기 저기 차에서 내린 사람들이 승용차에 돌을 고우고, 뒷범퍼에 올라타고...

한 대 보내고, 또 한 대 보내고...

 

깜깜하던 차창 밖으로 멀리 불빛이 보인다.

“마라케쉬”라고 외치는 모하메드의 소리에 모두들 환호성을 터트린다.

저녁 10시 20분 도착.

모두들 오늘 밤 우리를 무사하게 실고온 모하메드에게 박수를 보낸다.

진정으로 감사하는 마음을 담아...

 

(결국 이날 우리는 Fez 가는 버스를 놓치고 다시 하루밤을 마라케쉬에서 잤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