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지금은 여행중 /9월 스리랑카

사자의 목구멍, 시기리야

프리 김앤리 2016. 11. 7. 10:51



우리를 스리랑카로 오게 한 건 한 장의 사진이었다. 

 지인의 블로그에서 발견한 공중 도시 '시기리야 Sigitiya'.
사방은 낭떠러지, 깍아지른 절벽 꼭대기에 세운 도시. 인간의 욕망과 공포와 허무를 말하고 있는 공중의 시기리야.

...

370m 높이의 바위산인 시기리야는 사자가 웅크리는 모습이라하여 '싱하기리'라고도 불린다.

'싱하'는 사자, '기리야'는 목구멍, 사자의 목구멍이다.

사자의 목구멍만 막아내면 철옹성이라 생각했던 피난처였다.

시기리야는 아버지를 살해한 카사파 1세가 세운 5세기 유적이다.

 

" 다토세나(Dhatusena)의 아들인 카사파 1세는 아버지를 암살한 후에 왕권을 잡았으며, 이복동생 모갈리아나의 재산을 모두 빼앗았다.

그 후 복수를 피하기 위해 카사파는 난공불락이라 알려진 시기리야의 정상에 요새화된 성을 세웠다.

하지만 그는 495년에 일어난 짧지만 치열했던 전쟁에서 패배한 후 스스로 목을 찔러 자살했다. 

  단지 11년 천하였을 뿐! 

 카사파가 죽은 후, 모갈리아나(Moggallana)는 시기리야의 유적을 승려들의 손에 넘겨주면서 점차 버려지게 되었다.

시기리야에 살았던 11년 동안 카사파는 장관을 이루는 거주지를 만들었으며 수도를 세웠다.

그리고 그 흔적들은 여전히 인상 깊게 남아 있다.


바위산 정상에는 요새화된 궁전, 폐허가 된 건물들, 수조들, 암각 조각들이 있다.

아래쪽 도시의 두 구역이 바위산 기슭에 자리하며, 거대한 성벽으로 방비된다.

 아마도 5세기 후에 생겼을 것으로 추측되는 동쪽 구역은 아직 충분히 발굴되지 않았다.

그리고 카사파 1세의 수도였던 귀족 구역이 있는데, 이 구역은 폐허들을 뒤덮고 있던 숲을 걷어내면서 드러난 많은 기념비적 유물들뿐만 아니라 수로와 분수로 장식된 계단식 정원으로도 주목을 받는다. 접근할 수 없는 암석 주거지 내에는 수직으로 된 서쪽 암벽 중간쯤에 알려지지 않은 21명의 여인들 모습이 그려진 ‘천상의 여인들(Maidens of the Clouds 또는 Cloud Maidens)’로 불리는 바위에 그린 그림이 있다. 아잔타(Ajanta)의 가장 아름다운 벽화와 비교할 만한 이 바위그림으로 인해 시기리야 고대 도시는 세계적으로 찬사를 받게 되었다. "                    -네이버 지식 백과에서 옮김.



권력에 대한 욕망과 아버지를 살해한 죄책감과 고뇌, 그리고 죽음에 대한 공포와 결국 자살로 끝나는 허무까지.

그 모든 것을 고스란히 안고 있는 시기리야.

부지런히 하루를 살고 넘어가는 해지는 광경을 공중도시 시기리아에서 오랫동안 바라본다.



사자의 목구멍을 오르며


지금은 철계단이 놓여있지만 예전엔 바위계단으로!!

시기리야든 어디든 스리랑카에서는 원숭이가 그냥 같이 사는 이웃이다.

























바위산에 새겨진 미인도. 아버지를 살해한 죄책감으로 아버지께 바친 그림!!
시기리야 유적지에서는 사진 촬영 금지. 이 사진은 입구에 있는 박물관에서 실물로 재현해 놓은 벽화를 촬영했다. 솜씨가 예사롭지 않다.



꼭대기에 오르면 사방천지로 시야가 확 트인다.



해 지는 시기리야



사방이 붉게 물드는 시간.

선셋을 기다리며. 땀과 바람과 생각!


시기리야에서 하루 해를 넘기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