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지금은 여행중 /5월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글루미 선데이와 부다페스트

프리 김앤리 2015. 3. 23. 12:50

 

<2015년 5월 투어야여행사 새로운 동유럽, 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 여행준비 1>


그래! 이것부터 시작하자.

영화 '글루미 선데이'.


부다페스트라는 도시에서 사람들은 뭐가 퍼뜩 떠오를까?


내게는, 나에게 부다페스트란 '김춘수의 시'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고등학교때 짝사랑(?) 했던 총각 국어선생님이 시인 김춘수의 제자였다.

대학을 갓 졸업한 총각 선생님이 여고에 부임해 왔으니 그 인기는 가히 짐작하는 대로다.

게다가 국어 선생님, 시를 쓰는 시인이라지 않는가?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들은 선생님의 동작 하나하나에 열광했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을 홀딱 뺏겼다.  


바람이 쌀쌀하게 불던 어느 날의 수업 시간, 나의 짝사랑 국어 선생님이 시 한편을 읊어주셨다. 

(목소리는 얼마나 또 감미롭던지...)

시든 소설이든 에세이까지 그것을 문학적으로 음미하는 것은 언감생심, 오로지 제출되는 문제에 대해 오지선다형 정답 고르기 연습으로만 일관하던

국어 수업에서 감미로운 목소리의 시낭송이란...


   네 죽음을 두고 한 송이 꽃도 피지 않았고,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는 비극적 슬픔.

   소녀가 죽었다지 않는가!!!

   그 죽음을 보듬고 먼나라 낯선 나라의 부다페스트라는 곳에서는 목 놓아 울지도 못한다는 詩語.

 

소련의 부다페스트 침공을 빗댄 내용이라는 이 시에는 자유가 짓밟히는 한국 상황도 있었지만

나는 지구의 반대편 '부다페스트'에 꽂혔고, 피지도 못한채 쓰러져 간 열 세살 소녀의 비극에 눈물지었다.

 

그 날 이후 나에게  부다페스트란 '김춘수의 시'이며 '짝사랑했던 총각 국어선생님'이며

'소녀의 죽음 앞에 목놓아 울 수도 없었던 암울한 밤'이 돼 버렸다.

 


...

잠시 옆길로 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에게 부다페스트는 어떤 곳일까?

 

많은 사람들이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꼽는다.

글루미 선데이와 부다페스트.

사람들은 글루미 선데이의 무대가 되었다는 군델 레스토랑에 가서 글루미 선데이를 들려줄 수 있느냐고 주문하기도 하고

주인공들이 함께 달렸던 세체니 다리에서 감상에 젖기도 한다.

음악, 글루미 선데이와 함께 전해내려오는 전설같은 자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까닭없이 우울해져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 레스토랑 군델은 영화의 모델이었을 뿐, 거기서 영화를 촬영했다거나 혹은 실제 무대라는 이야기는 잘못 전해져 오는 오보다. )

 

 

 

 

글루미 선데이

 

                      감독 : 롤프 슈벨

                      개봉 : 2000.10.21

 

 

"사랑과 죽음의 노래" | "그녀의 노래를 듣는 순간 선택해야 한다. 생의 전부를 건 사랑, 혹은 죽음을" |

1999년 어느 가을. 독일 사업가가 헝가리의 한 레스토랑을 찾는다. 작지만 고급스런 레스토랑. 그는 추억이 깃 든 시선으로 그곳을 살펴본다. 그리고 말한다. "그 노래를 연주해주게." 그러나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 순간, 피아노 위에 놓인 한 여자의 사진을 발견하곤 돌연 가슴을 쥐어 뜯으며 쓰러진다. 놀라는 사람들. 그때 누군가가 외친다. "이 노래의 저주를 받은 거야. 글루미 썬데이의 저주를..."
  60년 전. 오랜 꿈이던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자보(조아킴 크롤 분). 그의 사랑스러운 연인, 일로나(에리카 마로잔 분). 레스토랑에서 연주할 피아니스트를 인터뷰하는 그들에게 한 남자가 찾아왔다. 강렬한 눈동자의 안드라스(스테파노 디오니시 분). 그의 연주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자보와 일로나는 안드라스를 고용한다. 일로나의 생일. 자신이 작곡한 글루미 썬데이를 연주하는 안드라스. 일로나는 안드라스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그날 저녁 독일인 손님 한스(벤 베커 분)가 일로나에게 청혼한다. 구혼을 거절하는 일로나. 글루미 썬데이의 멜로디를 되뇌이며 한스는 강에 몸을 던지고 그런 그를 자보가 구한다. 다음날, 안드라스와 밤을 보내고 온 일로나에게 말하는 자보.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 자보와 안드라스, 일로나는 특별한 사랑을 시작한다. 한편 우연히 레스토랑을 방문한 빈의 음반 관계자가 글루미 썬데이의 음반제작을 제의한다. 음반은 빅히트 하게되고, 레스토랑 역시 나날이 번창한다. 그러나 글루미 썬데이를 듣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언론은 안드라스를 취재하려 한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안드라스. 그런 그를 위로하는 일로나와 자보... 하지만 그들도 어느새 불길한 느낌에 빠진다.

 

 

영화의 내용이야 직접 보면 될 일이고, 충격적인 것은 이 영화가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는 것이다. 

물론 한 여자와 두 남자가 함께 사랑을 한다는 줄거리는 실화와 관계가 없는 설정이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글루미 선데이'라는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을 듣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는 이야기는 실화다.

 

1935년 헝가리의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아름다웠다는 자신의 연인, 헬렌의 죽음에 괴로워하면서 '글루미 선데이'를 작곡한다. 

 

  

  ---Trauriger Sonntag---    

  

    Trauriger Sonntag, dein Abend ist nicht mehr weit 
        우울한 일요일, 저녁이 찾아들고 있는 이 시간

    Mit schwarzen Schatten teil ich meine Einsamkeit
        나는 내 외로움을 어둠과 함께 나누고 있네

    Schliess ich die Augen, dann seh ich sie hundertfach
        눈감으면 떠오르는 수많은 당신의 추억

    Ich kann nicht schlafen, und sie werden nie mehr wach "spiel fuer mich"
        난 잠들지 못하고 당신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리

    Ich seh' Gestalten ziehn im Zigarettenrauch
        담배 연기 속에 그려보는 당신모습

    Lasst mich nicht hier, sagt den Engeln ich komme auch
        날 여기 길잃은 천사처럼 홀로 두지 마오 나도 그대를 따라 가리니

    Trauriger Sonntag
        우울한 일요일

   

    Einsame Sonntage hab ich zuviel verbracht
        그토록 수많았던 고독한 일요일들

    Heut mach ich mich auf den Weg in die lange Nacht
        오늘 나는 긴 밤 속으로 먼길을 떠나리

    Bald brennen Kerzen und Rauch macht die Augen feucht
        촛불은 타오르고 담배연기는 내 눈을 젖게 하네

    Weint doch nicht,Freunde,denn endlich fuehl ich mich leicht
        사랑하는 벗들이여 눈물은 흘리지 말아주오

    Der letzte Atemzug bringt mich fuer immer heim
        이 마지막 숨결이 나를 영원히 고향으로 인도하리

    Im Reich der Schatten werd' ich geborgen sein
        그 어둠의 나라에서 완전한 안식을 누리리니

    Trauriger Sonntag
        우울한 일요일

 

 

지금은 원곡을 들을 수 없지만 당시 이 음악을 듣고나서 자살을 하는 사람들이 이어졌다.

실제로 1936년 4월 30일,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하던 프랑스 파리의 레이벤츄라 오케스트라 콘서트 중,

드럼 연주자가 권총 자살을 한 것을 시작으로 전 연주자가 자살을 한 일이 일어났다.

결국 실제 작곡가 레세 세레쉬도 이 곡을 들으며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르겠다 나는.

원곡을 직접 듣지 않아서인지 영화 속에 나오는 '글루미 선데이'는 죽음을 부르는 슬픈 곡조이기보다는

아주 오래된 레코드, 직직거리는 소음이 들어있는 노래를 다시 듣는 듣한 분위기? 거기다 세로 줄이 죽죽 그어진 낡은 영화 필름 같다는 생각 뿐,

사실은 영화에 등장하는 부다페스트의 거리가 더 눈에 들어왔다.

그들이 힘차게 달려가고 있는 다뉴브 강의 세찬 물결과 언젠가 내가 그 곳에 있을 것이라는 흥분이 더 전해져 왔을 뿐이다.

다시 부다페스트를 꿈꾸고 있는 2015년, 덕분에 영화를 다시 한번 더 보겠지만....

내게는 아마 여전히 아름다운 부다페스트가 더 눈에 들어올 지도...

그리고 비극적이지만 아름답게 그들의 사랑이야기를 읽어낼 지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