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피렌체의 문학 -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프리 김앤리 2011. 11. 9. 15:21

 

오늘은 재미있는 이야기.

이야기가 있는 책 이야기.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겨울날 긴긴 밤,  삶은 고구마 까먹으면서 이불안에서 재미있게 할 수 있는 이야기?

마치 아라비안나이트같은 이야기?

오늘날로 치면 술술술 넘어가는 여성잡지?

고지식한 시대의 통념에 저항하는 저항문학?

 

데카메론이라는 책을 이해하려면 그 책의 배경이 이탈리아의 피렌체이고

책이 나온 시대가 14세기 중반이라는 것을 깨달아야 한다.

14세기라면 그 전의 세상, 모든 것이 신이 중심이 되어있던 시대를 벗어나

인간 중심의 문화, 인간의 해방, 인간의 재발견이  꽃피어 오르던  르네상스 시대이라는 것이다.

더구나 르네상스 운동의 중심이었던 이탈리아의 피렌체였으니

문학이든 미술이든 모든 예술, 창작활동의 주제는 인간이 아니었을까?

 

그 중 하나가 보카치오의 데카메론이다. 

이 책이 신을 향한 고리타분(?)한 편의 의식같은 문학작품이 아니라

사람냄새가 풀풀하는 재미있는 이야기로 엮어 있음은 어쩌면 당연한 일이다.

 

주경철 교수의 책, 〔죽음을 넘는 인간적 사랑의 세계〕중에서

데카메론에 관한 부분이다.

오랜만에 이야기 책 읽듯이 술술 편하게 읽었다.

 

--- 옆의 사진은 피렌체 우피치 미술관의 옆 담을 따라가다 보면 만나는 

      보카치오 조각상이다. ----

 

흑사병은 인류 역사상 가장 참혹한 전염병중의 하나로 꼽힌다.

14세기에 유럽에 퍼진 이병은 지역에 따라서는 한두 해만에 인구의 3분의 1을 죽음으로 몰아넣을 정도로 엄청난 피해를 주었다.

‘데카메론’은 이 무서운 전염병으로 인산 사회가 거의 송두기째 무너져 내릴 듯한 위기의 시대를 배경으로 한다.

 

1348년 피렌체에 이 ‘검은 죽음’이 들이닥쳤다.

이 전염병에는 어느 의사의 진단도, 어떤 약도 소용없었다.

병이 낫는 사람은 극히 드물었으며, 조금 늦고 빠른 차이는 있지만 대개 사흘 안에 죽었다.

이렇게 무서운 병이 걷잡을 수 없이 퍼지자 사회의 풍속과 세태도 변했다.

무조건 사람을 피하는 것이 상책이었으므로 어떤 사람은 집 안에 틀어박혀 살면서 외부의 일을 완전히 끊고 스스로 격리되었다.

또 어떤 사람은 죽기 전에 모든 향락을 다 누리려는 심정으로 실컷 마시고 노래 부르면서 돌아다녔다.

그러는 동안 인간의 규범은 물론 하느님의 권위도 땅에 떨어지고 말았다.

육체와 성에 관한 규범도 바뀌어서, 병을 핑계로 젊거나 늙거나 간에

여자들은 모두 아무 부끄러움 없이 남자 앞에서도 벌거벗은 몸을 내보일 정도로 풍속이 이상하게 바뀌어 가고 있었다.

장례식에서도 수도사가 엄숙하게 기도를 하는 일은 없어지고 구덩이에다가 아무렇게나 시체를 던져 넣기도 한다. 

위기의 시대에 문명의 붕괴 조짐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이런 때에 피렌체의 양갓집 젊은이 열명이 흑사병을 피해 교외의 빌리로 가서 안전하고 깨끗한 생활을 하기로 한다.

이 일곱 명의 여성과 세명의 남성은 무료함을 달래려고 서로 돌아 가며 이야기를 하기고 한다.

매일 한 사람에 하나씩 열흘 동안 이야기를 해서 모두 100개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다.

‘데카메론’이란 고대 그리스어로 10을 나타내는 ‘데타’와 날을 나타내는 ‘헤메라’의 합성어이니 곧 ‘열흘’이라는 뜻이다.

100개의 이야기가 다 걸작이고는 할 수 없지만, 전반적으로 생기 넘치는 위대한 작품이라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인문학적 교양이 철철 넘쳐나는 활달한 청춘 남녀 열명의 입을 통해 그려내는 데카메론의 세게는 어떤 곳일까?

지리적으로 보면 물론 이탈리아, 특히 피렌체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지만

아르메니아에서 에스타냐까지, 이집트에서 영국까지 포괄하는 넓은 세계를무대로 하고 있고,

등장인물들의 면면을 보면 귀족으로부터 수도사, 농민, 하인, 도둑에 이르기까지 사회의 거의 모든 계층을 망라하고 있다.

실로 광범위하고도 다양한 세계를 세세한 필치로 그려내고 있는 것이다.

이 세계의 성격으로 일률적으로 단정할수는 없지만, 우리가 흔히 ‘중세’라고 부르는 시대와는 분위기가 완연히 다르다는 것은 분명하다.

보카치오(1313~1375)는 죽음의 공포가 넘실대는 황량한 시대의 일각에서

 “다시 탄생하고 있는”(이것이 바로 르네상스의 원뜻이다.) 새로운 세계의 여러 면모들을 그려내고 있다.

 

무엇보다도 이 작품에서는 기독교에 대한 무조건적인 옹호나 복종은 눈 씻고 봐도 찾을 수 없다.

예컨대 첫날 두 번째 이야기는 노골적으로 기독교에 비판적이다.

 

파리에 사는 신심 깊은 한 상인에게 유대인 친구가 있었는데, 그는 이 유대인에게 늘 기독교로 개종하라고 충고를 했다.

그의 성실한 권유에 감명받은 유대인은 마침내 진지하게 개동을 고민하게 되었는데 ,

다만 직접 로마에 가서 교황과 추기경들의 행태를 살펴보고 마음을 정하기로 한다. 

그러자 상인의 가슴이 철렁 내려 앉는다.

 ‘이 사람을 개종시키려던 노력이 수포로 돌아가는 모양이군.

  로마 교황청에 가서 성직자들의 그 더러운 악덕 생활을 보면

  유대교에서 기독교로 개종하기는 커녕 기독교에서 유대교로 개종할텐데.’

아니나 다를까. 로마에 갔다 온 유대인 친구가 말하는 감상은 이런 식이다.

로마에서는 위의 높은 사람부터 아래 낮은 지위의 사람까지 모두 불결하기 짝이 없는 음탕한 생활을 하고 있다.

양심의 가책이나 염치도 없이 여색과 남색에 빠져서 무슨 큰일을 할 때조차 매춘부나 미소년들이 이들에게 적지 않은 영향을 미치고 있다.

모두 주정뱅이에다가 야수처럼 먹어대며, 돈이라면 사족을 못 쓰는 욕심쟁이들이다.

신성함, 헌신, 선행 같은 것은 아무리 둘러봐도 찾아볼 수 없으니,

모두 하느님 일에 종사한다기보다는 악마의 일을 도와준다는 느낌이다!

그러나 이 유대인은 교황이나 고위 성직자를 보고 마음을 정한 것이 아니라,

오히려 자신에게 개종을 권한 친구와 같은 일반 신자들의 성실한 신앙심에 감동받아 기독교로 개종하겠다고 말한다.

 

나는 아홉째 날 두 번째 이야기를 가장 재미있게 보았다.

롬바르디아에 있는 규율이 엄격한 수녀원에 미모가 뛰어난 이자베타라는 젊은 수녀가 있었다.

어느 날 친척들이 면회를 왔는데 그 중에 끼어 있던 젊고 잘 생긴 총각과 그만 눈이 맞았다.

이 총각은 급기야 수녀원에 몰래 숨어들어가는 방법을 알아내서 두 사람은 여러 번 밀회를 가지게 되었다.

그러나 꼬리가 길면 들키고 마는 법.

어느 날 몰래 수녀원을 빠져나가는 총각을 한 수녀가 보게 되었고, 곧 모든 수녀들에게 소문이 쫙 퍼졌다.

수녀들은 이왕이면 덕성 높으신 수녀원장과 함께 불륜의 현장에서 직접 이자베타를 붙잡겠다고 벼르고는 밤마다 그녀를 감시하였다.

이런 줄도 모르고 이자베타는 어느 날 방 또 애인을 방으로 불러들였다.

수녀들은 곧장 원장 방으로 달려가서 문을 탕탕 두들기면서 소리쳤다.

  “원장님. 빨리 일어나세요. 이자베타가 젊은 사내를 방으로 끌어들였답니다.”

그런데 사실 수녀원장으로 말하자면 지금까지 종종 큼직한 궤짝에 사제를 숨겨서 방으로 들여 밀회를 즐겼고,

 마침 이 순간에도 그 사제와 함께 있었다.

그런데 갑자기 수녀들이 달려와서 문을 두드리는 바람에 깜짝 놀랐지만

곧 사태를 파악하고는 침착하게 대처하려 했다.

그런데 어두운 가운데 옷을 챙겨 입다 보니 두건을 쓴다는 것이 그만 사제의 팬티를 머리에 쓰고 말았다.

원장은 방 밖으로 나오며 소리를 질렀다.

  “그 뻔뻔스러운 계집이 어디 있느냐?”

원장과 수녀들 모두 정신없이 달려가서 이자베타의 방문을 억지로 열어젖히니

두 젊은 남녀가 침대 위에서 꼭 끌어안고 있었다.

사람들은 가련한 이자베타를 집회실로 끌고 갔다.

원장은 수녀원의 신성함과 순결이 음란한 행위와 파렴치한 행동으로 더럽혀졌다고 이자베타에게 심한 비난을 퍼부었다.

한마디도 못하고 오돌오돌 떨고 있던 이자베타가 겨우 고개를 들고 보니

원장이 머리에 남자 팬티를 두르고 있고 그 끈이 대롱거리고 있지 않은가.

안도의 숨을 쉬며 이자베타는 이렇게 말했다.

 “원장님, 두건 끈을 매고 말씀해 주세요.”

원장은 처음에는 무슨 말인지 모르고 계속 야단을 쳤으나,

이자베타가 두건 끈을 매라는 말씀을 거듭 올리자 그때서야 자기가 머리에 남자 팬티를 두르고 있다는 것을 알게되었다.

다른 수녀들도 그제야 고개를 돌려 원장을 보고 사태가 어떻게 돌아가고 있는 지 파악하게 되엇다.

원장은 곧바로 설교의 내용과 말투를 바꿔서,

인간이 육신의 자극으로부터 몸을 지킨다는 것은 불가능하다는 말로 결론을 내린다.

그래서 지금까지 그랬던 것처럼 몰래 할 수 있을 때에는 각자 적당히 해도 상관없다고 말한다.

이렇게 해서 원장은 젊은 수녀를 용서한 다음,

다시 사제와 동침을 하기 위해 자기방으로 돌아가고 이자베타는 애인과 자기 위해 방으로 돌아갔다. 

그 뒤부터는 선망의 시선을 보내는 다른 수녀들에게 보란 듯이 자주 그 청년을 끌어들이게 되었다.

그리고 애인이 없던 다른 수녀들도 때를 만난 듯 몰래 사랑의 모험을 찾아 애인을 구하기 시작했다.

 

이 이야기를 들은 나머지 아홉 사람의 반응 역시 뜨겁기 그지없다.

“이야기가 끝나자 모두들,

 질투심 많은 수녀들로부터 시달림을 받던 젊은 수녀를 쾌히 구해주신 하느님께 감사를 드렸습니다. ”

 

 〔죽음을 넘는 인간적 사랑의 세계〕 보카치오의 데카메론 편   - 주경철 저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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