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지금은 여행중 /3월 유럽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여행이 가장 끔찍한 여행이다

프리 김앤리 2012. 6. 15. 14:10

독설닷컴, 파워 트윗트리안으로 유명한 시사인 기자 독설이 한 말이다.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은 여행이 가장 끔찍한 여행이다.'

동감한다. 전적으로 동감한다.

 

어제 저녁 사무실 전체 회식을 했다.

얼마전 유럽을 갔다 온 대장 한명이 손님 얘기를 들려준다.

스위스 인터라켄에 있는 빌라존넨호프가 제공하는 무료 수영장엘 갔다가 봉변을 당했다고.

수영장 샤워실에서 목욕윽 하고 있는데 멀쩡한 남자가 들어오더라나?

이유인즉슨 수영장 고객중에 장애인이 한 명 있었는데 그러면 스텝이 항상 그 상황을 챙겨야 한다고 아무렇지도 않게 행동하더란다.

그 수영장에 대한 어떤 information을 받지 못한 그녀들은 당황했을 것이 뻔하다.

너무 놀라 기절하는 줄 알았다고, 그 충격을 잊지 못하겠노라고...

 

독일이나 스위스의 호텔에서 사우나라고 표시해놓은 데 들어가면  옷 입은 남자가 아니라 헐떡 벗은 남자들과 만날 수 있다고도 했다.  

나는 이미 그 정보를 알고 있으므로 독일이나 스위스에서는 공짜 사우나라고 해도 겁이 나서 한번도 들어가 본 적 없다.

서로들 전혀 모르는 외국 사람이면 또 몰라도(ㅋㅋㅋㅋ) 한국 남자를 만나거나 혹은 같이 간 일행 중의 어떤 남자라도 만나게 된다면 정말 큰 봉변이 아닌가?

그래서 나는 그곳을 가지 않고 있으므로 내게는 아무 일이 있을 리 없다.

 

헐떡 벗은 채로 수영장 샤워실에서 남자와 조우하게 된 그녀들의 문화적 충격은 가히 짐작하고도 남으나

아마도 평생 잊지못할 기억(? 추억? 봉변? 당황?...)을 만들어 준 여행이 될 것이다.

시간이 지나 유럽의 다른 장면들이 서서히 옅어져 가도 그 날의 기억은 선명하게 남아있을 것이며

어디선가 다른 누구에게 자신들의 유럽 여행이야기를 꺼낼때면 단골 메뉴처럼 등장할 것이다.

그런게 여행이기 때문이다.

똑같은 장면, 여기나 거기나 비슷한 문화에 알듯한 상황만 펼쳐진다면 여행이 왜 짜릿할 것이며, 여행이 무어 그리 필요하겠는가?

 

캐나다를 여행할 때였다.

혼자 여행이었다.

밴쿠버의 UBC(University of British Columbia) 안에 있는 인류학 박물관을 보고 난 뒤였다.

혼자의 여행이라는 건 남들이 보면 참 멋진 일이고 당차게 보이기는 하겠지만 때로는 아주 지독한 외로움의 연속이다.

캐나다 여행의 마지막이 밴쿠버 였으니 이제 더 이상 뭔가를 보고 싶은 호기심도 많이 줄었고, 꼭 봐야 한다는 의무감도 사라지는 시점이었다.

외로움과 맹숭맹숭함이 짬뽕으로 되어 있는 시간에 가장 좋은 'Killing Time'은 걷는 것이었다.

전혀 길을 알지 못하면서도 아래로 내려가면 바다가 있다는 말만 듣고 UBC 대학의 숲길로 들어서 비탈진 아래를 내려갔다.

사람들은 거의 없었지만  길은 분명하게 나있었고 그 때쯤은 혼자 다니는 간뎅이가 조금 부어 있기도 했다.

하여튼 제일 아래까지 내려갔고 거기엔 약속대로 바다가 있었다.

지도상의 감으로 치자면 이 바다를 따라 오른쪽으로 걸어 간다면 내가 묵고 있는 제리코비치가 나옴이 분명했다.

그래서 나는 무턱대고 걸었고, 그 길에서 못(?) 볼 걸 보고 말았다.

맞은편에서 덩치가 산만한 남자가 아무 옷도 걸치지 않고 검은 양말에 구두만 신은 채 걸어오고 있었다.

검은 색 가방을 멨던 건 같기도 하다.

외통수 길에서 그와 나 딱 둘이었다.

뒤로 돌아 오던 길을 다시 갈 수도 없고 그렇다고 멈춰설 수는 더더군다나 없었다.

걍 걸었다.

눈을 어디로 둬야 할 지 몰라 허둥거렸던 생각은 난다. 허둥거렸으나 걸음걸이만은 흔들리지 않으려고 노력했던...

그러나 양말과 구두만 신은 그 사내는 정말 아무렇지도 않게 곧장 걸어왔으며 정말 아무일도 없이 나를 스쳐 지나갔다.

뒤를 돌아볼 수도 없었고 그를 지나친 나는 잰 걸음을 걸었다.

그러나 아뿔싸...

조금 더 걸어간 곳의 해변에는 한 무리의 하마떼들이 어기적어기적 거리고 있었다.

다들 남자들이었고 몽땅 다 누드였다.

그리스 로마 조각같은 아름다운 몸매의 사내들이 아니었다.

한 무리의 하마떼, 바다 사자 같은 몸매로 해변 여기 저기 널브러져 있었다.

걸음 속도를 빨리 하는 것도 어려웠다.

그냥 정상적인 속도를 내는 게 덜 어색할 것 같았다.

시원한 바닷바람이 부는 옆으로는 고개도 한 번 못돌리고 오로지 앞만 쳐다보고 걸었다.

썬글라스를 끼고 있다는 사실이 그렇게 고마울 수가 없었다.

나중에 알고 보니 그곳은 남자 누드비치였다.

그런 정보를 미리 알고 있었더라면 절대 가지 못했겠지만 몰랐기 때문에 저질러 진 일이었다.

 

나의 누드사 - 정확하게 말하면 나의 누드사가 아니라 남의 누드사 - 는 사실 이것보다 몇가지가 더 있지만

여기서는 생략하고...

 

이 여행을 한 지는 10년도 훨씬 더 지난 일이다.

20여일을 넘도록 한 캐나다 여행, 난생 처음 나홀로 여행이어서 무수히 많은 추억과 숱한 장면들이 있지만

지금도 내 캐나다 여행에서 빠지지 않는 안주거리는 그 날의 누드비치다.

 

내가 즐겨찾는 너도바람님의 블로그에 며칠 전 이런 류의 내용이 있었다.

"남자들만 군대 이야기를 울궈 먹는 게 아니다. 우리도 여행 갔다 오면 평생 늘어놓는 이야기가 있다. "

이 말도 전적으로 동감했다.

 

오늘의 여행 이야기~~~

"아무일도 일어나지 않은 여행이 가장 끔찍한 여행이다."

 

 스위스 인터라켄 빌라 존넨호프에 묵으면 무료로 제공되는 수영장, 바로 그 수영장.

지난 3월 출장 가서 찍은 사진이다. ㅋㅋㅋㅋ

 

수영장 밖을 나오면 동네의 작은 개천?

 

우리가 묵었던 백패커스 빌라 존넨 호프.

 

빌라 존넨호프 아침 식사.

 아~~~ 커피 맛있었는데...

 

호스텔의 복도에서 보는 바깥 풍경.

알프스가 훤히 보였다.

 

 

우리 방 창 너머 풍경...