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지금은 여행중 /10월 필리핀

세상의 땅끝에서 만난 마젤란

프리 김앤리 2012. 10. 16. 09:00

....연상작용

세계일주 - 마젤란 - 마젤란 해협 - 남미 - 탐험 - 바스코다가마 - 바르톨로메 ....

 

내가 남미를 여행했을 때의 이야기이니 10년도 더 넘은 이야기다.

칠레의 푸에르토몬토에서 비행기를 탔다. 칠레의 땅끝, 푼타아레나스까지 가는 비행기였다.

우리의 목적은 빙하가 있는 파이네 국립공원 트레킹이었고 이를 위해서는 트레킹을 시작하는 마을, 푸에르토 나탈레스에 가는 것이었다.

원래는 빙하를 헤치고 나가는 몇박 몇일짜리의 배를 타고 가려고 했지만 이미 매진이었다.

영어라고는 몇마디 밖에 통하지 않는 어느 항공사의 어느 사무실을 찾아가

몇마디의 영어와 그리고 아주 몇마디의 스페인어와 그리고 아라비아 숫자를 마구 동원한 끝에 티켓을 구했고

우리는 칠레의 땅끝 마을 푼타 아레나스로 가는 비행기에 몸을 실었다.

시골 간이역 같은 조그만 공항에는 바람이 몹시 불고 있었다.

'남극이 가까워서 그러리라'는 터무니없는 상상을 했고 그렇게 믿었다.

푸에르토 나탈레스로 가는 버스를 타려면 몇시간을 기다려야 했고

우리는 혹시 남극이 보일지도 모른다는 진짜 말도 안되는 기대를 갖고 푼타아레나스 시내로 나섰다.

 

<푼타 아레나스 시내>

무엇이 있는지 뭘 봐야 하는지 전혀 알 수 없는,  갑자기 닥쳐 온 상황이었지만

우리의 목표는 하나였다.

'바다가 보이는 곳으로 가자'

이 사람 저 사람을 붙잡고 물어봤던 것 같다.

sea라고 했던 것도 같고 ocean 이라고 했던 것도 같다.

아니면 mare 라고 했나? 아님 marin?

바다, 그 비슷한 의미를 가진 것이면 무조건 들먹였고 우리는 사람들이 가리키는 손끝을 따라 결국엔 바다에 도착했다.

아무것도 없었다.

그냥 휑한 바다였다.

그 너머엔 남극의 한 꼭다리(끄트머리)도 보이지 않았다.

이 곳이 땅끝이라는 심정만 있었지 어떤 의미도, 그 의미를 챙겨줄 어떠한 흔적도 없었다.

그러나 우리는 감동하였으며 세상 끝의 바다에서 살고 있는 돌이라며 작은 돌멩이도 몇개 주워 왔다. 

(그 돌들은 아직도 우리집 거실의 한 귀퉁이에 잘 모셔져 있다. ) 

우리가 받은 벅찬 감동의 큰 이유 중의 하나는 '마젤란'이었다.

세계일주를 최초로 한 사람, 지구가 둥글다는 것을 증명한 사람, 탐험가 모험가 마젤란이 지나갔던 곳.

마젤란 해협이 바로 그곳이었으며

500년 전, 넓은 세상을 두려워하지 않고 바다로 나서 길을 찾아낸 사람, 마젤란이 섰던 그 바다에 우리가 있다는 사실이었다.

푼타 아레나스 도시의 어느 한쪽에 마젤란의 동상이 있었으며

우리는 그의 동상앞에서 그를 기념했다.

그의 모험정신을, 그의 발견을 기념했다.

 

<마젤란 해협 지도>

 

다음은 필리핀 세부에 관한 여행이야기다.

이것도 10년이 다 되가는 이야기다.

그 해 여름은 참 더웠다.

몇 십년만의 폭서라는 둥, 해마다 있는 이야기이지만 내겐 현실적으로도 무척 더운 여름이었다.

여름방학을 꼬박 공주대학교에서 연수를 받는 중이었다.

유전학을 공부하느라 초파리들을 있는대로 쌓아놓고

동물학을 공부하느라 소 심장을 갖다 놓고 이리저리 까뒤집어보는 시간의 연속이었다.

강의실에는 에어컨이 빵빵했지만 아이들을 가르치는 교사들을 옴팍 모아 하루종일 의자에 앉혀 놓으니

그동안 교사라는 이름으로 우리들이 저질렀던 악행에 대한 죄값을 받는 것 같았다.

우리들 모두는 하루하루 지쳐갔고

'학교로 돌아가면 우리는 절대 저렇게 가르치지 않겠노라'는 다짐을 매일매일 했다.

연수의 제일 마지막 날.

나는 시험만 치르고 연수증도 받지 않은 채 바로 공주를 떠났다.

공주까지 나를 데리러 온 자가용에 실려 공항으로 냅다 달렸고 바로 비행기를 탔다.

마지막 남은 여름 방학 며칠을 세부에서 보내기 위해서였다.

모든 준비는 공항에서 기다리고 있는 친구들이 다 했고 나는 몸만 실으면 됐다.

그날 밤, 나는 필리핀 세부 막탄의 한 리조트에 짐을 풀었다.

 

<필리핀 세부 막탄의 한 리조트>

하여튼 신나게 놀았다.

물 속에서 풍덩풍덩.

지난 여름 내내 강의실에서 공부하느라 뽀개진 머리를 마음껏 식혔다.

거기가 어딘지도 정확하게 몰랐다.

리조트를 벗어나면 무엇이 있는지도 몰랐다.

그저 코발트색, 옥색 맑고 깨끗한 바다에서 풍덩풍덩 놀기만 놀았다.

탐험가 마젤란의 최후가 그곳이었다는 사실도 제대로 몰랐다.

막탄섬의 부족장 라푸라푸와의 전투가 마젤란 생애 최후의 전투였다.

 

<라푸라푸 전투를 그린 그림. 마젤란의 최후다>

 

 

이제 포르투갈로 넘어가자.

세부를 갔다온 다음해였다.

포르투갈 리스본의 앞바다에서 보이는 바다는 유럽의 가장 서쪽 땅이었다.

그 바다 너머에는 항상 새로운 세상이 있었다.

사람들은 바다 너머의 세상이 궁금하였으며 모험가이자 항해사 그리고 사업가들은 바다 너머의 세상이 일확 천금으로 유혹하였다. 

 

유럽의 가장 서쪽 끝 로카곶을 다녀왔으며 신트라와 까스까이스를 돌아보면서 무어족의 성들을 보았다.

리스본에서는 도시 전체가 다 내려다 보이는 성벽을 올랐고 바닷가에 세워진 벨렘 타워를 갔다.

해양왕 엔리케 왕자를 앞장 세운 건축물을 보면서 전성기때의 포르투갈을 보았다.

그리고 찾아간 곳. 제로니모스 수도원.

바스코 다 가마의 인도 항로 발견을 기념하기 위해 세운 건축물이다.

그곳에는 바스코 다 가마의 무덤도 있었다.

대 발견의 시대, 대 항해의 시대 탐험가 모험가 여행가였던 바스코 다 가마와의 만남이었다.

교과서에서만 보던 그와의 만남은 전설처럼만 느껴지던 인류의 역사와를 대면하는 일이었다.

우리는 또다시 감동하였으며 세계를 한바퀴 돈 마젤란을 또 떠올렸다.

밤이면 구슬프고도 아름다운 파두를 부르는 가수를 찾아 리스본의 뒷골목 까페에서 전전했지만

우리들의 마음의 한켠에는 바스코다가마와 마젤란을 품고 있었다.

 

신대륙을 발견한 콜럼버스나

인도 항로를 발견한 바스코다가마나

그리고 지구를 한 바퀴 도는 경로를 찾아낸 마젤란의 부대나

농경시대와 봉건시대를 거치면서

가족이나 친지 단위의 작은 생활을 벗어나

소규모 마을, 하나의 성벽에 옹기종기 살던 작은 규모를 벗어나

드디어 대양을 너머 넓은 세상으로 나아가는 역사가 우리 여행으로 실존하고 있었다.

 

 

다시 필리핀으로 돌아오자.

10월 말, 필리핀 세부로 여행을 간다.

다문화가족센터에서 일하는 선생님들과 함께 하는 여행이다.

이들이 굳이 필리핀을 선택한 이유는 선생님들이 일하고 있는 다문화센터의 결혼 이주 여성들 출신이 필리핀이 많기 때문이다.

필리핀 문화를 이해하는 것이 다문화 가정을 이해하는 지름길이기 때문이다.

거기다 굳이 세부를 선택한 이유는

물론 교통이 편해서이다.

물론 아름다운 바다가 있어서이고 휴양지가 있어서이다.

그러나 다문화센터에서 일하는 필리핀 선생님은

"세부야말로 필리핀이라는 나라의 역사가 그대로 집약되어 있는 곳"이라고 적극 추천했다.

그래서 이번 여행 팀은 세부의 맑은 바다에서만 노는 것이 아니라

필리핀의 역사도 살펴보고, 필리핀의 초등학교도 찾아가보기로 했다.

아이들을 위해 작은 선물도 마련하고 아이들과의 만남도 가져볼 작정이다.

화려한 리조트에만 머무를 것이 아니라  

리조트 뒤에 숨겨져 있는 진짜 세부 사람들을 만나려는 노력도 할 것이다.

그들 속에서 필리핀인의 영웅, 라푸라푸를 찾아 볼 것이다.

 

포르투갈이나 스페인의 입장에서 보면

(마젤란은 원래 포르투갈 사람이나 신항로를 개척하면서는 스페인 왕궁의 도움을 받아 떠났다.)

개척가이자 모험가,항해사, 동양의 향로를 듬뿍 구해온 대사업가이겠지만

필리핀의 입장에서 보면 침략자이자 정복자일 수 있는 사람, 마젤란.

예전부터 필리핀의 그 땅에서 살고 있던 원주민 부족장 라푸라푸는 외세로 부터 필리핀을 지켜낸 영웅이며

오히려 마젤란은 막탄 섬의 토벌대, 원주민을 학살한 학살자 있다는 다른 각도의 역사.

 

한 나라의 문화를 이해한다는 것은 역사를 제대로 아는 것이 가장 기본이다.

십년도 넘도록 띄엄띄엄 만난 마젤란이 이제는 마젤란 한 명으로 다가오는 것이 아니라

라푸라푸와 함께 다가오는 필리핀 세부 여행.

이번엔 무엇을 담아올 것인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