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0 지금은 여행중 /또 여행을 준비하며

다시 김군이 되다

프리 김앤리 2010. 6. 7. 01:51

... 결국 사랑니를 뽑았다. 시원하기 보다는 아직은 아리다.

... 머리를 잘랐다. 6개월간 미용실에 못온다고 짧게 잘라달라고 했다. 아뿔싸! 다시 '김군'이 되었다.

    남편은 내일 자를거란다. 일요일라서 문을 닫는댔더니 그러면 그냥 나간단다. 나도 몰라.

... 트레킹화는 살 시간이 없어서 집에 있던 그냥 운동화를  신기로 했다.  스포츠샌들하고 운동화를 운동화 빨래방에 맡겼다.

    빨래방 아저씨 왈 스포츠 샌들에서 때가 엄청 많이 나오더란다. 죄송해요 아저씨! 그거 작년 1년동안 세계를 돌아다닌 신발이거든요.

... 배낭도 살 시간이 없어 급하게 동생꺼 택배로 부쳐달라고 했다. 그런데 도착하고 보니 이것도 상태가 좀 그렇다.

    급히 구두 수선집에 맡겼다. 우리 동네에선 배낭 떨어진거 고쳐주는 수선집이 없다. 이건 기술을 요하는 건가 보다.

    다시 찾으러 갈 시간이 없어서 사무실에 있는 후배한테 찾아서 집에까지 배달하라고 시켰다.    

    어제 저녁 11시가 넘어서 집에까지 와서 전달해준다. 고맙다.

... 침낭은 또다른 후배가 사줬다. 선물이라고 사가지고 온 침낭을 두고 네팔에서 쓰면 춥겠다는 말을 입빠르게 해서 후배랑 같이 다시 가게로 가서

    더 비싼걸로 바꿨다.  가게에서 이것 저것 만지다 목도리까지 하나 더 덤탱이 씌워버렸다.

    이 사람, 저 사람 여러사람 도움 받는다. 

... 썬글라스 렌즈만 새로 바꿨다. 눈이 더 나빠져서 어쩔수 없이 한 선택이었다.

 

... 옷장을 정리했다. 이번엔 별로 버릴 것이 없다. 간단하게 잘 살았나 보다. 구석구석 '물먹는 하마', '좀약'을 챙겨넣었다.

... 이불 빨래도 몇번씩이나 했다. 그냥 넣어두면 이상한 군내 날까봐.

... 냉장고도 싹 치웠다. 남아있는 재료 나부랭이들도 요 며칠새에 다 처리해야 한다. 냉장고를 열때마다 늘 먹을게 하나도 없다는 생각이 들더니만

    그렇게 다 치우고 나서도 아직도 며칠동안은 처리해야 할 음식들이 남아있다. 마술이다.

... 책상 서랍, 싱크대 안, 창고... 구석구석 다시 다 정리했다. 정신없이 해 놓으면 사람없는 집에 귀신이 들어오면 어떡해.

 

... 시댁식구들이 집으로 다같이 와서 밥을 한끼 같이 먹었다. 밖에서 사먹으려다가 그냥 집에서 준비했다.

    추석도 제사도 또 우리 없이 지내도록 하는게 미안해서. 이렇게 뻔질나게 나가는데 여전히 이것저것들을 챙겨주신다.

... 친정 식구들이랑은 오늘 언니집에서 다같이 저녁먹기로 했다. 우리 땜에 아버지 생신을 거의 2주일이나 앞당겨서 하는거다.

    덕분에 그동안 멕시코에서 살다가 한국으로 들어온 남동생네가 시차 극복도 못한채 하루만에 부산으로 내려오게 됐다. 미안타.

... 사무실 사람들이랑 술한잔 했다. 딱 한잔만 하자고 했는데, 결국 저녁 12시를 넘겼다.

... 이번 선거에 구의원으로 나간 후배 사무실에는 시간내서 자원봉사를 하겠노라고 큰소리까지 쳤는데, 저녁에 살짝 한번 가본 걸로 끝냈다.

    남편이 한번 들를 때 따라서 한번은 더 가볼려고 했는데, 시간을 낼수 없어 집안에서 마음만 왕창 보냈다.

    다행히 굉장히 많은 표차로 1등 당선했다. 멋지다.

... 가기전에 꼭 한번은 보자고 말하는 사람들, 무슨 한양에 시험치러 가는 것도 아니고... 괜히 미안타. 다 생략이다.

... 서울 가는 기차표를 끊었다. 부산이라는 곳에서 외국을 나가기는 쬐매 힘들다. 인천공항까지는 다시 차를 타야하는데 서울 사는 후배한테 부탁했다.

 

... 튜브 고추장, 미역, 된장가루 샀다. 한국음식이라고 가지고 가는 유일한 것들이다.

... 이번엔 여름이 좀 길 것 같아서 짧은 소매 티셔츠를 몇장 샀다. 5천원짜리 만원짜리들.

    언니는 또 허접한 거 샀냐며 웃는다.

... 병원에 가서 6개월치 약을 받았다. 이번엔 또 어딜 가느냐고 의사선생님이 묻는다. "미국하고 캐나다요."  "거기 가면 음식이 기름질텐데..."

... 동네 약국에서 무좀약, 종합감기약등 이것 저것을 샀다. 다시 쏠랑 그대로 남겨오더라도 떠날 때는 이것 저것 신경이 쓰인다.  

... 미국 비자신청 했다. 확인증도 복사해두었다. 여권도 여러장 복사해두었다. 사진도 몇장 챙겨두었다. 여행자 보험도 들어놨다.

... 우선 캐나다 달러로 환전을 조금 해 두었다. 우리가 나가 있는 사이 미국 달러는 더 내리겠지. 무조건 기대해 놓고 본다.

... 인터넷, 핸드폰,모두  6월 8일자로 중지 신청해두었다. 가뿐하다.

... 캐나다 토론토에 사는 사촌 조카가 우리가 도착하는 공항에 마중을 나오기로 했다.

    한번도 본 적없는 조카와 이메일을 주고받았다. 고맙다. 

... 일은 엄청 한 것 같은데, 아직도 할 일들은 더 남아있겠지?

    남들은 배낭여행이라고 하면 신나고 가슴 설레고 즐겁고 화려한 것만 생각하는데

    처리해야할 쫀쫀하고 자잘한 것들이 우찌 이리 많은지.

    이런건 누가 대신 해 줄수 없나? 나는 그냥 쏠랑 여행만 가게....

 

... 어제 저녁 12시를 넘기고 배낭을 한번 챙겨봤다.

    둘이서 동시에 한 말.

    "미쳤지. 편안하고 좋은 우리 집 놔놓고 이게 또 무슨짓이고?

     이제 또 매일 매일 이 짐을 풀었다, 쌌다 해야 된다는 말이제. 미쳤지..."

 

... 사실 어떤 것 보다 미국과 캐나다에 대한 공부가 더 중요한데, 정작 그건 거의 못했다.

    산더미 같은 책을 쌓아두고 공부하고 있는 남편만을 믿을 뿐이다.

    그런데, 남편의 여행 공부라는 건 역사, 문화, 정치 같이 거대하고 원론적인 것들이라

    정작 어느 숙소에서 자고, 교통편은 어떻게 되고 등등 실제 여행에 필요한 것들은 거의 없다.

    여지껏 여행에서 그런 것들은 내 몫이었는데, 내가 그걸 다 펑크내버렸다.

    인천에서 토론토 가는 비행기 안에서... 그리고 여행 중간중간에...

    또 마술을 부려볼테다.

 

 

 

*** 하루 후에 다시 덧붙인다.

     나의 사랑스런 여동생 왈

     "가스나, 다른 사람 이야기는 적어놨더니만 내가 가방 사준 거는 왜 안적어놨는데?"

     ㅋㅋ

 

     이야기의 전후는 이렇다.

     대형할인점에 간 동생한테서 전화가 왔다.

     "언니야, 니 이번에 여행갈때 작은 쌕 새로 사야 안되나? 여기 억수로 예쁜 가방 하나 있는데 내가 사줄까?"

      언니, 슬 욕심이 생긴다. 

     "아니 작은 가방은 있는 거 그대로 들고갈꺼다. 나는 트레킹화가 더 필요하다.  신발 사주라."

     "그건 나도 모르겠다. 여기에 없다. 진짜 작은 쌕은 안할끼제?"

      언니, 동생에게서 나중에라도 큰 거 받을 욕심으로

      "가방은 필요없다니까? 있는 거 그대로 가져갈꺼다"

      "그라믄 알았다."

      그리고 며칠이 흘러버렸다.

      트레킹화를 새로 사달라고 말할 시간도, 새로 사러 갈 시간도 없었다.

      다른 거 산다고 대형할인점엘 갔는데, 입구에 딱 들어서자 마자 동생이 사줄려고 했던 가방이 무엇인지 짐작이 간다.

      ' 신발 얻어신기는 글러먹었고, 저 가방이라도 사야겠다.'

      급하게 전화를 하는데 동생이 받지 않는다.

     ' 에라이 모르겠다. 무조건 저지르고 보자.'

      녹색 멋진 쌕을 하나 샀다.

      저녁 늦게 통화가 된 동생한테 슬쩍 떠보았다.

      니가 사줄려고 한 가방 여전히 유효한거냐, 내가 직접 보니까 정말 이쁘더라.

      속도 모르는 동생은 "맞제, 정말 괜찮제. 그래 사준다니까~~~"

      "그럼 살까?"

      "그래 사라~~"

      "그래??? ㅋㅋ 아까 낮에 이미 샀거든. 니는 내한테 돈만 부쳐주면 된다... 땡큐땡큐~~"

     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ㅋ

      5일 아침에 이 글을 쓰는 시점까지는 아직까지 동생한테 가방에 해당하는 돈을 전달 받지 않은 시점이라

      지가 내한테 가방 사줬다는 건 굳이 쓸 필요가 없었다.

      아니, 생각이 안났다는게 더 정확한 표현이다.

      사실 세세한 걸 다 기억하고 있을만큼 내 정신건강이 괜찮지 않다.

      다 잊어먹고 다니고, 다 놓치고 다니고, 다 빠뜨리고....

      그래서 지 이야기는 안써놨는데, 친정식구들 만난 자리에서 동생이 한마디 하는거다,

      가방값을 현금으로 건네면서.

      "다른 사람 이야기는 다 써놨더만... "

      ㅋㅋㅎㅎㅎㅎ

      고맙다, 현아야!!! 진짜 고맙다!!!  니도 내 여행에 큰 도움이 됐다 !!!!!

      내 사랑하는 동생이 작은 쌕 사줬다!!!!!!!!!!!!!!!!!!!!!

      에고...여행간다고 진짜 여러사람 고생시킨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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