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뱁새부부와의 인연 -룩셈부르크 에크트나흐의 추억

프리 김앤리 2011. 12. 21. 18:54

 

룩셈부르크의 에크트나흐.

어제일 같은데 벌써 이년도 더 지난 이야기다.

여행 시작하면서 읽었던 빌브라이슨의 책 『나를 부르는 숲』의 한 구석에 있던 단 한 구절, 

 '독일 국경에 있던 룩셈부르크의 숲에서의 트레킹은 얼마나 ...' 에 반해서 물어물어 이 숲을 찾았다.

난생 처음 들어본 지역이었고 여지껏 이 곳을 갔다왔다는 사람을 주변에서 만난 적이 없다.

 

그런데 우리가 여행을 떠나고 도둑고양이 마냥 우리 블로그를 열심히 보던 한 부부가 있었던 모양이다.

댓글이나 방명록 등 찾아온 흔적도 남기지 않았던 사람들이었으니 도둑고양이라고 불러도 거짓은 없을꺼다. 작년 어느 시점이전까지는.

일년간의 아시아 유럽 중동 여행을 마치고 다시 아메리카 대륙 여행을 준비할 6월 무렵, 그들은 문득 우리 블로그에 댓글을 남겼다.

자신들도 떠나노라고.

고작 고추 몇그루, 방아 씨 정도 뿌려놓은 우리 베란다의 작은 밭을 두고 어째 다시 떠나랴 걱정하고 있는 우리들의 소꿉장난을 비웃듯이

이백평이 넘는 고구마밭(? 감자 밭이었나? 배추였나? 하여튼...)을 두고도 자신들은 떠나노라고 했었다.

그러면서 우리의 여행을 벤치마킹했다고. 우리가 간 길을 열심히 따라가보겠노라며 아이디도 '뱁새부부'라고 말이다.

온라인 상으로 만난 사이라 통성명을 할 사이도, 또 딱히 그리해야 할 이유도 없고

나이, 신분 따위를 묻는 것 자체가 인터넷 시대에 뒤떨어진 발상이니 그리하지도 않았지만

앞뒤 왼쪽 오른쪽을 슬며시 따져본다면 우리 부부보다 연배는 더 있으신 분들이었다.

종종 그들의 블로그에 들어가보면 우리가 갔던 아이랜드의 모어 절벽도 걸으시고 자이언츠 코지웨이를 가기 위해 꼭 그 호스텔에 머무셨다.

스코틀랜드의 글렌코, 아비모어, 노르웨이의 스타방예르 ... 정말 우리와 비슷한 일정으로 여행을 하고 계셨다.

우리 둘과 그들 둘은 한번도 만나지 않았지만 어느새 같은 공간, 비슷한 추억을 가지게 된 거다.

 

작년 여름 어느 무렵부터 4개월여의 유럽 여행을 마치고 돌아오신 두분은 연말 무렵 다시 네팔과 인도로 떠났다. 네팔까지는 단체로 같이 다니고

1개월 정도의 인도는 다시 두분이서 다니는 배낭여행이라고 하셨다.  블로그에는 복잡한 카트만두의 사진이 등장하기도 하고 눈이 부신 카첸중가의 눈덮힌

산마루가 등장하기도 했다. 어떤 날의 인도 삼등칸 열차에서 곤히 잠자고 있는 사진이 등장하기도 하고 또 어떤 날은 어수선한 델리 뒷골목이 나타나기도 했다.

이번에는 우리가 갔던 곳도 있었지만 우리가 가보지 못한 곳이 훨씬 더 많이 등장했다. 나는 매일매일 그의 블로그로 놀러가서 그들과 함께 인도 네팔을 여행했다.

 

그리고는 올 봄 언제쯤인가 그들은  멀쩡한 아파트(멀쩡하지는 않다고 하셨다, 참. 많이 낡았다고 했다)를 두고 강원도 어느 산골로 들어가 올 겨울 완전히 추워지기 전까지  전셋집을 하나 빌려 생활을 하셨다. 거기서 매일 집 바로 뒤에 있는 산엘 산책 나가는게 그리 좋다고도 했고 배추농사 고구마 농사로 거둬들인 농작물을 자랑하기도 했다.  한번씩 찾아오는 아들 며느리랑 등산을 즐기기도 하고 동창들에게 아주 괜찮은 전원주택을 하나 마련해 놓았노라며 그들의 방문을 즐기기도 하는 것 같았다.

언니 형부집( 그렇게 부르게 됐다. 어찌 하다보니)에 한번은 꼭 놀러가겠노라고 농담삼아 했지만 그건 정말 농담이 되어버렸다. 날씨가 추워지고 얼음이 얼기 시작하자

그들은 낡은 아파트로 돌아가서 다시 살림을 차렸다. 아니 차리는가 했다.

 

그런데 그들은 며칠전 다시 길을 떠났다. 내년 구정 즈음에  돌아오겠노라며.

이번 여행은 방콕을 거쳐 캄보디아, 베트남, 라오스란다. 지금은 베트남의 나짱에 들어가있다.

 

그들의 블로그에는 이런 글이 하나 남아있었다.

  " 여행은 사서고생.

    관광은 일상이 피곤하고 바쁜사람이 쉬기위한 거라면 여행은 우리같이 날마다 느슨한사람이 일부러 긴장하기위해 사서하는 고생.

    조금더 나아간다면 상처뜯기. 상처가 미처 아물기도 전에 살살 아픈데도 딱지를 떼는 쾌감 같은것. "

 

위의 사진 : 룩셈부르크의 에크트나흐 지방, 뮬러탈 숲 트레킹 중.

아래 사진: 에크트나흐 호스텔에 내가 남긴 방명록.

ㅋㅋㅋ 그런데 뱁새부부님께서 여기를 가셔서 사진을 찍어오셨다. 

올 여름인가 가을인가 어느 무렵 나는 이 사실을 알았고 부탁해서 사진을 받았다.

헐~~~ 날짜를 보니 2009년 9월 8일이다.

이렇게 뒤따라 오는 사람 있는 줄 알았으면 아무리 하루종일 트레킹으로 몸이 녹초가 되었어도 좀 더 멋지게 써놓을 걸 그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