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지금은 여행중 /7월 크로아티아

슬프고도 아름다운 모스타르

프리 김앤리 2012. 8. 23. 17:08

 

< 2012년 7월 투어야 여행사 크로아티아 단체배낭 5 >

 

크로아티아를 간다고 했으면서 보스니아를 갔다.

정확하게 말하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다.

크로아티아와 마찬가지로 옛 유고연방의 하나였던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도 내전이 끝난 지 얼마 되지 않았다.

두 나라 다 이제 겨우 이십여년.

그러나 유고 연방 시절부터 잘사는 나라에 속했던 크로아티아의 내전 회복속도와

그 때도 어려웠던 보스니아의 회복속도는 달랐다.

크로아티아는  어디서도 전쟁의 흔적이 보이지 않았고,

오히려 전쟁의 상처가 여행자들의 기억 혹은 추억(?)처럼 남아있어 

호기심을 불러 일으키고 때로는 더 관심을 가지게 하는 동기유발 요인이기도 했다. 

그렇지만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는 달랐다.

그 곳에는 여전히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었으며 상처가 되고 고름이 되어 보는 사람들의 마음을 아프게 했다.

나토군의 폭격으로 사람들이 죽어갔다는 세르비아나

유고의 맹주였던 세르비아군에 의해 폭격을 당했다는 크로아티아와 달리

같은 유고 연방이었던 크로아티아 정규군으로부터 폭격을 받아 폭삭 내려 앉았다는 모스타르의 다리는 그래서 우리를 더 슬프게 했다.

오랜 세월을 오손도손 살아왔던 한 마을의 주민들이

강 하나를 사이에 두고 이슬람과 기독교 세력으로 나뉘어져 서로가 서로를 반목하고 총을 겨누었다는 사실도 우리를 안타깝게 했다.

총알 구멍이 숭숭 박혀있고 폭격의 흔적을 고스란히 지니고 있는 거리 곳곳의 건물들, 흉물이었고 슬픔이었다.

버스 터미널에 내리자마자 우리에게 손을 내밀며 1유로를 구걸하던 아이들을 외면하는 일은 너무나 힘들었다.

이런 아이들을 만나는 순간이면 나는 늘 어렵다.

세상 곳곳에서 한 두번도 아닌데도 여전히 익숙해지지 않는 풍경이다.

그리고 여전히 답을 몰라 갈팡질팡한다.

  '돈을 줘야 하나? 주면 안되지? 온 동네 아이들이 우루루 몰려올 거잖아? 그래봐야 10유로 밖에 더 되겠어?

   사람들이 계속 돈을 주기 시작하면 이 동네 아이들을 결국 우리가 버려놓을  수 있잖아?

   뭐, 그리 잘난 척 생각해? 어려운 사람이 있으면 도와주는 것이 그냥 순리라구...'

긍정과 부정의 마음이 오락가락하면서도 냉정해지는 척 하고

같이 간 일행들에게 그 냉정함을 가르쳐 주는 여행 고수인 척 하는 것이 더 어렵다.

폭격으로 가장 오래된 stari most(스타리 다리)가 내려앉은 1993년을 잊지 말자는 Don't forget '93 표지석만

덩그러니 놓여 있는 골목의 어귀는 여행자들만 관심이 있는 척 보였다.

그곳에서 살아가고 있는 사람들은 그 돌덩이에 무심했고

1유로를 달라며 새까만 손을 내미는 아이들의 눈빛에 무심했다.

우리만 짠했다.

우리만 불편했다.

 

보스니아의 사라예보를 갔을 때도 그렇게 적었었다.

"이 사람들은 평화롭게 살고 있는데

 어줍잖게 잠시 들렀다 가는 여행자들만

 이제는 아물어가는 그들의 상처를 후벼파고 있는 건 아닌지...

 혹시 어디 어두운 구석이 없는지, 아직도 치유되지 않은 슬픔이 없는지, 얼마나 큰 고통을 당했는지

 잊고 싶은 기억을 자꾸 들추어 내는 건 아닌지..."

 

그들이 잊지 말자는 1993은

어쩌면 폭격을 가한 상대에 대한 복수심을 불태우는 의지가 아니라

한 동네에서 오손도손 살아갔던 1993 이전의 시절을 잊지 말자가 아닐까?

아니, 처음 그 표지석을 세울 때는 아니었다고 하더라도

이십여년의 세월이 흐른 지금은

이토롬 평화롭고 아름다운 마을을 가꾸고 살아가는 지금은

복수심보다는 평화를 더 갈망하고 있는 것은 아닐까???

 

 

모스타르로 들어오면서 가장 먼저 만났던 총알 구멍 숭숭, 흉물로 방치되어 있는 폭격의 거리.

 

 

그리고 아이들. 

1유로를 달라는 깜찍하고 앙증맞고 슬프고 발랄하고 얄밉고 꼬질꼬질하고 그러면서도 경쾌했던 아이들.

 

잊지 말자는데...

잊지 말자는데...

 

잊지 말자는 표지석에 관심이 있는 사람은 여행자들 뿐이었다.

우리는 그 표지석을 그냥 지나치지 못했다.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 모스타르.

도시의 남쪽과 북쪽을 가르는 네레트바 강과 그 둘을 이어주는 오래된 다리, 스타리 모스트.

 

그래, 우리는 이렇게 아름다운 마을로 들어온 거다.

이렇게 평화로운 마을로 들어온 거다.

 

 

도착하자 마자 비는 억수같이 쏟아졌지만,

총알 구멍이 박혀 있는 건물을 보고, 돈을 달라며 손을 내미는 아이들을 보며 마음이 아팠지만

버스 터미널에서 우리를 데리고 가느라 콩알만한 자가용으로 몇번씩이나 왔다갔다 하고

땀을 팥죽같이 흘리던 우리 숙소의 친절한 스텝들 덕분에 우리는 기분이 좋아졌다.

지나치게 경쾌하고 지나치게 친절한 그들로 말미암아...

 

올망 졸망 귀여운 돌 집에, 앙증맞게 들어앉은 각자의 방에서 작은 행복을 느꼈다.

 

우리들에게는 이렇게 멋있는 10대 청소년이 있었고...

(근데 현~~ 너, 알어?

 시간만 나면 니 모습이 이랬다는 거..

 큭큭. 좀 쪽팔리지...)

 

그들에게는 이렇게 해맑고 귀여운 아이들이 있었다.

(거리를 걷고 있는 나를 발견하고 저 꼬마는 얼마나 화들짝 놀라던지...

 그리고는 넵다 부모한테 뛰어가 한참을 흥분하며 이야기 하다가

 걸어가는 나를 허겁지겁 부르며 저렇게 폼을 잡아주더라는...)

 

아름다운 마을 모스타르.

 

 

 

 

 

 

 

그리고 해마다 여름이면 마을 청년들이 앞다투어 나와

저 높은 다리위에서 다이빙을 하며 용맹함을 보여주는 이벤트까지...

얼마나 높은지 얼마나 아찔한지는 다리 전경이 다 나오는 사진에서

다리 위에 붙어 있는 사람들 크기랑 다리 높이를 가늠해보면 짐작할 수 있다.

 

그리고 밤이 내린 시각의 정겨운 돌 길.

 

은은하게 켜놓은 밤 불빛.

슬프지만 아름다운 도시, 모스타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