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지금은 여행중 /7월 크로아티아

처녀들의 점심식사 - 크로아티아 스플릿

프리 김앤리 2012. 9. 3. 15:19

< 2012년 7월 투어야 여행사 크로아티아 단체배낭 7 >

다들 잘 계세요?

저랑 같이 여행을 갔다 왔던 분들, 어느 곳이었든지

저 블로그를 찾아와 주시는 분들, 매일이든 아니면 간간이든

그리고 저를 아는 모든 분들.

그동안 잘 계셨나요?

저요?

저는 좀 아팠습니다.

지난 주에 마음먹고 회사에서 연차를 일주일 받았지요.

지금까지는 대개 연이어 연차를 받는 경우는 멀리 여행을 가기 위해서였습니다.

출장으로 가는 여행말구요, 내가 가고 싶은 곳으로 떠나는 나의 여행 말입니다.

그런데 지난 주에는 여행 계획도 잡지 않았고, 가능하면 개인적인 약속도 다 없애놓고

그냥 아무것도 하지 않고 집에서 멍청하게 있을 요량으로 일주일 휴가를 얻었습니다.

지지난주 금요일 사무실의 책상을 정리하고 퇴근을 하면서 콧노래를 불렀습니다.

다음날부터 내가 맞이할 '아무 할일도 없고 아무 약속도 없는 거의 열흘간의 휴가'를 꿈꾸며 말입니다.

그런데 딱 하루만 그냥 지났을까요?

온 몸이 아파오는 겁니다.

열이 펄펄 나고 온 몸의 세포 하나하나가 들뜨고 신경 마디마디가 욱씬거려오는 겁니다.

마치 누군가에게 두들겨 맞은듯이 몸 여기저기가 쿡쿡 쑤셔대는 겁니다.

목구멍의 어느 길목에는 마치 모래를 뿌려놓은 듯 칼칼거리고

한동안 잊고 있었던 심한 두통까지 나를 괴롭혔습니다.

ㅋㅋㅋㅋ

약봉지와 찬 물수건을 대령해놓은 침대에 누워 문득 떠올렸습니다.

그러고보니 근 1년 6개월동안 쉬는 거 답게 쉬어 본적이 없다는 생각, 한 해 한번씩은 앓던 감기 몸살을 작년은 너무 바빠 그냥 넘겨버렸다는 생각,

올해도 년초부터 이리저리 싸돌아다니느라 아플 새가 없었다는 생각...

덕분에 푹 앓았습니다.

오랜만에 열도 펄펄 나고, 침대에서 오랜 시간 뒹굴거려도 보고, 몇끼를 누군가가 대령해주는 전복죽으로 연명하기도 하고.

 

그래서 오늘은 거뜬합니다.

일주일간의 앓이 끝에 활짝 웃는 모습으로 출근했습니다.

그리고 이렇게 다시 블로그 포스팅.

 

다들 잘 계신가요?

 

나도 이렇게 소원을 빌었어야 했나봐요.

스플릿 성 밖에 있는 거대한 동상, 그레고리 닌 주교 동상의 발등을 문지르며 소원을 빌었어야 했나봐요.

건방지게, 나는 지난번에 왔노라고

그 때 이미 소원을 빌었노라고 발 한번 문지르지 않으며 건방을 떨더니만

한달도 못되어 금세 연약한 인간이 되어 아파 드러눕다니요.

 

로마의 황제를 알현하러 온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었다는 구멍 뚫린 알현실.

그 안으로 크로아티아의 밝은 햇살이 쏟아져 들어왔더랬지요.

둥근 그 공간에 남성 사중창단의 묵직한 음악도 흐르고

여성 사중창단의 간드러진 음악도 흘렀습니다.

"사랑한다 말할까~~~ 미워한다 말할까~~~"

 

우리들의 부탁으로 특별히 우리만을 위해서 노래를 불러주었지요.

 

그때 나도 여기서 노래를 불렀어야 했나봐요.

부끄러워 하지 말고, 하고 싶은 대로 했었나 봐요.

 

"아니야~~ 아니야~~ 말 못해.... 나는 여자이니까~~~"

 

둥글게 뚫린 그 천정으로 쏟아져 내려오던 햇빛을 함께 받았던 당신들...

모두들 건강하신가요?

 

이 꼭대기에 올라갔어야 했나봐요.

스플릿 시내가 다 내려다보이는 교회의 종탑, 꼭대기.

 

이 곳에 올라 아드리아해에서 불어오는 바람을 같이 맞았어야 했나봐요.

건방지게, 나는 지난 번에 왔었노라고...

그 때 이 곳을 이미 올랐노라고...

나는 건방을 떨었지요.

같이 올라갔어야 했나봐요.

ㅋㅋㅋ

 

이 하늘을, 이 땅을 같이 보았어야 했는데...

 

저요?

그럼 저는 스플릿에서 뭐했냐구요?

스핑크스가 점잖하게 앉아있는 이 광장의 돌계단에 한참을 앉아있었구요.

거기서 지나가는 사람들을 멍청하게 쳐다봤습니다.

광장의 맞은 편에 있는 조그만 커피가게에서 아메리카노 커피를 한 잔 시켜 나와서 말입니다.

같이 커피를 마신 구미쌤은 또 혼자서 부지런하게 골목도 돌아보고 그레고리 닌 주교 동상에도 갔다 왔지만

저는 그저 여기 앉아 있었지요.

햇살을 온 몸으로 받으며... 그저 멍청히... 그저 가만히...

 

아!!! 또 있기는 해요.

사진 찍었었요.

사람들 사진도 찍고, 스핑크스 사진도 찍고...

그래도 호호 언니만 할까요?

저는 그저 똑딱이 아마추어에 불과하고

호호 언니는 완전 프로.

사진 작품도 프로, 사진 찍는 폼도 프로!!!

 

어느 골목에서 문득 만난 동네 사람들의 사는 모습에 넋을 잃고

 

그 모습을 물끄러미 바라보는 그 모습에 다시 넋을 잃었더랬습니다.

 

로마의 황제가 로마를 버리고 선택한 아름다운 도시, 스플릿.

나는 그 곳에서 황제의 궁에서 오손도손 살아가는 후예들의 삶을 즐겼습니다.

 

그리고 우리의 점심.

우리는 몹시도 더웠으며 몹시도 갈증이 났습니다.

미끌미끌한 스파게티도, 맵싸한 케밥도, 고소할 것 같은 피자도 우리의 선택을 받을 자격이 없었습니다.

슈퍼에서 발견한 1/4의 수박과 차가운 화이트 와인.  

풀밭위에서 벌인 처녀들의 점심식사였습니다.

물론 아줌마 한 명은 꼽사리.

 

우리들의 유쾌한 점심식사...

 

풀밭 너머로는 로마 황제의 도시, 스플릿은 빛나고 있었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