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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김] 어느 중년부부의 아주 특별한 311일간의 여행

프리 김앤리 2012. 10. 22. 09:00

 

오마이뉴스의 유혜준 기자의 글을 옮겼습니다.

바로가기 ☞ http://www.ohmynews.com/NWS_Web/View/at_pg.aspx?CNTN_CD=A0001781754

 

 

 어느 중년부부의 아주 특별한 311일간의 여행
 
[서평] 김승란·이호철 부부의 <지구와 연애하는 법>

 

 

 

염장질도 아주 제대로 하는 염장질이었다. 염장질의 주인공은 <오마이뉴스> 블로거 '너도바람'.

교사인 그이는 방학이면 바람처럼 여행길에 오르는 여행 마니아다.

다른 이들은 몰라도 오블 블로거 사이에서는 아주 잘 알려졌다.

그이가 여행을 다녀온 뒤 블로그에 올리는 여행담은 읽으면 읽을수록 감칠맛이 나면서 여행 의욕을 한껏 고취시키기에 전혀 부족함이 없다.

가끔은 읽으면서 질투어린 선망을 한다.

그런 너도바람이 지난 여름, 코카서스로 여행을 떠나면서 책 한 권을 우편으로 보내왔다.

'프리 김'이 쓴 책이라고 했다. '프리 김'이 누구인지 안다.

너도바람의 블로그를 통해서 알게 된 이다. 남편과 함께 세계여행을 떠나 그 이야기를 블로그에 올리는 이라고 했다.

프리 김의 블로그를 방문해서 여행기 몇 편을 기웃거린 적이 있다. 그 부부가 책을 냈다는 거다.

여행의 일상을 편안하면서도 재미있게 그리고 내공이 깊이 깃들게 써, 보는 이로 하여금 여행 의지를 불태우게 만드는 여행기였으니

출판사에서 책으로 엮어내고 싶은 욕심이 드는 건 당연할 것이라 예상했다.

그 책을 너도바람이 인터넷서점에 주문해서 읽어보라고 보내주었다.

한데, 시기도 참으로 절묘하지.

장기 여행에 오른다고 염장질을 한 뒤에, 세계여행을 311일이나 한 이들의 여행기를 읽어보라고 보냈으니 말이다.

염장질 곱하기 염장질이 아니라 염장질 제곱 염장질이라는 생각이 들 정도였다.

물론 너도바람이 염장질을 하려고 김승란·이호철 부부의 <지구와 연애한 법>을 보내준 건 절대로 아니었다.

그건 그도 알고 나도 안다.

다만 내가, 여행을 떠나고 싶어 환장하고 있던 차라 그런 느낌을 받았다는 것이지.

너도바람은 비행기에 올라 훌쩍 여행을 떠났고, 나는 그이가 극찬을 아끼지 않은 책을 읽었다.

책은 술술 바람처럼 읽혔다.

부부가 일상의 끈을 내려놓고 의기투합해서 떠난 여행이었다.

그것도 두 번에 걸쳐서.

2009년 3월 8일부터 5월 23일까지는 1차 여행, 6월 16일부터 2010년 2월 4일까지는 2차 여행으로 분류하면 되겠다.

물론 책에서는 1차, 2차로 나뉘지 않는다.

이들 부부가 1차 여행을 중단하고 다시 돌아온 이유는 노무현 전 대통령의 서거 때문이었다.

이호철은 노무현 전 대통령 시절 참여정부에서 민정수석 등을 지낸 이였던 것.

'프리 김' 블로그를 기웃거릴 때는 몰랐는데, 나중에 너도바람이 귀띔해서 알았더랬다.

그랬으니 그들 부부가 장기여행 계획을 접고 한국으로 돌아올 수밖에 없었던 것은 당연하다.

장례를 치른 뒤, 이들 부부는 다시 길 위로 나섰고, 여행을 계속했다.

여행을 중단하려 했지만, 그것만이 고인에 대한 애도는 아니라는 생각을 했단다.

그 마음, 여행기 안에 절절하게 담겨 있다.

이틀도 안 걸려 책을 후딱 읽어치운 뒤, 남편에게 내밀었다.

이 책, 꼭 읽으시라. '언젠가 우리도 이들처럼' 장기여행을 떠나자는 권유였다.

다시 말하자면, "앞으로 우리가 가야 하는 나라들이야"라는 의미라고나 할까.

남편은 말없이 책을 받아들었고, 읽었다.

우리 부부도 나중에 일을 그만두면 같이 일 년이고 이 년이고 긴 여행을 하자던 참이기도 했다.

김승란·이호철 부부는 남편이 청와대 생활을 끝내면 세계여행을 하자는 약속을 했다.

그 약속이 실행되기까지는 더 많은 기간이 필요했지만 이들은 약속대로 세계여행을 떠났다.

고등학교 생물선생이었던 아내 역시 일을 그만두었다.

약속이란 지키라고 있는 것이 아닌가.

때문에 그들은 311일 동안의 긴 여행을 실현할 수 있었다.

나 역시도 조만간 남편에게 약속을 하게 만들어야겠다.

언제쯤 같이 긴 여행을 떠날 것인지에 관해. 생각을 오래 하면 결국은 이뤄지는 법이다.

실현은 그리 멀리 있지 않다. 중요한 건 마음을 먹는 것이지. 이들 부부가 그랬지 않았나.

한 번 읽었던 여행기를 다시 손에 잡는 경우는 극히 드물다.

한 번 갔던 여행지를 다시 가기 쉽지 않은 것과 비슷한 이유에서다.

읽어야 할 책은 많고, 가봐야 하는 여행지 또한 널리고 널렸기 때문이다.

한데 며칠 전 책장을 정리하다가 우연히 <지구와 연애하는 법>을 손에 쥐게 되었다.

이사를 준비하면서 짐을 줄이기 위해 버려야 할 책을 골라내던 참이었다.

책장을 넘기면서 다시 읽고 싶다는 생각이 불쑥 들었다.

바람처럼 술술 책장을 넘기면서 읽었던 기억이 났다.

다시 읽으니 역시 바람처럼 책장이 넘어간다.

한 번 읽었던 책인데 여전히 재미있다.

그제야 너도바람이 '프리 김'의 블로그를 전부 다 읽어서 책으로 엮어낸 것이

거기서 거기겠지 하면서 책장을 넘기다가 그만 푹 빠져버렸다는 글을 자신의 블로그에 남겼던 것이 기억났다.

그때는 뭐 그럴 것까지 있나, 싶은 게 솔직한 심정이었는데

다시 읽으면서 그이의 생각이 비로소 이해됐다. 


처음 읽었을 때는 세상을 떠돌아다닌 여행의 흔적으로 읽혔으나, 다시 읽으니 마음에 깊은 여운을 남기는 일종의 고백서로 읽힌다.

그러면서 내 여행의 기억과 겹쳐지는 부분에서는 깊은 설렘까지도 더불어 느껴졌다.

다시 읽기를 참 잘했다는 생각이 들었다.

이번에는 바람처럼 술술 넘어가는 속도를 조금씩 조절하면서 아끼듯이 읽었다.

그러면서 이 책이 간직하고 있는 의미를 되새기게 되었다.

<지구와 연애하는 법>은 크게 다섯 개의 부분으로 나뉘어져 있다.

첫 번째는 '길 위에서 띄우는 편지'로 여행을 떠난 이들 부부가 가까운 이들에게 편지를 보내는 형식으로 쓴 여행기다.

맞다, 여행을 떠나면 가까운 이들에게 안부를 전하고 싶은 열망이 불쑥 느껴질 때가 있다. 그

런 감정이 담긴 여행기는 촉촉한 감성이 느껴진다.

두 번째는 '세상 사람들'. 여행이란 길 위에 머무는 것이지만 결국은 사람들을 만나는 거다.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 건 아름다운 풍경이나 건물이 아니라 결국은 사람이라는 것을 여행을 떠나보면 안다.

그 이야기다.

세 번째 '중년부부의 배낭'은 여행을 함께 떠난 부부의 여행과 그 일상이야기다.

다른 부분과 특별히 다를 것은 없지만, '여행을 함께 떠난 부부'의 여행의 일상이 특별하게 다가온다.

부부란 무엇일까, 하는 생각을 하게 만들기도 한다.

네 번째는 '역사를 만나다'. 길 위에 서면, 여행을 떠나면 좋든 싫든 '역사'와 만날 수밖에 없다.

인간이 어제 오늘 만들어진 존재가 아니라 오랜 세월동안 많은 흔적을 만들어내면서 살아왔다는 일종의 깨달음 같은 것이 느껴지기 마련이다.

가끔은 그런 흔적들을 너무 많이 봐서 지겨워질 때도 있지만. 그 흔적이 긍정적인 것만은 아니라는 것 또한 밝혀두어야 할 것 같다.

인간이란, 인간이 만들어낸 역사는 생각했던 것보다 끔찍하고 진저리쳐지는 것들이 더 많으므로.

그리고 다섯 번째는 '뚜벅뚜벅 걷다'. 도보여행을 즐기는 나로서는 이 부분이 가장 반가웠다.

걷는 여행이 늘 나를 유혹한다고 여기기 때문이다.

이들 부부의 '안나푸르나 트레킹' 대목을 읽으면서 나의 '안나푸르나 트레킹' 기억을 떠올리긴 했지만,

이들은 그 여행은 '세상 사람들'이라는 부분에 넣었다.

왜 그랬는지 안다. 이들 부부는 안나푸르나 트레킹에서 절대로 배제할 수 없는 존재인 '포터'에 관한 이야기를 풀어냈기 때문이다.
걸어본 사람만이 걷는 이들의 마음을 헤아릴 수 있다고 믿는다.

그래서 이들이 걸었던 이야기가 가장 마음에 와 닿았다.

나도 언젠가는 이들처럼 이렇게 걸어보리라, 작정도 해보았다.

다시 <지구와 여행하는 법>을 읽으면서 내내 너도바람을 생각했다.

 여름이 지난 뒤 그이는 코카서스 여행을 끝내고 돌아와 지금은 자신의 블로그에 여행기를 연재 중이다.

염장질을 제곱으로 했다고 투덜거리는 했지만, 솔직히 고맙다.

언젠가는 내가 떠날 여행지의 정보를 제공해주고 있는 셈이므로.

그리고 좋은 책을, 그것도 두 번이나 거듭 읽어도 시간이 전혀 아깝지 않은 책을 보내주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한 가지 덧붙이자면, 나도 그이에게 가끔은 염장질을 한다.

여행을 떠나면서 혹은 여행을 다녀와서 여행기를 남기면서.

 

염장질 한 너도바람님의  블로그 : http://blog.ohmynews.com/nedobaram/