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지금은 여행중/7월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불가리아의 한글, 키릴문자

프리 김앤리 2013. 7. 5. 00:30

 

발칸 유럽의 남슬라브족들에게 크리스트교(정교)가 전파되기 시작한 시기는 7세기부터지만,

이들에 대한 실질적인 종교 복음은 9세기 말 비잔틴 제국에서 모라비아 왕궁으로 파견되었던

키릴(Cyril, 826~869)과 메토디우스(Methodius, 815~885) 형제 그리고 그 제자들에 의해서였다.

이들 형제는 비잔틴 제국의 데살로니끼(당시에는 솔룬solun이라 했음) 출신으로

형인 메토디우스는 도서관장을 지낸 정도로 행정 분야와 정치, 외교적인 분야에서 탁월한 능력을 발휘하였고,

동생인 키릴은 철학, 신학적 재능과 더불어 당시 3대 성스러운 언어로 분류된 희랍어(그리스어), 라틴어, 히브리어는 물론

시리아어, 슬라브어에도 능통하는 등 다양한 어학적 능력을 소유하고 있었다.

 

오늘날 체코 동부와 슬로바키아 지역에 해당하는 모라비아의 로스티슬라브는

로마교회(가톨릭)를 추종하는 이웃 프랑크 왕궁의 위협과 친 프랑크 귀족 세력들을 제거하기 위해

비잔틴 제국의 황제 미카엘 3세에게 슬라브어로 콘스탄티노플 교회(정교)의 교리를 가르치고, 행정 체계 수립을 도와줄 수 있는 사람들을 파견해 줄 것을 요청하였다.

이에 제국은 82년 키릴과 그의 형인 메토디우스를 파견하게 된다.

모라비아에 도착한 이들 형제는 몰려든 제자들을 효율적으로 가르치고 종교를 포교하기 위해

863년 고대 교회 슬라브어에 기초한 새로운 문자 체계(글라골 문자)들을 수립해 나갔으며,

이를 기초로 그동안 히브리어, 희랍어와 라틴어로만 되어 있던 성서의 번역을 추진해 나갔다.

당시 그리스 문자의 소문자 초서체를 기초로 한 글라골 문자에는

이 외에도 콥트 문자, 키프러스 문자 그리고 헤브라이 문자 등도 일부 도입되었던 것으로 보인다.

매우 독특한 체계를 갖춘 것으로 평가받았던 글라골 문자는

이후 신의 영광과 슬라브족의 주권 그리고 독립성을 상징적으로 표시하고자 할 때 주로 애용되게 된다.

문자 체계 수립과 보급 외에도 이들 형제는 리틴어가 아닌 슬라브어로 예배를 이끌어 갔으며, 여러 교회들을 수립해 나가는 업적을 쌓기도 했다.

 

하지만 869년 키릴이 사망한 후 그들의 후원자였던 로스티슬라브마저 870년 사망하게 되자,

권력 투쟁 끝에 동 프랑크의 지원을 받은 세력들이 권력을 장악하였고, 이들은 메토디우스와 제자들을 이단으로 낙인찍으며 탄압하기 시작하였다.

메토디우스는 2년 가까이 동 프랑크 제국에서의 투옥 생활을 견디어야만 했고,

885년 메토디우스 마저 사망하게 되자 이들을 따르던 정교 사제들과 제자들은 더 이상의 포교를 포기하고 여러지역으로 흩어지게 된다.

이들 중 성 클리멘트와 나움등 키릴과 메토디우스의 제자들은 886년 비잔틴 제국으로 가던 도중

불가리아 제국의 보리스 1세의 요청에 따라 슬라브어로 설교할 시간을 갖게 되었다.

당시 864년 보리스 1세가 크리스트교(정교)를 받아들인 이후,

불가리아에는 비잔틴 제국으로부터 파견된 사제들이 그리스어로 예배를 보며 정교 사제들을 양성하고 있었다.

날로 커져가는 비잔틴 제국의 휘협 속에 보리스 1세는 불가리아의 주권과 독립권 그리고 문화적 정체성 보존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있었으며,

클리멘트와 나움에게 독자적인 슬라브어(교회 슬라브어)로의 예배 확대와 슬라브 문자 개발을 요청하게 된다.

황제의 요청을 수락한 이들에 의해 약 4,000명에 가까운 제자들이 양성되었으며,

이들은 슬라브어와 글라골 문자를 기초로 불가리아 제국 전역에 정교를 확대해 갈 수 있었다.

훗날 이들은 글라골 문자에 좀 더 실용성을 가미하여 새로운 문자체를 고안하였고, 그의 스승의 이름을 기려 키릴 문자 (Cyrillic alphabet)로 명명하였다.

그 배경은 무엇보다도 문자의 정통성을 강조하고 슬라브인을 위해 문자를 만들어 준 창립자이자 자신의 스승의 뜻을 기리기 위해서였다.

이후 키릴 문자는 정교 지역의 종교 복음과 러시아를 비롯한 발칸유럽의 슬라브 족들에게

정교가 신앙으로써 크게 확대되어 오늘날까지 이어지게 하는 중요한 동인으로 자리잡게 하였다. 

                                                                                                       -김철민 저 『역사와 인물로 동유럽 들여다 보기』에서 옮김.

 

 

메토티우스와 키릴 형제.

소피아의 국립 중앙도서관 앞에 있는 이들 형제의 동상.

러시아 문자의 모체이기도 한 키릴 문자의 처음은 이들로부터 시작되었다.               <2013년 7월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여행준비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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