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지금은 여행중 /4월 스페인 포르투갈

가우디와 바르셀로나 1

프리 김앤리 2018. 3. 9. 11:20

 

 

 

 

 

 "슬프게도 내 손으로 사글다 파밀리아는 완성시키지 못할 것이다.

 내 뒤를 이어서 완성시킬 사람들이 나타날 것이고

 이러한 과정 속에서 교회는 장엄한 건축물로 탄생하리라.

 타라고나 대성당의 예에서 보았듯이 처음 시작한 사람이 마지막 완성까지 보았다면

 그 만큼의 웅장함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시대와 함게 유능한 예술가들이 자신들의 작품을 남기고 사라져 갔다.

 그렇게 해서  아름다움은 빛을 발한다.

 대제단, 사스토레스 가의 작은 교회, 성 테크라 교회에서 여러 양식이 쓰였지만  조화롭다.

 많은 예술가들이 형태와 양식의 다양함 속에서도 통일성을 잃지 않았기 때문이다.

  ...

 한 사람이 저지른 부주의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수정되기도 한다.

 예를 들면 레옹의 대성당은 후원이 빈약했지만

 18세기에 바로크 양식의 아름다운 제단이 만들어졌다.

 ... "                                                       - 안토니오 가우디의 일기-

 

 

 

 

 

벌써 몇년째다.

매년 1월이면 스페인의 거리에 있다.

 

 그 처음이 바르셀로나다.

 2월 19일 밤이면 우리는 자유의 도시, 바르셀로나의 어느 거리를 거닐고 있을 것이다.

 

 바르셀로나!

 바르셀로나는 가우디다.

 천재 건축가 안토니오 가우디가 없었다면, 정열의 건축가 가우디가 없었다면 오늘같은 바르셀로나는 없었을 것이다.

 자연을 닮은 곡선의 건물, 온갖 색깔이 춤을 추는 화려한 바르셀로나....

 어딘선가 툭 튀어나올 것 같은 동화 속 이야기에 내내 피식피식 웃음이 묻어나오는...

 

                                <가우디 작품  까사 바트요>                                                                                <가우디 작품 까사 밀라>

                             <구엘 공원의 도마뱀>                                                                                               <구엘공원 벤치>

   <가우디의 가로등>                               <구엘 궁전의 굴뚝>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꼭대기>

                                <까사 밀라의 굴뚝>                                                                                            <까사 바트요의 굴뚝>

 

자유의 냄새가 물씬 나는 화려한 바르셀로나는 가우디라는 위대한 건축가가 있어서 가능하다.  


그러나 가우디는 고집하지 않았다.

자신의 생애에 자신의 작품을 반드시 완성해야 한다고 고집하지 않았다.

'대성당의 철학'이었다.

 그가 일기가 썼던 바로 그 철학이다.

  '타라고나 대성당의 예에서 보았듯이 처음 시작한 사람이 마지막 완성까지 보았다면  

   그 만큼의 웅장함을  기대할 수 없었을 것이다.

   ... 한 사람이 저지른 부주의는 다른 사람들에 의해 수정되기도 한다. '

 

우리는 바르셀로나에서 '대성당의 철학'이 살아있는 그의 작품을 만날 것이다.

사그라다 파밀리아(성가족) 성당.

바르셀로나의 상징이자 안토니오 가우디의 최후의 작품이다.

그러나 최후라고는 하나 가우디의 설계로 1882년부터 짓기 시작했지만 그는 이를 마무리 짓지 못하고

100년도 훨씬 더 지난 지금까지도 여전히 진행중이다.

대성당을 설계한 사람도, 건설하는 사람도 완공된 성당을 보지 못할것이란 것을 알고서도 시작했다.

지금 이 성당을 위해 일하는 모든 사람들도 어쩌면 완공된 아름다운 대성당의 모습을 보지 못할 수도 있다. 

그러나 그 후대의 후대 사람들이 언젠가는 아름다운 성당의 모습을 볼 것이다.

완성된 모습을 보지 못할것을 알면서도 시도하고 만드는 중세사람들의 신념과 철학을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에서 만난다.

가우디를 만난다.

 

1926년 6월 7일 오후 5시 반, 그날도 가우디는 교회를 나와 산책길에 나섰다.

6시쯤 바이렌 거리에 도착해서 코르테스 거리를 건너려고 했다.

당시 그랑비아(대로)라고 알려진 코르테스 거리는 4차선이었고 길 양쪽으로 가로수가 심어진 보도가 있었다.

차선 중앙에는 철제 원기둥이 세워져 있었다.

이 거리는 바르셀로나 ' 전차회사의 붉은 십자가'라고 불리던 30번 노면 전차가 달리고 있었다.  

오후 6시 5분, 안토니 가우디는 헤로나 거리와 바이렌 거리 사이에서 그랑비아를 넘으려고 했다.

보도, 차도, 가로수길, 전차 하행선을 넘어 상행선을 지나려고 할 때 한 대의 전차가 헤로나 거리 쪽에서 다가왔다.

가우디는 그것을 보고 뒤로 물러났다.

그 때 테투앙 광자아에서 카탈루냐 광장으로 향하는 하행선 전차가 그를 덮쳤다.

...

그러나 남루한 옷차림의 백발 노인이 위대한 건축가 가우디였다는 사실을 안 사람은 없었다.

그는 적절한 치료도 받지 못한 채 이 병원에서 저 병원으로 옮겨졌고 결국 숨을 거두고 말았다.

그의 장례식에는 사제들은 물론 수천의 바르셀로나 시민들이 그의 마지막을 배웅했다.

 

1883년 11월 3일, 공사감독으로 취임한 젊은 건축가 가우디는 그가 죽음을 맞이한 1926년(74세)까지 43년간

사그라다 파밀리아 건축에 힘을 쏟았으며 특히 마지막 10년은 이 작품에만 전념했다.  

 

2018년 2월, 우리는 가우디를 만나러 바르셀로나에 간다.

 

어느 해 11월.

파도가 치는 바다를 상상하며 만들었다는 가우디의 구엘공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