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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클럽, 그 이상' 카탈루냐의 심장, FC 바르셀로나

프리 김앤리 2018. 3. 11. 14:58

 

 

바르셀로나는 스페인 카탈루냐 지방의 주도다.

낭만의 도시, 자유의 도시로 알려진 바르셀로나는 또 저항의 도시이기도 하다. 

 

                                                                                                                      <구엘공원에서 바라본 바르셀로나 항구>

 

                                                                                                                 <대성당의 꼭대기에서 본 바르셀로나 시내>

 

 

바르셀로나의 공공건물에는 주로 세 개의 깃발이 펄럭이고 있다.

하나는 EU 깃발,  하나는 스페인 국기이고  다른 하나는 카탈루냐 깃발이다.

사진 제일 왼쪽이 카탈루냐 깃발이다.

카탈루냐 깃발은 카탈루냐 왕국의 군대가 카스띠야(마드리드가 주도인 스페인의 중부 지방) 군대와 싸우다 왕이 죽으면서 피묻은 손으로 적장의 황금색 갑옷에 네 개의 줄을 그어 놓았다는 데서 유래한다.  바르셀로나는 지중해권에 위치한 지정학적 이유로 아주 오래 전부터 상업과 무역의 중심지였고 스페인의 어느 지방보다 더 잘 살았으며 바다를 끼고 있어 개방성까지 강해 자유로운 성향이

강한  지방이었다.  프랑코 독재시대에는 다른 어느 곳보다 강렬하게 저항했다.

 

바르셀로나와 카탈루냐 지방의 독립정신, 저항정신을 대표적으로 보여주는 예는 세계적으로 유명한 FC 바르셀로나 팀에서 찾아볼 수 있다.

다른 축구팀과는 달리 협동조합 형태로 출발한 FC바르셀로나는, 1899년 창립 당시부터 지금까지 유니폼에 기업의 스폰서 광고를 다는 것을 거부했다.

현 총재인 라포르타는 "돈보다 중요한건 세상에 많다"라면서 2006년 유니세프와 협약을 맺었는데, 막대한 돈을 벌 수 있는 유니폼 스폰서를 거절하고 오히려 그 반대로 매년 1900만 달러 가량을 유니세프에 후원한다.  
'프로축구 협동조합'의 가치가 그대로 드러나는 순간이다.

FC바르셀로나는 클럽 이상의 축구 클럽을 꿈꾸고 있는 것이다. 

 

   "Mas que un club" (클럽 그 이상이 되자)

 

카탈루냐의 저항정신, FC 바르셀로나의 저항정신은 오랜 역사를 거슬러 올라간다.

카스티야 지방의 지지로 올라선 독재자 프랑코 정부는 좌파 성향의 지식인들이 많이 있는 카탈루냐 사람들을

탄압하기 시작했다.  프랑코 정부는 카탈루냐 언어의 사용을 철저히 금지하고 'FC 바르셀로나(Futbol Club de Barcelona)'로 불리던 팀의  정식 명칭을  마드리드 식(스페인어 표기법)으로 바꾸어 '바르셀로나 CF(Barcelona  Club de Futbol)' 로 바꾸라고 명했다. 따라서 1939년부터 1972년까지의 프랑코체제하에서는 '바르셀로나 CF'로 불러야 했고  클럽 로고에서 카탈루냐 지방 을 표시하는 디자인을 삭제해야 했다. 거기다 프랑코 정부는 암암리에 마드리드 팀을 후원하기까지 했다. 스페인 내전 발발 후인 1937년 여름에는 좌익 정치성향의 FC바르셀로나 회장이 프랑코의 반군에 의해 살해된 적도 있었다. 

당시 선수단은 해외경기 중이었는데, 팀원 중 절반 정도가 멕시코나 프랑스로의 망명을 시도해 버렸다.

 

1943년에는 FC 바르셀로나 팀이  코파 델 헤네랄리시모 준결승전에서 라이벌 레알 마드리드를 만난 적이 있다.  

1차전 3-0 승.  그러나 2차전이 열리는 날, 이 클럽 선수들의 라커룸에 프랑코의 안전보장부장이 찾아와서 "이 클럽 선수들이 경기에서 뛸 수 있는 것은 '제국이 관대하기 때문'이라는 점을 잊지 말라고 경고한다.

경기의 결과는 11- 1패.

카탈루냐 사람들의 심장에는 FC 바르셀로나를 응원하는 것으로 독재에 대한 분노를 불태웠다.

 

그러던 1951년 비오는 어느 여름날.  2:1로 경기를 이긴 FC 바르셀로나의 관중들은 어느 누구도 트램을 타지 않고 모두 걸어서 집으로  돌아가는 사건이 발생한다. 

이유는 간단했다.  당시 바르셀로나에서는 트램 기사들의 파업이 있었고 FC 바르셀로나 팬들은 그 파업을 지지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행동들이 FC 바르셀로나를 단순한 축구클럽 그 이상으로 만들게 되었고, 많은 진보적인 스페인인들이 이 클럽을 자유와 권리를 지키는 지조있는 수호자로 여기게 된 것이다.

 

 

바르셀로나를 여행하다 보면 관공서의 표지판이나 길 안내판 등에서 두 가지의 언어를 만날 수 있다.

하나는 스페인 어, 또 하나는 카탈루냐어로 표시된 것이다.

FC 바르셀로나 선수들의 유니폼을 자세히 보면 왼쪽 상의에 '3' 이라는 숫자가 새겨진 패치를 볼 수 있다.

이 것은 카탈루냐어로만 방송되는 텔레비전 채널을 나타내는 것이다.

독재에 저항하고 자유를 꿈꾸는 도시, 바르셀로나의 상징이다.

 

 

<덧붙임>

실제로 바르셀로나 지역에서는 사람들이 자신의 조국을 스페인이라고 하지 않고 카탈루냐라고 말한다고들 한다.

스페인어가 통 안되서 ... 혹은 영어가 짧아서 아직 그런 사람들을 내가 직접 만나지는 못했지만

그 동네 사람들은 가우디도 카탈루냐 출신이라 그러고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도 카탈루냐의 보물이라고 말한다고 한다. 

스페인 사람, 스페인 것이 아니라...

스페인 내전에 이은 프랑코 독재 정권과 그의 탄압, 그리고 FC 바르셀로나의 가치를 오롯이 알고 있는 나로서는 충분히 공감하는 바이지만....

...

그들이 차라리 독립을 원하는 일부의 이유가 스페인의 다른 어느 지방보다 훨씬 더 부유한 카탈루냐 사람들이 스페인 다른 지역의 어려운 경제까지

떠 맡기 싫어하는 이유도 있다는 이야기를 들었을 때는 쩝!!  쫌 쩝이었다.

유고내전이 있을 때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가 유고 연방의 다른 국가들(보스니아, 세르비아, 코소보등)에 비해 경제적으로 더 윤택해서

'우리가 왜 다른 민족의 경제적 부담까지 떠안아야 하냐'며 가장 먼저 분리 독립을 외친 게 떠올라서...

그래서 발칸을 화약고로 만든 20세기의 슬픈 역사가 떠올라서...

내가 너무 나갔나????

쩝 쩝...


<또 덧붙임>

 카탈루냐 지방의회는 지난해, 2017년 10월 27일 회의를 열어 스페인 정부에 대한 카탈루냐 자치정수 독립선언의 승인여부를 묻는 투표 끝에 찬성 70표, 반대 10표로 독립을 선언하였다. 그러나 스페인 펠레페 6세 국왕은 카탈루냐 분리 독립 움직임에 대해 민주주의에 대한 도전이라며 비판을 가했고

지방자치권을 박탈하고 지방의회를 해산하였다. 현재 분리 독립을 추진하던 카를레스 푸지데몬 자치정부 수반은 해임되어 벨기에에 도피중이고 스페인 검찰은 푸지데몬에 대해 반란, 내란 선동 등의 혐의로 기소했다.  지난 1월 30일에는 해외에 도피중이던 푸지데몬이 카탈루냐 분리 독립 시도가 사실상 무산됐음을 시인하는 메신저 문자가 공개되기도 했다. 


<마지막 하나 더>

캄프 누 (camp Nou)

주소 : C. d'Aristides Maillol, 12, 08028 Barcelona

찾아가기 : Metro 5호선 Colblanc 역에서 하차 도보로 700m


경기가 없는 날을 캄프 누 관람 티켓을 구입하면 된다.  입장료는 20유로. 박물관과 경기장을 다 둘러볼 수 있다.

박물관은 전세계 축구팬들이 찾아오는 곳으로 최첨단 멀티미디어 디스플레이를 통해 역사적으로 중요한 순간을 볼수 있다. 물론 사진 전시도 . 

경기장도 탈의실을 비롯 선수들 입장로, 귀빈실등도 둘러볼수 있으며 모두다 돌아보려면  2시간 30분은 잡아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