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지금은 여행중 /4월 스페인 포르투갈

몬세랏을 안가고는 바르셀로나를 갔다고 하지마라

프리 김앤리 2018. 3. 12. 21:48
 

 

2005년 겨울방학, 스페인을 한달 동안 여행할 때다.

몇가지의 연수와 학기 중 밀린 일을 끝내놓고 후다닥 떠난 스페인이라 제대로 준비도 못하고 떠났었다.

첫날 마드리드에서 만난 여학생 덕분에 스페인에서 모로코 사막을 갈 수 있다는 사실을 처음 알고 갑자기 모로코를 여행했고

뒤적거리던 책에서 스페인 북부가 멋있다는 이야기가 있어 불쑥 찾아간 곳이 요즘 유행하고 있는 산티아고 길이었다.

그리고 또 한 곳. 바르셀로나 근교에 있는 몬세랏.

바르셀로나의 호스텔에서 만난 이쁜 여학생이 그날 낮에 갔다온 '몬세랏'에 들떠 있었다.

'몬세랏?'

몽블랑도 들어봤고 몽쉘미셸도 들어봤는데 몬세랏이라니??? 듣도 보도 못한 지명이다.

후다닥 자료를 뒤적이는데 '자연을 담아낸 가우디의 영감이 몬세랏에서 나왔다'는 이야기며

'가우디가 그렇게 사랑한 곳'이라고 하질 않는가?

지금은 우리나라 사람들도 많이 알고 있어 가는 길이 자세하게 알려져 있지만

그때는 그 여학생의 설명만으로 교외열차에 산악열차를 타고 물어물어 갔더랬다.

그리고...  우리는 그 감동을 잊지 못했다.

그 이후 스페인을 여행간다는 사람들한테 매번 몬세랏을 추천했고

내가 만약 다시 스페인을 간다면 몬세랏 때문일거라고 감히 말하곤 했었다.

 

'톱으로 자른 산'이라는 뜻의 몬세랏은  바르셀로나에서 1시간여의 교외기차를 타고

다시 푸니쿨라(산악열차 )혹은 곤도라를 타고 올라가야 한다.

1235m의 높은 산.

산 중턱에는 11세기에 세워진 베네딕토 수도원이 있다.

수도원은 지금도 많은 순례자의 방문지로 예로부터 카탈루냐 사람들의 신앙의 성지며 정신적 고향이다.

이 수도원은 프랑코 독재시절에는 카탈루냐어 사용금지령이 내렸는데도 카탈루냐어로 미사를 보는 등

카탈루냐인의 독립과 저항의 상징이기도 했다. -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에서 옮김

 

프랑코 독재 시절, 매주 일요일에는 검은 성모상 앞에서 카탈루냐어로 미사를 드리고

수도원 광장 앞에서는 카탈루냐 민속춤인 '사르다나'를 추며 민족의 결속을 다졌다는 곳.

 

온통 바위로 되어 있는 산.

울퉁 불퉁 지 마음대로 생겼다.

그런데 어디서 많이 본 것 같지 않은가?

바르셀로나의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파샤드 모습도 이와 비슷했고

그 곳의 종탑 모양도 이와 비슷하다.

 

곤도라나 푸니쿨라를 타고 중턱까지 오른 뒤 성당은 휙 한번 돌아본 뒤

바로 다시 푸니쿨라를 타고 몬세랏의 가장 높은 곳, 산 후안 전망대 까지 오른다.

 

수도원이 이제는 저 아래로 내려다 보인다.

 

트레킹 시작이다.

 

이번에 같이 여행한 호영씨도 산을 좋아하는 사람이다.

오랜만의 트레킹이라며 들뜬 마음으로 길을 걷는다.

 

돌산의 계단도 오르고

 

바위산 옆으로 좁게 내 놓은 벼랑끝 길도 걷는다.

 

꼭대기에 오르면 삐죽삐죽한 바위산과 몬세랏 아래의 넓은 평원이 내려다 보인다.

멀리로는 눈 덮힌 산도 보인다.

 

1시간 정도 걸었을까?

우리는 발걸음을 재촉했다.

몬세랏에 왔다면 놓치지 말아야 할 것이 있기 때문이다.

 

꼭대기의 산을 한바퀴 돌아 다시 중턱의 수도원으로 내려왔다.

수도원의 대성당에는 매일 오후 1시(일요일에는 12시) 예배시간이 있으며

예배시간에는 에스콜라니아의 소년 합창단의 아름다운 성가를 들을 수 있기 때문이다.

 

에스톨라니아 소년 합창단은 '파리 나무 십자가 소년 합창단', '빈 소년 합창단'과 더불이 세계 3대 소년 합창단으로 알려져있다.

시간이 된다면 성당 안에 있는 '검은 성모 마리아 상'을 만지고 소원을 비는 것도 잊지 말아야 한다.

 

참 , 그전에 성당의 밖에 있는 스페인의 위대한 음악가, 파블로 카잘스 동상을 만나야 한다.

(난 이번 11월 여행에서는 이걸 보지 못했다. 물론 2005년도 여행에서도 못 봤다. 1월 여행에서는 찾을 수 있겠지???)

위대한 첼리스트 파블로 카잘스는 이 곳 합창단 출신이라고 했다.

 

  *** 파블로 카잘스 이야기

        카잘스는 카탈루냐 지방에서 태어나 몬세랏 소년 합창단의 단원이었고

        바흐의 '무반주 첼로 모음곡'을 발견하여 최초로 전곡 연주를 했다.   

        카잘스는 세계적인 첼로 거장이기도 했지만 조국 스페인을 지극히 사랑하였고 가난한 이웃을 사랑하는 사람이기도 했다.

        그는 스페인을 짓밟은 프랑코군에 저항하여 공화파를 지원하는 무료 공연을 했으며

        세상을 만드는 것은 노동자라고 생각하며 노동자도 즐길 수 있는 1달러짜리 공연도 했다.

        프랑코 독재 시절에는 푸에르토리코로 망명하여 스페인으로 돌아오지 못했다.

        프랑코가 너무 오래 살았기 때문이다.

        그는 생전에 영국에서의 공연을 거절했다.

        스페인 내전 당시에 영국이 중립을 표방했고, 결국에는 프랑코 정부를 인정했다는 이유에서 였다.

        나중에 영국의 외교관이 카잘스의 영국 공연을 요청하면서 , 당시 상황에서는 어쩔수 없었다고 항변하자

        그는 이렇게 말했다.

         "당신들은 정치를 하시라. 나는 원칙을 지키겠다. "

 

수도원 대성당에서 천상의 합창을 듣고 나면 이제는 푸니쿨라를 타고 산의 더 아래로 내려간다.

산타코바를 가는 길이다.

산의 중턱을 깍아지른 좁은 길이 보이시는가?

이제 그 길을 따라 구비구비 걸으면서 가우디도 만나고 몬세랏의 영험함도 만나야 하는 시간이다.

 

산타 코바길도 한시간을 조금 넘기는 편안한 트레킹 길이다.

길을 다라 성격의 예수님의 이야기를 묘사하는 15개의 기념물이 설치되어 있다.

 

걷고 또 걷다가 기념비를 만나고... 또 걷는다.

 

그리고 그 길의 끝에서 소박한 교회 하나를 만난다.

몬세랏의 검은 성모상이 발견되었다는 작은 동굴 위에 세워진 교회이다.

 

검은 성모상은 718년 무어인의 공격을 피해 몬세랏의 동굴 속에 숨겨져 있다가 880년에야 발견된 작은 조각상이다.

그런데 성모상이 발견된 이야기가 흥미롭다.

어느날 하늘에서 밝은 빛이 비치며 아름다운 음악소리가 들은 몬세랏의 어린 양치기가 이에 이끌려 따라가보니 

작은 동굴이 있었고 그 곳에 아기 예수를 안은 검은 성모상이 있더라는 것이다.

지금은 그 자리에 작은 교회가 서있고 모조품이 놓여져 있으며

진품은 수도원의 대성당 안에 모셔져 있다.

 

다시 돌아 나오는 길... 천천히 걸으면서도 자꾸 뒤가 돌아다보인다.

 

문득 올려단 본 몬세랏의 한 장면.

호영씨는 가우디에게 영감을 주었다는 사그라다 파밀리아 성당의 꼭대기가 보이는 것이 아니라

솟아있는 바위들에서 납작한 눈에 뭉텅한 코, 장난을 치고 있는 듯한 우리 동네 아이들이 보인단다.

보이시는가들???  위의 사진에서???

왼 손을 들고 장난을 치고 있는 것 처럼 보이기도 하는 우리 동네 꼬마녀석을...

ㅋㅋㅋ

 

몬세랏 가는 법

  1. 바르셀로나 Pl. Espanya 역으로 간다.

  2. 몬세랏 가는 일일 열차권을 끊는다.

     (바르셀로나 메트로 + 교외 열차 + 곤도라 + 모든 푸니쿨라 + 입장료 = 26.60 유로 )

     그런데 산 중턱까지 갈때 곤도라를 탈지 푸니쿨라를 탈지 결정해야 한다. 내리는 역도 다르다.

  3. , R5 표시만 따라간다. 몬세랏으로 가는 교외기차가 서있는 플랫폼이다.

  4. 교외열차를 탄다 (8시 36분부터 매시 36분 출발)  1시간 소요.

  5. 곤도라를 탈 경우(더 빠르고 편리하다) Montserrat AERI 역에서 하차. 바로 연결되는 곤도라를 탄다.

  6. 수도원에 도착하면 시간을 조절하면서 산후안과 산타 코바를 가는 푸니쿨라를 이용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