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지금은 여행중 /4월 스페인 포르투갈

스페인 왕비 이야기

프리 김앤리 2018. 3. 14. 17:30


역시 재미있는 글이라~~~ 

역시 최미선씨가 쓴 『사랑한다면 스페인』에서 옮겨온다. 



<스페인 국왕 부부 - 펠리페 6세와 레티시아 오르티스 >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스페인 내전의 빌미를 제공하며 1931년 왕위에서 쫓겨난 알폰소 13세의 손자다. 1936년에 시작된 스페인 내전은 국민이 선택한 인민전선공화국 정부에 반기를 든 군부세력 간의 전쟁이다. 당시만 해도 스페인은 왕족과 귀족, 교회, 군부에 의해 좌지우지되는 세상이었다. 이에 억눌렸던 사람들이 1936년 총선거에서 중산층과 노동자, 농민을 대변하는 인민전선에 힘을 실어 공화국 정부를 출범시켰다. 그러나 몇개월 지나지 않아 프랑코 장군이 쿠데타를 일으켰고 히틀러가 가세하면서 수많은 시민들이 무참히 학살당했다. 이에 다른 나라의 지성인들이 개인 자격으로 인민전선 측에 참여하면서 이 전쟁은 내전을 넘어 전 세계 양심 세력과 파시즘 세력 간의 싸움으로 번졌다. 불행히도 전쟁은 프랑코의 승리로 끝났고 스페인은 1939년부터 36년동안 프랑코 독재 치하에서 신음해야 했다. 

  

  1975년 프랑코 사망 후 왕위에 오른 후안 카를로스 1세는 '왕은 군림하되 통치하지 않는다'며 입헌군주제로 헌법을 개정해 스페인 민주주의를 정착시킨 인물이다. 그로 인해 국민의 존경을 받아온 그였지만 2014년 6월 재위 39년만에 스스로 물러났다. 예전에 비하면 그저 나라의 얼굴마담 역할 뿐인 왕이지만 살아생전 왕 자리를 내주지 않는 불문율을 깨고 아들에게 물려준데에는 다 그만한 이유가 있다. 


한동안 잘나가던 스페인 경제는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에 맥없이 무너져 수많은 국민들을 거리로 내몰았다. 2016년 여름과 가을, 마드리드는 물론 다른 도시에서도 '도와달라'는 종이쪽과 동전 통을 앞에 놓고 구걸하는 이들을 시심심찮게 보곤 했다. 남녀를 불문하고 20대 젊은이부터 70대 노인까지 연령층도 다양했다. 대부분 아주 멀끔한 차림에 어느 누구도 애써 구걸하려는 행위는 보이지 않고 점잖게 앉아만 있는 모습이 오히려 안쓰럽기까지 했다. 9년전에 왔을 때만 해도 이렇진 않았었는데. 


솔광장 지하철역이 2013년 9월부터 3년동안 영국 통신사 이름을 붙여 '보다폰 솔Vodafone Sol' 이었던 것도 다 돈 때문이다. 재정난에 시달리던 마드리드 시가 사람들이 가장 많이 몰리는 솔 광장 지하철역 이름에 '보다폰'울 붙이는 조건으로 300만 유로를 받았단다.

만약 우리 서울역에 '아이폰 서울역' 이라는 이름이 붙는다면 어떨까? 참으로 씁쓸한 것 같다. 


그렇게 국민들이 허덕이는 상황에서 왕실의 사치와 부패 형태가 도마에 올랐다. 후안 카를로스 1세가 왕비가 아닌 애인과 코끼리 사냥을 겸한 호화로운 아프리카 여행을 한 것도 모자라 그의 딸 크리스티나 공주님은 남편과 함께 스포츠 비영리 법인을 만들어 공금 600만 유로를 빼돌렸고, 유령회사를 통해 돈세탁에 세금까지 탈루한 사실이 속속 드러났다. 그 돈으로 호화저택을 사고, 외국에서 화려한 휴가도 즐기신 공주님 부부는 나란히 법정에 서야했다. 여기에 국민들의 눈초리가 고울 리 없다. 항간에선 군주제 폐지 목소리도 들려왔다. 이것들이 바로 후안 카를로스 1세가 '무제한 임기'를 내려놓고 자진 퇴위한 이유다. 


아버지 뒤를 이은 외동아들 펠리페 6세(1968년생)는 지극히 검소한 즉위식을 치렀다. 크리스티나는 동생에 의해 공주 직위를 박탈당함은 물론 즉위식에도 초대받지 못했다. 이렇게 추락한 왕실 이미지를 살짝 올려놓은 이는 새 왕비 레티시아(!972년생)다. 요즘 스페인에서 이 젊은 왕비의 인기는 유명스타 저리 가라다. 단시 '한 외모' 하는 데사 패션 센스까지 뛰어나서가 아니다. 


  레티시아는 스페인 최초의 평민 출신 왕비다. 게다가 고등학교 때 선생님과 결혼했다 1년만에 이혼도 했다. 유명 앵커였던 그녀는 미국의 911 테러 당시 현장에서 직접 마이크를 잡았고, 이라크 전쟁 발발 즉시 달려가 종군기자로 맹활약하던 열혈 여인이다. 그런 커리어우먼이 '훈남 왕세자'와 비밀 연애 끝에 약혼 발표를 했을 때 보수 성향이 강한 가톨릭 사회는 평민인 데다 이혼녀, 게다가 결혼 시절 낙태까지 한 여인이 스페인의 신데렐라가 되는 건 옳지 않다며 여기저기서 술렁댔다. 

  하지만 사랑보다 강한 힘이 어디 있으랴, 족벌이나 조건, 시선까지 묻지도 따지지도 않고 오로지 사랑으로 똘똘 뭉친 두 사람은 반대를 무릅쓰고 2004년 5월, 보란 듯이 결혼식을 올렸다. 하루아침에 신데렐라가 되긴 했지만 그녀는 '신데렐라 코스프레' 하는 왕비가 아니었다. 여느 때 처럼 지하철을 타고, 사람들과 스스럼없이 얘기도 나누고, 두 딸을 직접 학교에 데려다주는 엄마 역할에도 충실했다. 장례식장에서도 품위를 지켜아 하는 왕족과 달리 2007년 우울증으로 자살한 여동생의 죽음 앞에서 펑펑 우는 왕세자비의 지극히 인간적인 모습은 국민의 마음까지 울렸다. 


왕비로서 그녀의 패션도 사실 소박하다. 공식석상에 입고 나오는 왕비복은 대부분 스페인 중저가 브랜드다. 그것도 같은 옷을 '요기서도' 입고 '조기서도' 입고 또 '저기서도' 입는 왕비로 유명하다. 하지만 같은 옷이라도 때마다 센스 있게 변신키셔 '재활용 퀸'으로 불리기도 한다. 그것이 '페티시아 스타일' 열풍을 일으키게도 했다. 그렇듯 몸에 밴 그녀의 소탈함과 흐뭇한 일거수 일투족이 국민들의 마음을 움직였는지, 스페인 왕실을 바라보는 눈길도 조금은 부드러워졌다. 일찌감치 며느리 능력을 간파하고 아들에게 자리를 물려준 시아버지의 선택은 역시나 신의 한수였다. 


결혼 전 앵커 시절의 레티시아와 공식 석상의 스페인 왕비, 레티시아.  


 

스페인 국민들이 사랑한 레티시아의 모습은 이런 게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