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지금은 여행중 /4월 스페인 포르투갈

바르셀로나의 진짜 멋, 고딕지구

프리 김앤리 2018. 3. 9. 14:28




< 구엘저택 - 레알광장 - 아비뇽거리 - 츄러스 가게 - 산타 에우랄리아 내리막길 -  산 펠립네리 광장 - 피카소 그림 - 바르시노 유적지 - 바르셀로나 대성당 - 비스베 거리 - 왕의 광장 - 하우메 광장 >


바르셀로나 고딕 지구(Barrio Gòtic)는 카탈루냐 자치 정부 청사와 시청사가 있는 구시가지의 중심으로 13~15세기의 건축물을 원형 그대로 보존하고 있는 지역이다.  모던하고 화려한 분위기의 바르셀로나에서 색다른 느낌을 주는 곳이다. 고딕양식의 뾰족한 대성당에 숨어있는 역사를 살펴보고  중세 거리를 연상시키는 좁은 골목을 돌아다니다보면 어느새 우리는 여행자!!

피카소가 앉았던 까페,  호안 미로가 걸었던 거리,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매일 걷던 그 거리를 걸어보자.

단지 여기서 우리가 조심해야 할 한가지~~~

당신의 가방과 지갑을 노리는 눈길들이 곳곳에 있다는 사실이다.

몇년 전, 바로 우리 눈 앞에 있던 가방이 쥐도새도 모르게 없어졌더랬다.  진짜 눈 뜬 채 코베인 심정이랄까???

성우쌤, 그쵸? 그날이 우리 여행 첫 날이었는데... 핸드폰에 그 많은 돈에...

그래도 저, 쌤한테 얼마나 고마웠는데요... 전혀 내색하지 않고 여행을 내내 즐겨주셔서...


구엘저택부터 야우메 광장까지 총 1.6km.  산책하듯 살살 걸어봅시다.

어둠이 내려앉은 고딕지구, 붉은 등이 켜진 좁은 골목길.  바르셀로나의 밤이 깊어갑니다.



<구엘저택>

구엘 저택은 1984년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지정되었다. 정면 장식은 르네상스 양식, 내부는 네오무데하르 양식으로 마치 궁전과 같은 고전적인 외관을 지녔지만 부서진 타일과 돌을 이용한 옥상의 굴뚝, 별이 박혀 있는 것 같은 2층의 중앙 살롱 등에서 가우디의 독창성이 엿보인다. 저택은 본관과 연결되는 별관으로 지었지만 구엘은 이 건물이 더 마음에 들어 본관으로 사용했다. 중세의 요새 같은 아치형 입구 옆에는 구엘 가문의 문장인 철제 독수리가 있다. 지하 1층은 마구간, 1층은 마차고, 중2층은 서재, 2층은 응접실, 3층은 침실, 4층은 하인들의 방과 주방으로 구성되어 있다.

건물 옥상으로 나가면 고딕 지구의 빽빽하게 들어선 좁은 거리와 항구의 전망이 펼쳐진다. 지붕 테라스에는 가우디 특유의 디테일이 돋보이는 20개의 특이한 굴뚝이 있다. 대리석, 타일, 토기 같은 여러 자재를 사용한 다양한 형태의 트렌카디스(Trencadis, 깨진 세라믹이나 도자기 조각)로 장식되어 있다. 중앙탑 꼭대기에는 철제 풍향계가 있다.  [네이버 지식백과] 




< 레알 광장 ( Plaça Reial ) >

   분위기 있는 레스토랑과 까페, 바, 클럽들이 모여있는 바르셀로나 사람들의 놀이터이자 여행자들의 휴식처.

   젊은 시절의 가우디가 설계한 화려한 가로등을 만날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아비뇨 거리 (carrer d'avinyo barcelona) >

   하우메 광장에서 Ferran 거리를 따라 100m쯤 가면 오른 쪽으로 아비뇨 거리 (carrer d'avinyo barcelona)가 펼쳐진다.

   바르셀로나의 대표 여행자 거리인 람블라스에서 레알 광장을 가로질러도 아비뇨 거리를 만날 수 있다.

   옷, 소품들을 파는 작은 상점들이 늘어서 있는 골목길은 거장 피카소의 작품 '아비뇽의 여인들'에서의 아비뇽이 바로 여기다.

   (흔히들 피카소의 '아비뇽의 여인들'의 아비뇽을 남프랑스에 있는 아비뇽으로 착각하고 있지만

    오랫동안 바르셀로나에서 작품활동을 한 피카소에게 있어 아비뇽은 고딕지구의 아비뇨 거리다. )

   피카소는 바르셀로나 아비뇨 거리의 매춘부들을 묘사한 것인데 작품 속의 실제 모델들은 피카소의 그림속에 그려진 자신들의 모습을 보고

   깜짝 놀랐다고... 쫓아다니며 항의까지...

 

 

 

 

 

 

 

 

  

 



<츄러스 가게 XURRERIA>

50년이 넘는 역사를 자랑하는 맛집. 

뭐, 츄러스가 츄러스겠지만...  진한 쵸콜렛에 찍어먹는 츄러스의 그 맛이란~~~



< 바르셀로나 대성당과 산타 에우랄리아  >

   1298년 착공 150년만인 1448년에 완공된 성당이다.

   이 성당은 로마의 기독교 박해에 항거하다가 십자가형에 처해진 산타 에우랄리아 성인을 기리는 성당이다.

 

   산타 에우랄리아는 AD 290년 싸리아라는 기독교 마을에서 태어났는데, 당시 로마를 지배하고 있던 황제는 기독교 탄압으로 유명한 디오클레티아

   누스 황제였다. 디오클레티아누스는 칙령을 발표하고 기독교 교회, 성물, 성전을 파괴하고 기독교인들의 모임을 불허한다고 공표하였는데 당시

   바르셀로나는 로마의 지배를 받고 있었기 로마의 명령을 따라야만 했다. 칙령을 어기는 자는 고발당하거나 혹은 처형 당하는 등 혹독한 대가를

   치러야 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산타 아우랄리아는 기독교 탄압에 대항하여 당시 바르셀로나 지역의  통치자였던 다치아노 앞으로 나가 '자신이 기독교인이라는 것을 밝히고

   기독교인들을 탄압하는 것에 항거했고 다치아노는 그녀를 어두운 감옥에 가두어 버렸다.

   다치아노는 아우랄리아에게 신앙을 포기하라고 강요하면서 고문을 가하지만 그녀는 이에 응하지 않았다.

   당시 아우렐리아는 고작 13살의 소녀였는데, 기록에 의하면 다치아노는 그녀의 나이에 따라 1년에 한번씩으로 계산하여 모두 13번의 가혹한

   고문을 가했다고 한다.

   가장 혹독한 고문 중의 하나는 에우랄리아를 발가벗긴 뒤, 유리조각 못 등 날카로운 물건이 가득한 드럼통에 아우랄리아를 구겨넣은 뒤 내리막길로

   굴려버린 것이다. 하지만 그녀에게는 아무런 상처가 일어나지 않는 기적이 일어났고 결국 다치아노는 그녀를 처형장으로 끌고가  X자 모양의 십자가

   에 못박고 그녀의 머리를 잘라 죽인다.  전해지는 이야기에 의하면 에우랄리아가 십자가 위에 못박혀 있는 동안 하늘에서 눈이 내려 그녀의 벗은 몸을

   가려주었고 그녀가 마지막 기도를 마치고 목숨을 다하는 순간 많은 사람들이 보는 가운데 마치 하늘에서 그녀의 영혼을 데려가기라도 하는 듯 그녀의

   잘린 목에서 하얀 비둘기가 나와 하늘로 올라갔다고 한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내부로 들어가면 성 에우랄리아가 처형되는 순교 장면을 조각해 놓았고 중앙 제단 아래 지하에는 성인의 시신이 모셔져 있다.

   대성당의 긴 의자에는 X자 모양이 새겨져 있는데, 이는 에우랄리아가 못 박혔던 십자가를 의미한다.

   아우랄리아의 조각상에도 X자형 십자가가  새겨져 있다.

   

   대성당의 회랑에는 순백의 거위 13마리가 자라고 있는데 순백은 아우랄리아를 상징하고 13마리는 그녀의 나이 13살과  13번의 고문을 의미한다. 

   13살의 아우랄리아는 그  때 집에서 거위를 키웠다고. 한편 유리와 못이 들어있는 드럼통을 굴린 내리막길은 산타에우랄리아 내리막길 <Baixada

   de Santa Eulàlia >로 이름지어놓고 입구에는 성인의 고문과 처형장면을 묘사해놓은 그림이 있다.

 

바르셀로나 대성당

 

성당 내부. 성녀 아우랄리아의 조각상이 보인다.

 

 

<산타에우랄리아 내리막길 (Baixada de Santa Eulàlia )>


 

 <고대시대 로마신전( Columnas del Templo de Augusto ) >

   해발고도 16.9m로 고대 바르셀로나에서 가장 높은 곳이었다.

   한 도시에서 가장 높은 곳에 반드시 있는 것? 로마시대 신전이다.

   바르셀로나가 고대 로마시대의 점령지이며 아주 오래된 도시라는 것을 증명하는 곳이기도 하다. 

   위치상으로는 성당의 뒷편에 있는데 건물 안으로 들어가야 한다.  

 

 

  < 산 펠립 네리 광장 (Plaça Sant Felip Neri ) >

   고딕지구에서 가장 분위기 있는 광장이며 바르셀로나 사람들이 가장 사랑하는 벽이다.

   이 광장에는 바르셀로나의 슬픈 역사가 담겨있는데  1936년 스페인 내전 당시에 독재자 프랑코의 명령으로 벽에 사람들을 일렬로 세워놓고 총을

   쏘았다는 곳이다. 광장의 벽면에는 총알자국이 지금도 선명하다.

   사람의 키보다 더 높은 곳에 총알 자국이 있는 것은 총을 든 사람들이 차마 쏘지 못하고 위를 향했기 때문이라고 한다.

   또 이 광장은 독재자 프랑코가 이탈리아의 독재자 무솔리니를 사주하여 폭격을 가한 곳이기도 하다.

   그 때 이곳 유치원에 다니던 어린 아이들이 많은 희생을 당했다고... 

   하나가 더 있다.

   바르셀로나의 천재 건축가 가우디가 이곳까지 산책을  나오다가 트램에 치여 이 병원 저 병원을 전전하다가 결국 죽음을 맞이했다는...

 


<피카소 그림> 
대성당 광장으로 가는 길에는 피카소의 그림을 만날 수 있다. 정확하게 말하면 피카소가 디자인 한 것을 까를네스하르가 완성한 벽화. 
그림의 모티브는 '사르다나를 추는 사람들'이다. 
'사르다나(Sardana)는 스페인 카탈루나 지방의 전통 민속무용으로 우리나라 강강술래와 비슷하게 서로 손을 맞잡고 둥글게 원을 그리면서 추는 춤이다. 안달루시아 지방의 플라멩고다 개인적 특성이 중시되는 춤이라면 사르다나는 조화와 협동심이 중시되는 군무다. 
때로 대성당 광장앞에서는 지금도 사르다나는 추는 스페인 사람들을 만날수 있다. 



<바르시노 유적지>


바르셀로나엘 가면 바르시노 (BARCINO) 라는 유적지가 있다.

바르시노(BARCINO), 로마 유적지다.

 

패션과 쇼핑, 거기다 가우디 건축을 상징하는 가장 현대적인 도시에서 웬 로마?

 

바르셀로나는 기원전 페니키아인들에 의해 형성된 도시다.

페니키아란 지금의 레바논 · 시리아 · 이스라엘 북부 등 지중해 동쪽 해안 지대의

고대 지명이자 도시국가의 이름. 페니키아 인들은 지중해 무역을 독점하면서 카르타고(현재의 튀니지)를 비롯하여 지중해 여러 곳에 식민지를 건설하는 강력한 민족이었다. 

 

지금의 바르셀로나는 당시 강대국으로 번성하던 카르타고의 장군인 바르카가 로마군을 누르고 통치하던 지역이었다. 그러나 로마와 카르타고는 계속 지중해를 두고 패권다툼을 벌였으며 전설적인 카르타고의 장군 한니발(바르카의 아들)이 로마의 스피키오에게 패하면서 바르셀로나는 로마로 넘어갔다.

 

바르카는 이 지역을 통치하면서 자신의 이름을 붙여, 바르시노(바르카의 도시)라고 불렀다. 바르셀로나라는 도시명의 유래는 여기서... 

 

바르셀로나 대성광 광장에서 비스베 거리로 들어가기 전 대성당 광장 오른쪽에 가면

로마 유적지인 바르시노(BARCINO) 표지가 나온다.

 

 


 

 


 

< 비스베 거리 Carrer del Bisbe  >

 고딕지구의 중심인  하우메 광장과 대성당 사이 길로 밤이 내려앉은 비스베 거리는 정말 아름답다.

 이 길에는 스페인 판 탄식의 다리라고 불리는 구름다리가 있는데  카탈루냐 주 정부 청사와 주지사 집무실을 연결해 주는 다리다.


 

 

< 왕의 광장( Plaça del Rei )>

 레콩키스타로 스페인을 통일한 이사벨여왕과 신대륙에서 돌아온 콜롬버스가 만난 광장이다.

 콜럼버스가 이사벨 여왕을 만나기 위해 걸어 올라갔던 계단은 요즘도 여행자들이 가장 좋아하는 쉼터다.   대성당의 오른쪽 모퉁이다.

  

 

  < 하우메 광장 (plaça de sant jaume) >

   바르셀로나의 행정 중심 구역이다.

   카탈루냐 주 정부 청사와 바르셀로나 시청사가 마주하고 있다.

   가로등이 켜지는 저녁이면 아주 아름답다. 물론 낮에는 결혼식이나 집회등으로 항상 사람들이 많이 모이는 곳.