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지금은 여행중 /2월 스페인

스페인 역사

프리 김앤리 2018. 2. 5. 10:53

 

우리나라 역사도 자세히 잘 모르는데 어찌 남의 나라 역사를 다 알겠냐는 것에다

우리나라 역대 왕들의 이야기도 제대로 잘 모르는데 남의 나라 왕들 이야기를 어찌 다 알겠냐는 것이 내 지론이다.

그래서 광화문에 멋대가리 없이 놓여진 동상이 세종대왕이라는 사실 정도만 알고 있지, 우리나라 어느 구석 어디에 어떤 왕들의 초상화가 있는지,

혹은 누구의 동상이 세워져 있는지 모른다.

 

그래도 남의 나라 여행을 다니면 새삼스럽게 그 나라의 역사도 다시 챙겨보고

그 나라 왕들의 이야기를 찾아보는 것은 '여행'이라는 것이 주는 숙제 같은 것인지도 모른다.

(우리나라도 그렇지만 한 나라의 역사라는 것이 항상 '왕'을 중심으로 정리되어 있다는 것이 못마땅하지만...)

그래봐야 이원복의 먼나라 이웃나라 수준에도 한참 못미치지만

어느 세계사 시간에 문득 들은 이야기나, 어느 책에서 문득 나왔던 역사적 사실이 조합되는 순간에는 짜릿한 흥분을 맛본다.  

적어도 문득 문득, 어느 순간 어느 장면에서 나왔던 이야기들이 이번 우리 스페인 여행과 관련되어 있다면

그 장면을 씨줄과 날실로 엮어보는 것이 여행이 주는 숙제라고...

나는 늘 믿는다....

 

인류 최초의 벽화가 발견되었다는 알타미라(Altamira) 동굴이 바로 스페인의 한 지명이다.

스페인 북부의 알타미라 지방에서  붉은 소 그림이 선명한 벽화가 발견되었는 데 

BC 2만 5000년~1만 5000년 사이의 것이라고 추정한단다.


이베리아(Iberia) 반도에 살았던 사람들을 살펴보면

BC 8세기~7세기에는 페니키아(Phoenicia)인, 그리스인(Greeks)이 
BC 7세기에는 유럽 중부의 켈트(Celta)족 일부가 피레네(Pyrenees) 산맥을 넘어왔고
BC 3세기에 이르러 카르타고(Cartago)가 이베리아 반도의 대부분을 정복하였다.

 

 

카르타고라고 하면 지금의 튀니지 북부의 위대한 제국 , 바로 한니발 장군이 있던 나라다.

그 때 당시에는 지중해를 중심으로 지금의 중동 지역과 북 아프리카 지역이

부강하고 강성한 나라였다. 한니발이 이끌던 카르타고 군대는 지금의 스페인 지역을 정복하고

로마 제국과 힘을 겨루었던 시절이다.

그러나 BC 264년~ BC 146년에 3차례에 걸친 포에니전쟁이 일어다
결국 로마가 카르타고를 격파하고 지중해를 제패하였다.
BC 2세기 무렵부터 AD 5세기 초까지 스페인 지역은 로마의 지배를 받게 되었다.

 

 

 

 

 

 

스페인 중부의 세고비아에 있는 수도교가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대표적인 건축물이다.

이베리아 반도에서의 로마 지배는 600년이나 지속된다.

 

5세기에 들어서 유럽의 게르만족 대 이동으로 게르만족의 일파인

반달족(Vandalos)과 서고트족(Visigodos)이 이베리아 반도로 이동하여 정복 왕국을 건설하였다.

 

 

 

 

 

 

8세기에 서고트왕국이 이슬람족의 일파인 무어(Moor)족에 의해 정복된 이후

전 이베리아 반도가 이슬람화되었다.

무어인은 북아프리카에 살던 사람들로 아라비아인, 베르베르인, 흑인의 피가 섞인 이슬람교도를 말한다. 스페인이 유럽에 속해있으면서도 가장 독특한 문화를 가지고 있는 것도 이슬람의 지배를 오랫동안 받았기 때문이다.

 

 

 

 

그러나 로마제국의 영향을 받으며 스페인에 오래 살고있었던 기독교 세력의 저항도 만만찮았다.

1212년 라스 나바스 데 톨로사(Las Navas de Tolosa) 승리 이후 기독교 세력이 이슬람 세력을 연파하였으며
13세기 중엽에 와서는 스페인 남부의 일부인 그라나다(Granada)를 제외한 전 지역의 국토를 기독교 세력이

장악하게 되었다. 이름하여 레콩키스타(La Reconquista), 즉 국토 회복운동이다.

그러던 1492년. 카스티야(Castilla) 왕국의 이사벨(Isabel) 여왕과
아라곤(Aragon) 왕국의 의 페르난도(Fernando) 왕이 결혼을 한 사건은 기독교 세력의 대 연합이었고

레콩키스타의 완벽한 결말을 이루게 하였다.  

의 연합군은 1492년 1월 그라나다를 탈환하고 영토 회복을 완수하였다.

 

 

 

 

 

카스티야 왕국과 아라곤 왕국의 결합으로 두 왕국의 군대가 하나로 되었고 막강해진 연합군은

결국 1492년 1월 그라나다 알함브라 궁전에서 최후까지 항전하던

나스르 이슬람 왕조를 몰아내고 스페인을 통일하였다.

 

그림은 이슬람 왕조의 최후의 왕 보아브딜이 전쟁에서 패한 후 이사벨 여왕에게

알함브라의 궁전의 열쇠를 내어주는 장면이다.  

 

 

 

 

 

 

 

이사벨 여왕은 그라나다를  탈환한  직후,

크리스토퍼 콜럼버스(Christopher Columbus)의 항해 계획 지원 계약서에 서명하였으며,

 

 

 

 

 

 

 

 

 

 

1492년 8월 콜롬버스는 세비야의 과달키비르 강에 산타마리호를 띄우고

서쪽으로 항해를 시작했으며 세계사의 한 획을 그은 아메리카 대륙을 발견하고

식민지 아메리카 대륙에서 수많은 금은 보화를 스페인으로 실어오며

스페인 대 영광의 시대를 열어젖힌다.

 

 

 

 

 

 

 

1494년 스페인과 포르투갈은 세계를 양분하는 토르데시아스(Tordesillas) 조약을 맺는다.
1498년 포르투갈인 바스코 다 가마(Vasco da Gama)는 인도 항로를 발견했고,

1512년에는 오늘날과 같은 스페인의 영토가 형성되었다.

이후 1516년, 페르난도와 이사벨의 외손자인 카를로스 1세로 즉위하여 스페인 통일왕국 최초의 왕이 되었다.

... 그 뒤로 프란시스코 피사로(Francisco Pizarro)가  잉카를 정복, 

1519년에는 포르투갈인 마젤란이 스페인 왕의 후원 아래 세계일주 항해에 성공,

1556년 펠리페 2세의 즉위... 마드리드로 천도,  1571년에는 오스만 터키 격파 지중해 제패...

 

 

 

...

...

1936년 7월 18일 프란시스코 프랑코(Francisco Franco) 장군을 위시한 일부 우익 군부가
독일, 이탈리아의 지원을 받아 인민전선 정부에 대항하여 군사반란을 일으켜 1936~1939년에 스페인 내전이

일어난다.

1939년 3월 수도 마드리드가 함락되어 내전은 프랑코 장군의 반정부군 측의 승리로 끝났다.

톨레도의 알카사르가 당시 프랑코 군이 공화파(인민전선 정부)의 포위에 맞서 두 달을 넘게 격렬하게 저항햇던 흔적이 남아있다.

...

...

 

 

 

 

 

 

스페인 내전 당시 1937년 4월 독일 공군은 프란시스코 프랑코 측을 지원하기 위해

스페인 북부의 공화파 도시 게르니카(Guernica)를 맹폭하였는데,
파블로 피카소는 ‘게르니카’라는 그림으로 당시의 참상을 전 세계에 알렸다.

그리고 헤밍웨이의 '누구를 위하여 종을 울리나'라는 소설도 스페인 내전 당시를 그린 소설이었다.  

론다의 협곡에는 스페인 내전 당시 서로가 서로를 죽이던 참혹한 이야기가 전해내려온다.

 

 

 

 

 

 

1975년 11월 20일 프란시스코 프랑코 총통이 사망하고,

그해 11월 22일에는 후안 카를로스(Juan Carlos) 왕세자가 스페인 국왕으로 즉위하였다.

1977년 6월에는 41년 만에 총선거(1936년 마지막 총선)가 실시되고
1978년 12월 서구식 의회민주주의를 내용으로 하는 신헌법이 국민투표에서 통과되었다.

1986년 1월 유럽공동체(EC, European Community)에 가입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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