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지금은 여행중 /2월 스페인

여러 문화가 뒤섞인 코르도바

프리 김앤리 2018. 2. 6. 17:31

무슬림들이 711년 이베리아 반도에 들어온 후 가장 먼저 만든 도시가 코르도바(Cordoba)다.

이후 이슬람의 수도가 세비야로 옮겨가게 되는 11세기 까지 안달루시아 지방의 중심 도시였던 코르도바는 당시 이슬람 세계의 중심이었던 이라크의 바그다드와 콘스탄티노플과 어깨를 나란히 할 만큼 번성했던 곳이다.  당시 유럽에는 인구 3만이 넘는 도시가 많지 않았는데 코르도바의 인구가 50만명에 달했다 하니 그 위세를 짐작할 만하다. 

코르도바는 알 만수르가 통치하던 서기 1000년경을 최고의 전성기로 꼽는다. 수백개의 모스크와 수많은 궁전이 지어졌고 대중 목욕탕 같은 시민 편의 시설과 학문을 꽃피울 도서관, 천문대도 들어섰다. 강을 가로지르는 거대한 다리와 수로가 놓이면서 가장 번성한 도시로서의 위엄을 지켜 나가던 시기였다. 당시 프랑스와 영국 등 서유럽에서 선진 문명을 보유한 코르도바로 유학 올 정도였다. 중세 암흑기를 지나오면서 잊혀졌던 그리스 철학과 과학 문명이 이를 계승 발전 시켜온 이슬람에 의해 다시 유럽으로 공급되는 통로를 제공한 것이다. 


이슬람 시대에는 유대인을 포용하는 정책을 펼쳐 많은 유대인이 이베리아 반도로 유입됐다. 당시 유대인은 대부분 지식인이거나 상업으로 부를 축척한, 소위 중산층 이상의 생활을 했다.  그러나 코르도바는 15세기 말부터 기독교인들이 레콩키스타를 벌여 이슬람인과 유대인들을 추방하기 시작했다. 그라나다를 끝으로 이슬람 시대가 끝나자 가톨릭으로 개종하는 유대인들이 생겨났고 부는 가지고 있었지만 사회적으로 인정받지 못한 유대인들은 가톨릭 가문과 결혼하여 신분 상승을 꾀하기도 했다.본격적으로 유대인 탄압이 시작될 무렵 많은 유대인들은 이베리아 반도를 떠났고 남은 후손들은 세파르디(Sefardi) 라는 이름으로 살아갔다.

유대인이 빠져나가면서 코르도바도 급격히 쇠락하기 시작했다. 이 일은 스페인이 쇠락한 원인이기도 했다. 기독교인들이 국토는 회복했지만 노동력과 특히 유대인들이 집중적으로 종사하던 의술과 금융 기술이 빠져나감에 따라 심한 고통을 겪게 된 것이다. 그 후 꾸준히 인구가 늘기는 했지만 지금도 약 30만명 정도에 머무르고 있다. 하지만 이슬람과 유대교의 흔적이 가장 잘 보존되어 있고 스페인에서 가장 유명한 미술과 춤 학교가 밀집되어 있어 다양한 예술의 향기가 존재하는 도시다. 


  참고 : 최도성 지음 『일생에 한번은 스페인을 만나라』

           이재환 지음 『베스트 오브 스페인 101』

           이은혜 지음 『어느 멋진 일주일, 안달루시아』

           론니 프래닛 펴냄 『스페인』



자~~ 이제 코르도바 도보 여행을 떠나자. 

뚜벅뚜벅 걸어다니면서 바람이 스치는 대로, 눈이 가는대로 코르도바를 느껴보자. 


점선을 따라 걷는다면 모두 3.1Km.. ㅋㅋ 가뿐하다. 

구글만 열어놓는다면, 아니 모든 낯선 것에 우리의 눈 코 귀를 열어만 놓는다면 아무런 문제 없다. 

까짓것 길을 또 잃으면 어떠하리, 이것 또한 여행인데...

에브리다뒤 오케이???


1. 알모도바르 문(Puerta de Almodovar) 부터 시작하자. 

   옛 꼬르도바 성곽의 문으로 이슬람 시대의 건축양식인 아치형의 문을 가톨릭 시대에 사각형의 문으로 바꾼 흔적이 보인다. 

   이 문을 나서면 유대인 지구가 시작된다. 

 



2. 세파라드의 집(Casa de Sefarad)

   14세기 유대인 지구에서 시나고가(유대교 사원)까지 지하터널고 연결되었던 까사 디 세파라드는 지금은 박물관이다. 

   세파르디(Sefaradi)는 중세 스페인 및 포르투갈에 거주하는 유대인 후손들을 말한다. 

   세파르디에 대한 역사, 안달루시아 지방의 여성 지식인들에 관한 이야기를 알 수 있다. 

   스페인의 아름다운 중정, 파티오를 볼 수 있는 곳이기도 하다.    입장료 4유로



3. 시나고가(Sinagoga) 

    스페인에 남아있는 유대인 회당 중에 가장 오래된 곳이다. 유대인들의 종교의 교육의 중심이었다. 

    우리가 가는 일요일에는 오후만 입장할 수 있어 외관만 볼 수 있을 듯. 

   

4. 마이모니데스 동상 (Maimonides)

   코르도바 태생의 12세기 유대인 철학자, 율법학자. 

   유대인이 박해받던 시절 이집트로 망명하여 의사로 활동하다가 생을 마감하였다. 

   마이모니데스의 신발을 만지면 현명해진다는 속설이 있어 그의 발은 반질반질. 


5, 쏘꼬 무니씨빨(Zoco Municipal)

 2층 건물에 사각형이ㅡ 넓은 파티오가 있는 유대인 지구의 전통 주택. 

 2층으로 올라가는 계단에는 꽃화분이 잔뜩 걸려있다. 

 1층에는 대대로 이어지는 수공예 공방이 있으며 각 공방의 특색있는 액세서리나 가죽 제품등을 구입할 수 있다. 

 


6. 산 바르톨로메 예배당 (Mudejar chapel of St. Bartholomew)

  유대교를 축출한 자리에 들어선 가톨릭 성당이다. 

 


7. 페르돈 성문 (Puerta de Perdon)

  메스키타도 들어가는 주 출입구 

 성문으로 들어서면 오렌지 나무가 펼쳐지고 화강암과 대리석으로 만들어진 수많은 기둥의 메스키타가 나타난다. 


8. 메스키타(Mezquita)

  메스키타는 스페인어로 모스크, 즉 이슬람 사원이라는 뜻이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는 이슬람 문화와 가톨릭 문화의 융합을 상징하는 대표적 건물로 세상 어디에도 볼 수 없는 압도적인 풍경이다. 

  이슬람 왕조가 코르도바를 정복하고 정착한 785년, 알라흐만 1세때 짓기 시작하여 완공한 후에도 여러분 개축과 확장을 이어가면서 건축양식이 혼합되

  었다.  코르도바에 오는 대부분의 여행자가 이 메스키타를 보러 오는데 생각보다 엄청나게 큰 규모에 놀라게 된다. 약 2만 5천명의 신자들이 한꺼번에

  기도할 수 있는 크기다. 

  코르도바의 메스키타는 원래 스페인 이슬람교의 중심지였지만 정권을 잡은 이들이 종교나 신념에 따라 건물의 쓰임과 역할이 변화해왔다. 1236년 카스티야 왕국의 페르난도 3세는 코르도바를 탈환하면서 이곳을 성당으로 개조하기 시작했다. 메스키타는 가톨릭 성당으로 파괴, 수정, 개조되다가 16세기 카를로스 1세 시절에는 한가운데 르네상스 양식의 대성당까지 들어앉게 되었다. 이슬람 사원 안에 성당이 있는 이색적인 모습이 현재의 메스키타인 것이다. 한쪽은 이슬람교의 모스크가, 다른 한 쪽은 가톨릭 성당이 있는 기묘한 풍경. 가장 안쪽에는 이슬람인들이 기도를 위해 메카의 방향을 가르키는 표식, 미흐랍이 황금빛으로 치장되어 있다. 

입장료 8 유로. 평일에는 오전 오후 연이어 문을 열지만 일요일에는 오전 11:30까지 열고 미사를 하는 동안 출입을 할 수 없으므로 시간을 잘 결정해야 한다. 



9.  유대인 지구 꽃길 (Calleja de las Flores)

 메스키타 옆길을 따라  유대인 지구(La Juderia)에서는 꽃 화분이 걸린 골목을 만난다.  

 꽃길(Calleja de las Flores)이다. 

 가톨릭 세력이 맹위를 떨치던 시절, 환영받지 못하고 쫓겨나던 유대인들은 삶의 희망을 매달 듯 하얀 벽에 화분을 걸었다. 

 쫓기듯 떠난 유대인 지구의 아름다운 꽃길 덕분에 그들을 쫓아낸 스페인에 수많은 관광객이 들어오고 이 꽃길에 흥분한다는 사실...

 매년 5월이면 코르도바 파티오 축제를 열어 온 거리를 꽃으로 가득 채운단다. 

 

10.  빠뉴엘로 골목길 (Panuelo)

 라 꼰차 광장 (Plaza de la Concha) 의 한쪽에 세계에서 가장 좁은 골목 중 하나로 꼽히는 길,  빠뉴엘로 골목길 (Panuelo)이 있다. 

 기저귀를 펼친 것보다 좁다고 해서 이름 붙여진 곳으로 빠뉴엘로는 '기저귀'를 뜻한다고 



11. 포트로 광장 (Plaza del Potro) 과 포트로 여관 (Posada del Potro)

 세르반테스가 『돈키호테』를 쓸 때 머무르던 포트로 여관이 있는 광장.  포트로 여관은 소설 돈키호테에 등장한 여관인데 지금은 여관이 아닌 훌리오 로메로 투우 박물관과 미술관으로 운영되고 있다. 광장에는 코르도바를 상징하는 포트로(망아지) 조각상이 있다. 


12. 트리운포 광장과 라파엘 기념탑 (Triunfo de San Rafael de la Puerta del Puente)

라파엘은 꼬르도바의 수호신이다. 코르도바 사람들은 줄여서 '라파'라고 부른다. 

유럽에서 페스트가 유행하여 많은 사람들이 죽어갈 때 꼬르도바에 라파엘 천사가 내려와서 시민들을 치유해 주었고 이후 도시의 수호신이 되었다고 한다. 코르도바에는 유난히 약수터가 많은데 라파엘 천사가 물을 통해 페스트를 치유했기 때문에 코르도바의 물은 약수라고 전해진다. 

1651년에 처음으로 세운 라파엘 기념탑은 로마교 중간으로 가야 완전히 다 볼 수 있다. 


13. 로마교와 갈라오라 탑 (Roman Bridge & Torre de la Calahorra)

로마교는 1세기경 로마 시대에 만들어진 돌다리로 과달키비르 강을 가로질러 놓여있다. 길이 233m에 달하는데, 전쟁이나 재해로 여러 번 파괴되고 무너진 것을 개축하고 보수하여 여전히 사용하고 있다. 

갈라오라탑은 로마교를 지키기 위한 망루로서 14세기에 만들어진 것이다. 현재는 이슬람교와 가톨릭, 유대교 등에 대한 자료를 모아놓은 종교 박물관과 코르도바 역사와 문화에 대한 자료를 전시하는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갈라오라 탑에서 메스티카 방향을 바라보면 강을 가로지르는 다리와 어우러진 도시 풍경이 그림처럼 다가온다. 


14. 알카사르(Alcazar)
코르도바에 정착한 압드 알 라만의 후예들이 코르도바 칼리프를 수립한 근거지다. 한때 콘스탄티노플과 어깨를 겨눌 정도로 번성했던 도시의 왕궁답게 대규모 목욕탕, 분수가 솟는 정원, 그리고 서유럽 최대의 도서관을 보유하고 있다. 
코르도바의 알카사르는 그라나다의 알함브라나 세비야의 알카사르보다 먼저 건설되었기 때문에 섬세하거나 화려한 편은 아니다. 내부에는 알함브라의 헤네랄리페를 연상시키는 이슬람식 정원이 있다. 정원의 끝에는 이곳에서 살았던 이사벨 여왕과 페르난도 왕, 콜럼버스의 동상이 서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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