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지금은 여행중 /5월 코카서스3국

조지아 역사

프리 김앤리 2018. 4. 29. 16:47



.세계는 한 권의 책이다. 여행을 하지 않는 사람은 그 책의 한 page만 읽는 것과 같다.   - 성 아우구스티누스
.사람이 온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는 그의 과거와 현재, 그리고 그의 미래가 함께 오기 때문이다.
 한 사람의 일생이 오기 때문이다.  - 시인 정현종




조지아에서 사람이 살았던 최초의 흔적을 찾을 수 있는 곳은 고리의 우플리트시케.

완벽한 거주지인 지금의 우플리트시케는 그로부터 몇 백년이 지난 6세기의 모습이다.

동서남북 교통의 요충지였던 조지아 땅은 고대부터 현대까지 수많은 침탈과 전쟁, 지배 피지배의 과정을 거치면서 수많은 시대가 명멸하고 수많은 인종과 민족이 교차되는 곳이었다.  








2세기에는 페르시아와 로마의 전쟁터였다.

가운데 낀 나라의 운명처럼...

고대 도시 므츠헤타가 조지아의 중심이었다.

이베리아라고 불리던 시기.

당시 로마의 기록에 보면 '로마가 사랑하는 이베리아의 왕' '카이사르의 친구' 같은 문구가

나온다.





트빌리시의 나리칼라 요새에는  4C 페르시아 의해 건설된 고대 요새 (Persian Citadel)

흔적이 있다.

물론 현재의 모습은 8세기 아랍왕조에 의해 완성되었다.

(ㅠㅠ 한 나라의 역사를 안다는 것은 실로 어마어마한 일이다.

 그 나라의 과거와 미래가 연결되어서 나타나기 때문이다.

 거기다 그 속에 살았던 사람들의 이야기까지 담기면 더 어마어마해지기 때문이다. ㅠㅠ)






서기 317년 조지아에서 기독교가 공인된다.

313년 콘스탄티누스 황제의 기독교 공인 세계사와 비교하면 기독교 전파가 아주 빨랐던 나라다.

카파도키아에서 태어난 성녀 니노가 조지아에 와서 기독교를 전파한 공이 컸다.

므츠헤타의 스티브츠호벨리는 성녀 니노가 포도나무 십자가를 꽂은 터에 성당을 세웠다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다른 기복 신앙도 있었겠지만 조지아 지역의 기본 신앙은 기독교.

사람들은 수도생활을 위해 도심에서 떨어진 곳에 수도원을 세우기 시작한다.

다비드가레자의 수도원 기원은 6세기까지 거슬러올라간다.

물론 지금의 번듯한 다비드가레자의 수도원들은 10~13세기 몽골, 셀주크 투르크, 아랍민족의 침략등으로 피신해오던 사람들의 삶터이기도 했고, 수도원 이기도 했다.




6~7세기의 우플리트시케도 마찬가지.

아랍민족의 침략에 피신한 기독교인들의 집단 거주지다.

마을의 가장 높은 곳에 성당을 세우고 아래로는 일반 사람들이 살고 있던 곳.

우플리트시케는 조지아 이베리아 왕국의 중심이기도 했다.

11세기 실크로드 당시에는 교역의 중심지로 세력이 막강하여 한때는 2만여명이 살던

거대 도시였다. 마을의 꼭대기에서 보이는 조지아의 황금시대를 열었던 타마라 여왕의 흔적도 찾을 수 있다.



로마의 침략, 페르시아의 지배, 아랍민족의 득세, 셀주크 투르크와 몽골의 침략등 끊임없는 외세의 침략을 견디면서도

조지아 사람들은 나라의 곳곳에 크고 작은 조지아 정교회 사원들을 세우면서 그들의 신앙을 지켜왔다.

물론 사원이 세워지는 주변으로는 드 넓은 평야에 포도를 심어 그들의 삶을 이어왔다.

사진은 카케티 지역의 사원들.




드디어 12세기에 들어 고르가살리 왕이 이베리아 왕국의 수도를 므츠헤타에서

지금의 트빌리시로 옮긴다.

트빌리시의 강변, 메데키 교회 앞에는 고르가살리 왕의 동상이 서 있다.








조지아의 황금 시기는 타마라 여왕시기(1184~1223년).

타마라의 시기에는 셀주크 투르크 족의 침략도 물리치고 영토를 확보하였으며 십자군 전쟁으로 인한 비잔티움 제국의 일시적인 몰락으로 조지아는 전체 동부 지중해 영역권에서 가장 강력한 기독교 왕국으로 남았다

12세기 초반 ~ 13세기 초반 사이 타마르 대제의 시대는 정치적이고 군사적인 그녀의 업적들과 더불어 건축, 문학, 철학과 과학을 포함하는 조지아 문화의 발달로 상징된다.


14~16세기로 넘어가면서 몽골의 침략, 오스만투르크의 침략, 페르시아의 침략으로 조지아는 피지배국이 되면서 주변 국가의 문화가 유입되고 서로 섞이기도 한다.




18세기 드디어 북쪽의 러시아가 조지아를 넘보기 시작했다.

오스만투르크에 대항하기 위해 러시아는 조지아에게 협력을 요구했고 급기야는 러시아와 합병, 러시아 통치 시기를 맞는다.

사진은 트빌리시에 있는 유황온천.

우리가 알고 있는 러시아의 작가들이 여기저기서 등장하기 시작한다.

1829년 이곳을 들렀다는 푸시킨은 ' 내 생애 최고의 유황온천'이라 했다 하고

19세기 중반 톨스토이는 코카서스 주둔군에 자원해서 4년동안 복무했다.

그는 이곳의 삶을 경험으로 '코카서스의 죄수' '코사크' 같은 소설을 썼다.

막심 고리키도 등장한다. 1891년 트빌리시에 왔던 막심 고리키는 "코카서스 산맥의 장엄함과 그 곳 사람들의 낭만적인 기질, 이 두가지가 방황하던 나를 작가로 바꾸어 놓았다"고 고백하기도 했다.




1917년 러시아 혁명으로 중앙정부가 혼란한 틈을 타 조지아는 독립국을 선포하였으나

1921년 붉은 군대가 조지아를 침입, 전쟁을 일으켜 강제로 소비에트유니온의 하나로

합병시킨다.

러시아는 코카서스 지역으로 진출하기 위해 산맥의 아래쪽으로 도로를 닦아

침입의 기반을 닦았다.

그 도로가 트빌리시에서 카즈베기로 가는 군용도로(Georgian Military Highway)다.





구 소련의 독재자 스탈린은 조지아의 고리 출신이다.

시골 촌뜨기 출신이라고 놀림도 받았다는 스탈린은 고향인 조지아를 오히려 핍박하고

그들의 자치권을 빼앗아 버리기도 했다.

그래서 고리에서 스탈린은 애증의 대상!

사진은 고리시에 있는 스탈린 박물관과 그의 동상.

아주 작은 그의 생가도 그대로 보존되어 있다.





오랜 시간 소련의 지배하에 있었지만 다른 동구권의 나라들과 마찬가지로 조지아도 마침내 독립! 1991년!!

'그루지아'라고 불리던 소련식 이름을 버리고 조지아 공화국으로 불린다.

그러나 오세티아 지역, 체첸 지역의 분쟁등으로 여전히 복잡한 국내정세에 시달리다 최근에 와서야 안정되고 있다.

가장 최근에는 2007년 러시아가 다시한번 조지아 침략을 시도했으나 무위에 끝나고 마침내 평화의 시대를 맞이했다.


오늘의 트빌리시.

야경이 멋지기로 유명한 조지아의 수도. 도심의 한 가운데는 쿠라강이 흐르고 그들의 정신적 지주인 정교회 사원 불빛이 반짝이는

아름다운 도시.  사진은 나리칼라 요새에서 찍은 사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