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8 지금은 여행중 /5월 코카서스3국

쉐마카의 예띠 굼바즈 앞에서

프리 김앤리 2018. 4. 29. 09:53



여행을 가면 늘 보러 다니는 것들.

거대한 유적 · 아름다운 건축물 · 유명한 예술 작품들...

묘지도 그렇다. 

거대한 묘지 · 아름다운 묘지 · 유명한 묘지...

그곳엔 이야기가 전해 내려온다. 

우리도 이야기를 담는다. 

살아 생전의 권력을, 못다 이룬 사랑을, 삶의 유한함을... 



<이집트의 피라미드>

막강한 권력을 누리던 파라오의 불멸의 꿈을 담은 거대한 묘지.

막강, 권력, 영광, 불멸등 어마어마한 단어들이 등장했지만 여행을 하고 있는 내게는

집요하게 달라붙는 그들의 후손, 이집션들의 흥정이 끔찍했던 기억.


<인도의 타지마할>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묘지로 알려진 타지마할.

아내의 죽음을 애도하는 샤 자한 왕의 명령으로 22년동안이나 지은 찬란한 무덤.

그러나 샤 자한 막내아들의 반란으로 왕위를 박탈당하고 갇힌 요새에서만 바라볼 수 밖에 없었다는 이야기.

저 하얀 대리석의 한 귀퉁이에 앉아 따가운 햇살을 오랫동안 피했던 기억.


<포르투갈 리스본의 바스코다가마 무덤>

대항해 시대에 인도양 항로를 발견한 위대한 개척가, 바스코다가마의 이야기를 담고 있는 석관.

제로니무스 수도원의 화려한 내부장식에 마음이 쏠려, 정작 바스코다가마의 영광은 뒷전으로 밀어버렸던 기억.


<루마니아의 즐거운 묘지>

루마니아의 북부, 사푼자라는 마을에 있는 조그만 묘지다.

각 묘비에는 그 사람이 살았던 생전의 이야기를 일인칭 화법으로 자신의 삶을 설명하고 그림으로 표현해놓았다. 

"나는 이 세상에 태어나 요리사를 하면서 사람들에게 맛있는 음식을 해주면서 즐겁게 살다가 갑니다..."

기쁘면 기쁜대로, 슬프면 슬픈대로 담담하게 죽음을 이야기하고 남아있는 사람들도 담담하게 받아들인다.

그래서 이름이 '즐거운 묘지(Merry Cemetery)'

햇살이 뜨겁던 어느 5월, 묘비 사이를 거닐면서 문득 울컥했던 기억.


<스위스 루체른 호숫가의 어느 공동묘지>

빙하가 녹아내려 만든 에머랄드 호숫가의 어느 마을. 마을의 초입에 있었다.

묘지라고 하면 사람사는 마을과는 멀리 떨어져 있어야 한다는 나의 선입견에 놀라움을 줬던 풍경.

20년도 더 된 이야기다. 

저 호숫가에 백조도 한 마리 놀고 있었는데...


<보스니아 사라예보의 공동묘지>

20세기 초, 사라예보 내전으로 죽어간 동네 사람들의 묘지.

3년 사이에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전쟁으로 죽어갔는지... 분지로 둘러싸인 사라예보 곳곳에는 묘지가 보인다.

삶과 죽음의 구별이 없는 곳. 살아있는 사람들의 그리움이 고스란히 담겨 있는 곳이다.


<크로아티아 프리모슈텐의 묘지>

아드리아 해로 둘러싸여 섬처럼 생긴 프리모슈텐, 걸어서 돌아다녀봐야 30분도 안 걸리는 조그만 마을이다.

마을의 가장 꼭대기에 올라가면 성당과 마을 묘지가 나온다.

오늘도 누군가가 꽃을 가져다놓은... 산 자와 죽은 자의 속삭임이 계속되던 아름다운 묘지.


<이탈리아 친케테레의 마을 묘지>

꽃으로 꾸며진 석관 아파트. 마을의 언덕에 있다.

겨울이었는데도 형형색색의 꽃을 가져다놓은 사람들의 그리움이 보인다.

중간 중간에 비어있는 아파트는 '유한한 삶'을 끝내고 오는 누군가를 기다리는 것일까?




2018년 5월 19일, 바쿠를 떠난 우리들은 쉐마카의 예띠 굼바즈에 도착할 것이다.

쉐마카는 중세 아제르바이잔의 수도. 12세기 대규모 지진으로 쉬르반샤 왕조가 바쿠로 수도를 옮기기 전의 오래된 수도다.

예띠 굼바즈는 7개의 무덤이라는 뜻으로 쉬르반샤 왕조의 무덤들이다.

대규모 지진으로 다른 유적은 거의 사라졌고 지금은 풀이 무성한 돔형 무덤과 세월에 깍이고 넘어지고 흐트러진 비석들만 남아있다.

한때는 영광을 누렸을 일곱 왕들! 쓸쓸한 그 길을 걸어보자.

예띠 굼바즈 앞으로는 '영원'을 상징하는 사이프러스 나무가 무성한 쉐마카 마을을 볼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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