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879년 구두장이인 비사리온 주가시빌리의 아들로 태어나 트빌리시 신학원에 다녔으나 중퇴. 이후 직업 혁명가의 길로 접어들어 러시아
혁명이 일어나기 전까지 시베리아에 여러차례 유배, 탈출, 체포를 거듭했다.
1905년 카프카스 대표로 볼세비키 대회에 참석 레닌으로 부터 스탈린(강철같은 사나이)이라는 이름을 얻는다.
카프카스 일대에서 민중봉기 선동, 자금 마련을 위해 은행을 터는 등 일부 활동에 국한되어 있었지만 레닌의 신임을 얻어 러시아 혁명 성공 이후 1921년 붉은 군대를 이끌며 반혁명군과의 전투에 공을 세운다.
1924년 레닌의 사후 정적이었던 트로츠키파를 숙청하고 실권을 장악하면서 스탈린 독채 체제를 구축한다. 농업의 막대한 희생을 바탕으로 군사력을 확충하고 토지를 빼앗아 전 국토를 집단농장화, 집단 공장화 한다. 반대하는 사람들은 철저히 가려 강제 수용소에 보내고 주택과 식량을 배급제로 전환하면서 경쟁체제에서 목표량을 채우면 우대, 채우지 못하면 가혹한 채찍을 가했다. 한편 정치적으로 반대파에 대한 대규모 암살, 숙청, 제거, 유배를 일삼아 1933년부터 1938년 사이 숙청된 사람이 수백만명 이상이었다. 급격한 산업체제의 변동으로 천만명이 굶어죽고 3천만명 이상의 주민이 시베리아나 중앙아시아로 강제 이주, 이중 절반 가량이 질병이나 굶주림으로 죽었다. 이 학살의 중심에는 KGB의 전신인 스탈린 비밀 경찰이 활약을 하였다.
1939년에 들어서는 발트 3국을 점령하는 등 발칸반도와 동유럽까지 무력으로 침공 지배하기에 이르른다.
1953년 모스크바의 별장에서 잠을 자다가 뇌졸증으로 사망했다.
<스탈린 박물관 입구>
박물관에는 주로 그의 활동을 닮은 사진이 많이 전시되어 있고, 각국 대사로부터 받은 선물의 방도 보인다.
젊은 시절 고리나 트빌리시에서 활동하던 스탈린의 모습은 그림으로 표현해놓았다.
역시 20세기 초반의 사람이라 사진 기록물이 많았다는...
학교 시절 역사책에서 배운 내용들이 자주 등장하여 영어가 없는 전시였음에도 사진만으로도 그 내용을 알수 있는 사진이 여럿 있었다.
예를 들면 처칠과 루즈벨트와 스탈린이 같이 등장하는 얄타회담같은 장면.
그런데 스탈린의 젊은 시절 그림에서 우리는 청년 스탈린보다는 그 배경으로 나오는 트빌리시의 풍경이었다.
지금도 여전한 그 장면... ㅋ
박물관 밖으로 나오면 한쪽에는 스탈린의 생가를 그대로 옮겨놓았다. 가난한 구두장이의 아들에 발가락은 기형, 얼굴에는 천연두의 후유증, 게다가 키도 매우 작은 편이어서 친구들의 놀림에 시달렸으며, 아버지는 툭하면 술에 취해 심하게 매를 때렸다. 그나마 아버지는 11세가 되었을 때 다른 사람과 싸우다 칼에 찔려 죽어, 어머니가 근근히 살림을 이어가야 했다.
스탈린 하면 '강철'과 '독재'와 '시베리아 유형' '붉은 군대'등 살벌한 이야기만 떠올리는 우리들에게 어린 그는 애잔했다.
침실과 회의실까지 다 있는 그의 전용기차를 보면서 고소공포증이 있어 비행기를 타지 못하고 기차만 타야했다는 한 독재자의 개인적 두려움을 보았다.
ㅋ 우리는 결국 단정하게 정리해놓은 그의 박물관을 떠나 더위에 지쳐 그늘에서 쉬고 있는 개에게 관심을 보였고...
그의 얼굴을 대문짝만하게 붙여 놓은 동네 슈퍼에서 장을 보는 것으로 '고리 관광'은 끝!!
<위의 글은 함규진 교수님이 쓰신 네이버캐스트 인물 세계사 에서 많은 내용을 옮겨왔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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