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지금은 여행중 /1월 터키

앙카라도 이렇게 아름다울 수 있다

프리 김앤리 2012. 2. 7. 13:16

<투어야 단체배낭여행, 터키 이야기 2>

 

아침부터 눈이 내린다.

올 겨울 처음 눈을 본다며 성아는 설렌다.

밥 먹던 것도 빨리 끝내고 눈 맞으러 밖을 나선다.

사람들은 하나둘 로비로 모여들고 마치 오래된 성의 주인공들처럼 호텔 로비의 소파에 앉아서 사진들을 찍는다.

밖으로 나선다. 제법 굵은 눈이 내린다.

아타투르크 묘지까지 걸어가려고 했었는데... 여기서 멀지도 않은 거린데...

뭘 망설이시나요??? 여기는 터키. 물가 싼 터키. 고민하지 맙시다. 택시 탑시다. 택시 한 대당 5리라밖에 하지 않는걸요. 삼천원이 조금 넘는 돈이예요.

배낭여행이지만 우리는 첫날부터 사치(?)를 부린다.

쏟아지는 눈에게 핑계를 댄다. " 지금 눈이 내리잖아~~"

 

터키의 초대 대통령 케말파샤 아타투르크의 묘지.

터키 사람들은 아주 성스럽게 생각하는 곳이다.

그러나 우리들에게는 터키 사람들이 가지고 있다는 존경심은 없다.

단지 그가 이 나라의 국부이며 그를 기리는 이렇게 멋진 묘지가 있다는 것이 더 중요하다.

뙤약볕이 내리는 한 여름이라면,

순전히 팍팍한 도시 분위기를 풍기는 앙카라 시내에서 벗어나 우거진 녹음으로 여행자들에게 쉼터를 제공해 주는 곳이지만

오늘은 이렇게 전체를 하얗게 만들어 우리를 반긴다.

 

어제밤 자정을 거의 넘기고 앙카라에 도착한 우리들은 상식대로라면 모두들 지쳐 있어야 했다.  

오랜 시간의 비행과 시차, 그리고 낯선 곳에 대한 피곤함때문에라도.

그런데 모두들 쌩쌩하다.

천상 우리는 여행자들이다.

 

역시 성아 넌, 눈도 내리지 않는 촌구석에서 온 것이야.... 눈을 보고 이리 즐거워 하는 걸 보면............

 

아침부터 내리는 눈으로 아타투르크 묘지는 텅 비어 있다.

참배를 하러 온 터키 사람들도 없고 여행자들은 당연이 없다.

이렇게 넓은 묘지에는 빨개진 얼굴로 아침부터 눈을 쓸고 있는 군인들만 보인다.

오돌오돌 떨면서 청소를 하고 있는 터키 군인들을 보면서 누군가가 말한다.

  " 눈은 하늘에서 내리는 축복이지만 군인들에게는 그냥 쓰레기일 뿐이라면서요. "

이제 이 여행만 마치고 나면 곧 입대를 할 준태에게 누군가 또 한마디.

  " 며칠만 있으면 준태씨도 저럭하고 있는 거 아냐?"

  " 아니, 이 순간에 왜 그런 말을 하세요~~"

하기야, 김새겠다.

 

아타투르크 묘지.

규모의 미학만 있을 뿐, 정교함이나 섬세함의 미학은 없다.

천정이 뚫려있는 아타투르크 묘. 그냥 눈을 맞고 있다.

무슨 그리 큰 감동은 없지만 그래도 예의를 갖추고 잠깐 묵념을 한다.

근데 춥다. 많이 춥다.

오로지 추위를 피한다는 마음으로 계단 아래 있는 박물관으로 들어간다.

총, 터키 검, 그리고 케말파샤가 참전했던 전쟁터의 모습을 그림과 모형으로 만들어 놓고...

한번 들어가면 절대로 그냥 빠져 나올수 없이 반드시 끝까지 가야하는 박물관의 구조는 우리를 중도에 포기하지 못하도록 했다.

덕분에 꽁꽁  언 몸을 많이 녹였다. .

헉? 그런데 언제부턴가 성아랑 태현쌤이 안보인다?

헉?

그러고보니 문자 메세지가 하나 와 있었다.

 '대장님 어디계세요? 우리는 이미 입구예요.'

어라? 멋진 사람들.

 '거기 있는 터키 사람들이랑 사귀면서 놀고 계셔'

ㅋㅋ

여행은 자유다.

단체 여행이지만 우리의 기본 컨셉은 자유다.

 

이미 출입구 군인들한테 Apple Tea 까지 얻어마시면서 신나게 놀고 있다.

 

덕분에 다른 사람들도 사진 한 팡!

 

나는 바란다.

이들이 진짜 터키 사람들을 만날 수 있기를...

한국 사람들끼리 우루루 몰려다니면서 한국 말만 쓰고 한국 사람만 만나고 가져온 한국 음식만 먹고

정작 낯선 여행지에서는 몇장의 사진만 찍고 그냥 돌아서는 그런 여행이 아니라

그 동네 사람들도 만나고 그들과 이야기 하고 그들의 웃음과 친절을 만나기를 원한다.

 

눈길만 한번 주어도 우리에게 달려드는 이 해맑은 아이들을 만나기를 원한다.

그들의 웃음을 만나기를 바란다.

 

우리에게도 낯선 곳이지만 현지인들 역시 우리를 만나는 것이 그들이 여행인 것을...

 

우리를 데리고 갈 차가 도착했다.

멀리 다섯시간이나 떨어진 괴레메에서 온거다.

운전하시는 할아버지 후세인은 여기까지 오는 길에 눈이 엄청 내렸다고 전한다.

경이로운 터키, 믿을 수 없는 터키 사람들의 친절이다.

물론 우리는 그에 응당한 차비를 내겠지만, 내가 생각해도 참 황당한 제안 (다섯시간을 데릴러 와서 다시 다섯시간을 돌아가는, 게다가 중간에는 다른 곳까지 들러준다는 조건을 붙여서)을 선뜻 받아들여지는 터키라는 나라가 신기하다.

그래서 나는 터키를 좋아한다. 좋아할 수 밖에 없다.

 

이제 후세인과 함께 우리는 길을 떠난다.

앙카라 성을 들렀다 가기로 했다.

성으로 올라가는 허름한 골목길 앞에 우리를 세워줬다.

 

성을 오른다.

앙카라는 원래 무채색의 도시였다. 아무 볼 것도 없고 정신없는 흐릿한 도시였다. 적어도 나의 경험상으로는.

그런데 그랬던 앙카라에 눈이 내린다.

눈이 내리는 앙카라는 이쁘다. 앙카라가 이렇게 아름다울 수도 있다.

 

그래! 우리도 날아보자.

하늘을 날아보자.

 

와우!!!

 

아!!! 그러나 우리는 안다.

멋진 폼으로 날았지만 결국엔 누군가 여기서 미끄러지고 말았다는 것을.

하늘이 떠나갈도록 경쾌하게 웃었지만, 사진을 찍을때마다 엉덩이를 있는대로 내밀고 온갖 폼을 잡던 그가

사실은 여기서 쭐딱 미끄러지고 말았다는 것을...

ㅋㅋㅋ

 

눈 내린 앙카라는 예뻤다.

어제까지 우리가 있었던 세상과 전혀 다른 새로운 나라, 새로운 세상.

우리는 들떠 있었다.

여행이라는 선물에 행복해했다.

그래서 우리는 때로는 위험하게 때로는 멋지게, 그리고 때로는 이상한 폼을 잡으며 놀았다.

 

위험한 여자 1

 

위험한 여자 2

 

위험한 여자 3

 

그리고 멋진 여자 1

 

그런데 이건 또 무슨 시츄에이션일까?

도대체 저 혼자만 추운 듯 꼭꼭 여미고 둘둘 말고 거기다 우산까지, 저렇듯 불쌍한 모습을 한 여인은 무엇인지?  청승인지 주책인지.

그나마 그건 괜찮다.

저기 저 츄리닝 보이는 지금 뭣 하고 있는 상황?

그대, 늘 그대의 모습때처럼 팔을 뒤로 하고 있었어야 했어!!!

도대체 저 때, 뭐하고 있었어?

ㅋㅋㅋㅋㅎㅎㅎㅎㅎ

 

그리고 연인같은 엄마와 아들.

 

그리고 우리들.... 그날 앙카라에는 함박눈이 펑펑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