다시 라오스 여행을 준비하면서 나는 사람들에게 그다지 많은 뭔가를 챙기지 마라고 했다.
우리 주변에는 흔하디 흔한 학용품이나 옷가지들이지만 바리바리 싸가서 무턱대고 나누어 주는 우리 모습이 그다지 좋아보이지 않았기 때문이다.
아이들에게 줄 선물이라며 사거나 따로 준비하지는 말라고 그랬다.
그냥 조금씩 성의껏 준비해보자고 했다. 있는 그대로 각자가 알아서 부담되지 않는 선에서 준비하자고 했다.
나는 초등학교 선생님을 하고 있는 둘째 언니에게 부탁해 학기말 교실에 남아있는 학용품들을 수거해갔다.
유치원과 놀이방에 다니는 두 딸의 엄마 선생님은 딸애 걸 슬쩍(?) 들고 왔는지 여러권의 스케치북을 가져왔다.
남편도 초등학교 선생님이었던 귀여운 경희쌤은 남편한테 부탁했다며 풍선을 가득 들고 왔고
간호사 선생님은 어른들 옷가지를 깨끗하게 세탁해서 가지고 왔다. 그 외에도 등등등...
모든 이의 언니, 진희씨는 아이들 준다고 새 옷까지 사왔더니만 폴라로이드 카메라까지 챙겨왔다.
필름만 200장? 400장을 샀대나?
버스 멀미를 심하게 하는 바람에 방비엥에서 카약킹 투어도 못가고 혼자 남은 그는 방비엥의 마을을 돌아다녔다고 했다.
그는 얕게 흐르는 쏭강을 건너 마을로 들어갔다고 했다.
필름을 잔뜩 준비하고 폴라로이드 카메라만 메고 나선 방비엥의 시골길.
그는 아이들을 만날때마다 카메라를 들이대고 그들을 찍었고 그 자리에서 뽑혀 나오는 사진을 줬다고 했다.
처음에는 머쓱해 하던 아이들도 그에게서 필름을 받아들고 사진이 점점 인화되는 것을 보며 행복해 했다고 했다.
아이들은 자신의 모습이 담긴 사진을 받아들고 집으로 뛰어갔고 그 아이는 금방 동네의 다른 아이들을 몰고 왔다고 했다.
어떤 아이는 말쑥하게 차려입은 모습으로 다시 나타나 한 장 더 찍어달라더라는 말도 전했다.
그가 가지고 간 그 많던 필름은 금방 다 소진되어버렸다.
나는 충분히 안다.
카약킹을 했던 사람들 못지않게 시골마을 방비엥을 돌아다닌 그도 행복했으리라는 것을 안다.
어쩌면 가슴에 더 남을 혼자만의 여행을 했으리라는 짐작도 한다
여행을 떠나면 우리는 우리의 카메라 앵글에 현지인의 모습을 담고 싶어한다.
내가 이곳을 다녀왔다고 자랑하기 위해서이기도 하고,
여행에서 돌아와서도 여행의 그 순간이나 때로는 낯선 그들의 모습을 영원히 내 안에 남겨놓기 위해서이기도 하다.
그들의 모습이 행복하면 행복한대로 혹은 누추하면 누추한대로
그곳은 내가 여행을 다녀온 곳이고 한 장으로 남은 사진은 내 여행의 추억이므로 간직하고 싶어한다.
그러나 폴라로이드 카메라는 다르다.
나의 여행을 위해, 내가 간직하기 위해 사진을 찍는 것이 아니라
그들에게 돌려주기 위해서 그들의 모습을 담는 것이다.
정작 여행을 떠나온 사람에게 남는 것은 한 컷으로 남은 여행지의 영상이요, 그들이 보내준 한 웅큼의 미소다.
CCC와 함께 찾아간 루앙프라방 근교의 작은 학교에서도 그의 폴라로이드 선물은 계속됐다.
처음엔 교실에서 공부하고 있는 모습을 찍었는데 나중에는 아이들의 증명사진을 찍어주는 수준이 됐다.
아이들은 한 명씩 순서대로 벽에 기대섰고 준혁이는 졸지에 사진기사가 됐다.
진희씨는 바람잽이가 됐고 배쌤은 아이들 줄 세우는 줄잽이가 됐다.
새까만 얼굴에 반짝거리는 눈을 가진 아이들은 카메라가 없는 곳에서는 세상에서 가장 순진무구한 웃음을 짓고 있었으나
멀뚱거리던 눈으로 한참을 기다리다 선 카메라 앞에서는 여지없이 굳어버렸다.
바람잽이의 요란한 선동에도 불구하고 아이들은 그 잠시 순간 만큼은 얼어있었고
자신을 찍은 필름을 받아쥐고서야 다시 웃음을 보여줬다.
꼬마아이들도 즐거워했고 스무살도 안되보이는 앳된 처녀 선생님들도 즐거워했다.
5박 7일간의 짧은 시간동안 그는 가지고 온 필름을 모조리 다 썼고 라오스 아이들에게 그들의 미소를 한 컷으로 돌려줬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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