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여행 Tip

차- 음악-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 트라팔가 광장

프리 김앤리 2012. 5. 22. 19:45

 

< 연상작용 >

오랜만에 차를 몰고 출근했다. 

평화롭게 음악을 들을 수 있는 가장 완벽한 시간이다.

오랜만에 느끼는 즐거움이다.

 

지금 나의 차는 외제차. 내 인생에서 단 한번 상상이라도 한 적 없는 물건이다.

내가 외제차를 갖게 된 사연은 이렇다.

외제차를 가지고 있던 후배가 급히 차를 팔아야 할 사정이 생겼다.

안그래도 연비가 워낙 좋아 그 차를 동경하고 있었던 참이었다. 그래도 그건 어디까지나 동경이었지 우리가 사겠다는 마음은 없었는데 후배가 차를 처분해야 하는 상황이 생기자 동경이 욕망으로 불타올랐다. 게다가 그 차 천정은 전면 유리로 되어 있어 비오는 날이나 눈 오는 날에는 활짝 열린 하늘로 세상이 자기 품안으로 들어온다는 후배의 자랑질에 잔뜩 쌤통이 난 시점이었다. 앞뒤 물불 안가리고 그 차를 선점하겠다는 생각이 먼저 났다.

덜컥 받아왔다. 돈을 얼마 주겠다는 약조도 하지 않고 언제 주겠다는 기약도 없이...

 

사년전인가? 2008년 12월의 일이다.

세계여행을 준비하면서 우리가 해야할 일은 산더미 같았다.

지금 와서는 생각이 조금 달라졌지만 그 때는 세계여행을 떠난다는 게 현실의 모든 것과는 다 이별이고 다 단절인 줄 알았다.

집도 정리하고 차도 정리하고 그동안 날 따라다녔던 많은 물건들을 정리했다.

어찌나 피곤했던지 빨리 여행을 떠나서 어디 쳐박혀 한 며칠간은 아무것도 안하고 잠만 자고 싶었던 순간이었다. 

하여튼 그때 우리도 급하게 차를 처분해야 했다.

2005년 6월 구입 소렌토. 거의 출근길만 몰고 다녔고 단 한번의 사고도 없었던 차였다.

삼년 남짓 몰고 다닌 차가  내 눈에는 완전 쌘삐처럼 신차였으나 여행을 떠나는 마당에 더이상 쓸모없는 물건에 미련을 가질 필요는 없었다.

아주 친한 후배 딱 한 명한테 말했다. 차를 팔아야겠노라고. 바로 다음날 전화가 왔다. 자기가 산다고.

얼마라고 말을 하지 않았던 건 당연한 일이었다. 그냥 달라고 해도 줘도 될, 아주 아끼는 후배였다.

삼 년된 3500CC 소렌토. 1500을 받기로 했다.  한꺼번에 받으면 여행을 떠나는 우리가 힘드니 100만원씩 쪼개서 다달이 여행 경비로 부쳐달라고 했다.

덕분에 우리는 멀리 외국에서도 한 달 한 달 월급처럼 들어오는 돈을 현지 돈으로 바꿔서 편하게 살았다.

남은 우리 짐을 전세집의 한 방으로 다 털어놓고 다시 전세를 놓아 다달이 들어오는 70만원과 함께 차를 팔아서 들어오는 돈이 우리 여행의 경비였다.

비싸게 받았는지 싸게 받았는지 아무 감각도 없었고, 차를 팔아야 하는 딱 그 순간 바로 사겠다고 나선 후배가 고마웠고, 다달이 어김없이 우리 여행 경비를 보내줬던

후배에게는 지금도 감사한 마음이다.

그 뒤로 우리에게는 쭉 차가 없었다.

여행을 끝내고 돌아왔지만 딱히 차가 필요했던 것도 아니었고 많이 걸어다니는 여행을 하고 와서인지 한국에서도 걷는다는 게 그리 불편한 일도 아니었다.

 

그리고 다시 올해.

차가 없다는 사실에 불편함을 쬐금씩 느껴가는 그 순간 또 다른 후배가 차를 팔아야겠다고 나선거다.

덜컥 가져왔다. 역시나 얼마를 주겠다는 약속도 하지 않았다.  사실 우리 인생에 갑자기 끼어든 외제차였으니 외제차의 적정 가격을 알리도 없었다.

거래시장의 고시가격이나 적정가격은 원래부터 우리의 가격은 아니었고 우리가 지불할 수준만큼이 우리의 가격이 되어버렸다.

딱 1000만원을 줬다. 그게 우리가 낼 수 있는 가장 적절한, 완전한 가격이었다.

ㅋㅋㅋ 그런데 알고보니 뺏은거나 다름 없었다. 

고맙게도 후배는 그 이후 한번도 차에 대해 말을 하지 않았기 때문에 우리는 그의 감정을 알 리 없다. ㅋㅋㅋ

아~~ 딱 한 번 말했다.

 "형수! 내 애마는 잘 있어요?"

가격의 문제가 아니라 자신의 애마처럼 사랑하던 차를 떼어내고 난 후 후배가 느끼는 정신적인 외로움이나 그리움에 대해서는 짐작은 가능했다.

그러나 그건 우리가 해결할 수 있는 문제도 아니고 그저 눈감는다. ㅋㅋㅋㅋ

사년 전 하루도 빠짐없이 내 옆에 붙어 다니던 소렌토를 팔아치우던 그 때의 우리와 비슷한 감정일꺼라고 그저 믿고 있다.

'더이상 쓸모 없는 물건을 정리해야하는...'

 

사설이 길었다.

제일 처음으로 돌아가야겠다.

'오늘 아침. 나는 오랜만에 차를 몰았다. 내가 가장 좋아하는 채널, 아침시간의 FM 클래식 방송. 음악을 들었다. 아주 평화로웠다.'

차가 생기고 난 후 일주일에 한두번 다시 느끼는 행복이다.

음악이 흘렀다.

라디오 MC가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연주란다.

와우... 정말 오랜만에 들어보는 악단 이름,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무슨 필하모니니 혹은 오케스트라니 하는 정상적인 (?) 악단 이름과 다르게 참으로 생경한 이름,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

그런데 이 실내악단이 런던의 트라팔가 광장 바로 옆에 있는 St Martin in The Fields 교회에서 연주해서 따온 이름이라는 멘트를 붙인다.

 

아~~~ 트라팔가 광장.

 

여행을 떠난다는 건 때론 '추억의 축적'이다.

하나의 지명, 하나의 음악, 하나의 색깔, 하나의 냄새에도 추억을 가질 수 있고 그 순간만은 혼자서라도 축적된 추억의 한 조각을 꺼집어내며 웃음짓는다. 

트라팔가 광장은 내게도 여러 조각의 추억이다. 

 

제일 처음 런던을 찾았던 어느 추운 날.

National Gallery로 우리를 밀어넣으며 자신은 밖에서 기다리겠다고 덜썩 난간에 주저앉던 후배의 등 뒤로 바라다 보이던 트라팔가 광장.

그는 그 때 런던에서 어학연수중이었다. 우리끼리 가도 괜찮다고 굳이 마다했는데도 반드시 자기가 보호해주어야 한다며 하루종일 우리를 챙겨줬었지.

그리고 어느 더운 여름날. 동생네 식구들과 찾았던 트라팔가 광장. 분수 옆에 있는 사자상보다 높이 솟아 있는 넬슨 제독에 관한 무슨 이야기라도 해서

초등학교 중학교 역사 교과서의 한 장면과 연관을 시키려 노력하고 있는 동생과 내가 보였다.

비싼 돈 주고 유럽까지 여행 나와서 학교 공부와 관련된 뭔가라도 찾아 내는 것이 본전 뽑는 일이라는 얄퍅한 계산을 하고 있던 우리 둘. ㅋㅋ

그리고 세계여행 중의 어느 하루. 두고 온 한국에 마음이 쓰여 광장에서 홀로 춤을 추고 있는 흑인을 오랫동안 물끄러미 쳐다만 보고 있었던 기억.

마지막이 지난 3월 출장때였다. 바쁜  와중에 잠시 들렀던 광장. 그 때 광장을 불던 바람은 하나도 기억나지 않고 복잡한 내 머리 속만 떠오르는 참 맹숭맹숭한 기억...

트라팔가라는 한 지명에서 나는 10년도 넘는 시간 동안의 갖가지 장면이 오버랩되며 추억이라는 이름으로 떠올랐다.

아~~~ 트라팔가 광장. 트라팔가 광장의 한 교회, 그리고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나는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라는 아주 복잡한 이름의 실내악단이 트라팔가 광장의 한 교회에서 연주를 시작하였고,

그 이후로도 그 교회에서 활동을 쭉 했다는 사실을 알 리는 당연히 없고

트라팔가 광장 옆에 그런 교회가 있다는 사실은 더더군다나 모르는 일이다.

그러니 일요일에 그 교회를 가면 아주 멋진 실내악 연주를 들을 수 있다는 정보를 알 턱이 없다.

그저 그렇게 좋은 음악을 들려준다는 사실만 알고 있을 뿐, 이 악단이 영화 아마데우스나 잉글리시 페이션트의 사운드 트랙을 담당했다는 사실도 몰랐다.

눈을 뜨고 나니 한꺼번에 와락 밀려들고 한꺼번에 보인다.

 

런던 트라팔가 광장

 

광장 바로 옆의 세인트 마틴 인 더 필즈 교회.( St Martin in The Fields )

 

 

넬슨 제독 동상과 분수옆의 사자상.

그리고 그 옆으로 보이는  St Martin in The Fields.  

교회 입구에 서 있다는 목각 인형.

 

 

 

다시 한번 더 그 곳엘 가게 되는 기회가 생긴다면 이번엔 이 교회가 눈에 들어올까?

혹시 더 멋진 기회가 되어서 이들의 연주를 들어볼 수 있을까?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 연주자들.

절제와 균형, 영국 음악의 자존심이라는데...

 

 

마침 이번 일요일 서울 예술의 전당 콘서트 홀에서 Academy of St Martin in The Fields의 공연이 있단다.

피아니스트 손열음의 협연으로...

나의 런던을 떠올린 한 장의 포스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