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2 지금은 여행중 /7월 크로아티아

트로기르(Trogir)란 곳. 크로아티아의 어느 도시

프리 김앤리 2012. 6. 13. 17:50

<2012. 7월. 크로아티아 여행 준비 05>

 

선생을 할 때 여행이라는 건 내 삶의 에너지였다.

지난 방학때 다녀온 곳을 컴퓨터 바탕화면에 깔아놓고 참기 신공, 억누르기 신공이 필요한 순간이 오면

바탕 화면의 그 사진 너머에 숨겨져있는 나만 아는 여행의 장면을 떠올렸다.

도를 닦는 심정까지는 안되어도 적어도 신공의 일부는 발휘되어 나는 착한(?) 선생으로 돌아갈 수 있었다.

그리고 다음 학기가 되면 나의 바탕화면 사진은 바뀌었고 책의 행간에서 뭔가를 찾아내듯이 사진 너머의 어떤 순간을 혼자서 떠올릴 수 있는 에너지였다.

 

그러나 이제 선생이라는 걸 그만두고

어느 순간부터 내 삶의 에너지가 되었던 여행이 본업이 되어버렸다.

 

얼마전 대학교 3학년 제자한테서 카톡이 날아왔다.

 "선생님이 너무 부럽네요. 하고 싶은 일에 푹 빠져 계신 것 같아요. ㅋㅋㅋ"

나는 아직 그 아이에게 답변을 하지 못하였다.

 

그 아이는 내가 한 해 도서실과 동아리 도서부를 맡았을 때 도서부장이었다.

중학교에서 고등학교로 올라올 때 전교에서 두 손가락 안에 드는 성적으로 들어왔다는 소문을 익히 들은 애였다.

성적이 인생의 전부는 아니었지만 선생님들은 그 아이가 좋은 성적으로 입학하였다는 사실을 강조했고

학교에 들어오자 마자 도서분가 뭔가에 정신이 팔려 원래의 실력만큼 발휘하지 못한다고 약간 걱정을 하고 있었다.

동아리라는 활동이 아이들에게 어떤 에너지를 전달해 주고 있는지,

아이들은 그것을 통해서 어떤 심리적 보상을 받고 있는지는 그다지 중요하지 않은 것 처럼 말했다.

하여튼 나는 그 해, 2학년이 된 그 아이가 부장으로 있던 도서부의 담당교사였고, 그건 내게 복이었다.

그 아이는 자기의 모든 열정을 다 바쳐 도서부 활동을 했고, 공부 또한 그에 못지 않게 아주 열심히 하였다.

까칠한 후배들을 잘 이끌었고 선배들도 그 아이를 참 아꼈다.

우리 둘은 쿵짝이 잘 맞아 이것 저것을 시도했다.

단 한명의 학생에게도 관심을 못 받던 도서관의 책장 한쪽의 아주 오래된 교과서들을 다 정리해버렸다.

곰팡이가 피어 도서관 전체에 퀴퀴한 냄새를 만들던 그 교과서들을  싹 다 치워버리는 일은 아주 심각한 육체노동이 필요했었는데

그 아이는 같은 학년의 도서부 친구들이나 1학년 후배들까지 잘 다독여 도서실 꾸미기에 나섰다.

그리고는 학생들이 진짜 잘 볼 수 있는 있는 책, 읽었으면 하는 책들을 도서관 분류법과는 또 다르게 분류하여 도서실의 전면으로 배치했다.

새로이 만들어진 책꽂이에는 아이들이 꽃도 갖다 놓았고 앞에 그림도 붙였다.

내가 일해야 하는 일터, 그리고 그 아이들이 하루에도 몇번씩을 드나드는 자신들의 도서실에 생기를 불어 넣었다.

기존에 나오고 있던 여러 면 짜리의 독서신문 말고도 다른 친구들이 언제든지 볼 수 있는 한 페이지짜리 독서신문도 만들고,

(이름이 책가방이었다. 이 때의 방자는 room 이라는 뜻의 房 자였다. '책이 가득한 방'...이런 이름을 생각해 낸 아이들이 얼마나 예뻤던지...)

청소년 권장 도서를 읽고 이웃학교 도서부까지 초청하여 우리 도서부의 주관으로 작가 초청간담회도 열고,

방학때는 독서기행도 떠나고...

하여튼 그 아이를 비롯하여 우리 도서부원들은 그 해 쿵짝쿵짝 참 재미 있었다.

한 해 내내 이런 아이들을 만난 게 내 복이라고 자랑하고 다녔다.

(유독 그 해만 그런 것은 아니다. 괜히 자랑질인 것 같아 고백한다. 원래 우리학교 도서부는 활동을 잘 하기로 유명한 부서였다.)

 

하여튼 그 아이는 3학년이 되어서 학교의 전통대로 동아리 활동은 거의 정리를 하고 공부에만 전념하였으며 좋은 성적으로 국립대학에 입학했다.

도서부의 활동이 공부를 해야 할 시간을 얼마만큼 빼앗았는지는 나는 정확하게 모른다. 

그러나 나는 도서실을 들어서면서 해맑게 웃던 그 아이의 웃음을 선명하게 기억하고 있으며 그의 열정과 반짝 반짝 빛나던 그 순간을 찬양한다.

 

나에게는 김부장으로 통하는 그 아이.

선생님이 부럽다는 카톡, 하고 싶은 일에 푹 빠져 사는 것 같다는 문자 메세지를 보냈지만 나는  금방 답을 못했다.

 

과연 나는 지금 하고 싶은 일에 푹 빠져 있는 것이 맞은가?

반짝 반짝 빛나는 그 아이에게서 그런 말을 들을 자격이 있는가?

나는 여행을 생각하면서 그렇게 열정을 다 바치고 있는가?

이제 나의 여행이 아니라 다른 사람의 여행을 기획하면서 과연 그들을 행복하게 하고 있는가???

...

...

 

올 여름 나는 크로아티아에 갈 예정이다.

아직은 낯설기는 하지만 외국인들에게는 이미 환상의 여행지로 소문이 나 있는 곳.

얼마전 부터 우리나라 사람들의 관심이 쏠리기 시작하는 여행지, 크로아티아.

 

익히 유명한 두브로브니크나 플리트비체 호수는 당연히 가겠지만

거기다 로마 황제의 도시, 스플릿과 수도 쟈그레브를 포함시키고

그것도 모자라 오래된 다리가 있는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르도 일정상 넣어놓고 ...

사실 매뉴얼에 나와 있는대로 호텔 예약하고 버스 빌리고 하면 되겠지만  쉽게 이루어지는 작업에 그리  만족스럽지 않다.

 

내 삶의 에너지가 되는 여행, 역시 다른 사람에게도 에너지가 되는 여행이 되려면...

반짝 반짝 빛나는 젊은 아이가 내 일하는 모습을 부럽다고 말하는 것에 부끄럽지 않으려면...

정해져 있는 코스, 정해져 있는 여행 패턴 이외에 이것 저것을 뒤적거린다.

그래, 플리트비체에 가서는 호텔보다는 현지인들이 직접 운영하는 민박엘 가는 게 낫겠다.

2009년에 내가 간 플리트비체에서 느낀 행복을 알려주고 싶어서다. 

크로아티아 내전 이후에 대부분 새롭게 지었다는 플리트비체 호수 주변의 민박집에서 내가 받았던 행복함은 참 컸다.

아주 멋진 5성급의 호텔보다도 나는 크로아티아 사람들이 살고 있는 모습을 보았고

주인 아줌마가 타주던 아주 짙은 향기의 터키식 커피를 잊지 못한다.

마음같아서는 보스니아의 사라예보까지 가고 싶지만 그건 시간상 도저히 불가능한 일이고

억지로라도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모스타를  넣어서라도 이슬람의 분위기를 느껴보고 싶었다.

인터넷을 헤집어가며 오래된 다리와 가까운 거리에 있는 숙박시설을 찾아냈다.

완전 돌집, 그 동네 사는 사람의 분위기가 물씬 풍기는, 그 사람들 사는 걸 그대로 볼 수 있는...

 

이곳 저곳 기웃기웃.

 

그러다 발견한 곳이 크로아티아의 트로기르(Trogir)란 도시다.

 

스플릿 바로 옆에 있는 도시다.

버스로는 30분 정도 걸린다나?

도시 전체가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으로 등재된 도시다.

우리 나라 사람들도 개인으로 여행하는 사람은 간혹 가기도 하는 모양이다.

트로기르 섬이라고는 하지만 다리로 연결되어 있는 곳, 도시 남쪽의 작은 섬에 고스란히 구시가지가 형성된 곳.

사진을 보니 대충 감이 온다.

그럼 일정을 바꿔서 여기 하루 잘까?

 

이 도시의 지도다.

유네스코 문화유산이라는 도장이 쾅 찍혀있다.

아무나 받는 도장이 아니니 분명 뭔가가 있을거다.

안그래도 같이 떠나는 배쌤이 어디선가 봤다면서

크로아티아의 어느 도시 사진에

바다를 모래사변으로 만나는 것이 아니라 반짝이는 대리석 계단으로 만나고 있더라고 전했다.

그 계단에 사람들이 앉아서 바로 바다로 발장구를 치고 있더라는...

그 모습이 스플릿일 수도 있고, 아니면 두브로브니크 일 수도 있다만... 어쩌면 트로기르일 수도 있겠다.
여행을 떠나기 전 우리의 상상은 아무래도 좋고, 상상의 시간이 길어질 수록 여행에 대한 기대감은 클 것이니...

 

위의 실물 사진과 지도를 비교하니 감이 더 온다.

'아~~~ 저렇게 생겼구나...'

도시의 저 부분에 시계탑 광장이 있을 터이다.

대리석 광장에는 밖으로 만들어진 까페들이 있겠지?

햇살을 받아 눈부시겠지?

 

지도 상에 나무가 야자수 가로수가 있는 길이구나...

그 옆으로 푸른 바다가 있구나...

그리고 빨간 지붕. 교회 첨탑...

또 한쪽으로는 요새까지...

 

물론 아직까지도 정해져 있지는 않다.

과연 토르기르라는 곳엘 가야 할지.

나조차도 한번 가보지 못한 곳에서, 낯선 곳을 처음 만나는 버벅댐을 굳이 들킬 필요가 있는 건지...

그러나 그것 또한 여행이 아닐런지.

진실로 나도 즐겁고 다른 사람도 행복한 여행이 아닐런지...

아직은 모른다. 하여튼 마음 한쪽으로 담아두기는 한다.

그런데 모두가 다 행복해 하는 여행이라는 건 어떤 걸까?

유명한 도시의 멋진 장면? 엽서나 사진에 단골로 등장하는 뷰포인트에 내가 서는 것???

 

어쩌면 나는 트로기르라는 곳에서 이런 걸 기대할 지도 모른다.

트로기르의 야채 시장이라는 이런 곳, 여기서 만날 수 있는 그 동네 사람들,

마치 현지인처럼 키득거리며 저기 있는 체리를 사먹고 오렌지를 사먹는 우리들...

 

그리고 어느 모퉁이 길.

소담한 돌길, 뷰포인트에서는 볼 수 없지만

어느 순간 저 문을 열고 트로기르 할머니 아저씨 아줌마들이 툭 튀어나와 우리에게 보내 줄 미소와 같은...

그런 장면을 어쩌면 더 기대하고 있는지도 모른다.

유명하지는 않지만 여행을 하고 나면 가슴속에 오랫동안 남아있는 그런 한 순간...

 

그게 진짜 여행일지도 모른다.

내가 행복해지는 여행인지 모른다.

우리 모두가 행복한 여행인지도 모른다.

지금도 열심히 살아가고 있는 그 아이에게 보내는 내 인생의 선물일지도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