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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옮김 - 책 소개> 벨파스트 도심 가르는 장벽 간절하게 바라는 세계 평화

프리 김앤리 2012. 7. 16. 11:39

부산일보에서 퍼왔습니다.

부산일보 7월 14일자 문화면 http://news20.busan.com/news/newsController.jsp?newsId=20120714000022

 

 

[한 장면] 지구와 연애하는 법 / 김승란·이호철

 

 

책을 집다가 망설였다.

하루가 멀다고 쏟아지는 여행서적인데다 안 그래도 정치권 인사들의 책도 우후죽순으로 나오기 때문이다.

망설임은 오래가지 않았다.

글은 세상을 보는 낮은 목소리로 가득했고, 사진은 세상의 속살을 진솔하게 드러냈기 때문이다.

 

'지구와 연애하는 법'은 노무현 대통령 시절 민정수석을 지냈던 이호철과 그의 부인이 세상 곳곳을 돌아다닌 기록이다.

여행 떠난 지 몇 달 만에 갑작스러운 조카와 노무현 대통령의 죽음 때문에 급거 귀국해야 했지만, 수습하고 난 뒤엔 또다시 배낭을 메고 떠났다.

 

 

벨파스트 도심 가르는 장벽
간절하게 바라는 세계 평화

 

여행은 편견과 선입견을 깨는 소중한 경험의 연속이다.

북아일랜드의 벨파스트에서도 그랬다.

벨파스트 도심 한가운데를 가로지르는 높은 장벽(사진).

영국계와 아일랜드계가 사는 지역으로 나눠 거리 중간에 친 장벽은 베를린, 예루살렘과 한반도의 장벽만큼이나 견고하다.

이호철은 그전까지 핍박받는 분리독립주의자와 제국주의 영국이란 이분법으로만 이 장벽을 봤다.

하지만 장벽을 가득 메운 벽화에선 둘 다 비극의 희생자임을 확인한다.

다큐멘터리 '두 개의 문'에서 철거민이나 경찰 둘 다 희생자였던 것처럼 말이다.

단절의 뉘앙스가 강하게 풍기는 장벽에서 이호철은 평화의 염원을 읽는다.

장벽엔 북아일랜드의 평화를 기원하는 벽화뿐만 아니라 팔레스타인 해방을 촉구하는 그림,

쿠바 장벽을 풀라며 오바마 대통령에게 전하는 메시지, 착취와 고문으로부터 해방을 바라는 염원까지 빼곡했다.

견고한 장벽은 역설적으로 세계 평화를 배우는 역사의 장이었다.

 

폴란드 남부 자코파네에서 우산도 없이 비를 맞는 사람들을 보면서 사회적 지위의 상징으로 둔갑한 옷에 대한 관념을 고쳐먹었고,

그리스 북부 메테오라의 바위산 꼭대기에 아슬아슬하게 걸려 있는 수도원을 보면서는 경건하고 소박하게 살아가자고 마음을 다잡았다.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선 거리의 연주자가 연주만 하고 살 수 있도록 돈을 받아야 하고

그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사람은 반드시 돈을 내야 한다는 소신도 재확인한다.

 

그저 아름다운 풍경에 감탄하기보다 자신을 돌아보는 것이 여행이란 것을 새삼 깨닫는다.

그래서 얻은 결론이 이것이다.

'낯설고 새로운 것을 만나는 우리의 일상은 여전히 여행 같다. 반드시 떠나야만 만나는 여행이 아니라 지금의 이 삶이 여행이다.'

 

김승란·이호철 글·사진/예린원/408쪽/1만 5천800원. 이상헌 기자 ttong@