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4 지금은 여행중 /6월 크로아티아

마르코 폴로와의 해후

프리 김앤리 2014. 5. 28. 16:13

< 2014 6월 투어야여행사 단체배낭 크로아티아 준비 27 >

 

1. 첫번째 만남

   중학교의 어느 언저리일게다.

   '마르코폴로 - 동방견문록' 

   사회 시험으로 자주 출제되는 주관식 문제에 셋트처럼 외우고 있는 정답.

   마르코 폴로가 사람인지 어쩐지, 동방견문록이라는 게 무엇에 관해서 써놓은 것인지 정확하게 알 필요도 없고 관심을 가져야 할 이유도 없었다.

   그냥 이름에서 주어지는 느낌 - 서양사람 누구가 동양을 왔다가서 뭔가를 썼나 보다 - 정도 뿐이었다.

   그저 '마르코 폴로 - 동방견문록' '동방견문록- 마르코폴로'.

   이렇게 외우고만 있으면 됐다.

 

 2. 두번째 만남

   정말 오랫동안 잊고 있었다.

   하기야 종종 TV의 퀴즈프로그램 등에서 등장하기도 했지만 그건 만남이라기 보다는 뇌의 어느 한구석에 쳐박혀 있다가

   정보가 입력되면 무의식적으로 툭 튀어나오는 구구단같은 거였다. 마르코폴로- 동방견문록.

   바쁜 내 일상에서 그 사람과 책이 주요한 화제로 등장한 적은 없었다.

   그러다 수십년만에 갑자기 벼락처럼 마르코폴로가 내게 다가왔다.

 

 

 

  중국 항주를 여행할 때다.

  안내책자에 "하늘에는 극락이 있고 땅 위에는 소주와 항주가 있다" 며

  항주의 관리로 있던 소동파는 술 한잔을 걸치고 서호의 멋을 시로 읊었다고 했고

  13세기 무렵, 이탈리아의 여행가 마르코폴로는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라고 항주를 노래했다고 했다.

  마르코폴로!!! 이탈리아의 여행가!!!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

  그 때까지도 돌아다녀본 세계가 많이 없어서 마르코폴로한테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도시로 칭송을 받았다는

  항주는 내게도 가장 아름다운 도시가 되어버렸다.

 

 

3. 세번째 만남

   세계여행을 하겠다며 모든 것 작파하고 떠났던 때다.

   우리 여행의 제일 처음 도시는 베이징이었고 우리가 찾아간 곳은 1937년 중일 전쟁의 시발지였던 루꺼우차우(노구교)였다.

   다른 여행자들이 거의 찾지 않는 루꺼우차우를 찾은 이유는 77사변이라 불리우는 역사적 사건의 무대, 항일투재의 주무대였기 때문이었다.

   나는 그 곳에서 마르코폴로를 만났다.

   마르코폴로는 동방견문록에서 '세상에서 가장 아름다운 다리'로 루꺼우차우를 극찬했다고 했고 

   중국 사람들은 그래서 이 다리를 '마르코폴로 다리'라고 부르고 있었다.

 

 

  하나도 같은 모양이 없는 사자상들이 루꺼우차우위에 앉아있었다.

  난간에 앉아있는 사자들은 각각 한마리가 아니라 어미 사자의 다리 옆에 혹은 등에 심지어 입 속, 갈기 안에 따로 수많은 새끼 사자들을

  품고 있어서 루꺼우차우에 있는 사자들이 도대체 몇마리인지 다 셀 수 조차 없었다.

  그래서 중국에서는 '셀 수 없이 많다'라는 뜻을 '루꺼우차우의 사자처럼 많다' 라고 한다고 했다.


 

 

 

우리는 그 곳의 역사전시관에서 마르코폴로의 책을 발견했다.

마르코폴로의 동방견문록은 후세의 사람들에 의해 다양한 이름으로 출판되어 있었다. 

 

 

처음으로 마르코폴로가 진하게 다가왔다.

베네치아의 상인, 마르코폴로. 

서방의 저 먼나라에서 동방까지 떠나온 사람.

그의 여정은 새로운 길에 대한 개척이었고  문화의 교류였고

동방을 왔다간 그의 저술은 13세기의 사람들에게는 낯선 곳에 대한 눈트임이었다.

설레임과 두려움으로 세계여행을 갓 시작한 우리들에게 마르코폴로는 우리들을 다독여주는 고마운 선배였다.

 

4. 네번째 만남

   다큐멘터리 누들로드를 봤다. 세계여행 중에 우리가 받아간 수많은 다큐멘터리 중의 하나였다.

   국수라는 문화가 어디에서 시작했으며 어떻게 전달되었는지

   그리고 동서양을 넘나드는 '면 문화'를 그려낸 수작이다.

   거기에 마르코폴로가 등장했다.

   중국의 어느 민가를 방문한 마르코폴로가 국수처럼 면발을 길게 늘어뜨린 밀가루 음식을 대접받는다.

   밀 농사야 인류의 역사가 시작된 7천년경전부터 있었으니 마르코폴로가 살고 있던 고향에서도 밀로 만든 음식은 많이 있었을 것이다.

   그러나 난과 같은 주로 빵종류로 만들어 먹던 고향동네와 달리 국수가락처럼 길게 늘여놓은 것을 맛보고는

   이탈리아의 파스타는 중국에서 유래된 것이 아닐까 하는 추측!!!

   

 

 스파게티의 기원이나 국수 같은 길다란 면발의 전달 경로의 진위는 잘 모르겠다.

 (실제로는 마르코폴로가 동방으로 여행하기 이전부터 이탈리아에는 파스타가 이미 존재하고 있었다.)

 그러나 누들로드에서 나타난 마르코폴로는 문명의 전달자였고

 한 곳에 가만 웅크려 살던 그 시대에 세상 밖의 이야기를 들려준 사람이었다.

 그가 여행했던 시절은 얼마나 어려웠을까?

 그는 가방안에 무엇을 넣고 다녔을까?

 화폐는 어떻게 교환하였을까?

 한번도 보지 못했던 피부 색깔 다르고 얼굴 모양 달랐던 사람들과 어떻게 만났을까?

 낯선 그들의 삶을 어떻게 이해했을까???

 나는 수백년 전의 그의 여정을 따라가고 있었고 그와 함께 여행하고 있었다.

 

5. 다섯번째... 여섯번째... 일곱번째...

  베네치아로 들어서면 이탈리아의 상인 마르코폴로가 있었고

  이스탄불로 가도 여행자 마르코폴로가 있었다.

  그리고 어느 순간부터는

  '마르코폴로 보다 우리가 더 많은 곳을 여행하고 있다'는 건방도 떨고 있었다.

 

6. 마르코폴로의 고향, 크로아티아의 코르출라 섬

  그런데 우리가 알고 있는 것과 다르게 마르코폴로가 태어난 곳은 이탈리아 베네치아가 아니라

  크로아티아의 코르출라 섬이란다.

  두브로브니크와 스플릿 사이에 있는 작은 섬이다.

  하기야 아드리아해를 두고 양쪽에 베네치아와 스플릿이 있는 걸로 치자면,

  12~13세기에는 베네치아 왕국이 해상무역의 왕이었으니

  태어나기는 어디서 태어났다고 하더라도 마르코폴로의 주 활동 무대는 베네치아임에는 틀림없으리라.

  그러나  마르코폴로의 출생지에 대해서

  선점을 한 크로아티아 정부가 코르출라 섬에 유적지로 마르코폴로의 집까지 만들어두고 여행자들을 불러들이고 있으니

  일단은 이탈리아 정부에 대해 크로아티아 정부의 판정승이다.

 

 

 코르출라 섬에 있는 마르코폴로의 집

 

 

 마르코폴로의 집이 있는 크로아티아의 코르출라 섬.

 아주 작은 섬이다.

 그런데 나는 왜 이 사진을 보면서 제주도 출신 후배가 말했던 바다가 자꾸 떠오르지?

 "선배!! 다른 사람들은 바다를 보면 가슴이 탁 트이는 것 같고 아주 시원해 진다면서요...

  그런데 나는요, 우리 제주도 출신들은요... 바다만 보면 가슴이 늘 답답했어요.

  저 바다가 우리를 가로막고 있다고 생각이 들었어요.

  우리 집 앞에 놓인 바다가 장벽이라고 생각했고 꼭 바다를 넘어가야 한다고 생각했어요.

  언젠가는 저 바다 너머에 있는 넓은 세상으로 나갈꺼라고 늘 꿈꾸며 살았어요..."

 

마르코폴로도 그랬을까?

어린 시절을 섬에서 보낸 마르코폴로는 저 바다 너머에 있는 더 넓은 세상으로 나가는 꿈을 늘 꾸었을까?

바다를 넘어 장벽을 넘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