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3 지금은 여행중/1월 이집트

기차는 오지 않았다

프리 김앤리 2013. 2. 13. 15:30

<2013년 1월 투어야여행사 이집트 단체배낭여행 7> 2013년 1월 16일

 

오후 4시 30분 : 올드 카이로에서 숙소로 돌아가는 지하철을 탔다.

                     도키역까지는 겨우 몇 정류소.

                     계산상으로는 시간이 충분히 남아있지만 이 곳은 카이로였고, 우리가 이용해야 할 교통수단은 지하철이다.

                     사람이 타는 그 순간에 사람을 매달고서라도 달릴 듯 매정하게 닫히는 카이로의 지하철,

                     떠밀려서라도 승강장 선로 위로 떨어질 것 같은 공포의 지하철.

                     여자는 여자끼리 남자는 남자끼리 모두들 전투태세를 취하듯 지하철 탑승에 돌입했다.

 

오후 5시 20분 : 무사히 호텔로 돌아왔다. 아침에 딱 한번 들어갔던 도키역 지하철인데 사람들은 출구도 잘 찾는다.

                     어리버리한 대장 덕분에 사람들 스스로가 아주 똑똑해져있다.

                     호텔까지 돌아가는 멀지 않은 길, 복잡하고 정신이 없지만 사람들은 머뭇거리지도 않고 이 골목 저 골목으로 잘도 찾아간다.

 

오후 6시        : 원래는 기자역까지 지하철을 타기로 했었다.

                     어제 칸엘칼릴리 시장에서 돌아올 때 겪은 엄청난 교통체증 때문에 불안했기 때문이다.

                     기차는 저녁 8시 출발인데다 기자역은 4정거장만 가면 되니 좀 정신없더라도 지하철로 안전하게 가자였다.

                     그런데 사람들이 동요한다.

                     무사히 호텔까지 돌아오기는 했지만 방금도 카이로의 지하철은 우리의 혼을 쏙 빼놓았기 때문이다.

                     지하철까지의 도로도 울퉁불퉁했는데 열명이 넘는 이 인원 전부가 가방을 질질 끌고 가서 과연 그 비좁은 지하철을 무사히 탈 수 있을까?

                     좀 빨리 움직여서 대형버스든 택시든 우리끼리 잡아타고 가는 게 좋지 않을까?

                     호텔의 스텝도 그냥 택시를 타라는 눈치다.

                     OK!!!! 짧지 않은 흥정을 마치고 세 대의 택시로 나눠탔다.

 

오후 6시 30분 : 생각보다 차가 밀리지 않는다.

                     8시 출발인데 한시간 반이나 먼저 도착했다.

                     이집트 기차가 제 시간에 나타날 것이라는 기대는 접으라는 이야기도 있지만 그래도 늦는 것 보다는 낫다.

                     단지 문제가 있다면 대합실이 없다는 것이고 사막의 나라 이집트도 겨울 밤이면 몹시 추워진다는 사실이다.

                     그래도 뭐, 저녁 8시만 되면 유럽 야간열차 보다 더 좋다는 침대열차를 탈 건데 뭐....

 

오후 7시       : 비록 야외이기는 하지만 철로의 옆의 한쪽 구석에 다들 자리를 잡았다.

                    아직 우리는 깔깔댈 힘이 넘쳐난다.

                    누구는 어제 오늘 찍어놓은 사진을 보고, 또 누구는 책을 읽고 또 누구는 재잘거린다.

 

오후 7시 30분 : 저 이탈리아 아저씨, 베트남 아줌마도 우리랑 같이 이미 한 시간 전 쯤 도착한 커플이다.

                     카이로에서 아스완까지 비행기를 타도 되는데 더 멋질 것 같아 좀 더 비싼(?) 침대열차를 끊었다고..

                     우리도 이제 슬슬 움직여야 할 것 같다.

                     우리는 5번칸. 어찌 될지 모르니 미리 5번 앞으로 가 있어야겠다.

 

오후 8시        : 역시 기차는 안온다.

                     이집트 기차가 그렇지 뭐.

                     참 신기한 건 기차역에 있는 사람들 아무도 동요하지 않는다는 거다.

                     선로 옆에 몇개 없는 자리, 사람들은 꿈쩍도 하지 않고 담배만 피워댄다.

                     무자비하게 피워대는 독한 담배 앞에서는 야외라도 아무 소용이 없다. 숨쉬기가 힘들다.

 

오후 9시       : 역시 기차는 안온다.

                     역 승무원도 전혀 보이지 않는다.

                     선로밖으로 튕겨 나갈 만큼 사람들은 많이 모여있지만 도대체 무슨 일인지 알 수가 없다.

                     어디 영어 되는 사람 없는지,혹시 승무원이라도 눈에 띌까봐 여기저기를 기웃거리지만 역사무실에서는 아무런 멘트도 없다.

                     웅성거리는 소리에 귀를 기울여보니 열차 사고가 났단다.

                     신병을 태운 열차가 사고가 났다느니, 열차가 탈선하여 택시와 잇달아 부딪혔다느니 어수선하고 불안한 소리만 들려온다.

                     우리를 태운 열차가 아니어서 얼마나 다행이냐고 스스로들 위로한다.

 

오후 9시 30분 : 어제 피라미드 투어를 해 준 모하메드에게 전화를 걸었다.

                      열차 사고가 났지만 늦더라도 기차는 떠난단다. 걱정하지 말란다.

                      현지인이 그러니까 믿을 수 밖에...

                      기차역을 꽉 채운 사람들은 여전히 별 움직임이 없다.

                      더러 보이는 외국인 여행자들만 이리지리 기웃거리고 있다. 무슨 새로운 소식이 없는지...

                      도저히 야외라고는 믿기지 않을 정도로 여전히 담배연기가 이 공간을 가득채우고 있다.

                      몇 안되는 자리도 한번 앉은 사람은 꼼짝 않고 있다.

                      우리 팀원들은 앉지도 서지도 못한채로 추위로 덜덜 떠는 중이다.

                      한명 한명 가방을 열어 옷을 챙겨 입고 있다.

 

오후 10시     : 마찬가지다.

                    기차가 온다는 건지 안온다는 건지...

                    승무원이던 역 사무실이든 어떠한 공식 멘트도 없다. 

                    그런데 더 황당한 건, 어느 누구도 기차역을 떠나지 않는다는 사실이다.

                    이집트에서 기차가 두 시간쯤 늦는 건 아무 일도 아닌 모양이다.

                    어쩔수 없다. 우리도 이집션처럼 할 수 밖에...

 

오후 10시 30분: 너무 춥다.

                      오리털 파카도 꺼내입고, 스카프도 둘러쓰고 다들 움직임을 최소화한다.

                      언제까지 기다려야 하는건지 기약도 없다.

                      이집트 사람들이 아무렇지도 않게 선로 위를 걸어다니는 것 보면, 아직도 기차가 온다는 소식은 없는갑다.       

                      다시 모하메드랑 연락한다.

                      그의 대답은 "기차가 떠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는 없다."

                      헉!!! 뭔가 불길하다.

                      떠나지 않는다는 이야기도 없지만 떠난다는 이야기도 없는 것 아닌가?

                      우리 몸은 점점 얼어간다. 사람들도 지쳐간다.

                      뚱교수님과 멋진 오빠 석은 오만가지 이야기를 다 해대며 우리를 웃기고 있지만 우리는 점점 지쳐간다.

                      혹시 사람들이 아프면 어떡하지?

                      언제라도 기차가 온다는 보장만 있으면 기다리겠다만... 아무런 기약도 없는 이 기다림을 언제까지 해야 하나.

                      우리가 기차역을 들어선 지 벌써 4시간이 넘었다.                    

 

                   

오후 11시       : 우리들은 점점 얼어가고 있는데 참 대단하게도 이집션들은 꼼짝을 하지 않는다.

                       우리나라 같으면 난리가 났을텐데... 팔팔한 청년들 일부만 역 사무실 입구를 가득 메우고 있지만 나머지 사람들은 그냥 가만 앉아있는다.

                       사무실 한쪽에 걸린 TV를 보니 기차선로를 점거하고 시위를 하는 장면이 보인다.

                       한무리의 영국 관광객들에게 물어보니 (그 사람은 이집션 가이드가 있었다)

                       우리를 싣고 가야할 기차가 람세스 역을 출발해야 하는데, 보시다시피 사람들의 시위로 꼼짝하지 못하고 있단다.

                       그래서 어떻게 할 계획이냐고 물었는데, 기다려야지 별 수 있냔다.

                       이집션들은 그냥 아무 생각없이, 늘상 일어나는 일상사 인냥 받아들이고서 기다리고 있고

                       여행자들은 별 수가 없어서 기다리고 있다.

                       지금 기차역 안에서 뜨거운 차를 팔러 다니는 저 총각들만 살판났다.

                       완전 때 만났다. 뜨거운 차가 불티나게 팔린다.

 

오후 11시 30분  : 쩡이 소주라도 한 잔 하잔다.

                       " 너, 소주 있었어?"

                       한 병 밖에 안남았단다.

                       언 손을 호호 불며 쩡이 소주를 꺼내는데 배쌤이 안주라며 멸치볶음을 꺼낸다.

                       "야홋!!! 배쌤 만세 만세 만만세!!!"

                       잔을 꺼내들 새도 없이 돌아가며 소주를 병째 나발 분다.

                       알코올 기운이 목젖을 타고 흘러내린다.

                       후끈거리며 달아오른다.

                       난생 처음 소주를 마셔본다는 고 3 은이의 병나발 소주 체험기가 압권이다.

                       "단데요!!!"

                       뭣이라고라???? 소주가 달다고라????

                       배쌤이 다시 가방을 뒤적이더니 컵라면도 있단다.

                       우왕!!! 컵라면까지!!!!

                       뜨거운 물은 사야 한다.

                       컵라면의 고작 그 물을 채우는데 5파운드씩이나 받는다.

                       카이로 시내 중심가에 있는 유명한 집의 쿠샤리 한 그릇도 4.5파운드 밖에 안하는데...

                       더런 놈들. 기차가 안오는 걸 이용해서 뜨거운 물에 돈을 왕창 남기다니...

                       그래도 뜨겁고 매운 국물이 들어가니 힘이 불끈불끈 솟는다.

                       이쌤도 컵라면이 있단다.  비싸거나 말거나 또 5파운드씩을 내밀고 컵라면 몇 그릇을 후다닥 비운다.

                       아!!! 살 것 같다.

                       정신이 번쩍 든다.

                       가야겠다. 포기해야겠다. 맘을 바꿔먹어야겠다.

                       지금부터 얼마후에 기차가 오더라도 어차피 내일 우리 일정은 다 이그러질수 밖에 없다.

                       누구라도 아파버리면 아무 소용이 없다.

                       포기하자, 오늘 우리가 잘 수 있는 방을 구하자. 그리고 내일 일은 내일 걱정하자.

 

 자정            : 모하메드에게 다시 전화를 걸었다.

                     카이로 민박집, 얄라비나에도 전화를 걸었다.

                     지금 우리가 간절히 원하는 것은 단 하나, 우리 몸을 뉘일 작은 공간이다.

                     꽁꽁 얼어붙은 우리 몸을 녹일 수 있는 공간, 드러누울 수 있는 침대만 있으면 된다.

                     소설 제 8요일의 그 장면 같다.

                     뜨거운 물을 사러 가서 만난 중년의 이집션에게 도움을 요청했지만 기자역 근처에는 호텔이 없단다.

                     사실, 이때 역 승무원을 처음 만났다. 어디에서 꽁꽁 숨어 있었는지, 아니면 우리같은 여행자들에게는 보이지 않고 이집션들 눈에만 보였던 건지.

                     역 승무원도 난감한 표정을 짓는다. 기차가 올터이니 기다리라는 말도 하지 않고 미안하다는 말도 하지 않는다.

                     오히려 중년의 이집션만 나한테 미안해 하고, 모하메드에게 전화를 걸어주고 서로 이집트 말로 주고 받은 뒤 통역까지 자청한다.

                     이집트 아저씨의 전화로 걸고, 그 전화로 다시 모하메드에게서 전화 받기를 여러번, 방이 있단다. 

                     얼만지, 좋은지, 여기서 먼지 어쩐지 물어볼 상황이 아니다.

                     현재의 상태는 우리가 완전 '을'이다. 이 밤에 방 5개를 한꺼번에 구해진 것만 해도 고맙다.

                         

새벽 0시 30분 : "갑시다!"

                      진짜 기차가 오는지 안오는지 정말 궁금하다는 총각둘을 마음을 돌려 앞장 세운 뒤 얼어있는 사람들을 일으켰다.

                      "갑시다. 여기 가까운 곳에는 호텔이 없구요, 택시를 타야 합니다."

                      초저녁부터 그렇게 소리를 내며 달리던 지상철이 끊긴지는 한참 지났고 우리는 이 어둠을 뚫고 어딘가에 있는 우리들의 잠자리를 찾아가야 한다.

                      남자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일행들이 있어서 얼마나 다행인지 모른다.

 

새벽 1시     ; 역 밖으로 나섰다.

                  영업 택시는 없고 자가용 영업 하는 사람들이 우루루 몰려든다.

                  헉!!! 미운 놈들. 우리는 이리 애가 타는데 즈거들은 이 기회를 이용해서 돈 벌려고 하는 나쁜 쉐끼들...

                  다행이 아까 만난 역 승무원이 따라 나와 "이 사람들은 모하메드 친구"라며 우리를 지켜주고 있다.

                  온 사방천지가 모하메드이겠지만 어제 만난 모하메드가 우리의 구세주임에 틀림없다.

                  이럴때 뭔가를 가장 잘 잊어버린다고, 모두들 자기 짐 잘 챙기라고,

                  자기 가방이 차 안에 분명이 실리는지 아니면 차 위로 제대로 실리는지 감시하라고 다독인다.

                  자가용 영업 하는 사람도 무섭게 생겼다. 깜깜한 밤이라서 더 그런가????

                  차 옆에 붙어 있는 X man 스티커로 농담을 건넨다.  

                  "야~~ X-man!!! 이거 한국에서 얼마나 유행하는 줄 아냐? 너 이 옆에 서봐라. 사진 한 장 찍자!!"

                  무서울 때 날리는 선제공격이다. 밤늦은 아파트 엘리베이터에서 낯선 누군가를 만나면 먼저 말을 걸듯이...

                  지 사진까지 내 카메라에 담아놨으니 다른 작당은 못하겠지.

                  남자 둘을 각각의 차로 나누고 한 대에는 내가 타고 밤길을 달린다.

 

새벽 1시 30분 ; 차가 골목으로 들어서는 것 같아 약간 두려움은 있었지만 세 대 다 무사히 호텔앞에 섰다.

                      괜한 의심이었다.  또 부끄럽다.

                      이 밤에 우리를 실어주는 것만 해도 어딘데...

                      휴!!! 드디어 호텔에 도착했다.

                      오늘 밤, 등 대고 잘 수 있겠다.

                      내일? 내일은 내일 일어나서 생각해야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