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년 이전 여행/2002 7월 (18일) 터키 싱가포르

이스탄불에서 만난 터키 할아버지

프리 김앤리 2009. 2. 1. 01:43

터키에서 바자르는 시장이다.

이스탄불에서는 이집션 바자르가 가장 크다.

마지막 날이라 터키 전통과자를 사기위해 이집션 바자르를 들렀다 나오는 길이었다.

그리고는 슬슬 걸어서 슐레마니아 사원으로 갈 예정이었다.

 

<블루모스크에서>

 

막 바자르를 나서는데 어떤 할아버지 ( 그의 이름은 Naim 이었다.)가 나를 붙잡으며 혹시 Korean이냐고 묻는다. 그렇다는 대답에 그렇게 반가워 할 수가 없다. 혹시 에페소에서 만난 오토바이 할아버지 같은 사람이 아닐까 일단은 경계해 보지만 Korean 이라는 말에 기뻐하는 모습이 거짓은 아닌 것 같다.

 

할아버지는 한국 딸이 있다며 그 한국 딸의 한국주소도 보여주고, 딸이 줬다는 한복 차림의 열쇠고리도 보여준다. 서울 강남에 사는지 지도에 동그라미까지 쳐놨다.

슐레마니아 사원을 간다니까, 이집션 바자르부터 비좁은 골목을 헤집으며 나를 데리고 간다. 마구 다니는 차를 피하며 팔짱까지 끼고 나를 보호하기 위해 이리저리 길을 만들어준다.

자기는 한국이 너무 좋고 터키가 요즘 한국과 많이 친해졌다며 어디에 사는지, 뭘 하는지 하나하나 물어본다.

 

팔짱이 심히 부담스럽긴 했지만 어떻게 잘 뺄 수가 없다.

‘그래, 어때, 할아버진데. 나를 보호해 주려고 이 많은 사람들 틈을 비집고 다니는데...’

그렇지만 여간 쑥스러운 게 아니다. 한국인이 이리도 많은 이스탄불에서 한국 사람들이 나를 보고 뭐라고

할까?

‘저 여자는 여기 와서 할아버지 한명을 꼬셔서 다닌다며 눈꼴사나워 하지 않을까?’

그런데 Naim 할아버지가 나를 보호하고자 하는 건 진심인 것 같다.

사실 할아버지는 나이가 너무 많이 들어 말하는 입술도 들썩거리고, 지도를 꺼내는 손은 떨리고 있다.

다만 다리는 많이 튼튼하신 것 같아 내 걸음 속도와 거의 비슷하거나 오히려 나를 앞선다.

  

이 골목, 저 골목을 돌아 슐레마니아 사원에 도착해서는 자기는 밖에서 기다리고 있을테니까 안에 들어가서 구경하고 오란다.

‘아니? 이 할아버지 무슨 심보가 있는거지?’

‘내가 밖으로 나오면 드디어 뭔가를 팔려고 내놓으실건가?’

 

사원을 구경하고 나오자 Naim 할아버지는 My daughter이라고 부르며 나에게 터키 부적인 푸른 눈 모양의 팔찌와 장식물을 손에 꼭 쥐어준다.

여행의 마지막날이라 한국 물건이 하나도 남지 않았다며 미안해 하자, 딸이니까 괜찮단다.

 

 

자기 젊었을 때 사진도 보여주며 다음번 이스탄불에 올 때는 자기 집에 머무르라며 명함까지 내민다.

그리고 dear, lovely, you, good, good luck 등의 한글 발음을 영어로 옮겨달란다.

여기까지 찾아오는 동안에도 “이리와” “가” 하는 한국말을 쓰면서 비좁은 골목을 뚫고 왔었는데...

연방 My daughter이라며 다음에도 꼭 다시 이스탄불에 와서 자기 집에 오란다.

 

오후에 같은 숙소를 쓰는 수진 수현 자매와 예니 사원 앞에서 만나기로 돼있어 가야한다니까,

다시 나를 붙들고 비좁은 시장골목을 내려간다.

이제는 내가 더 적극적으로 할아버지(아니, 터키의 아버지인가?) 팔짱을 끼고 전혀 거리낌 없이 내려간다.

 

절대 잃지 마란다. Your Family가 My Family라며 강남에 사는 자기 딸도 이번에 9월에 다시 이스탄불로 온다며 자기 Wife도 한국딸을 너무 좋아한다며 마치 꼬마처럼 순진한 웃음을 보내고 거의 펄쩍 뛰다시피 즐거워 한다.

한국인을 만났다는게 이렇게 즐겁단 말인지...

(사실 이때까지도 내 마음 한 구석에는 이 할아버지의 정체에 대해 조금은 의구심을 가지고는 있었다.)

 

예니 사원 앞.

"My daughter! Don't forget me. Your family is my family. If you will visit Istanbul again, you have to come my house. Don't forget, my daughter. Bye! Have nice a trip!!!!"

그리고는 활짝 웃으시며 하이파이브까지 짝짝하고 뒤돌아서신다.

 

아!!! 부끄러움.

터키인의 친절을 100% 믿지 못했던 나의 이 옹졸함...

 

 <슐레마니아 사원에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