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떠나기 전

겉과 속이 다른 말

프리 김앤리 2009. 2. 3. 00:58

이게 도대체 언제적 글인지??

우리학교 신문에 내가 썼던 글.....

 

겉과 속이 다른 말

 

## 장면 1

“ 지각은 절대 안 된다고 했제? 니 내하고 약속 했나, 안했나? 공책 앞 뒤로 열 장 빽빽하게 적어온나, <다시는 지각하지 않겠습니다>라고 말이다. 알겠나?”

그 지각생은 땀을 뻘뻘 흘리며 <다시는 지각하지 않겠습니다> < 다시는 지각하지 않겠습니다>....를 빽빽하게 적은 노트를 내밀면서 말한다. “ 다음에는 이거 안하고 차라리 오리걸음 걸을낀데예.”

 

## 장면 2 - 내 고등학교 때의 기억

점심 먹고 난 오후 시간이었던 것 같다. 절반은 자고 절반은 떠들고. 참다 못한 선생님이 버럭 소리를 질렀다. “ 느거 이렇게 수업하려면 다 나가! 나, 느거 같은 놈들 도저히 못 가르치겠다. 다 나가! ” 선생님은 진짜 화가 난 것 같았고 우리는 너무 무서워 슬금슬금 복도로 다 나와버렸다. 진짜 무서워서.

 

## 장면 3

“ 니~ 이 길로 집에 그냥 가삐라. 나는 은자 더 이상 니 담임 아니다. 나가서 니 마음대로 해라, 임마. 자 ! 자퇴서 여기 있다. 자퇴하고... 니 마음대로 살아라.” 끊임없는 지각과 무단 조퇴에 결석을 하던 한 녀석을 오늘은 드디어 몰아세운다. 선생님은 자퇴서를 아이 앞에 던져 놓고 교무실을 나가버리신다. 한바탕 회오리다.

다음 날. 선생님은 교실에 들어서자마자 그 녀석의 자리부터 쳐다본다. “ 야~들아, ○○○ 안 왔더나?”

 

우리 선생님들은 하루에도 열 두번씩 속과는 다른 말을 겉으로 내뱉는다.

<다시는 지각하지 않겠습니다>라는 글귀를 노트 열장씩이나 적으라고 내뱉고서는 그 빽빽이 노트를 받고 싶기보다는 ‘선생님! 내일부터는 일찍 올께요’라는 말을 기다린다. 하마 노트 한 귀퉁이에라도 죄송합니다라는 글을 보고싶어 한다. 참 우습다. 그러면 처음부터 그렇게 표현하면 되는데.... 왜 잘 안될까? 아마 내 고등학교 때 선생님도 마찬가지였을게다. 다 나가라는 고함이 다 나가라는 게 아니라 다 잘해보자는 뜻이었을테지. 그런데 그때는 왜 그리도 무서웠던지. 나가버리라는 선생님 말씀을 듣지 않으면 더 야단을 맞을 것 같았던 건 왜였을까?

어느 덧 학생의 자리에서 선생으로 자리바꿈 하고 보니 이렇듯 눈에 빤한 사실인데. 아니 어쩌면 얘들도 이미 알고 있을지 모르는데... 죄송합니다라는 말을 하기는 커녕 다음에는 차라리 오리걸음 벌을 받을꺼라며 되받아오고 조용히 할 생각은 안하고 웬걸 다 나가버리는 태도를 두고 왜 이리 아이들은 우리 속내를 모르는 걸까 흥분하기도 하고 탄식하기도 한다. 어떻게 속내를 드러내야 할까? 아니 이토록 영특한 우리 제자들이, 말 속에 숨어있는 뜻 하나를 못 알아낼까? 그저 이렇게 아이들이 커가는 것이라고 기다려야 할까? 아님 붙들어 앉혀서 이건 이거다 저건 저거다 조목조목 가르쳐야 할까? 이게 다 너희들을 사랑하는 방법이라고. 우리 식의 사랑표현이라고. 좀 더 세련되게 말해볼까? 반어법이라고...

 

덧붙임: ## 장면 3의 녀석은 오늘도 학교를 잘 다니고 있다. 당장 이 길로 학교를 나가삐라며 호통을 치던 녀석의 작년 담임선생님은 올해 스승의 날에 한 통의 편지를 받았다. “ 선생님! 어려울 때 저를 지켜주시고 보살펴 주셔서 정말 감사드립니다.” 아!!! 아이들도 우리의 표현법을 이미 알고 있는 거 맞지? 걔들도 우리처럼 생각을 표현하는게 서투른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