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는 이야기 /사는 이야기

"My wife is so young!"

프리 김앤리 2015. 3. 11. 14:00

 

 

"쎼쎼!"

조그만 목소리였다. 방금 자리를 비켜준 데 대한 고마움의 표시리라.

베네치아의 수상 버스, 바포레토. 아주 늦은 밤시간이었다.

혹시 돌아가는 배(바포레토) 편이 끝났을까봐 우리도 걱정하며 잡아탔던 터였다.

용케 자리에 앉았나 싶었는데 다음 역에서 한 무리의 노인들이 우르르 올라탄다.

습관처럼 벌떡 일어나 자리를 양보했다.

 

"쎼쎼!"

조금전 보다는 좀 더 큰 목소리다.

그냥 살짝 웃어드렸다, 조금 전처럼.

'할아버지, 사실은 우리 중국 사람 아니예요'라고 말할 필요는 없었다.

자리 양보에 대해 의례적인 감사표시를 했을 뿐인데 거기다 굳이 나의 국적까지 들먹이며 그의 인삿말을 고쳐야 햐 할 이유가 없었다 .

 

"아리가또!"

이제는 일본어다.

그때서야 깨달았다. 그는 내게 진짜 감사의 표시를 하고 싶었던 것이라고...

그리고 낯선 동양인에게 관심을 보이고 있는 것이라고...

 

"할아버지, 저 중국 사람도 일본 사람도 아니예요. 한국에서 왔어요..."

그냥 가벼운 웃음만이 아닌 정확한 반응을 하는 것이 예의라는 생각이 들었다.

"오호~~ 한국!  거기서는 땡큐를 뭐라고 하죠?"

"감   사   합  니  다  라고 해요"

"캄 싸 ...."

정확하지는 않았지만 그는 우리말로 다시 한번 내게 인사를 전한다.

 

"이 늦은 시각까지 뭐하다 오셨어요?"

우리도 방금 전까지 작은 콘서트를 보고 나오는 길이었다.

비발디의 고향, 베네치아에서 하는 비발디의 사계 전곡을 연주하는 멋진 콘서트였다. 

찬바람이 부는 1월의 겨울 밤, 연주회를 보기 위해 우리가 들어갔던 그 작은 성당을 빼고는 베네치아 전체가 문을 닫은 듯 조용했었다.

도대체 이 많은 할아버지 할머니들이 늦은 이 시각까지 무얼 하다 오신 걸까?

무리 중에 젊은 사람은 하나도 없었다. 모두 나이드신 분들... 그것도 아주 많아 보이는...

 

"연주회를 보고 오는 길입니다."

 

오홋!! 우리가 본 거 말고도 다른 곳에서도 연주회가 있었구나...

아니 이렇게 나이드신 분들이 늦은 시각까지 음악회를 보고 온단 말인가??

이 겨울, 이렇게들 살고 계신다는 말인가???

 

"오 놀라워요...  여기 베네치아에 사세요?"

"어릴 때 부터 이곳에서 쭉 살고 있지요. 베네치아 여기에서..."

"대단하세요. 정말 실례지만 나이를 여쭤봐도 될까요? 건강해 보이셔서..."

"93살입니다. "

오~~ 오~~

"오~ 93살이요?? 전혀 그렇게 안보이세요.. 정말 건강하게 보이시네요. 정말 대단해요~~~"

 

감동이었다.

아흔셋의 할아버지가 겨울 찬바람을 뚫고 봤다는 연주회, 그리고 그토록 늦은 시각의 귀가, 그것도 대중교통으로... 부부동반으로...

나도 저럴 수 있을까? 저렇게 나이들 수 있을까???

 

나의 감동과 놀라움에 할아버지는 빙긋 웃으신다.

그리곤 한마디 보태신다.

" 저쪽에 있는 사람이 내 부인이예요. 그녀는 많이 젊어요. 이제 겨우 86살밖에 안됐어요. she is so young!"

 

순간, 나는 베네치아가 아름다울 수 밖에 없는 또 하나의 이유를 찾았다.

아흔 셋의 젊은 남편과 so young 한 여든 여섯의 아내가 있는 곳이 '나의 베네치아'가 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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