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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눈물 1> 제자의 결혼

프리 김앤리 2015. 10. 6. 11:41

 

지난 주말, 제자가 결혼했다.

그는 신문반 동아리의 학생, 나는 담당교사.

고등학교 1학년, 열일곱에 만난 앳띤 소녀가 스물 아홉의 멋진 여인이 되어 하얀 웨딩드레스를 입고 식장으로 걸어 들어왔다.

 

이 친구는 몸이 좀 불편하다.

고등학교 시절에는 늘 목발을 짚고 다녔다.

양팔에 목발을 끼우고 기우뚱 기우뚱 거리면서도 학교 구석구석을 헤집고 취재를 하고 인터뷰를 하고 기사를 썼다.

이 친구가 교무실 문을 벌컥 열면

"어이쿠!! OO님 오셨다. 얼른 취재에 응해드려라"라고  선생님들이 먼저 나설 만큼 부지런하고 괄괄한 기자였다.

이 친구 2학년땐가 신문반 동아리 방을 3층 보다 더 높은 다락방으로 옮겨야했다.

다른 학생들은 별 문제가 없지만 불편한 몸으로 3층에다 방송실 옆의 좁은 계단으로 한번 더 올라가야 하는 다락방은,

짧은 다리로 목발을 짚어야하는 이 친구에게는 엄청난 노동이었다. 

학교에서는 이 한명을 위해 교실도 1층으로 배정했지만 동아리 방까지는 배려할 수 없었다.

까놓고 물었다.

"OO야 우짜지? 우리 동아리 방을 아무리 구할라해도 여기 밖에 없더라. 다닐 수 있겠나?"

"괜찮아요, 선생님. 저 다닐 수 있어요."

그 뒤로 동아리방에서는 이 친구가 왔다는 건 소리로도 알아차렸다.

 '문 열림 - 탁 (목발 세워 두는 소리)  - 타 탁! 타 탁! (양 손과 짧은 양 다리를 다 쓰면서 올라오는 소리)'

니는 자주 오르락 내리락 하기 어려우니 우리 기사 쓸 때 라면이라도 끓여라 라는 농담을 참 많이도 했다.

 

한 번은 신문반 동아리 MT 로 부산 황령산 야영장엘 갔다.

청소년 야영장까지는 차가 올라가니 별 어렵지 않게 간다 했는데 텐트 칠 곳은 산비탈을 제법 내려 가야했다.

어째야하나? 고민하고 있는 사이, 이 친구가 먼저 앞장서서 기우뚱기우뚱 걸어내려가고 있었다.

다음 날 아침 해 뜨는 걸 보겠다고 봉수대까지 산행을 해야 하는데, 이때는 아주 선선히 포기를 했다.

"그러면 니는 여기서 텐트 다 지키라. 그래도 우리는 산에 간다고 힘든데 니, 놀고 있는 꼴은 못보지.

 우리 내려올 때 쯤이면 배가 많이 고플거니까 그동안 밥 다 해놔라. "

몸이 불편할 뿐, 마음이 아프지 않는 이 친구와 우리는 아무렇지도 않게 농담을 했고 받아들였다.

 

이 아이가 결혼을 한다.

순백의 하얀 드레스를 입고 신랑과 손을 맞잡은 채 결혼식장으로 걸어 들어갔다.

웨딩드레스가 너무 길어 부케와 함께 드레스의 앞 자락을 와락 움켜 쥐고 있다.

"이걸 끝까지 니가 잡고 걸어 들어가야 하는거야?"

"그러게요~~~"

시월의 아름다운 신부에게 이런 말을 불쑥 꺼내는 겁없는 선생에 그걸 또 아무렇지도 않게 받아치는 멋진 제자다.

 

선생님한테만은 청첩장을 직접 전해주고 싶었다며 그 먼길을 달려온 친구에게 나는 잠시 머뭇거렸다.

"신랑은~~~"

도대체 뭐가 궁금한가, 김승란!  신랑의 뭐가 궁금하냐 말이야~~~

머뭇거리면서도 부끄러웠던 나와 다르게 재빠르게 대답한다.

"신랑도 장애인이예요. ㅋㅋㅋ 살면서 불편은 하겠지만... 그래도 뭐, 좋으니까... 저, 결혼해요. 선생님!"

 

이 아이가 결혼을 한다.

한 손으로는 부케와 웨딩드레스를 움켜쥐고, 다른 손으로는 신랑의 팔짱을 낀 채 둘이서 기우뚱 기우뚱 걸어간다.

"신랑 신부가 좋아해야 하는데, 내가 왜 더 좋죠?"

내가 하고 싶은 말을 주례 선생님이 대신해 주신다. 

축가를 부르겠다고 나온 신랑 신부의 친구는 벅찬 감동에 눈물을 흘리느라 노래를 다 못 부른다.

작지 않은 교회가 넘치도록 오신 수많은 하객들, 열일곱의 아이가 스물 아홉의 여인이 되는 시간동안 얼마나 잘 살았는지를 보여준다.

열심히 살아온 신랑의 시간도....

결혼식장의 뒷 쪽엔 주례사를 수화로 통역해 주는 사람도 있다.

장애인 봉사 단체에서 일하던 신부다.

누군가 그랬다. '수화는 말 대신  손으로 쓰는 영상언어'라고.

 

자꾸 눈물이 난다.

신랑의 팔짱을 낀 모습에도 눈물이 나고, 빛이나는 아름다운 얼굴에도 눈물이 난다.

학교를 휘젓고 다니던 열 일곱 아이의 씩씩함에 눈물이 나고, 모든 이의 사랑속에 새로운 삶을 시작하는 스물 아홉 여인의 당당함에 눈물이 난다.

고맙다. 친구야~~~  잘 살아~~

 

  사실, 집으로 돌아오는 길에 나의 눈물을 반성했습니다.

  '니는 다른 사람하고 조금 달라서 약간 불편할 뿐, 무슨 특혜(?) 같은 거 바라지 마라'며 농담이든 진담이든 해왔는데

  결혼식장으로 걸어 들어가는 모습에 눈물을 흘리다니요.  

  그동안의 내 말은 다 가짜였단 말인가요?

  ㅠㅠ

  그래도 이건 슬퍼서 흘린 눈물은 아니니까 괜찮겠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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