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지금은 여행중 /5월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사진에서 '소리'가 들린다

프리 김앤리 2015. 9. 9. 17:16

 

< 2015년 5월 투어야여행사 단체배낭 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 여행이야기 1

 

"대장님! 기사 아저씨가 또 '푹~ 푹' 하기 시작했는데요."

"우리 언제쯤 도착할까요?"

"이거 아까 왔던 길 아니예요? 뭔 길이 이리 구불구불~~"

"우크라이나로 들어왔다는 문자가 들어오는데요??"

"흐미~~ 배고픈 거~~ 점심이라도 먹고가지~~"

 

2015년 6월의 어느 날.

열일곱 우리를 태운 버스는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을 오락가락하고 있었다.

'즐거운 묘지'가 있는 사푼자 마을을 떠나고나서는 몇시간째 이리 구불구불한 산길이다.

처음 한 30분 정도? 누군가가 들려주던 음악에 살짝 감동한 뒤, 그 다음은 내내 멀미가 날 지경이다.

분명 루마니아의 어느 국도를 가고 있는데 휴대전화에서는  '우크라이나'로 들어왔다는 문자메세지가 몇번씩이나 전송되어 온다.

'~~~ 한국에서 전화를 걸때 OOOO원, 받을 때 OOOO원... 문자메세지 받을 때 무료~~~'

우쒸~ 우리는 루마니아를 여행하러 왔단 말이야~

루마니아와 우크라이나 국경을 아슬아슬하게 넘나드는 산악도로는 끝이 나질 않는다.

사람도 하나 없는 완전 산골, 가게가 있을리 없다.

차를 몰던 헝가리 출신의 운전기사도 어이가 없는지 한숨만 푹푹 쉰다. 분노의 한숨?

"푸~욱, 푸~욱. 쉣~~ 쉣~~"

"밥이라도 먹고 가면 안될까?  저기요... 화장실이 좀 급하거든요???"

"나도 알고 있거든. 근데 네비에 아무것도 안나와. 조금 더 가야될 것 같애~~"

한참 후 도착한 휴게소. 말이 휴게소지, 화장실이 달랑 한 칸뿐인 구멍가게다.

열 일곱이 한줄로 서서 급한 볼일을 보고, 쓴 커피 한 잔으로 달래며 다시 나선 길. 끝도 없다.

"대장님! 오늘 중에는 우리 들어갈 수 있을까요?

우리의 목표는 시기쇼아라.

루마니아를 여행을 기획하면서 가장 다시 가고 싶은 도시였다.

사진 작가들이 가장 좋아한다는 알록달록 천연색의 중세 마을, 마을 어귀부터 높지 않은 동네 뒷산까지 조용함과 아름다움과 상쾌함까지 모두 지니고 있던 마을...

시기쇼아라가 왜 이리 멀단 말인가???

오후 4시쯤 됐나?

구글 지도를 보고 있는데도 감이 오지 않는 아주아주아주~~~ 낯선 어느 거리, 버스가 섰다. 슈퍼다.

흑흑 스낵으로 점심을 떼워야 하나? 실망하는 우리들에게 기사는 길 건너의 레스토랑을 가리킨다.

자기는 저기서 점심을 먹겠다나???

우리도 다같이 우르르 몰려갔다.

사푼자 마을을 출발하고 거의 처음 만난 제대로 된 식당이다.

무조건 시키고 본다.

스파게티... 돼지 스테이크.. 소고기 스테이크...

물론 이런 이름은 아니었다.  루마니아어로 적혀있었지만 배고픈 여행자들의 재치가 번뜩인다.

역쒸~~~

 

그러나...

레스토랑의 예쁜 스텝은 얼마 기다리지 않아도 된다며 큰소리쳤지만

이런 시골 구석에 열여덟(기사 아저씨까지...)씩이나 한꺼번에 들이닥쳤으니 지넨들 무슨 뾰족수가 있었을까...

지겨움에 주리를 틀고, 배고픔에 이를 악다물고, 어이없는 상황에 헛웃음 짓기를 한 시간 여...

인내의 한계를 느낄 때쯤 우리의 점심이 등장했다.

우다다다~~ 허겁지겁~~ 부랴부랴~~

 

"ㅋㅋㅋㅋㅋㅋㅋㅋㅋ 그래도 맛있다~~~~~~~~"

"대장님! 이 집을 우리 단골집으로 해야겠어요!!!"

우하하하! 이래서 우리가 웃는다. 이래서 우리가 즐겁다. 이래서 사람들이 좋다!!!

 

이어지는 또 한번의 폭소.

구미 엄마와 딸의 테이블이 갑자기 떠들썩하다.

"우리는 포크 하나 더 달라고 한 건데요? 포크 스테이크가 아니라~~~"

one more fork를 one more pork로 알아들은 레스토랑 아가씨가 밥 다먹고 나갈라고 하는데 또 한 접시의 돼지고기 스테이크를 든 채 난처하게 서있다.

 

"이 포크가 아니구요, 이 포크 하나 더였다구요..."

우리가 들어도 그 포크나 이 포크나 다 똑같은 포크다.

ㅋㅎㅎㅎ

이래서 재밌다. 이래서 여행이 즐겁다.

 

 

  여행을 갔다 와서 사진을 보면 그 속에서 그 때 우리 곁을 스치던 바람이 불어온다.

  사진 속에서 '소리'가 들린다.

  다른 사람은 아무도 들을 수 없는 저 순간에 같이 있었던 사람들에게만 들려오는 소리...

  사진이 말을 한다.

 해맑게 웃던 현이의 웃음 소리가 사진에서 들린다.

 푸~욱, 푹 거리던 운전기사의 한숨 소리가 들린다.

 

 "그제는 늦은 밤, 부다페스트에서 먹었던 조각 피자가 그때가지는 제일 맛있었구요...

  어제는 사투마레 리조트에서 늦은 밤 먹었던 라면이 제일 맛있었구요...

  오늘은 여기서 먹은 파스타가 제일 맛있어요...

  맨날 맨날 제일 맛있어요."

 미안, 현아!!! 밥 시간을 제대로 못맞춰서 맨날 맨날 늦게 먹었으니 그때마다 어찌 맛이 없을까?

 

"산소가 부족한 거 같아요. 우리도 우리지만 기사 아저씨도 좀 쉬어야 되지 않을까요?"

ㅋㅋㅋㅋㅋㅋㅋㅋ

오른 쪽 테이블의 모녀!

"그 포크가 아니라 이 포크를 하나 더 달라고 한 건데요??"

 

"대장님! 이 집을 우리 단골집으로 해야겠어요. 정말 맛있는데요~~~"

ㅋㅎㅎㅎㅎ

 

2015년 6월의 어느 날.

동네 이름도 모르는 루마니아 북쪽의 어느 길가 레스토랑.

우리들의 사진에서 '소리'가 들린다.

우리들에게만 들려오는 소리!!

 

그날 우리들은 결국 시기쇼아라를 포기하고서도 저녁 10시가 다 된 시각, 시비우라는 마을에 도착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