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5 지금은 여행중 /5월 헝가리 루마니아 불가리아

겁 없는 스케쥴

프리 김앤리 2015. 9. 15. 16:56

< 2015년 5월 투어야여행사 단체배낭 헝가리+루마니아+불가리아 여행이야기 2

 

여행을 기획할 때 고려해야 할 사항 중의 한 가지가 '대중성'이다.

'사람들이 좋아할까? 친근하게 느낄까?'

나의 여행이 아니라 우리의 여행이니까... 함께 하는 사람들의 취향이나 시대의 보편성 즉, 트렌드를 따져봐야 한다.

결국 이 게 '상품성'과 연결되는 중요한 고리이기도 하다.

 

그런 면에서 본다면 때로 나의 기획은 완전 젬병이기도 하다.  

특히 멋진 산을 만나거나 좋은 길을 만나면 대중성이나 상품성은 어느 새 순위에서 밀려나고 순전히 내가 세워놓은 '여행의 잣대'가 등장한다.

'좋은 길은 천천히 다 걸어봐야 돼!'

'산엘 갔다면 시간을 투자해서라도 그 산을 충분히 느껴야 되잖아?'

그런 고집이 크로아티아의 플리트비체 호수를 온종일 걷게 만들고, 

바르셀로나 몬세랏의 산 요한 전망대에 올라 기어이 산을 한바퀴 돌게 만드는 트레킹을 집어넣는다.

이집트의 나일강에서는 2박 3일 정도의 크루즈를 해야 나일강의 일몰과 일출을 다 볼 수 있다고 고집하고 

러시아의 고도(古都) 수즈달에서는 반드시 하룻밤을 거기서 자야  그 동네의 진짜 운치를 느낄 수 있다고 고집한다.

 

물론 시간이 많고 돈이 많으면 무슨 걱정이랴!

얼마든지 천천히 가도 되고, 자도 되고, 다 즐겨도 되지만 그 놈의 '대중성이나 상품성'이라는 것은 '천천히 혹은 느긋하게'와는 상극이라는 게 문제지.

그러니 다른 여행들도 플리트비체니 몬세랏이니 나일강, 수즈달 같은 곳은 절대로 빠지지 않지만 시간을 많이 투자할 수 없다는 게 대중성이지.

그런데 거기서 머무르는 시간과 내용의 차이가 만들어내는 감동의 차이, 느낌의 차별성은 무엇으로 설명할까?

 

대중성과 상품성, 그리고 여행이 주는 진짜 감동 사이의 간극을 저울질 하다가 결국에는 비슷한 결론을 내려버린다, 나는.

'어딘가를 갔다 왔다가 중요한 것이라 그 곳을 어떻게 갔다 왔냐'다.

 

루마니아 여행!

우리나라에 알려진 루마니아 여행은 대개 드라큐라에서 시작해서 국보 1호로 그리고 루마니아의 수도로 연결된다.

대개는 루마니아 전체가 하루 반나절 정도의 일정.

드라큐라 성으로 알려진 브란성을 들렀다가 루마니아 국보 1호로 지정된 펠레슈 성을 거쳐 다음은 수도 부쿠레슈티의 차우세스쿠 궁전을 겉으로 훓는 일정.

그런데 우리의 루마니아 여행은 달라야 했다.

중세 마을 시기쇼아라도 봐야했고, 유럽의 문화도시 시비우도 가야했고, 부쿠레슈티의 차우세스쿠 궁전도 반드시 들어가봐야 욕망덩어리의 인간이 보인다.

인간의 죽음에 대해서 다시한번 생각하게 만든다는 '즐거운 묘지'도 가봐야겠고, 덕분에 그 근처에 있는 루마니아 숲에서 하룻밤은 자야겠고

거기에 시나이아엘 갔다면 국보 제 1호 펠레슈 성만 보고 올 게 아니라 중부 유럽을 가로지르는 카르파티아 산맥의 부체지산을 걸어봐야했다.

2000m 높이의 산, 아닌가? 우리나라 어디에서 2000m 산을 오를 수 있으며 그것도 오르락 내리락 없이 끝없이 펼쳐진 평원의 살랑거리는 트레킹.

어찌 하늘 아래 그 길을 걸어보지 않을 수 있을까?

 

그렇게 머리를 굴리다보니 이런 겁없는 스케쥴이 나오는 거다.

'부체지산 종일 트레킹'

그럴러면 전날 그곳에 도착해서 자야하고, 트레킹을 하고 내려온 날은 피곤해서 거기서 또 자야한다.

적어도 부체지산 아래에서만 무조건 이틀은 자야하는 일정. 고집이 겁없는 스케쥴을 탄생시키는 거다.

ㅋ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ㅎ

 

그리하여~~~

올해도 우리는 부체지산 꼭대기에서 하루종일 노는 일정을 보냈다.

6월까지 이어진 강한 돌풍과 폭우 때문에 산꼭대기까지 올라가는 케이블카는 멈춰섰지만

자가용 영업을 하는 동네 청년들 차를 타고 가요부터 영화음악까지 박수를 치며 노래를 부르며 산꼭대기까지 올라갔고

한여름에는 상상도 할 수 없었던 빙하의 한 귀퉁이도 걷고, 한쪽에는 녹지 않은 눈밭인데 또 한쪽에는 천지사방으로 핀 야생화 군락 덕분에 황홀해했다.

어린 시절로 돌아간듯이 깔깔거리며 풀 미끄럼을 타고 내려와 바지 속으로 들어온 마른 가지들 때문에 아파서 울고 재밌어서 웃었다.

삶은 계란과 닭 튀김, 아침 호텔에서 뚱쳐나온 과일과 샌드위치가 우리의 점심이었던... 아무도 없던 산꼭대기의 하루... 우리들의 소풍.

겁없는 우리들이 만들어 낸 잊지못할 시간이 아니었을까?

( 그렇겠지? 그럴꺼야! 그래야 해!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