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6년 지금은 여행중 /5월 루마니아 불가리아 헝가리

동유럽과 영화 1 - 글루미선데이와 부다페스트

프리 김앤리 2016. 3. 24. 20:00


영화로 시작하자.

낯선 여행지에 대한 공부로 가장 쉽고 가장 흥미로운 영화로!!!

우선 첫번째 도시, 헝가리 부다페스트!


사람들은 '부다페스트'라는 말에서 제일 먼저 뭐가 떠오를까?

나에게 부다페스트란 '시인 김춘수가 쓴 한 편의 시'다.


「부다페스트에서의 소녀의 죽음」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고등학교때 짝사랑했던 국어선생님 - 하물며 총각이었다!! - 이 시인 김춘수의 제자였다.

대학을 갓 졸업한 총각 선생님의 여고 부임이라...  인기가 하늘을 찔렀다.

게다가 시를 쓰는 시인 국어 선생님!

감수성 예민한 여고생들은 선생님의 동작 하나하나에 열광했고 그의 한마디 한마디에 마음을 다 주었다.   


바람이 쌀쌀하게 불던 어느 날, 선생님은 수업시간에 시 한편을 읊어주셨다. 

(목소리는 얼마나 또 감미롭던지...)

국어 수업이라 해봐야 시든 소설이든 그것을 문학적으로 감상하는 것은 사치, 오로지 문제가 나오면 정답 고르기에만 몰두하던

우리들에게 감미로운 목소리의 시낭송이란...


   ‘네 죽음에서는 한 송이 꽃도 흰 깃의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

    네 죽음을 보듬고 부다페스트의 밤은 목놓아 울 수도 없었다.’


네 죽음을 두고 한 송이 꽃도 피지 않았고, 한 마리 비둘기도 날지 않았다는 비극.

소녀가 죽었다지않는가!!!

죽음을 앞에 두고도 멀고도 낯선 부다페스트라는 곳에서는 목 놓아 울지도 못했다더라...

 

시는 소련의 부다페스트 침공을 비판하면서 동시에 자유가 짓밟히고 있던 당시의 한국 상황도 있었지만

나는 지구의 반대편의 낯선 도시 '부다페스트'에 꽂혔고, 피지도 못한 채 쓰러져 간 열 세살 소녀의 비극에 눈물지었다.

그 날 이후 나에게  부다페스트란 '김춘수의 시'이며 '짝사랑했던 총각 국어선생님'이었으며

'소녀의 죽음 앞에 목놓아 울 수도 없었던 암울한 밤'이 돼 버렸다.

 
...

잠시 옆길로 샜다.

그렇다면 다른 사람들은 어떨까?

그들에게 부다페스트는 어떤 곳일까?

 

많은 사람들이 영화 '글루미 선데이'를 꼽는다.

글루미 선데이와 부다페스트.

사람들은 글루미 선데이의 무대가 되었다는 군델 레스토랑에 가서 글루미 선데이를 들려줄 수 있느냐고 주문하기도 하고

주인공들이 함께 달렸던 세체니 다리에서 감상에 젖기도 한다.

글루미 선데이와 함께 전해내려오는 전설같은 자살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며 까닭없이 우울해져야 할 것 같은 의무감에 시달리기도 한다.

(.. 레스토랑 군델은 영화의 모델이었을 뿐, 거기서 영화를 촬영했다거나 혹은 실제 무대라는 이야기는 잘못 전해져 오는 오보다. )

 

 


 

글루미 선데이

 

                      감독 : 롤프 슈벨

                      개봉 : 2000.10.21

 

 

"사랑과 죽음의 노래" |

 "그녀의 노래를 듣는 순간 선택해야 한다. 생의 전부를 건 사랑, 혹은 죽음을" |


1999년 어느 가을. 독일 사업가가 헝가리의 한 레스토랑을 찾는다. 작지만 고급스런 레스토랑. 그는 추억이 깃 든 시선으로 그곳을 살펴본다. 그리고 말한다. "그 노래를 연주해주게." 그러나 음악이 흐르기 시작한 순간, 피아노 위에 놓인 한 여자의 사진을 발견하곤 돌연 가슴을 쥐어 뜯으며 쓰러진다. 놀라는 사람들. 그때 누군가가 외친다. "이 노래의 저주를 받은 거야. 글루미 썬데이의 저주를..."
  60년 전. 오랜 꿈이던 레스토랑을 경영하는 자보(조아킴 크롤 분). 그의 사랑스러운 연인, 일로나(에리카 마로잔 분). 레스토랑에서 연주할 피아니스트를 인터뷰하는 그들에게 한 남자가 찾아왔다. 강렬한 눈동자의 안드라스(스테파노 디오니시 분). 그의 연주엔 특별한 매력이 있다. 자보와 일로나는 안드라스를 고용한다. 일로나의 생일. 자신이 작곡한 글루미 썬데이를 연주하는 안드라스. 일로나는 안드라스에 대한 사랑을 확인하고... 그날 저녁 독일인 손님 한스(벤 베커 분)가 일로나에게 청혼한다. 구혼을 거절하는 일로나. 글루미 썬데이의 멜로디를 되뇌이며 한스는 강에 몸을 던지고 그런 그를 자보가 구한다. 다음날, 안드라스와 밤을 보내고 온 일로나에게 말하는 자보. "당신을 잃느니 반쪽이라도 갖겠어." 자보와 안드라스, 일로나는 특별한 사랑을 시작한다. 한편 우연히 레스토랑을 방문한 빈의 음반 관계자가 글루미 썬데이의 음반제작을 제의한다. 음반은 빅히트 하게되고, 레스토랑 역시 나날이 번창한다. 그러나 글루미 썬데이를 듣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하고 언론은 안드라스를 취재하려 한다. 죄책감에 괴로워하는 안드라스. 그런 그를 위로하는 일로나와 자보... 하지만 그들도 어느새 불길한 느낌에 빠진다.

 

 

영화의 내용이야 직접 보면 될 일이고이 영화가 실화에 바탕을 두었다는 사실이 충격적이다.  

물론 한 여자와 두 남자가 함께 사랑을 한다는 줄거리는 실화와 상관없는 설정이지만

영화에 등장하는 '글루미 선데이'라는 음악, 그리고 그 음악을 듣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속출했다는 이야기는 실화다.

 

1935년 헝가리의  작곡가 레조 세레스가 부다페스트에서 가장 아름다웠다는 자신의 연인, 헬렌의 죽음에 괴로워하면서 '글루미 선데이'를 작곡한다. 

 

  

  ---Trauriger Sonntag---    

  

    Trauriger Sonntag, dein Abend ist nicht mehr weit 
        우울한 일요일, 저녁이 찾아들고 있는 이 시간

    Mit schwarzen Schatten teil ich meine Einsamkeit
        나는 내 외로움을 어둠과 함께 나누고 있네

    Schliess ich die Augen, dann seh ich sie hundertfach
        눈감으면 떠오르는 수많은 당신의 추억

    Ich kann nicht schlafen, und sie werden nie mehr wach "spiel fuer mich"
        난 잠들지 못하고 당신은 영원히 깨어나지 못하리

    Ich seh' Gestalten ziehn im Zigarettenrauch
        담배 연기 속에 그려보는 당신모습

    Lasst mich nicht hier, sagt den Engeln ich komme auch
        날 여기 길잃은 천사처럼 홀로 두지 마오 나도 그대를 따라 가리니

    Trauriger Sonntag
        우울한 일요일

   

    Einsame Sonntage hab ich zuviel verbracht
        그토록 수많았던 고독한 일요일들

    Heut mach ich mich auf den Weg in die lange Nacht
        오늘 나는 긴 밤 속으로 먼길을 떠나리

    Bald brennen Kerzen und Rauch macht die Augen feucht
        촛불은 타오르고 담배연기는 내 눈을 젖게 하네

    Weint doch nicht,Freunde,denn endlich fuehl ich mich leicht
        사랑하는 벗들이여 눈물은 흘리지 말아주오

    Der letzte Atemzug bringt mich fuer immer heim
        이 마지막 숨결이 나를 영원히 고향으로 인도하리

    Im Reich der Schatten werd' ich geborgen sein
        그 어둠의 나라에서 완전한 안식을 누리리니

    Trauriger Sonntag
        우울한 일요일

 

 

지금은 원곡을 들을 수 없지만 당시에는 이 음악을 듣고 자살하는 사람들이 이어졌다.

실제로 1936년 4월 30일, 글루미 선데이를 연주하던 프랑스 파리의 레이벤츄라 오케스트라 콘서트 중,

드럼 연주자가 권총 자살을 한 것을 시작으로 전 연주자가 자살을 한 일이 일어났다.

결국 실제 작곡가 레세 세레쉬도 이 곡을 들으며 아파트에서 뛰어내려 자살을 한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모르겠다 나는.

원곡을 직접 듣지 않아서인가??

영화 속에 나오는 '글루미 선데이'는 죽음을 부르는 슬픈 곡이라기 보다는 직직거리는 소음이 포함된 아주 오래된 레코드를 다시 듣는 듯한 분위기? 세로줄이 죽죽 그어진 낡은 영화 필름 같다는 생각이 더 짙게 들었다.

내게 이 영화는 슬프다는 음악보다  화면 속의 부다페스트 거리에 더 눈이 갔고 다뉴브 강의 세찬 물결이 반가웠고

이제 곧  내가 그 곳에 갈 거라는 흥분으로 짜릿했다.  

다시 부다페스트를 꿈꾸고 있는 2016년.

이번 주 일요일, 다시 한번 더  나는 글루미 선데이를 볼지 모른다.  

그들의 사랑에 빠져들지 모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