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지금은 여행중 /1월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작품 해설. 보티첼리 <봄>

프리 김앤리 2016. 12. 12. 16:59


< 2017년 1월 투어야여행사 단체배낭, 품격 이탈리아 여행  준비 7>



봄을 부르는 신들

 예로부터 봄을 그린 그림은 적지 않다. 그러나 보티첼리의 이 명작만큼 봄의 아름다움과 온화함을 훌륭하게 표현해 낸 작품의 거의 예가 없다. 보티첼리는 이 그림에서 많은 등장인물을 각기 적절한 위치에 배치하고 그 역할에 따른 행동을 지시하는 뛰어난 무대감독과 같다.

 사실 이 그림의 구성은 언뜻 보아 연극 무대를 연상시킨다. 배경은 금색으로 빛나는 오렌지가 잔뜩 달린 어두컴컴한 숲으로, 말하자면 무대의 배경 그림에 해당한다. 가운데 있는 비너스의 머리 위에서 춤추는 큐피드까지 모두 아홉명의 등장인물은 대부분 앞뒤로 겹치는 일 없이 왼쪽에서 오른쪽으로, 거의 한 줄로 나란하게 평면적으로 자리를 잡고 있다. 잘 보면 가운데 비너스만이 다른 인물들보다 조금 뒤로 물러나 있어서 이 무대 전체를 지배하는 듯한 역할을 부여받고 있다. 그렇지만 왼쪽에서 오른 쪽으로, 화면의 전경만으로 전개되는 이 무대의 평면적인 리듬을 깨뜨릴 정도는 아니다. (중략) 우리는 직접 화면 속으로 끌려 들어가지 않고 마치 객석에 앉은 관객처럼 조금 떨어진 곳에서 이 꿈처럼 화려한 환상극을 바라보게 된다. 그 극의 제목은 말할 것도 없이 '프리마베라(봄)'다.



 그러면 보티첼리가 그린 것은 그 환상극의 어떤 장면일까. 만약 그것이 정말로 연극무대라면 등장인물들은 어떤 대사를 하고 있을까.

  물론 우리는 봄 안개처럼 얇고 부드러운 옷을 나부끼며 서로 손을 잡고 춤추는 미의 세 여신의 모습이나,머리에 화관을 쓰고 목에는 꽃목걸이를 두르고 몸 전체가 꽃무늬로 덮인 꽃의 여신 플로라가 넘치도록 가득 안은 꽃을 흩뿌리며 조용히 걷는 모습에서 봄의 분위기를 느길 수 있다. 확실히, 여기 모인 신들은 유쾌하게 봄을 즐기고 있다. 그러나 이 신들의 몸짓을 하나하나 살펴보면 여러가지 의문이 생겨난다. 플로라 바로 옆에서 뒤를 돌아보며 서풍의 포옹을 피하려 하는 님프는 대체 누구일까. 그리고 플로라는 왜 자기 바로 뒤에서 일어나고 있는 이 두사람의 다툼을 전혀 알아채지 못한 듯한 모습일까. 혹은 비너스의 머리 위에서 불타는 화살을 팽팽하게 당기고 있는 큐피드는 누구를 겨낭하고 있는 것일까. 또한 춤추는 미의 세 여신에게 등을 돌리고 있는 화면 왼쪽 끝의 머큐리(로마 신화중에 신들의 사자. 거리의 신)는 무엇을 하고 있을까. 무대 감독인 보티첼리는 그들 각각에게 명확한 의미와 역할을 부여하고 있는 것이다.




플로라와 클로리스


 그 의미를 파헤치기 위한 열쇠의 하나는 플로라 뒤에 있는 님프다. 한눈에 알 수 있듯이 이 님프는 바로 앞에 있는 플로라와 모든 점에서 대조적이다. 플로라의 옷은 온갖 아름다운 꽃으로 치장되어 있는 데 이 님프의 옷에는 아무 장식도 없다. 님프는 뒤를 돌아보며 뒤쫓는 사람의 손에서 도망치려 하는 불안정한 포즈를 보이고 있는데 플로라는 똑바로 앞을 향한 채 느긋하고 침착한 모습을 보인다. 그리고 그에 따라, 님프는 머리카락을 흩뜨리며 두려움과 놀라움을 드러내고 있는데 반해 플로라는 머리카락에 갖가지 꽃을 꽂고 말쑥하게 차려 입고 있으며, 아무런 불안도 놀람도 보여주지 않는다. 물론 이러한 대조는 분명히 보티첼리가 의도한 것이다.

  이렇게 모든 점에서 뚜렷하게 대조적인 이 두 사람이 사실은 같은 인물이라고 하면 독자들은 깜짝 놀랄 것이다. 그러나 보티첼리가 여기에서 표현하려 한 것은 바로 그것이었다. 왜냐하면 이 부분은 로마의 시인 오비디우스의 <변신 이야기> 속의 봄의 정경을 그린 것으로, 여기에 클로리스라고 불리는 대지의 님프가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하는 이야기가 들어있다.

  오비디우스의 시에서 꽃의 여신 플로라는 분명 이렇게 말한다.

  "나는 예전에 클로리스였는데 지금은 플로라라고 불린다. "

  그런데 대지의 님프 클로리스는 호색한 서풍 제피로스에게 쫓기고 있다. 보티첼리의 <봄>에서 제피로스는 볼을 부풀린 채 클로리스를 뒤쫓는 '바람의 신'의 모습을 하고 있으며 화면의 오른쪽 끝에서 등장하고 있다. 그 바람 때문에, 이 부분에 그려진 나무만 크게 휘어져 있다. 클로리스는 어떻게 해서든 제피로스에게서 달아나려 하지만 마침내 붙잡히고 만다. 제피로스의 손이 클로리스의 몸에 닿는 순간 그녀의 입에서 봄꽃이 흘러나와 팔랑팔랑 떨어진다. 그리고 흰 옷을 입은 클로리스는 화산한 꽃의 여신으로 다시 태어난다.

  오비디우스의 시가 의미하는 것은 명백하다. 클로리스는 대지의 님프이며 서풍은 봄바람이다. 겨울동안 대지는 단 한가지 색으로 덮여 있었다. 그런데 봄 바람이 불어오면 새싹이 돋고 고운 봄꽃이 피어난다. 클로리스가 제피로스에게 붙잡히자마자 아름다운 꽃의 여신으로 바뀐다는 것은 바로 자연 속의 봄이 오는 광경을 의인화 한 것이다.  보티첼리는 이 변신의 과정을 아주 교묘하게 그려냈다. 이미 보았듯이 대지의 님프와 꽃의 여신 사이에는 아무 공통점이 없는 듯하다. 그러나 잘 살펴보면 단 하나, 이 두 사람을 맺어주는 것이 있음을 알 수 있다. 그것은 님프의 입에서 흘러나오는 봄 꽃이다. 이 꽃들은 님프의 입에서 넘쳐흘러 그대로 플로라에게 떨어져서 어느새 꽃의 여신이 입은 옷의 무늬가 되어 버린다. 흰 색 한가지로 덮여있던 대지가 눈부시게 다채로운 꽃들로 뒤덮이게 되는 것이다.



미의 세 여신의 윤무


  대지의 님프 클로리스가 꽃의 여신 플로라로 변신하는 과정은 자연에서는 봄이 왔음을 의미하지만 동시에 그것은 인생의 봄을 표현하기도 한다. 꽃의 여신이 머리에 쓰고 있는 화관과 머리카락에 꽂힌 꽃 장식들은 지금도 유럽의 시골에서 볼 수 있는 신부의 치장을 연상시키는데, 새하얀 옷을 입은 깨끗한 소녀 클로리스는 봄바람에 붙잡힘으로써 성숙한 신부가 된다. 유명한 큐피드와 프시케(큐피드의 연인)의 이야기에 있듯이 서풍 제피로스는 또한 사랑의 바람이기도 하기 때문이다. 여성은 사랑을 통해 다시 태어난다고들 하지만, 클로리스에서 플로라로 변신하는 과정은 바로 다시 태어나는 과정인 것이다.

  이런한 사람의 변신을 한층 명확하게 보여주는 것이 화면 왼쪽에 그려진 미의 세여신의 윤무다.

  얇은 옷을 하늘하늘 휘날리면서 서로 손을 잡고 춤추는 미의 세 여신의 모습은 르네상스가 낳은 가장 우아하고 아름다운 여성상이라 할 수 있는데, 달콤한 봄꿈과 같은 이 세여신에게도 이 화면에서 주어진 역할이 있다. 미의 세 여신은 고대 그리스 로마 신화에 등장하는 신들인데 인간의 몸이 가진 아름다움에 눈을 뜬 르네상스 시대에는 비너스와 함께 여성미의 이상적인 모습으로 즐겨 다루어졌다. 15세기 이탈리아의 인문주의자로 알려진 알베르티의 <회화론>에서도 회화 표현에서 미의 전형 가운데 하나로 이 미의 세 여신을 들고 있을 정도다. 사실 그 표현에 있어서 이 보티첼리의 미의 세 여신은 알베르티의 영향을 강하게 받고 있다.

  아름다운 현대와 더불어 지적인 논의를 즐겼던 르네상스 시대 사람들은 이 미의 세 여신에게도 여러가지 철학적인 의미와 해석을 부여하곤 했다. 거기에 따르면 이 세 여신은 각각 '애욕'과 '순결'과 '아름다움'을 나타낸다. 사실 보티첼리가 그려낸 세 여신은 서로 자매처럼 매우 닮았지만 자세히 보면 옷 차림이나 치레들이 조금씩 다르다.

  세 여신 가운데 가장 움직임이 크고 화려한 것은 왼쪽 끝에 있는 여신이다. 그녀는 가슴에 유난히 커다란 브로치를 달고 있으며 머리카락은 마구 흩어져서 어깨에서 등으로 흘러내리고 옷도 풍성하게 물결쳐서 마음속의 격한 충동을 드러내는 듯 하다. 세 여신 가운데 가장 화려하고 강한 움직임을 보이는 것으로 보아 그녀가 관능적인 애욕의 화신이라는 것은 충분히 짐작할 수 있다. 거기에 대해 그녀를 마주보고 있는 가운데 여신은 아무런 치레도 하지 않고 옷도 아주 소박하며 엄숙한 표정을 짓고 있는데 말할 것도 없는 그녀는 순결을 상징한다. 애욕과 순결은 원래 상반되며, 두 얼굴 사이에 마주 댄 두 여신의 손은 문자 그대로 서로 정면으로 맞부딪치고 있는 것처럼 보인다. 그러나 이 두 여신의 대립도 오른쪽 끝의 아름다움의 여신에 의해 화해되고 통일된다. 아름다움은 애욕과 순결이라는 상반되는 성질을 함께 포함하면서 그 통일로서 등장하는데, 그런 의미에서 이 미의 세 여신의 윤무는 어떤 비평가의 말을 빌자면 변증법적인 윤무다.

  소박하고 맑은 순결이 애욕과 접촉함으로써 아름다움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이 도식은 깨끗한 소녀 클로리스가 사랑의 바람 제피로스와 접촉함으로써 꽃의 여신으로 다시 태어난다는 앞의 도식과 완전히 대응한다. 그리고 제피로스의 포옹을 피하려던 클로리스가 결국 제피로스에게 붙잡히자 입술에서 봄꽃을 토해냈듯이, 미의 세 여신 가운데 순결도 단호하게 애욕에 대항하고 있는 듯이 보이지만 왼쪽 어깨, 즉 애욕과 닿아 있는 쪽 어깨는 옷이 반쯤 벗겨져 있어서 사랑에 대한 유혹을 암시하고 있다. 그렇다면 오른쪽의 제피로스, 클로리스, 플로라 그룹과 왼쪽의 미의 세 여신 모두 사랑과 아름다움에 대한 눈뜸을 주제로 하고 있다고 할 수 있다. 바로 그렇기 때문에 이 두 그룹의 가운데에 한 단 높게 사랑과 아름다움의 여신 비너스가 군림하고 있는 것이다. 그리고 비너스의 머리 위헤서 춤추는 큐피트의 불화살은 정확하게 이 미의 세 여신 중 가운데 여신, 즉 순결의 여신에게로 향하고 있다. 봄을 그린 이 작품은 동시에 비너스의 승리를 소리 높여 노래한 사랑에 대한 찬가이기도 한 것이다.               <명화를 보는 눈> 에서 옮겨 옴.  다카시나 슈지 지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