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17 지금은 여행중 /1월 이탈리아

우피치 미술관 작품 해설 : 카라바조 < 젊은 바쿠스>

프리 김앤리 2016. 12. 16. 15:33

< 2017년 1월 투어야여행사 단체배낭, 품격 이탈리아 여행  준비 17>


<젊은 바쿠스> 카라바조 작. 1598년경. 우피치 미술관



카라바조는 강렬한 빛과 그림자의 대비로 감상자의 시선을 낚아채는 데 탁월한 바로크 화가였다.

사고뭉치에 주정뱅이였던 그는 술집에서 시비가 붙어 한 사내를 살해한 뒤 로마를 떠나 나폴리, 몰타 등을 전전하며 도망자로 살아야 했다.

 

워낙 뛰어난 그림 실력으로 도피 행각 중에도 여러 후원자의 도움을 받았으나, 가는 곳마다 사건이 끊이지 않았다.

자신을 사면할 것이라는 소문을 듣고 홀로 로마로 가던 중 도적의 습격을 받고 빈털터리가 된 상태에서도 무리하게 길을 가다 열병에 걸려 객사한다. 그때 그의 나이 서른일곱이었다.

 

그는 명암법에도 뛰어났지만, 탁월한 사실주의적 감각으로도 명성이 높았다.

종교화를 그리면서도 그는 다른 화가들처럼 예수나 기타 성인 들을 화려하고 멋진 옷차림으로 이상화하지 않고, 마치 저잣거리의 시정배처럼 그리곤 했다. 교회 측에서는 이를 난감해하기도 했지만, 오히려 소시민들은 성인들을 가까이 하기엔 너무 먼 존재가 아니라 자신들처럼 고통당하고 번뇌하고 핍박받는 이들로 공감할 수 있다는 점에서 열광했다.

 

젊은 바쿠스는 카라바조의 초기작으로, 그리스 신화에서 술의 신으로 알려진 바쿠스(디오니소스)의 모습을 담고 있다.

그의 머리를 뒤덮고 있는 포도나무 잎은 포도주와 연관되어 그가 술의 신임을 상기시킨다.

이 그림은 로마 체류 시절 그의 후원자였던 프란체스코 델 몬테 추기경이 자신의 친구 페르디난도 데 메디치에게 선물할 목적으로 주문한 것이다.

 

그림 속 바쿠스는 화가의 친구로 역시 화가였던 마리오 미니티를 모델로 한 것으로 보이는데, 술잔을 든 바쿠스의 손톱에 때까지 그린 것은 상당히 흥미롭다. 이 역시 늘 품위 있게 묘사되던 을 거리에서 볼 수 있는 일반인들의 모습으로 묘사한 탓이다.

 

바쿠스가 들고 있는 술잔 속 포도주는 막 술을 따른 듯 거품이 일었다.

그의 앞에 놓인 한 폭의 정물화 같은 과실들은 얼핏 보면 탐스럽기 그지없으나, 자세히 보면 신선함을 잃어가고 있다.

시간이 다해 모든 것이 사라지기 전 즐길 수 있을 때 즐기자는 뜻으로 읽을 수 있겠지만, 한편으로는 존재하는 모든 것은 언젠가는 사라진다는 허무함에 대한 은유이기도 하다.


[손 안의 미술관] 김영숙 지음.  #12. 우피치 미술관에서 꼭 봐야 할 그림: 젊은 바쿠스  에서 옮김




<참고> 다른 미술관에서 볼 수 있는 바쿠스

  아래 글은 제 블로그 http://blog.daum.net/freeleeandkim/1596에서 옮겨 왔습니다.

바쿠스(Bacchus)는 로마신화에 나오는 술의 신으로 그리스 신화에서는 디오니소스로 표현된다.

러시아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쥬 미술관에는 루벤스의 '술꾼들(The Drinkers)'이,  스페인 마드리드의 프라도 미술관에는 벨라스케즈의 '바쿠스의 승리'가 있다. 

 

디오니소스, 허벅지에서 태어난 미친 남자

 

▲ 벨라스케스, 바쿠스의 승리(술꾼들), 1629년     마드리드 프라도 미술관  room 11

 

술마시는 사람들, 술권하는 사회

요즘 가장 따뜻하고 신선한 광고 중 하나가 박카스 광고다. 박카스는 수년전부터 광고부분 대상을 수상해왔다. 수상 이유는 이 광고가 팍팍한 삶 속에서 그래도 세상은 살만한 곳이라는 환상을 심어주기 때문일 것이다. 때론 헛된 꿈일지언정 환상은 험한 세상을 건너게 해주는 다리가 되어줄 때가 있는 법이다. 거의 음료수처럼 마시는 이 의약품에 박카스라는 이름이 붙여진 이유는 무엇일까?

보통 박카스는 너무 지치고 힘들고 피로할 때, 그것도 정신보다는 육체가 좀 피곤할 때 한번씩 마시면 `반짝` 기운이 나는 약으로 알려져 왔다.

여기서 박카스가 바쿠스신과 연결되는 지점은 바로, `일시적인`, `순간적인`, `제정신이 아닌`이라는 의미일 것이다.

그런 의미에서 박카스 광고는 광고가 가진 당의정같은 효과 중 가장 그럴싸한 것이다.  사실 우리는 한 병의 박카스보다는 한잔 술로 잠시잠깐의 환상의 시간을 갖는다. 매일 밤 귀가를 포기하고 습관처럼 모여, 중독자처럼 술을 마시는 사람들이 적지 않다.

몇잔 즐기는 수준이 아니라, 거의 폭음의 수준이다. 
 
우리처럼 대리운전이 성행하고, 자정에 택시를 잡느라고 비틀거리며 대로에 몸을 던지는 사람들이 많은, 기이한 바로크적(?) 풍경을 연출하는 사회도 없다. 가히 어느 나라에서도 보기 힘든, 죽기 살기로 술 권하고, 술 마시는 사회다. 게다가 매일 밤 음주와 더불어 가무가 곁들어진 광란의 밤이라니! 매일 밤 바카스 축제를 치루는 나라, 디오니소스의 천국이 따로 없는 나라라는 말이다. 

 

 

▲ 줄리오 로마노와 제자들, 디오니소스의 탄생, 1530년(왼쪽) 타란토 국립고고학박물관,

   디오니소스의 탄생, 기원전 405-385(오른쪽) 


이렇듯 대한민국이 가장 처절하게 섬기는 신 바카스(바쿠스)는 디오니소스의 로마식 명칭이다.

그리스 로마 신화에서 바쿠스는 술의 신일 뿐만 아니라, 밤의 신, 도취와 광기의 신으로 통한다. 
 
그런 그는 태생부터 예사롭지 않다.

바로 제우스의 허벅지에서 태어났던 것!

제우스는 아내인 헤라 몰래 홀로 아테나를 머리에서 탄생시키더니, 급기야는 허벅지에서 디오니소스를 낳기에 이른다.

남자의 상징은 허벅지라고 하더니, 남성의 허벅지는 여성의 자궁 혹은 유방에 해당될 수 있다.

그런데 홀로 낳은 아이 아테나가 아빠 딸로서 사랑을 독차지하였던 것에 비하면, 디오니소스는 그다지 사랑을 받지 못했던 것 같다. 

디오니소스는 제우스와 인간 여인 세멜레 사이에서 잉태되었다.

세멜레 역시 카드무스(cadmus)라는 인간과 하르모니아(harmonia) 여신 사이에서 태어난 미모의 여자다.

임신한 세멜레에게 늙은 유모의 모습으로 나타난 헤라는 세멜레의 믿음을 통째로 흔들어 놓는다.

밤마다 오는 이가 진짜 신인줄 어떻게 알겠냐구, 그분께 본모습 그대로 와달라고 부탁해보라고!

사랑하는 사람을 의심하게 된 세멜레는 제우스에게 소원을 들어달라고 부탁한다.

제우스는 사랑하는 세멜레를 위해 스틱스 강에 대고 소원을 들어줄 것을 맹세한다.

"다음에 나를 찾아올 때는 천상의 모습 그대로 내려와 달라"는 세멜레의 소원을 듣게 된 제우스는 세멜레가 타죽을 것을 알지만 스틱스 강에 건 맹세를 어길 수 없어 들어주게 된다.
 
제우스는 어떤 신인가? 바로 밝음 그 자체, 광명 그 자체가 아니던가?

제우스임을 아는 순간 세멜레는 새까맣게 타죽게 된다.

제우스는 타죽어가는 세멜레의 뱃속의 아이를 꺼내 자신의 허벅지에 넣고 꿰매었다.

아마 이 당시에도 외과술이 발달했었나 보다. 제우스는 헤르메스로 하여금 이 아이를 인도에 있는 뉘사 산의 요정에게 보내어 기르게 했다.

이렇게 태어난 디오니소스는 `뉘사 산에서 자란 제우스`라는 뜻을 가지고 있다. 

그렇다면 디오니소스는 어떻게 술의 신이 된 것일까?

거의 버림받다시피 탄생이 기구했던만큼 그의 일생도 그다지 순탄치가 못했다.

디오니소스는 반인반수 사티로스의 일종인 실레노스의 입양아가 된다.

아비라기보다는 스승에 가까운 실레노스는 현자로 알려져 있는데, 포도즙 짜는 기술, 그야말로 포도주 만드는 귀재였다.

실레노스로부터 포도주 만드는 기술을 습득한 디오니소스는 늘 술에 취해 있는 스승을 모셔야했고, 자신 또한 자연스럽게 폭음을 즐겼다.
 
이런 디오니소스는 다른 신들과는 달리 그리스의 방방곡곡을 떠돌아다니면서 자신이 진짜 신이라는 것을 사람들에게 설득하지 않으면 안 되었다. 보통은 포도주를 어떻게 만드는가를 사람들에게 보여 주기만 하면 되었지만, 이따금 따로 기적을 실현하거나 몇 사람을 죽이지 않으면 안되었다.  이렇듯 그리스에서 디오니소스 숭배가 퍼진 곳은 포도가 재배되는 곳과 정확히 일치한다. 

 

 

▲ 티치아노, 아리아드네의 바카날리아, 1523-1525년 
 
디오니소스 숭배는 민간에 뿌리를 둔 신앙이어서 귀족 취향의 호메로스를 비롯한 서사시인들에겐 그다지 인기가 없었다.

특히 디오니소스 신앙이 갖고 있는 광기는 이성과 합리적 사고를 중시하는 지식인들에게는 원시적이고 위험천만하게 느껴졌을 뿐이다.

그래서 호메로스는 디오니소스를 신의 반열에 올리기를 꺼려했던 것! 
 
이처럼 디오니소스는 서사시인과 귀족과 같은 문화적인 엘리트보다는 민중을 위한 신이었다.

민중들에게 술과 축제로 대변되는 디오니소스는 일상생활에서 오는 근심과 걱정, 노동의 고통을 잊게 해주는 고마운 신이었다. 

 

 

   

▲ 귀도 레니, 술마시는 바쿠스, 1623년경(왼) 카라바조, 병든 바쿠스, 1593년(오른쪽
 
서민들에게 이런 일상으로부터의 해방감을 맛보게 해주는 이 신은 다른 어떤 올림포스 신보다도 중요했던 것이다.

특히 가부장적 제도 속에 억압받는 제2의 시민계급인 여자들에게 술과 광란의 춤은 스트레스와 불만을 토로할 수 있는 거의 유일한 합법적 장치였다.  따라서 초창기 이 신앙의 신도들이 거의 모두 여자였던 것은 당연하다.
 
게다가 디오니소스를 추종하던 이 특별한 여성들은 그리스어의 `미친`이라는 말에서 유래한 `메나드스`(manads: 영어의 mad도 여기서 나온다)라고 불리었다. 그리고 `튀아데스`(Thyades) 혹은 소아시아의 뒤디아 말로 `박코이`(Baccoi)라고 불렀다.

바로 이 명칭에서 디오니소스의 로마식 이름인 `바쿠스`(Bacchus)가 유래한 것이다. 이로써 디오니소스 축제는 디오니시아(Dionusia) 혹은 디오니소스의 로마 이름인 바쿠스를 따서 `바카날`(술 취해 떠드는) 혹은 `바쿠스 축제`(Bacchanalia)라는 이름으로 널리 알려지게 되었다.
 
모든 술 마시는 그림들, 술 취한 장면을 그린 그림은 디오니소스 신과 관련되는 것이다.

주지하듯 술은 단순히 술이 아닌, 밤과 광기와 도취와 파괴와 깊은 관련이 있는 법! 특히 디오니소스가 직접 드러난 작품은 때론 장난스럽고 유머스럽게, 때론 술의 끝이 어떤지에 대해 경고성 발언을 서슴지 않는다. 
 
귀도 레니가 그린 <술 마시는 바쿠스>에서 아주 어린 바쿠스는 얼마나 귀여운지, 어린 시절 술맛이 궁금해 달짝지근한 막걸리를 아버지 몰래 살금살금 마셨던 기억을 떠오르게 한다. 게다가 이 어린 신은 술을 마시는 동시에 오줌을 지리고 있다. 술과 오줌의 관계, 또한 얼마나 직설적인가?  그리고 카라바조의 <병든 바쿠스>는 마치 간암환자처럼 병색이 완연한 소년의 모습을 통해서 술을 마시는 사람의 말로가 어떤지를 적나라하게 보여준다. 사실, 이 그림은 술 취해 싸움을 일삼았던 화가 자신의 자화상인 동시에 당시 종교개혁에 반대하는 반종교개혁적인 그림이다. 
카라바조의 스폰서는 추기경들이었으니 자연스럽게 가톨릭의 부흥을 넌지시 암시하고 있는 것이다.

어떻게? 검은 포도는 신교를, 화가자신이 들고 있는 하얀포도는 구교를 나타내면서 말이다. 


▲< 바쿠스 > 루벤스 작 1638-16440      상트 페테르부르크 에르미타쥬 미술관   Room 247
 

또 하나 루벤스가 그린 술 취한 디오니소스 또한 아주 흥미로운 그림에 속한다.

오늘날 우리 사회에서 "술을 많이 마시면 술배가 나온다"는 말을 생각나게 할만큼 디오니소스의 유방과 뱃살이 장난이 아니다. 
 
루벤스는 세 미의 여신을 그려도 셀룰라이트를 적나라할 정도로 기막히게 그려내는 화가다.

이런 그림들은 고전주의회화처럼 더 이상 대상을 미화시키지 않고 현실을 드러내고자하는 바로크적 회화 중 단연 으뜸에 속한다. 
 
그러고 보니, 여기 소개한 그림과 더불어 많은 술 취한 그림들이 17세기 바로크부터 18세기를 거쳐 많이 제작되었다.

디오니소스 신은 자신이 활동했던 당대에는 천대받았지만 근대에 더불어 부활하고 있음을 보여주는 것이다.


이데일리 2012년 5월 29일자 미술평론가 유경희 씀

http://www.edaily.co.kr/news/NewsRead.edy?SCD=JI41&newsid=02072966599533840&DCD=A404&OutLnkChk=Y