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127(8월 4일) 액상 프로방스와 칸느, 그리고 니스를 돌아

프리 김앤리 2009. 8. 8. 05:28

프랑스 이 넓은 땅에서 아비뇽에서 액상프로방스까지는 그리 멀리 않은 길이었다.

지도를 보면 바로 옆에 있는 것 같은...

 

그런데 초보운전(? 유럽에서의 초보)자들에게는 녹녹한 길이 아니었다.

아침에 아비뇽을 나설때는 세잔느와 고호의 무대인 액상 프로방스에 금방 도착해 라벤더 향기를 맡으면서

거리를 걸어가고 있을 것이라는 꿈에 부풀어 길을 나섰다.

 

그러나...

아비뇽을 빠져 나가는 일부터 어려웠다.

톰톰(우리가 대여해 온 네비게이션 이름)과 한참을 씨름하다 겨우 액상 프로방스에 도착했건만

도대체 시내 어디를 어떻게 돌아다녀야 하는 지 난감.

 

시내를 빙빙 돌다 겨우 인포메이션 센터를 찾았건만

이제는 차를 어디다 주차해야 되는지 또 고민.

겨우 주차장을 발견해 차를 세워놓고는

사람없는 주차장에 주차비를 어떻게 계산해 놓고 가야하는지,

영화에서나 보던 길거리 주차장 주차 기계에 돈을 어떻게 넣어야 하는지, 그 주차표에 쓰인 말들은 또 무슨 의미인지...

모르는 것 투성이었다.

 

액상 프로방스 시내에 나선 시각이 이미 1시 30분.

원래 우리의 원대한 계획은 액상 프로방스를 보고, 라벤더 향기가 가득한 끝없이 펼쳐진 보라색 꽃밭을 지나

칸느... 니스... 모나코까지 갈 생각이었건만...

 

인포메이션 센터에서는 라벤더 꽃밭을 보기에는 우리가 너무 늦게 왔단다.

7월 중순에나 와야 한다고... 이미 꽃은 다 졌다고...

....

보라색 라벤더 꽃밭은 물건너 간 이야기이고...

그래도 세잔느의 고향, 고호의 미술 무대였다는 액상 프로방스라도 제대로 봐야겠지?

 

길을 나섰다.

이미 제법 늦은 시간이기는 하지만...

 

세잔느의 동상 앞에서.

그림 도구를 등에 지고 산으로 들로 나가 자연을 그려낸 세잔느가 떠오른다.

그림을 좋아하는 언니는 한껏 들뜨고... 

 

세잔느의 길을 따라 나선다.

도로 곳곳에 세잔느 길을 나타내는 청동 표지판이 바닥에 붙어 있다.

이 길을 따라 가면 세잔느가 태어난 집, 세잔느가 살았던 집, 자주 가던 까페, 그가 그렸던 그림의 무대... 세잔느 가족의 집...

이 나온다.

 

세잔느가 생전에 걸었던 길을 따라 우리도...

 

그런데 이것 역시 쉬운 게 아니다.

가다가 청동 표시 마크가 없어지기도 하고...

길을 걷다 보이는 메론쥬스, 오렌지 쥬스에 넋을 빼앗기고...

언니가 처음 본다는 크레페를 먹기 위해 또 시간을 뺏기고...

 

칸느, 니스, 갈 길은 먼데

벌써 오후 3시다.

차 앞쪽 창에 올려 놓은 주차증은 오후 3시 30분까지만 끊어놓았는데...

다시 그 곳까지 가서 차를 찾아야 하는데...

 

이동성과 속도성을 가져 최상의 여행을 줄 것이라고 환상을 가지고 있었던

우리의 차가 오히려 우리의 마음을 제약하고 있었다.

그냥 여행이라면 여기서 머물러도 되고,

짐도 숙소에 맡겨 두었거나 아니면 락커에라도 넣어두어서 걱정이 덜 할텐데...

차 안에 두다 보니 그것도 걱정되고.

 

(우리 차 번호 판은 빨간색이다. 리스라는 표시다.

 그런데 돌아다니다 보니 빨간 색 번호판을 단 차는 단 한대도 보이지 않는다.

 우리 차가 리스라는 걸 광고하고 다니는 거다.

 우리 나라에서는 괜찮겠지만

 여기 유럽에서는 차를 리스 하고 있다는 것은 여행자라는 것을 스스로 알리는 꼴이 되어

 차 안에 짐을 두는 행위는 위험하다고 하도 책들에서 떠들어놔서...

 열어봐야 맨 빨래 밖에 없는 가방을 두고도 차 안에 두었다는 이유만으로 괜스레 걱정이다.

 안그래도 언제 그랬는지 차를 리스한지 이틀도 안되어 벌써 운전석 옆의 차 문을 누가 날카로운 칼 같은 것으로 긁어놓기까지...)

 

뭐든 처음 하는일은 쉬운 게 없다.

 

갈 길이 멀어 액상 프로방스를 보는둥 마는 둥 그냥 길을 떠났다.

세잔느의 길을 따라 걷는다는 게

세잔느의 예술적 감각을 함께 떠올리며

그림의 영상들을 떠올릴 수 있어야 하는데

직접 그림을 보고서도 감동을 완벽하게 불러 일을킬 줄 모르는 그림의 문외한들이

단지 세잔느가 살았다는 곳, 세잔느가 걸었다는 길에서는 그다지 감동이 일지 않는거다.

 

아니 여유가 없었다는 표현이 더 맞을지 모른다.

갈 길이 멀다는 생각에서..

정확하게 확실히 다음 목적지까지 갈수 있을까하는 걱정도 있고.

 

그래도 기껏 생각해낸 게

"봐라, 세잔느의 동상을 보면 세잔느는 집에 가만 앉아서 그림을 그린 건 아니다.

 이 길을 걸어다니면서 영감을 얻어서 그림을 그린게 아니라.

 그림 도구들을 등에 지고 산으로 들로 나갔다는 거 아니겠냐?

 그런데 우리가 지금 여기서 헤매어서 되겠냐?

 세잔느의 그림에 자주 등장하는 액상 프로방스의 외곽에 있는 쌩빅투와르 산을 찾아가 보는 게 더 낫지 않냐?

 어짜피 라벤더 밭도 볼 수 없다는 데, 쌩 빅투와르 산이라도 찾아가는 드라이브를 하면 어떻냐???...."였다.

그런 생각을 해 낸걸 스스로들 대견해 하면서 쌩 빅투와르 산을 찾아갔다.

 

쌩 빅투와르 산을 찾기는 했는데...

멀리서 언뜻 보니 세잔느의 그림에서 봤던 것 같은 바위 투성이의 산을 발견하기는 했는데....

거기까지 또 어떻게 차를 몰아 찾아간 것 까지는 좋았는데...

 

차를 세워놓고 산길을 잠시 걸어가고 있는데

어디선가 프랑스 경찰이  부리나케 우리를 뒤따라 온다.

"여기는 출입금지"란다.

이건 또 웬 황당한 시츄에이션?

"이 곳은 지금 시즌에 불이 자주 나는 위험한 지역이라서 전면 출입 금지"란다.

그럼 어디서 쌩 빅투와르 산을 볼수 있냐니까

또 이리저리 돌아가라는 말을 한다.

아이구!!!

 

안되겠다.

그냥 가자.

햇빛 가득한 지중해 해변으로 그냥 가자.

액상 프로방스도 제대로 못보고, 세잔느도 잘 못 느끼고, 그림의 배경은 가까이 가보지도 못하고

라벤더 향기는 맡아보지도 못하고....

시간만 자꾸 간다.

그 때 시각이 이미 5시가 다 된 시각.

그렇다고 점심을 화려하게 먹은 것도 아니다.

온갖 프랑스 개들이 똥을 쌌는지 오줌을 갈겼는지도 모르는 풀밭 옆에 쭈그려 앉아 빵쪼가리에 참치, 토마토밖에 먹지 못했는데...

 

그래도 그냥 가자.

햇살 가득한 지중해 해변으로 내려가서 오늘 밤은 달빛 은은한 데서 맥주를 마셔보자... 며 다시 길을 떠났건만...

 

이놈의 길 찾기는 왜 이리 어려운지.

부루스 윌리스같은 유명 연예인들이 자주 찾는다는 화려한 해변 '쌩 트로페즈'를 찾아가는 길이 또 왜이리 어려운지.

 

네비게이션 톰톰이 시키는 대로 따라갔다가 안가도 될 마르세이유까지 갔다가 다시 돌아오길 반복.

유럽에서 제일 비싸다는 프랑스 도로비만 진탕 물고 여전히 액상 프로방스 언저리를 맴돌고 있었다.

해는 벌써 뉘엿뉘엿 서산을 넘어가고 있는데.

 

그래도 쌩트로페즈를 가기만 가면 멋진 해변이 나타나겠지, 화려한 저녁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겠지...

꿈꾸며 운전을 하면 쌩쌩 달려가는데...

또 이건 무슨 일.

8월의 지중해 해변을 가는 길은 휴가차량이  온통 가득한, 꽉 막힌 도로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슬 불안한 생각이 들기 시작하는데

남자 둘은

"무슨 쌩 트로페즈냐, 거기 가면 뭐 볼 게 있을 것 같냐, 유명인들이 간다고 거길 꼭 가야겠냐..."며 툴툴거리기 시작.

조그만 차 안에서는 안보이는 신경전이 벌어지기 시작했다.

 

그렇게 도착한 쌩 트로페즈는 한마디로 휴가를 떠나온 프랑스 인들로 엄청 붐비고 있었다.

그 때가 이미 저녁 9시 30분을 넘긴 상태.

다른 이들은 벌써 자리를 잡고 우아하게 레스토랑에서 와인을 마시고 있는데...

 

숙소는 당연히 하나도 없고. 조그만 해변 마을 '쌩트로페즈에 딱 하나 발견한 남은 방은

스위트룸이라는 이유로 거금 800유로를 요구한다.

800유로라니! 돈이 얼마야? 150만원?

미치겠다.

미치겠다.

이미 날은 어두워졌는데. 우리더러 어디로 가란 말이야!

니스는 커녕 칸느 근처까지 가기도 힘들다. 이미 너무 늦은 시간이라 .

이제는 어디라도 이 지친 몸들을 뉘일 방 하나를 구하는 게 발등의 불이다.

쌩 라파엘, 쌩 막심... 이름도 처음 들어 본 해변 마을들을 돌아다니며 방을 구해보건만 모두 full이란다.

이 성수기에, 아무 예약도 없이 지중해 해변을 찾아나선 용감하고도 무식한 한국 사람들을 비웃기라도 하듯

모두들 모두들 방이 없단다.

방이 없다는 말에 풀 죽어 뒤돌아서는 우리 등 뒤에 대고 'Good Luck!'란다.

하긴 밤 10시 넘어서 휴가철에, 지중해 해변에서 방을 구한다면 그것은 Good Luck 이다.

 

배는 고프고.

일단 밥이라도 먹자.

어디가 어딘지도 모르는 해변의 스낵바에서 맛도 없는 스파게티와 피자를 거금 45유로(8만원정도)나 주고 먹고서

또 한참을 더 달려 보았지만...

 

우리가 내릴 수 있는 결론은 이제 하나 밖에 없었다.

차!

차안에서 4명이 잠자기!

아이슬란드에서 물론 차안에서 잠을 자기는 했지만 그때는 2명이었지, 지금은 4명이다.

그래도 어쩌랴?

이슬내리는 밖에서 잘수는 없잖아?

하루종일 땀에 절은 더러운 옷을 입은 채

겉으로는 서로가 서로를 위로하며, '이런 여행도 한번 해 봐야 되지 않겠냐'며 웃으며 다독거리고 있었지만

사실은 누구하나라도 잠깐 말 실수라도 하면 터져버릴 지 모르는 신경전과 긴장감을 가진 채...

몸을 어떻게 한번 돌리지도 못하고 꼬박 앉은 자세로 밤을 보냈다.

그 좁은 차 안에서...

' 아이구 , 이게 무슨 생고생이냐구요'

 

그래도 아침은 옵디다.

몸이 찌뿌둥 하거나 말거나, 입안이 깔깔하거나 말거나 아침은 옵디다.

 

어젯밤의 피곤함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원래의 계획대로 햇빛 찬란한 지중해 해변으로 떠나려고 했다.

이제 부터 새로운 여행이 시작되는 것 처럼...???

 

이번엔 차가 움직이지 않는다.

새로 나온 이 차가 워낙 좋은(?) 차라 자동차 바퀴의 압력까지 계기판에 다 나오는데

뒷 바퀴의 바람이 좀 빠졌다고 꼼짝하지 않는 거다.

 

한국 같으면 그래도 살살 운전해서 조그만 정비소라도 찾아 바람빠진 바퀴에 바람만 조금 불어넣으면 되는데,

아니면 무슨 문제가 있다해도 빵구를 떼우기만 하면 되는데...

이건 계기판에 빨간 불이 깜빡거리기만 하면서

무조건 문제를 해결하란다.

차는 꼼짝도 않고서.

 

알고 보니 뒷 바퀴에 못이 하나 박혀 있었다.

그렇게 오랫동안 운전을 해도 차에 못이 박히는 일 따윈 그동안 딱 한번 있었을 뿐인데.

여기 프랑스까지와서 고작 운전 사흘만에 뒷 발통에 못이 박히다니.

더구나 차는 한발짝도 나서주질 않는 상황에서

 

하는 수 없이 차량을 인수할 때 받은 빵꾸떼우기(이 차엔 스페어 타이어가 없고 이런 걸 주더라구. 차를 받으면서 이걸 쓸

일이 있으리란 건 상상도 안했는데...)를 이용해 스스로 바퀴의 빵꾸(이 단어가 맞나?)를 떼우고 바퀴에 압력까지 빵빵하게

채웠다.

 

별 일을 다 해본다. 한국에서도 한번 해 본 적 없는 일이다 .

참, 여행이란 게 별 걸 다 경험하게 한다.

 

이제 다 끝났다.

간밤의 공포에서도 벗어나고, 차 펑크도 고치고,

그 와중에 니스에 있는 르노회사 정비소까지 찾아가 빵꾸떼우는 키트(Kit)도 다시  하나 더 마련까지 하고.

화려하진 않지만 빵과 시리얼로 아침까지 다 먹고...

 

이젠 다 끝났다 .

다시 아무렇지도 않은 것 처럼 신나는 여행을 떠나기만 하면 된다 .

조금은 황당하고 신경질도 나지만...

 

프랑스의 남부 해안. 지중해 해변. 이름하여 꼬뜨 다쥐르 지방.

참 아름답다.

해안에 정박해 놓은 저 많은 요트들.

 

지중해 푸른 바다에도 두둥실 요트들이 떠있고...

 

우리도 깐느 해안가를 돈다.

 

니스 해안이 가까워져 온다 .

우리의 얼굴에도 다시 미소가 돌고.

 

해안 마을 앙티브에서는 신선한 야채와 과일이 가득한 아침 시장도 만났다 .

복숭아도 사고, 체리도 사고...

다시 신이 난다.

우리는 지금 지중해에 있다.

 

니스를 지나 모나코로 가는 길.

그림같이 이쁘다.

점점 더 기분이 업되고 있다.

언니는 이번 여행중에 가장 아름다운 장면을 보는 것 같단다.

 

어느 새 다시 기분이 좋아진 우리 모두는 '앉아봐라, 사진 찍어주께'를 연발하며

아름다운 경치에 푹 빠져 들었다.

 

여행이 고마운 건 바로 이런 거다.

아주 사소한 것, 작은 것 하나에 감사하게 하고 기뻐하게 하고, 그래서 즐겁게 만드는 것.

늘 주변의 것들에 고마움을 느끼는 것.

'여행의 비밀'이다. 

 

많은 사람들이 여행을 왜 하느냐고 묻는다.

여행의 비밀을 느껴본 사람만이 여행을 즐겨한다는게 우리의 지론이다.

자유를 원하는 여행에서 완벽한 계획은 없다.

그래서 우리는 큰 틀의 계획과 방향만 세우고 간다.

 

아주 많이 준비하고 철저한 계획을 세워도,

여행중에 예기치 못한 행운과 잇따른 불행을 접하게 된다.

행운은 즐기고 부딪치는 장애물은 극복하면서 여행을 한다.

우리의 삶이 그렇듯이...

우리의 여행이 이렇듯이...

 

 

 

저 아래로 모나코를 지나면서.

(원래는 모나코에 내려가서 잠시 쉬다가 가는게 우리의 계획이었는데...

 이구동성으로 그냥 지나치잔다 .

 오늘 저녁에는 방 구하는 고생을 덜하려고, 어서 빨리, 해가 있는 시간에 다음 목적지에 도착하자고... ㅋㅋ)

 

환상의 드라이브 코스를 지나...

우리의 여행은 쭉 이어진다. 

 

오늘 !!! 이런 시간을 가지게 된 걸 모두에게 감사하면서....

두개의 시간과 공간을 즐기면서

우리는 낯설고 새로운 것을 만나러 간다..

 

(무모함과 황당함이 이어지는 이틀동안의 사진은 그래서 별로 없다.

 세계 유명인들이 많이 찾는다는 쌩 트로페즈의 사진도, 쌩 라파엘도 쌩 막심도

 ...그리고 니스도 칸느도...

 사진을 찍을 마음의 여유도, 사진을 서로 찍어주겠다는 배려도 마음먹기 짜증나는 이틀이었기 때문이다.

 물론 우리들의 눈 속에는 다 담아두었지만...

 - 사실 아무리 여행중이라도 마음의 눈으로 세상을 바라보니

   그렇게 아름답지는 않았을지 모른다-

 덕분에 이렇게 말로만 주절주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