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05 (10월21일) 세르비아의 수도 베오그라드에서

프리 김앤리 2009. 10. 23. 04:49

  베오그라드에 들어왔다.

  발칸반도 나라, 세르비아의 수도다.


  ‘베오그라드’

  이 도시는 왠지 그냥 베오그라드라는 단어 단독으로만 떠오르지는 않는다.

  항상 다른 단어가 덧붙어 있어야 더 익숙하다.

  ‘베오그라드 침공’, ‘ 베오그라드 공습’, ‘밀로세비치와 베오그라드’...

  그것이 언제 일어난 침공인지, 누가 누구를 공습했는지, 밀로셰비치가 저지른 악행이 어느 민족에게

  어떻게 했다는 것인지... 늘 헷갈리고 정리가 안되는 세계사의 한 장면들과 함께 떠오르는 곳이다.

 

  1990년 어느 즈음부터 끊임없이 신문에 오르내리던 발칸반도 나라들.

  화약 냄새가 진동하는 곳,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전쟁터...

  그곳의 이야기는 내전, 전쟁, 공습, 인종청소, 난민, 죽음과 같은 늘 비극적인 것들이었다.

  그리고 그 뉴스들의 중심에는 항상 ‘베오그라드’가 있었다.

  솔직히 말하면 그들의 비극적인 이야기가 한번도 진정으로 나의 슬픔이 되어 본 적은 없었다.

  아프카니스탄 난민이건, 코소보 난민이건,

  세상 어느 곳에선가 일어나고 있는 슬픈 현재가

  몇 십년전 베트남 난민 이야기가 그냥 그대로 흘러가 지금은 과거가 되어 있는 것처럼

  나의 의지와 상관없이 일어나고 정리되는, 남의 나라 이야기처럼 흘려듣고, 잊어버리고 지내왔다.


  베오그라드.

  지금은 세르비아의 수도이지만 예전에는 유고슬라비아연방의 수도였다.

  유고(Yugo)라는 단어는 슬라브어로 남쪽이라는 뜻이다.

  따라서 유고연방이란 동쪽의 러시아, 서쪽의 폴란드 체코 등과는 다른  발칸 반도의 남쪽에 위치한  나라들의 연방이었다.

  현재의 나라들로 치자면 세르비아, 마케도니아,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 코소보,  보스니아 헤르체고비나의 7개 국가다.

  (유고연방 결성 당시는 마케도니아와 세르비아가 한 나라로 모두 6개 공화국 연방이었다. )

 

  발칸의 남쪽, 그 땅은 사람이 살기 시작한 아주 먼 옛날부터 주변의 강대세력들에게는 욕망의 땅이었다. 

  로마제국이 동쪽으로의 세력확장을 위해서도, 오스만 투르크족이 서방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도...

  오스트리아 - 헝가리 제국이 남쪽으로 진출하기 위해서도...

  그리고 19세기에 들어서부터는 동쪽으로 진출하려는 독일제국과 서쪽으로 진출하려는 러시아제국주의,

 동서쪽의 강대국으로 이리 밟히고 저리 채이면서 

 끊임없이 침략당하고 지배받고, 항거하고 독립하고 다시 침략받고...

  비극적 역사의 굴레가 쉬지않고 돌아가는 곳이었다.

 

  이차대전 이 일어나자 티토를 중심으로 수만명의 레스스탕스가 독일 나찌에 강력하게 저항했던 유고슬라비아.

 이후 이들은 티토를 중심으로 유고연방을 설립하고,  서방의 자본주의와는 당연히 다른 사회주의체제를 지향하면서도 

 소련과도 또 다른 독자노선을 걷는다. 

 

  그러나 그들만의 연합이 그들을 끝까지 하나로 묶어놓지는 않았다. 

  다른 강대국들의 욕망에 더이상 침략받지 않고 스스로의 강력한 연합을 원했던 유고연합이었지만

  그들 내부는 너무나 서로 다른 요소들이 있었던 것이다. 

  6개의 국가가 하나의 가치로 통합되어 있다는 것은 끊임없는 각 나라의 독립에 대한 열망이 잠재되어 있을 것이고

  같은 국가 내라 하더라도 민족 구성도 다르고 서로가 믿고 있는 종교도 달랐다.

  서로마 제국의 영향을 맏은 슬로베니아나 크로아티아는 가톨릭과 기독교인들이 많았고,

  동로마 제국의 영향을 받은 세르비아, 마케도니아는 정교회를 중심으로,

  오스만 투르크의 침략이후 개종한 이슬람교도가 많았던 코소보나 보스니아...

  인간에 대한 구원과 사랑의 실천이라는 같은 지향점을 가지고 있는 종교라고 하더라도

  타인의 종교는 인정하지 않았다.

 

  나라는 하나였지만, 민족도 다르고 종교도 다르고 ...

  각 나라들은 각각의 민족 독립을 위해 시위를  벌이기 시작하였고, 세르비아 민족주의 중심세력들은 이들의 독립항거를

  탄압하고, 또 같은 나라내에서 종교가 다른 집단들은 서로 상대를 인정하지 않으려 했다.

  한 나라안에서도 내전이 벌어지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일이 끔찍한 일이 일어났다.

 

  크로아티아, 슬로베니아의 독립전쟁, 보스니아 내전, 코소보 자치주의의 민족독립문제,

  대부분이 유고연방의 중심이라고 자처하는 세르비아 민족주의에 대한 저항이자 스스로의 독립을 위한 항거였지만

  세르비아 민족주의자들은 이를 인정하지 않고 무자비한 탄압과 공습으로 수많은 생명의 목숨을 빼앗았다.

  그래서 1991년에 유고연방으로 부터 독립한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등 같은 나라에서는

   자신들의 가족을 이웃을 살해한  세르비아에 대한 감정이 남아있는 상태다.  

   1995년에는 독립한 보스니아에서도 마찬가지다.

   그저 얻어진 독립이 아니기 때문이다.

 

   가장 최근의 전쟁은 코소보 사태였다.

   코소보는 중세 세르비아 왕국이 처음 세워진 발원성지였으나, 터키 제국이 세르비아 왕국을 점령한 이후

   코소보에 알바니아인을 집단 이주 정착시키면서 민족 종교적으로 알바니아인과 세르비아인 간의 갈등이 발생해왔다.

   1945년 티토 주도하의 구유고슬라비아 성립 후에는 코소보에 자치주의 지위를 부여하였으나,

   1989년 밀로세비치 세르비아 대통령은 '위대한 세르비아 건설'이라는 민족주의적 기치아래 코소보의 자치권을 박탈해 버린다.

   코소보 알바니아인(전체 주민의 90%)는 이에 대항하여 세르비아로부터 독립을 요구하였고

   양민족간 갈등은 증폭되었다.

 

   이후...

   코소보 공화국 선포, 코소포 알바니아계의 코소보 해방군 결성과 무장투쟁, 세르비아군의 코소보 해방군 소탕작전...

   코소보 분리주의자들과 세르비아 공화국 경찰과의 무장충돌, 코소보 알바니아 인들의 대규모 시위, 세르비아의 강경진압...

   소위 인종청소를 한답시고 밀로세비치가 코소보에 대한 무자비한 테러, 여성에 대한 성폭력이 자행되고

   대규모 코소보 난민들을 양산하였다.

   죽어도 너무 많이 죽었다.

   인간의 목숨이 파리 목숨처럼 날아가고 건물은 와르르 부숴줬다.

   하루 아침에 가족이 이웃이 죽어가는 모습을 지켜봐야 했다.

 

   결국 1999년 미국을 중심으로 한 나토군이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를 공습하여, 코소보 내의 세르비아 군은 철수하고

   코소보에는 나토 평화유지군이 들어갔다.

   지난 몇 십년동안 크로아티아에, 보스니아에 그리고 코소보에 퍼부어졌던 폭탄들이

   이제는 반대로 세르비아의 베오그라드에 퍼부어졌던 것이다.

   어제는 이 나라 사람들이,  오늘은 다시 이쪽 나라 사람들이 죽어가는 끔찍한 현실이 매일 매일 반복되던 곳이 바로 이땅이었다.

   해방군이라는 이름으로 나토가 베오그라드를 공습하였지만

   베오그라드 시민들에게는 나토 역시 자신들의  가족과 이웃의 생명을 앗아가버린 적군에 다름 없었을 것이다.

 

    **1999년 10월에는 몬테네그로도 연방에서 탈퇴하고 사실상 유교연방은 완전 해체되고

      밀로셰비치 역시 학살자의 죄명으로 2001년 세르비아 경찰에 체포되어  네델란드 헤이그로 이송되어 전범으로

      재판을 받던 중 2006년 3월 감옥에서 사망한다.***  

   

   (사실, 발칸국들의 아주 오래된 역사를 나도 여기와서 많이 공부하게 되었다. 그전에는 늘 헷갈리는 상태...

    너무나 길고, 너무나 많은 내용을 여기에 다 적을 수는 없고 아직 정리가 완전하게 된 것도 아니다.

    그래도 여행이 참 기특하다.

    그 전에는 그리 신문을 열심히 보고, 책을 읽어도 이해도 잘 안되고 그나마 조금 이해 되었다가도

    시간이 지나면 또 다시 까마득하게 잊어버리는데 여기 와서 발칸나라들의 역사를 공부하니 훨씬 빨리 이해된다.

    여행은 참 기특하다.)

 

   그로부터 다시 10년이 지난 오늘.

   우리는 역사의 현장 베오그라드에 들어왔다.

    

지금의 베오그라드는 언제 그런 아픈 역사가 있었냐는 듯 아주 평화롭다.

다뉴브 강이 내려다 보이는 베오그라드 요새 공원에서 쉬고 있는 어르신들.

이들은 엄청난 비극의 역사를 온 몸으로 안아오신 분들일꺼다.

선명하게 자신들의 기억속에 그 과거를 가지고 있으신 분일께다.

 

그러나 지금은 아주 평화롭게... 따사로운 햇살을 받으며 가을의 오후를 즐기고 있다.

 

그리고 다뉴브강과 사바강을 내려다보는 젊은이들.

이제 겨우 스물을 넘긴 것 같은 나이의 청춘들.

오늘의 베오그라드는 너무나 평화롭다.

 

이들은 '화약고'의 나라를... '전쟁터' 와 같았던 피비린내 나는 역사를 알고 있을까?

자기네 나라가 이민족들에게 저지른 과거의 일들을 알고 있을까?

물론 알고 있겠지...

그리 오래된 역사도 아닌데...

 

유고 연방에 해당하는 나라중에서는 세르비아를 처음 여행했다.

크로아티아나 슬로베니아, 마케도니아등은 아직 가보지 않아서 잘 모르겠지만

여기 베오그라드는 예전에 유고 연방의 수도 였다는 것이 도심 곳곳에서 보인다.

똑 같은 사회주의권이었던 루마니아나 불가리아에서 서방의 다른 자본주의와 비교해서 느꼈던

아직은 한참 뒤떨어진 것 같은 발전의 정도를 베오그라드의 도심에서는 전혀 찾아볼 수가 없다.

한때는 유고연방의 가장 중심 도시 답게 도심이 시원시원하고

통(?)도 훨씬 더 큰 것 같다.

 

사진은 베오그라드 중심 거리의 현대식 건물 창문에 비춰진 교회건물.

 

다뉴브(Danube)강과 사바(Sava)강이 만나는 지점 언덕위에 세워진 베오그라드 요새(Beograde Fotress).

윗성과 아랫성, 그리고 칼레메그단(Kalemegdan)공원으로 이루어진 엄청난 넓이의 요새다.

베오그라드의 무게가 느껴지는 엄청난 곳이었다.

타워의 한쪽에는 군사박물관이 있는데 세르비아의 대포는 물론이고 다른나라에서 포획한 장갑차, 탱크등도 전시되어 있다.

 

크다. 엄청나다.

그냥 베오그라드가 아니다.

베오그라드 성에서 우리 둘이 동시에 받은 느낌이다.

이 요새에서 내려다 보이는 다뉴브강과 사바강,그리고 끝없는 평원

그리고 엄청난 규모의 베오그라드 도심 전체에서 우리가 받은 느낌이다.

대단하다.

 

이 곳이 과연 얼마전까지만 하더라도 발칸 반도 전쟁의 중심에 서있었던 곳이 맞단 말인가?

그리고 10년전 매일 밤 머리 위로 나토의 폭탄이 수백㎏씩 쏟아져 수 많은 사람들이 죽어갔던 곳이 맞단 말인가?
폭탄 공습으로 다뉴브강 다리가 무너지고 건물이 부서지고...

 

그러나 오늘의 베오그라드는 지금까지 우리가 여행했던 서유럽의 여느 나라와 마찬가지로

자유로운 분위기, 평화로운 향기가 가득한 곳이다.

 

그러나 역사는 결코, 지워버릴 수는 없는 것.

베오그라드 중앙역에서 쭉 뻗어있는 네마뉘나(Nemanjina)대로를 올라가다 보면 길 양쪽에는

나토 폭격에 의해 부숴진 건물이 그대로 남아있다. 

 

창문은 다 부숴지고 건물의 일부도 무너져 내린 모습이다.

그렇게 번화한 거리에 다 부숴진 건물을 허물지 않고  그대로 두고 있다.

'잊지 말자'고 ' '베오그라드에 가해진 공격이 어떠한 것이었는지 절대로 잊지 말자'고 그대로 두었단다.

밀로세비치가 코소보에 가한 공격과 테러도 나쁜 것이었지만

나토가 베오그라드에 가한 공격도 마찬가지라는 것을...

인류가 다른 인류의 목숨을, 그들의 삶을 짓밟은 것이 얼마나 비극적인 가를 알려주기 위해 그대로 두었단다.

 

지금의 자유롭고 평화스러운 분위기가

얼마나 많은 사람들의 생명을 빼앗고 그들을 절망적으로 만들었는지를

스스로 반성하고 다른 사람들에게도 교훈을 주기 위한 것일게다.

 

평화!!! 얼마나 중요한 것인가?

지금도 아프카니스탄이나 파키스탄, 코소보는 여전히 여행 금지국가이다.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내전과 분쟁중에 있는 나라들이기 때문이다.

 

불과 20년전까지만 하더라도 발칸 국가 역시 여행을 하기에는 위험한 곳이었다.

내전이 종식되고 다시 평화를 찾아주어서 우리가 이렇게 여행할 수 있게 된 것에 얼마나 감사한지 모른다.

조용히 흐르고 있는 다뉴브강과 사바강.

서로 다른 곳에서 흘러와 하나로 합쳐지는 강물을 내려다 보며

현재의 평화가 주는 기쁨과 만났다.

지금도 전쟁의 와중에 있는 아프카니스탄이나 파키스탄에도 평화가 어서 빨리 오기를 바라면서...

 

누가 누구를 죽일 수 있는 권한을 가질 수 있단 말인가?

한 사람이 다른 사람을 죽일 수 있는 권한도,

한 나라가 다른 나라를 폭격할 수 있는 권한도,

한 민족이 다른 민족을 핍박할 수 있는 권한도

어느 곳에서도 없다.

베오그라드 요새 아래로 내려다 보이는 성채의 한 까페..

누가 저들의 평화를 깨트릴수 있는 권한을 가지고 있단 말인가?

 

종교가 다르다고?

믿음의 종류(?)가 다르다고?

저녁 화려한 조명을 밝히고 있는 세인트 마크 처치(St Mark's Church).

이차대전 공습 당시 상당히 많은 부분이 파괴되어 아직도 복원되고 공사중인 정교회 건물이다.

숙소에서 한방을 같이 썼던 그루지아의 나타샤( 발칸지역 공부를 하고 있는 학생이었다)의 말에 의하면

발칸 지역에서 가장 큰 정교회 건물이란다.

 

저 교회는 알고 있을까?

종교가 다르다고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이 사회를 이해 할 수 있을까?

하나님의 말씀 가운데 가장 중요한 것이 '사랑'이라는데

자신들의 사랑을 갈구하기 위해 다른 사람들의 생명을 앗아갈 수 있는 종교적 배타성을 이해할 수 있을까?

 

세인트 마크 처치 앞에 있는 러시아 정교회 건물.

지금은 나란히 세르비아 사람들의 믿음을 위해 서있다.

아픈 역사를 그대로 간직한 채...

 

베오그라드에서 우리가 만났던 사람들은, 거리의 풍경들은 다른 곳에서 봐왔던 풍경들과 그리 다르지 않았다.

그런데도 얼마 지나지 않은 그들의 오만하고도 슬픈 역사가 자꾸 생각나서 인지

예사롭게 보이지 않았다.

저 사람은 괜찮았을까?

저 사람의 가족은 아무런 문제가 없었을까?

또 한편으로는 저 사람도 발칸의 맹주국가로, 유고연방의 중심국가로서의 세르비아의 자존심을 위해

코소보를 보스니아를 침공하는 데 뜻이 같았을까?

 

한편으로는 슬픈 역사의 피해자가 아닌지 걱정이 되기도 하고

한편으로는 오만한 역사의 가해자가 아닌지 힐끗거리기도 한다.

고작 비닐 가죽 신발을 팔고 있는 노점상 아줌마를 보면서 이런 생각을 하는 건

어슬픈 여행자의 기우가 아닐까 반성까지 하면서...

 

그러나 한명 한명 따져보면 인간의 생명이 소중하지 않은 적은 결코 없었을 것이다.

누구 하나 소중하지 않은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사람이 생명이 마치 파리 목숨처럼 하루아침에 한꺼번에 몰살을 하고 몰살을 당한 경험이 있는 사람일수록 더더욱.

 

공원에서 다람쥐에게 알밤을 주는 할머니...

한 명 한 명 소중하지 않는 사람은 없었을 것이다.

 

베오그라드 시내의 역아래에 있는 쓰레기 처리장인지  벼룩시장인지?

아니 쓰레기 더미속에 있는 벼룩시장 같다.

코소보나 크로아티아에서 피난왔던 사람들이 만든 곳이 아닐까하는 생각이 스친다.

비록 다리 아래, 쓰레기 더미 옆에서 허드레 물건을 파는 사람이라 할 지라도...

인간의 생명보다 더 중요한 것은 없을 것이다.

 

한가롭게 가을의 햇살을 즐기고 있는 사람들 모두...

 

앞서 가는 세 할머니.

차림도 멋지시다.

모두들 긴 겨울 외투에 목 짧은 부츠, 각자 다른 색깔의 머플러와 각자 다른 모자.

닮은 듯, 결코 닮지 않은 개성있는 옷차림.

모두들 소중한 분들이시다.

  

베오그라드 대학 앞에서.

창문 아래는 컴퓨터 실인 듯 보였는데

학생들이 가득한 건물 밖으로는 그래도 대학이라고 책들을 판매하는 노점상이 보인다.

이제 이 젊음들이 이 베오그라드를 이끌어가겠지.

세르비아를 이끌어가겠지.

올바른 역사의 길로...

 

 

<베오그라드의 또 다른 평화로운 모습>

베오그라드 언덕위에 있는 공원에 올라오니 사진 전시회가 열리고 있다.

세르비아에서는 제법 유명한 사진작가인가 보다.

 

로마에서 지난번 수리를 맡겼던 노트북을 받기위해 여행 일정을 좀 빨리 움직이느라

세르비아에서는 베오그라드 한 곳밖에 갈 계획이 없는데

이 사진작가가 찍어놓은 세르비아 곳곳에 완전 매료되었다.

'이걸 어떡하나? 저렇게 아름다운 곳이 많은 줄 알았더라면 세르비아에서의 일정을 좀 더 잡아 놓는 건데...'

여행을 하면 할 수록 점점 더 갈 곳은 많아지고 욕심은 점점 더 생기니 이것 참 큰일이다.

 

공원 한쪽 길에 쭉 전시해놓은 세르비아의 곳곳들.

러시아 지역 사진도 몇장 있기는 있었다.

같은 사회주의 국가였던 시절이 있었으니 이 사진작가의 작품 속에 포함되는 것이 당연하다.

사진의 색깔이나 거기에 드러나는 세르비아 자연은 거의 예술이다.

 

사진 한장.

꽃밭 가득한 곳에서 일하는 아주머니들.

영화에서 많이 봐왔던 동유럽 풍의 옷차림과 얼굴들이다.

참 친근해보인다.

  

사진 둘.

하늘에서 찍은 세르비아의 어느 땅이란다.

저런 색깔을 가진 땅이 지구상에 존재하고 있단다.

아~~~~~~~~~~~~~

이렇게 아름다운 땅...

 

종교가 다르다는 이유로, 민족이 다르다는 이유로

더 많이 가지기 위해서... 더 많이 빼앗기 위해서

서로가 서로를 죽이는 세상이 없었으면...

 

저녁 불빛을 밝힌 세인트 마크 교회와 광장앞에 세워진 동상(사진 왼쪽)을 보며

믿음도 없는 무신앙의 내가 처음으로 교회앞에서, 위대한 지도자 앞에서 진심으로 빌어본다.

전쟁없는 평화의 세상이 되었으면...

 

<그 젊음으로, 그 패기로... 세상에 대한 통찰력을...>  

 베오그라드 요새에서.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에 당한(?) 짧은 머리도 이제는 제법 익숙하다.

 오랜만에 드러낸 파란 하늘에 기분도 덩달아 좋아진다.

 몰라서 걱정만이 있었던 베오그라드에 정작 들어와서는 그 밝은 거리에 기분이 좋아진 것도 있고....

 

 언덕의 곳곳에 한가롭게 즐기고 있는 사람들이 모습도 정겹고...

 요새위의 곳곳에 자유롭게 걸터 앉아있는 사람들의 모습도 보기 좋고...

 언덕위에도 성벽에도 이 젊은이들의 모습이 보인다.

 

 가까이 가서 보니...

 뭔가 심각한 이야기를 하나보다 .

 아니 사랑에 빠져 있는 거겠지...

 자유스럽게 보이기도 하고, 신중해 보이기도 하고... 수줍은 것 같기도 하고....

 

 저기 언덕위에 앉아 있는 네명의  청춘남녀들...

 그 너머에 보이는 파란 하늘과 참 잘 어울린다.

 활기차 보인다.

 생명력있어 보인다.

 

저 멀리서 우리에게 손을 흔들어준다.

 

그 패기와 그 젊음으로,

올바른 신념으로,

세상을 꿰뚫어 보는 통찰력으로

멋진 세상을 살아가길..

이 평화를 지키면서...