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03 (10월19일) 불가리아의 옛수도, 벨리코 뚜르노보에서

프리 김앤리 2009. 10. 20. 05:49

세계 어느 곳엘 가나 대도시는 늘 비슷비슷했다.

넓고 길게 쭉 뻗은 거리, 잘 가꾸어진 가로수,

도심 한가운데는 광장 그리고 그 주변에는 여행자들이 많이 들어가는 레스토랑...

맥도날드는 어디에서도 만날수 있었고, KFC도 마찬가지였다.

백화점 안에 파는 물건조차 어느 나라엘 가나 이제는 거의 비슷비슷했다.

패션에 대한 유행조차 흐름이 어찌나 빠른지 입고 다니는 옷도 많이 비슷비슷하다.

 

중세의 모습이 잘 보존되어 있다는 곳은 대개가 높다란 성당을 중심으로

빨간 지붕의 집들이 오밀조밀 모여있고, 성벽으로 마을전체를 둘러싸고 있었다.

그래도 매번 가는 곳마다 감동도 하고, 또 새로운 모습을 발견하기도 하지만

좀 색다른 곳엘 가고싶었다.

 

그런데 아는 게 없다.

발칸반도의 나라들을 돌아본다고 하지만

우리 머리속에는 루마니아 하면 부쿠레스티, 불가리아 하면 소피아, 세르비아 하면 베오그라드...

알고 있는 거라곤 그 나라의 수도 이름밖에 모르고 있었다.

 

루마니아 부쿠레스티에서 우리의 다음 일정은 불가리아다.

당연히 부쿠레스티에서 밤차를 타고 소피아로 들어갈 예정이었다.

 

그런데 숙소에 있는 율리아는 '소피아'라면서 그냥 콧방귀를 뀐다.

그건 그냥 큰 도시일 뿐이라고.

그러면서 소개해 준 곳이 벨리코 뚜르노보(Veliko Tarnovo)였다.

 

부쿠레스티에서 낮 기차를 타고 5시간을 넘게 걸려 불가리아의 벨리코 뚜르노보에 도착했다.

(지도로 보면 그리 멀지 않은 거리인데도 루마니아 국경에서 출국 심사하느라, 그리고 불가리아 입국하면서

 입국심사 하느라 기차가 제법 시간을 끈다. 출입국 심사라 해봐야 겨우 여권에 도장 하나 찍어주는 것 밖에 없으면서...

 기차는 또 어찌 그리 천천히 가는지.. 시골 기차 답다)

 

기차 차창 밖으로 보이는 시골풍경의 집들에서 부터 기분이 좋아지기 시작했는데

벨리코 뚜르노보에 도착하는 순간부터 뭔가 끌리는 듯한 느낌이다.

숙소(Hiker's Hostel) 주인, 도쇼가 기차역에 마중을 나와있다.

도착해서 전화를 걸어야 하나 어쩌나 고민하면서 기차역에 내렸는데...

휙~~  차를 몰아 산꼭대기 마을에 차를 세운다.

우리가 잘 집이다.

아직까지 여기는 나무를 때 난방을 하는지

좁다란 골목 어디선가는  장작 타는 냄새도 난다.

좋다.

기분이 좋다.

진짜 여행 온 것 같다.

원래는 하루만 묵고 소피아로 떠날려고 했는데...

금새 마음이 바뀐다.

그래 하루 더 묵어가자.

 

성수기가 지나서 그런지 호스텔에 손님이라고는 우리둘과 프랑스 여자 애 단 셋 뿐이다.

일인당 10유로에 4명이 쓰는 도미토리를 예약했었는데

도쇼는 선물이라며 그냥 우리 둘만 쓰는 더블룸을 내준다.

창있는 베란다 2층 거실도 함께...

삼각지붕의 베란다 거실에 불을 밝혀준다.

창문 너머로는 벨리코 뚜르노보 전체가 다 보이는 산꼭대기 방이다.

 

방에다 짐만 대충 풀어놓고 밖으로 나섰다.

그새 해는 져버리고 좁은 골목엔 어둠이 내려있었다.

좁은 골목, 작은 집들. 그리고 어둑어둑한 가로등....

마치 내가 예전부터 알고 있는 골목에 들어선 듯 하다.

 

산꼭대기에서 내려오는 길도 전혀 낯설지가 않다.

안개비가 내리는 벨리코 뚜르노보의 저녁 거리는 낯선 이방인을 친숙하게 맞아들이고 있었다.

 

도쇼가 소개해준 불가리아 전통식당에 들어갔다.

동유럽에 들어오며서 부터 우리의 즐거움 중에 하나가 된 전통요리 식사.

오늘은 어떤 요리가 기다리고 있을지...

 

카르바날(뚝배기에 닭고기, 양파, 토마토, 고추, 피망을 넣고 맵싸한 양념으로 국물을 만들어 계란, 치즈를 얹은 요리)

과 송어 구이,  야채 샐러드가 오늘 우리의 저녁.

여기에 맥주에 빵까지 곁들이니 황후의 식탁이 안 부럽다.

 

아침이 밝았다.

산골마을의 상쾌한 공기가 우리 몸을 감싼다.

 

베란다 창문 너머로는 한때 불가리아의 수도였던 벨리코 뚜르노보의 자태가 드러난다.

멀리 숲 사이로 보이는 성과 성벽...

한때 얼마나 이 도시가 찬란했었는가를 보여준다.

지금은 산꼭대기 우리 집(?)에서 우리에게 눈부신 기쁨을 선사해주면서...

 

아침. 다시 어제 저녁 그 거리로 내려갔다.

간밤의 안개비는 흔적도 없이 깨끗하게 걷혔다.

앞서가는 불가리아 할머니...

이 마을과 참 어울리는 뒷 모습이다. 

 

그런데 집들이 일층과 이층의 면적이 다른 것 같다.

이층은 거리쪽으로 조금 튀어 나왔다.

왜 저렇게 만들었을까?

아마 사람들이 다니는 골목을 좀 더 넓게 쓰려는 현명함에서 나온거겠지? 

 

좀 더 아래로 내려오면 길가에 기념품 가게들이 줄지어 늘어서 있다.

벨리코 뚜르노보의 아름다운 경치를 그려놓은 그림을 파는 가게들이 많다.

정겹다.

 

벨리코 뚜르노보는 오스만 투르크족의 침략으로 오스만투르크의 지배하에 들어가기 전 14세기까지

불가리아의 수도였다.

튼튼하게 만들어진 성벽 안으로 예전 불가리아 사람들이 살았던 마을의 흔적이 그대로 남아있다.

 

성으로 들어가는 입구.

언젠가부터 지겹도록 따라다니던 비도 오늘은 그치고 하늘도 화창하다.

덕분에 겹겹이 껴입었던 겨울 옷도 잠시 벗어던졌다.

 

따스한 햇살을 견디다 못해 반소매 티셔츠만 남기고 긴 팔옷마저 벗어 위에 걸친다.

성벽 한가운데 있는 교회를 바라보며...

 

성벽 안으로는 예전에 사람들이 살았던 집터들도 보이고 교회도 보인다.

 

어느 각도에서 보아도 집터와 성벽의 조화가 돋보인다.

 

성벽 밖으로는 벨리코 뚜르노보 시내의 전체가 다 보인다.

울창한 숲 사이로 보이는 시내의 모습이 아름답기 그지없다.

 

벨리코 뚜르노보가 다른 어느 곳 보다 아름답게 느껴지는 건

마을을 휙 돌아 흐르는 이 강물이다.

너무 아름다워서 그 자리에 얼어붙은 듯 한참동안을 서 있었다.

 

벨리코 뚜르노보는 산악마을이다.

마을 저 아래로는 강물이 굽어져 흐르고

한쪽으로 솟아오른 봉우리에는 옛 집터와 성벽이 있고,

또 한쪽, 한쪽으로 솟아있는 곳곳에 현재의 집들이 빼곡이 들어서있다.

그래서 전부가 하늘 아래 마을들이다.

 

성 이쪽에서 바라보는 벨리코 뚜르노보의 집들.

우리로 치면 완전 산복도로 위의 집들이다.

제일 꼭대기 3층 건물 아래집이 우리가 묵고 있는 숙소다.

그 먼곳에서도 우리집이라고 찾아내고는 스스로 대견해했다.

그래도 자기 집이라고...ㅋㅋ

 

산 중턱에 세워진 마을이라는 걸 딱 알아볼 수 있는 장면이다.

집들의 아래에는 바위들이 보이는게...

저 밑의 굴이 찻길. 

 

어디선가 아주 많이 보았던 것 같은 장면.

마치 부산의 영주동 산복도로의 집들을 보고 있는 것 같다.

 

영주동 산복도로의 경치와 좀 다른 건 이런 벽화들이라고 할까?

중간중간에 불가리아 독립운동의 모습을 벽화로 그려 놓은 것이 마을의 운치를 더해준다.

 

정교회 교회가 있는 모습도 다르기도 하고. 

 

하루종일 벨리꼬 뚜르노보의 이곳 저곳들을 돌아다녔다.

그저 계획도 없이...

'불가리아에 와서는 불가리스를 사먹어야 하는데...'

생각만 가득한 채, 벨리코의 아름다움의 빠져 그것 마저 잊어버렸다.

 

또 한쪽의 언덕에 올라서서.

이곳은 벨리코 뚜르노보의 대학이란다.

벨리코 인구의 1/4이 대학생이라는데...

대학의 입구에 서있는 큰 동상과 마주 보이는 언덕의 성이 묘한 조화를 이루는 모습에 또 한번 취하고...

  

...

저녁...

집으로 돌아온다.

다시 만난 언덕길과 좁은 골목, 정겨운 풍경들...

 

벨리코 뚜르노보에 들어와서 받는 느낌.

계획도 없이 아무것도 모른 채 무작정 찾아온 여기에서 진짜 여행을 하고 있는 것 같기도 하고 

여행이 아닌 다른 이의 삶의 한가운데에 들어와 어느 새 우리도 여기에 함께 살고 있는 것 같기도 한...

여행이 아니라 살고 있는 것 같은 느낌.

 

집(?)으로 돌아왔다.

커다란 밖으로 보이는 아름다운 경치를 넋놓고 바라보다 한참후에야 오늘 하루를 정리한다.

'내일이면 다시 이곳을 떠나야 한다'.

 

 

아쉽게 놓친 벨리코 뚜르노보 성의 빛과 소리의 향연.

11월 초나 되어서야 다시 시작한단다.

여행자들이 들끓은 여름 한철 빛을 발하고 소리를 울린 쇼를

때늦은 여행자들에게는 보여주지 않는다.

우리는 그저 포스트만을 보면서 상상만 할뿐...

 

마치 꿈을 꾸듯

이름도 처음 들어보는 벨리코 뚜르노보라는 곳을 다녀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