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200 (10월16일)코마네치,차우세스쿠의 나라 루마니아, 부쿠레스티

프리 김앤리 2009. 10. 18. 06:31

떠오르는 사람이라고는 코마네치 딱 한 사람밖에 없었다.

올림픽 체조 역사상 최초로 '10점 만점에 10점'을 따내 전 세계를 놀라게 했던 체조선수, 코마네치.

루마니아라는 나라 출신으로는 내가 알고 있는 유일한 사람이었다.

그리고는 드라큐라 백작 정도...

 

아는 사람이 없었을 뿐만 아니라

이 나라의 수도가 이름도 어려운 '부쿠레스티'라는 것도 이 곳에 나와서 처음 알았다.

루마니아라고 해서 나라 이름이 Rumania라고 생각하며 숙소를 예약하려는데

그런 나라 이름은 없다.

Romania만 있고..

그러니까 사실 루마니아가 아니라 로마니아가 맞다는 말이다.

그건 또 왜 그런지 아직은 모르겠다.

루마니아에 들어가서 알아내야 할 숙제다.

 

또 아무것도 모르는 무지의 상태에서 새로운 나라, 루마니아로 들어왔다.

 

 

<소박한 루마니아 정교회>

유럽 여행을 제법 오랫동안 하다보니

이제 성당이나 교회라고 하면 좀 물린다. 

하늘을 찌를 듯 엄청나게 큰 성당도 많이 본 것 같고,

눈이 부실만큼 화려하고 아름다운 성당도 어지간히 봤다.

도시의 중심에 서서 위엄을 드러내는 것도 봤고,

금장식, 은장식.. 화려한 내부치장,

아주 오래된 건물로 역사가 드러나고, 세월이 묻어나는 성당도, 교회도 많이 보아왔다.

 

그래서 이제 웬만해선 성당이나 교회를 보고 그다지 감탄을 하거나 감동을 받거나 하는 일이 줄어들었다.

우리가 종교를 가지고 있지는 않지만

다른 사람들의 생각과 믿음은 존중해야 한다는 마음으로

늘 그곳에 가면 예의를 지켜오는 정도였다.

우리가 믿지 않는다고 해서 다른 사람들의 믿음을 왜곡하거나 비하해서는 안되고

물론 과대포장을 해서도 안된다는 생각도 있었다.  

 

그런데 루마니아 부쿠레스티에서 만나는 성당이나 교회는 왠지 정감이 간다.

참 소박하다.

소박해서 오히려 감동을 준다.

 

그리 높이 만들지도 않았다.

그저 다른 건물들 보다 조금 더 높아 보인다.

그리 화려하지도 않다.

꼭대기의 십자가와 외부 치장이 거의 없는 믿음의 전당일 뿐이다.

 

그다지 크지도 넓지도 않다.

 

한 오륙십명 정도 들어갈 수 있을까?

그냥 제단 하나에 조그만 실내다.

 

도심의 한 가운데 우뚝 솟아있어서

도시 전체를 거느리고 있는 듯한 느낌을 주는 다른 중세 도시의 성당들과는 달리

부쿠레스티의 정교회 성당들은 그저 도시 곳곳에 띄엄띄엄

때론 아파트사이에도 튀지 않게 폭 들어가있다.

  

내부도 그저 소박하다.

화려하게 햇살이 비쳐지는 모자이크 스테인글라스도 거의 없다.

각 벽마다 천정마다 정교하게 만들어놓은 조각상들도 많이 보이질 않는다.

대신 아주 오래된 듯한 아이콘과 프레스코화로 성서의 내용을 그려놓았다.  

 

육중한 문도 없이 조그만 입구에 소담스럽게 그려놓은 프레스코화만 보일뿐.

어디 초라한 한 곳의 성당만 그런게 아니다.

여기 저기 보이는 루마니아 정교회의 건물은 다 비슷비슷하다.

 

그래도 이 곳 사람들의 신앙심은 아주 깊단다.

루마니아 사람들의 절대다수가 정교회 신자라는데

성당 밖에 만들어 놓은 자그마한 봉헌대의 초는 꺼지지 않는다.

사람들이 성당안에서, 혹은 성당을 드나들때만 성호를 긋는 것이 아니라

길을 걸어가다가도 성당 앞을 지날때도,

버스를 타고서 성당 옆을 지나갈때도 성호를 긋고 예를 다하는 모습을 여러번 봤었다.

성당 안으로 들어가면 차분한 모습으로 기도를 하고 있는 모습도 여러번 보았고.

 

단순히 관광용으로 전락해버린 듯한

다른 나라들의 크고 화려한 성당에서 본 모습들과는 사뭇 달랐다.

  

참 소박했다.

참 차분했다.

그동안 성당과 교회에 대해 약간 심드렁 했던 우리에게 오히려 더 믿음이 뭔지 생각하게 하는 부쿠레스티였다.

그래서인지 사람들에 대해서도 소박하게 따뜻하게 느껴졌는지도 모른다.

 

 

<차우세스쿠와 루마니아>

체조선수 코마네치외에는 아무도 떠올리지 못했던 루마니아에 들어와서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사람을 이곳에 들어와서 한 명 기억해냈다.

루마니아의 독재자 '차우세스쿠'

정말 아주 오랫동안 잊고 있었던 인물이다.

 

30년이 넘는 장기집권을 했던 차우세스쿠 정권이

독재체제에 항거하는 루마니아 국민들에 의해 무너진 게 1989년 겨울이었다.

그 때 TV에서는 차우세스쿠의 마지막 연설장면도 나왔던 것 같고,

루마니아 국민들의 시위장면도 본 것 같고, 그리고 국민들을 피해 도망을 갔던 차우세스쿠가 잡혔다는 소식도 들었던 것 같다.

그리고 며칠 후 처형당했다는 소식도 있었던 것 같고...

정말 까마득하게 잊고 있었던 역사의 한 장면이다.

 

그 이후 지난 20년간 한번도 생각한 적이 없는데 여기 루마니아를 들어오니 그 역사의 장면들이 떠오른다.

떠오를 수 밖에 없었다.

어디든 독재자 차우세스쿠의 흔적들이 있으니...

독재정권을 무너뜨린 루마니아 민중들의 흔적들이 남아있으니...

 

차우세스쿠 궁전.

미국무성 건물 펜타곤 다음으로 세계에서 가장 큰 건물이다.

 

이 건물을 짓느라고 당시 차우세스쿠 정권은

궁전의 재료가 되는 대리석, 참나무, 금은 등을 루마니아 전역에서 거두어 들이고

국고를 엄청 탕진하여 루마니아 국민들을 엄청난 궁핍으로 몰아넣었다.

게다가 이 궁전을 짓기 위한 돈을 마련하기 위해 루마니아의 식량을 외국으로 마구 수출하여

대규모 식량 부족상태까지 오게 만들었다.

궁핍과 기근에 견디지 못한 국민들은 더이상 참지 못하고 차우세스쿠를 반대하는 시위를 벌였는데

차우세스쿠 정권은 이 시위군중에게 장갑차를 투입하고 발포까지 하여 수많은 사상자를 냈다.

부쿠레스티 대학 대학생을 중심으로 한 성난 군중들은 며칠동안 시위를 계속하고

결국 헬기를 타고 도망가던 차우세스쿠는 군부에 의해 잡혀 사흘만에 군부의 손에 의해 처형까지 당했다.

이 궁전이 다 지어지는 것도 보지 못한 채.

 

궁전 내부로 들어가니 그 화려함에 눈을 뗄수가 없다.

사방 천지가 번쩍번쩍한 대리석이고 잘 짜여진 융탄자에 고급 참나무 문들이다.

루마니아 국민들은 그렇게 소박하게 살아가고 있는데

차우세스크 궁전은 이렇듯 치장을 하려 했다니...

그저 가슴이 답답할 뿐이다.

 

이 계단은 크게 두 부분으로 나눌 수 있는 건물의 중간에 있는데

차우세스쿠는 중앙홀에 외국국빈들을 초청하고 자기는 저 화려한 계단으로 걸어내려오는 모습을 그리며

그리 만들어 달라고 했단다.

모든 인민이 평등하게 잘 살게 한다는 사회주의 사회에서

지도자라는 사람이 보다 근엄하게, 보다 멋지게 사람들앞에 등장하는 모습만을 그리면서

그런 설계를 의뢰했다니...

 

모두 천개가 넘는다는 궁전안의 각 방(대형 홀)은 어느 것 하나 같은 것이 없단다.

샹들리에도, 커턴도, 천정도,  바닥 무늬도, 문의 모양과 조각도 다르게 다르게..

그러나 각각의 한 방안에서는 나름의 통일성을 갖도록 요구했다는데....

 

간혹 한 방의 대리석으로 된 바닥 무늬가 사진처럼 고리 모양이 되어 있다면...

 

그 방에 깔려 있는 카페트의 무늬도 그와 유사하게 고리모양으로 만들어져 있단다.

다 이런 식이었다.

천정과 벽과 문과... 한 방마다 나름의 무늬와 색깔을 통일시키고

각 방마다는 다른 분위기를 만들어내야 하고...

 

전체 천여개의 방 중에서,

우리가 들어가 볼 수 있는 방은 전체의 5% 정도 밖에 안된다는데

그 화려함에 감탄하기 보다는 점점 더 가슴이 답답해 올 뿐이었다.

 

차우세스크 궁전은 개인적으로 들어갈 수는 없다.

예약을 해야하고, 그리고 입구에서 신분증을 맡기고 설명을 해주는 정부 공식 가이드와 함께 동행해야 한다.

우리가 간 오후 3시 영어가이드를 맡았던 루마니아 아가씨.

 

대형 홀.

궁전에서 두번째로 큰 방으로 자연 채광이 되어 아주 밝은 분위기를 내는 곳이란다.

그러면서 가이드는 이 방이 얼마나 넓으며 얼마나 많은 대리석이 깔려 있는 지 설명한다.

 

차우세스쿠는 이 방이 만들어지는 것을 보면서 저쪽 한 쪽 높은 연단에서 자신이 연설을 하고 있는 동안

반대쪽에 있는 똑같은 모양의 연단에서 자신의 부인이 앉아서(?) 들어 줄 것을 계획했다고 한다.

이렇게 넓은 홀의 양쪽에 부부가 마주 서는 모습을 상상했던 차우세스쿠...

듣고 있던 사람들이 웃는다.

결국 부부가 마주보는 연단에 있는 모습으로의 연설은 이 방에서 이루어 지지 못했고

대신 나중에 루마니아의 체조 영웅 코마네치가 이 방에서 결혼식을 올렸다나.

 

차우세스쿠가 만든 궁전이고, 결국 차우세스쿠를 무너뜨린 궁전이기에 당연한 것이기는 하지만

아까부터 가이드의 설명을 듣고 있자니

차우세스쿠에 대한 빈정거림이 역력하다.

그리고 여러나라에서 온(물론 루마니아 사람들도 있었다) 관광객들도 가이드의 설명을 들으면서

픽픽대며 웃고...

차우세스크는 완전 '조롱거리'였다.

마음놓고 조롷하고 희롱해도 되는....

아~~~ 조롱해도 되고 희롱해도 되는 사람임에 틀림없지만

그 때의 그 준엄한 심판을, 그 때 루마니아 국민들의 절절한 심정이

차우세스쿠의 독재에 묻혀 조롱당하는 것 같아 마음이 편하지는 않았다.

 

조롱은 계속 된다.

궁전의 베란다.

차우세스쿠는 부쿠레스티의 대로가 보이는 이 베란다에 서서

국민들을 상대로 폼잡고 연설을 하고 싶어했단다.

그런데 그는 결국 이 궁전이 완공되기도 전에 그 소원도 이루지 못하고 죽음의 길로 가 버렸단다.

사람들은 또 웃는다.

 

그런데 여기서 더 웃기는 이야기 한가지.

결국 이 베란다에는 미국의 대중가수 마이클 잭슨이  처음으로 서게 되었는데

구름같이 모여든 루마니아 팬들에게

'헬로우!! 부쿠레스티 시민여러분' 이라고 해야 하는데

"헬로우!! 부다페스트 시민여러분"이라고 했다나...

사람들은 폭소를 터트린다. 

 

부쿠레스티가 부다페스트로 바꾸어 인사한 마이클 잭슨의 이야기도 웃기고

차우세스쿠가 마이클 잭슨으로 바뀐 이야기도 웃긴다.

그냥 웃어넘기기만 하면 되는 것일까?

 

화려한 샹들리에의 불빛에 소박한 루마니아 정교회의 모습이 겹쳐져 떠오르는 건

우리 둘 뿐이었을까?

 

지금 이 궁전의 일부는 의회 건물로 사용되고 있고,

또 일부는 대형 회의실로 사용되고, 때로는 일시적인 전시회장으로 이용되기도 한단다.

그러나 루마니아는 아직까지 이렇게 큰 건물의 용도를 다 만들어내지 못하고

건물 곳곳이 용도없이 비어있는 채로 있는 경우도 많다고 한다.

지금 이 컨퍼런스 홀은 며칠 후에 있을 회의를 위해 의자를 배열해 놓은 것이라고...

 

입장료까지 받아가며 공식적으로 하고 있는 가이드 투어를 다니는데도

복도는 물론 각 방의 불도 다 꺼놓고 있었다.

여기 있는 샹들리에나 전구의 불을 다 밝히면 엄청난 전력소모가 된다면서...

우리가 들어가면 가이드가 방의 불을 잠시 켰다가 나가면서는 다시 불을 끈다.

 

무엇을 하려고 이렇듯 큰 궁전을 지으려고 했을까?

국민의 식량까지 팔아가며, 나라전체에서 참나무도 베어오고 대리석도, 실크도 금은도 거두어 들이면서까지

국민들이야 죽건 말건...

 

결코 편치 않은 마음으로 차우세스쿠 궁전을 나왔다.

그리고 차우세스쿠가 마지막으로 연설한 구 루마니아 공산당 건물 앞으로 간다.

앞에 보이는 건물이 옛 공산당 헤드쿼터 건물.

 

저기 이층 베란다에서 차우세스쿠가 최후의 연설을 한다.

며칠전 자신을 반대한 시위 군중을 장갑차로 총으로 진압한 뒤 자신의 지지자들을 모아놓고 자신의 건재함을 알리기 위한 연설.

그러나 그의 연설은 그리 길게 가지 못한다.

자신을 지지하는 청중들을 불러모았는데...

독재에 항거하는 분노한 청중들이 더 많았기 때문이다.

고함을 지르고 구호를 외치는 모여든 군중들에게는 다시 총이 발사되고... 사람들이 죽고...

무차별로 진압했다고 한다.

그러고 이틀후

데모가 계속되자 헬기타고 도망가려가가...

헬기조종사가 헬기를 그냥두고 사라져서 차우세스쿠 부부가 잡혔다는...

(이건 우리가 묵었던 숙소의 주인이 찾아준 당시의 동영상을 U-Tube를 통해 생생하게 볼 수 있었다

 차우세스쿠가 연설을 하고 있는 도중에 물러가라는 시위군중의 목소리는 커지고, 조용히 하라고 몇번씩이나 외치는

 독재자의 목소리는 오히려 군중의 함성에 가려져 버리는...)

 

공산당사 건물 옆으로 있는 건물에는 당시의 흔적인 총알자국이 그대로 남아있다는데

우리는 그걸 모르고 있어서 그냥 지나쳤었다. 

 

그날의 항거에 죽은 자를 위한 위령탑.(티미슈아라 기념탑)

높다란 기둥 아래로 전진하고 있는 사람들의 형상을 동상으로 만들어 두었다.

기념탑에는 "1989년 12월의 영웅들"이라고 새겨져 있다.

 

기념탑 옆으로는 혁명의 그날 죽임을 당한 사람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다.

세계 어느 나라든지 역사의 발전 앞에는 희생이 있는 것인지....

 

그래서 지금 루마니아는...

시민들의 혁명으로 장기집권을 하던 차우세스쿠라는 공산주의 독재자를 몰아내고 

그 다음해에 선거로 대통령을 선출하고 1990년에는 공식적으로 공산체제를 종식시킨다.

그리고 20년이 지난 지금...

 

숙소 주인 율리아는 살기가 너무 어렵단다.

(사실 살기 어렵다는 이야기는 어느 나라, 어느 곳에서나 항상 있는 이야기이기는 하다)

공산독재체제를 무너뜨렸지만 다시 선출된 사람들도 결국 그 사람들이라는 거다.

마치 우리 나라가 일제에서 해방이 되었지만

친일하던 사람들이 여전히 권력을 잡고 있어서

일제시대때 잘 살던 사람들은 여전히 잘 살고 있고

그 때 어려웠던 사람들은 여전히 힘든 것 처럼.

 

부쿠레스티 대학에서 언어학을 전공하고 있다는 율리아는

제일 앞에 있는 사람 하나만 바뀌었을 뿐 , 다음 줄에 있던 사람들이 다시 앞줄로 나와

여전히 똑같이 하고 있으니 잘 될리가 없단다.

(그래도 이 친구는 영어를 잘해서 300달러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는 루마니아 평균임금의 몇배를

 남자친구와 함께 대학생 신분으로 호스텔을 경영하면서 벌어들이고 있었다.)

 

순박하고 소박한 루마니아 사람들이 잘 살수 있으면 좋겠다.

 

 

<부쿠레스티 이스트 호스텔> 

또 헛다리를 짚었는 줄 알았다.

내가 주로 숙소를 예약하는 싸이트 (www.hostelworld.com)에서 이리 저리 따지고 따져

고른 호스텔이 부쿠레스티에서는 이스트 호스텔(East Hostel)이었다.

같은 가격이라면 둘만 잘 수 있는 더블룸이 있는 곳을 고를까?

아니면 여러명이 자더라도 점수가 높은 곳을 고를까를 고민하다가

묵어간 게스트들의 점수가 후한 곳을 고른다고 고른게 여기였다.

(호스텔월드 싸이트의 숙소는 게스트들이 묵고나서 위치, 청결도, 보안, 재미.. 등으로 일일이 점수rating를 매겨놓는게 있다.

 내가 주로 보는 건 위치와 청결도이다. 사실 '재미fun'의 점수가 높은 것은 오히려 우리에게는 별로 어울리지 않는다.

 주로 bar가 있거나 아니면 밤새도록 술을 마실수 있는 분위기, 호스텔 자체에서 이것 저것 이벤트를 만들어 내면

 점수가 주로 높아 우리에게는 힘든 곳이기 일쑤였다.

 그리고 이 싸이트에서는 묵고 간 게스트들이 view를 써놓는데 이걸 꼼꼼하게 살펴서 주로 정하는 편이다.)

 

싸이트에 적혀있는 바에 의하면 이스트 호스텔은 기차역에서 내려 걸어서 6분밖에 안걸리고

깨끗하다, 친절하다... 뭐 좋은 말이 많이 있었다.

그런데 도착한 곳. 겉 모습이 이랬다.

다 낡아빠진 건물에 입구의 문은 거의 허물어질 지경이었다.

게다가 간판도 없고, 문 어디도 심지어 벨 누르는 곳에 조차도 호스텔이라는 이름하나 없었다.

단지 적어온 주소만 같을 뿐이고...

'이거 불법아냐?'

'또 끔찍한 빈대벼룩이 나오는 곳이면 어떡하지?'

걱정과 두려움으로 벨을 눌렀다.

 

잘 생긴 청년이 문을 열어준다.

으이? 밖과는 좀 다른데?

2층으로 올라가니 집이 깨끗하다.

단정하고, 밝고.

 

8인용 도미토리.

채광도 잘되는데다 깨끗하다.

더구나 오늘은 아무도 없단다.

우리 둘만 쓰면 된단다.

하루 11유로 (아침 포함) 

싸고 깨끗하고..

 

목욕탕도 깨끗하다.

욕조도 있고, 안에 벽난로도 있고.

 

사실 준다는 아침은 별거 아니다.

빵과 햄, 소세지, 우유, 커피...

그런데 아침에 일어나니 이것들을 너무나 정성스럽게 담아두었다.

그날 호스텔에는 우리를 포함해서 모두 4명이 잤는데

따뜻하게 부쳐놓은 계란후라이, 소세지, 그리고 이쁘게 담아둔 두 종류의 햄,

직접 만들어 놓은 딸기쨈과 사과쨈, 그리고 디저트로 케이크까지...

커피메이커에 커피도 뽑아두었고, 우유도 담아두었다.

화려하진 않지만 정성스럽게.

 

애들(주인) 하는 짓이 이쁘다.

주인은 대학에서 인테리어 디자인을 전공한 크리스티앙과

지금 부쿠레스티 대학에서 언어학을 공부하고 있는 율리아다.

둘 사이는 프렌드란다. 자세한 관계를 물어보기는 뭐하지만 한방을 쓰는 걸 보면...

 

그런데 이 집이 마음에 드는 건 깨끗하다거나 싸다거나 정성스럽다는 것 말고도

이 둘의 친절이었다.

그리고 엄청나게 많은 정보.

우리가 차우세스쿠에 관해서 물어보면 유튜브를 보여주면서 설명을 해준다거나

왜 루마니아가 영어로는 Romania냐는 질문에는 설명을 해주고

다키아전투에 대해 물으면 DVD도 찾아서 빌려준다.

(루마니아가 로마에서 온 사람들에 의해서 세워진 나라라서 그렇게 불리운단다.

 실제로 루마니아에는 로마에서 온 사람들이 3% 정도 밖에 되지는 않지만 어원을 그렇다나?

 그리고 자신들이 동로마제국 소속임을 무척 자랑스럽게 여겨서...

 그러고보니 크리스티안의 얼굴도 로마사람처럼 생긴것 같다)

여행자들이 무엇을 원할 것인가를 미리 생각해서 우리가 부탁하지 않았는데도

우리가 일어나기도 전에 그날 차우세스쿠 궁전 가이드 투어를 예약해놓는다거나 

루마니아의 다른 곳에 대한 설명도 정말 자세하게 다 해준다.

일일이 컴퓨터에서 자료도 찾아보고 알려주고...

정말 편안한 시간이었다. 

 

 

<루마니아에서 우리의 식탁>  

이건 슈퍼에서 이것 저것 사와서 우리가 직접 해먹은 것.

고슬고슬한 밥(여기서 쌀을 고르는 것은 아주 중요. 펄펄 날리는 안남미가 아닌 포동포동 우리 쌀 같은 것을 골라야)

고추 송송 썰어넣은 미역 된장국(여기 고추는 예술이다. 동유럽의 고추, 정말  맵고 달다)

올리브 오일 넣은 토마토 샐러드.

태양초 고추장에 찍어 먹는 파란 생고추.

그리고 밥 옆에 있는 건 루마니아 전통음식인데 샤르말레.

(잘게 다진 고기를 양념해서 양배추에 돌돌말아 삶아 통째로 다시 양념해 놓은 것) 슈퍼 음식코너에서 사왔다.

여기는 빠졌지만 루마니아 맥주까지...

푸지게 먹고도 재료비로는 5천원 정도 들었을라나? 

 

크리스티안이 소개해준 루마니아 전통식당에서

위쪽에 있는게 샤르말레이고,

아래쪽은 피망에 고기 다져 넣고 삶아서 고소한 치즈를 듬뿍 얹어놓은 거다.

물론 맥주까지.

전부 38.5레이다.

1유로에 4.28했으니까, 둘이서 맥주까지 마시고도 10유로가 안나왔다는 거다.

우리 돈으로는 만육천원 정도.

동유럽으로 오니까 진짜 좋다...

 

시내에 있던 라 마마라는 식당이었다.

 

내부도 멋지고.

 

다음날은 좀 더 중심가로 나가서 카루 쿠 베레(Caru Cu Bere)라는 식당엘 갔었다.

이 집은 숙소의 안주인 율리아가 소개해준 집이다.

맛도 좋지만 실내장식이 예술이라나?

비만 안왔다면 밖에 있는 탁자에도 손님이 많았겠지만

이날은 밖에는 한명도 없이 안에만 북적북적거렸다.

 

카루구베레의 메뉴판.

사실 메뉴판이 아니고 신문 형식으로 만든거였다.

 

점심시간이라 '오늘의 메뉴'를 시킬수 있었다.

다행이 토요일도 일요일도 아니고...

(평일 점심 메뉴로 나오는 건 주로 세트로 나오는데다가 가격까지 싸서 참 좋은데

 우리는 이걸 놓치는 안타까운 때가 몇번 있었다. 여러나라에서 ㅋㅋ

 가보면 주말이거나, 혹은 점심시간을 놓쳤거나...)

그런데 이날은 점심 메뉴(우리나라로 치면 '점심특선')를 시킬수 있었다.

맥주까지 따라나오는...

하나는 구운 감자와 슈니첼, 다른 하나는 치즈가루 듬뿍 얹은 삶은 감자와 돼지고기 양념말이.

가격은? 흐흐흐 둘이 합해서 25레이, 만원 약간 넘는 돈이다.

둘다 맥주까지 마셨는데...

 

게다가 식사중에 바이올린에 오르간 연주까지 해준다.

동유럽에 오니까 음악 나오는 식당에서도 밥을 다 먹어본다며

둘이 한참 즐거워했다.

동유럽이라기 보다 루마니아가 특히 싼 것 같다.

론니에서도 그랬다. 루마니아의 물가가 가장 싸다고...

이런 곳에서는 밥 해먹지 말고 그냥 사먹잔다.

좀 그래보잔다.

 

그래놓고 슈퍼에서 발견한 '생고추' 때문에 마음을 훽 바꾸어

태양초 고추장에 매운 고추를 찍어먹는 매워서 눈물, 우리 스스로가 우스워서 눈물.... 눈물겨운 저녁을 해먹었지만.

 

지천으로 깔려있는 과일들.

포도가 하도 맛있어 보이길래 포도 두송이를 담았는데  무게를 달아보더니 한송이 더 얹어서 겨우 1레이를 달란다.

400원 정도밖에 안한다는 소리다.

사과도 마찬가지.

식당에서 요리가격도 다른 나라에 비해 쌌지만 시장에서의 과일이나 채소의 가격은 정말 미안할 정도였다.

(그래서 이 사람들 평균 임금이 300달러라도 살 수 있는 건가?

 실업률을 굉장히 높다는데...)

 

우리같은 배낭여행자야 물가가 싸면 쌀수록 좋은 거겠지만

여기도 큰 돈은 대기업이든 다국적 기업이든 돈 있는 대자본가가 다 벌어가고

시장에서는 겨우 1레이 2레이 하는 물건들을 팔고 있느라 힘든 것 같아 안쓰럽다.

 

 

<비.... 겨울... 추위> 

언제부터인가 비가 우리 곁을 떠나지 않고 있다.

러시아에서는 하루에 잠깐 잠깐 안개비같은게 내리더니만

에스토니아에서는 금새 화창하다가 어느새 비가 내리고

라트비아에 와서는 하루는 화창하고 하루는 찬바람이 쌩쌩 불면서 비가 내리고

리투아니아에서는 우리가 도착한 날 저녁에는 멀쩡하더니만

다음날부터 비가 내리면서 온통 안개가 끼어있어 전망을 흐리게 만들어버리고...

급기야 폴란드로 들어와서는 자코파네에서 내리는 비 때문에 일정을 바꿀수 밖에 없었다.

슬로바키아에서도 세찬 비가 내렸고,

헝가리에서도 햇살이 있는 날은 바람이 너무 많이 불어 추위로 온 몸을 떨어야 했는데

여기 루마니아에서도 또 그렇다.

다음 나라로 가면 괜찮겠지, 또 좀 더 아래로 내려가면 괜찮겠지 하면서

건너온 나라가 벌써 몇나라째다.

 

헝가리에서 밤 차를 타고 루마니아 부쿠레스티로 넘어오면서 환한 햇살이 비치길래

'아!!! 이번에야 말로 진짜 따뜻한 남쪽 나라로 내려왔나보다'라고 생각했었는데...

그래서 첫날  저녁까지만 해도 드디어 햇살가득, 따뜻한 내일을 기대하고 있었는데...

아침에 눈을 뜬 순간 내다본 창밖....

으~~~~ 또 비!!!!

따뜻한 숙소에서 꼼짝도 하기 싫었다.

'나가지 말아 버릴까?

 오늘은 종일 그냥 이곳에서 책이나 보면서 노니닥 거릴까???'

아~~~~ 그래도~~~~

 

비옷까지 걸쳐 입고 밖으로 나왔다.

부쿠레스티는 교통체계가 좀 문제가 있는지 , 아님 비가 와서 그런건지

정체가 보통 심한게 아니다.

 

이 사진에는 안그렇는데 도로는 어찌 그리 또 험한지.

도로에 물이 고이는 건 예사인데, 차들은 물을 마음껏 튀기면서 씽씽 달린다.

우리는 추워죽겠는데...

 

차우세스쿠 궁전을 찾아가는 길에는 가로수까지 휘청거린다.

겨울이다.

어느새 겨울이 와있다.

10월이면 아직 괜찮을 줄 알았는데

여기는 가을, 겨울에 비가 더 많이 온단다.

 

아~~~ 한국에서는

'어째 여름에 이리 비가 많이 와서 찝찝하니 습기 가득차게 만드냐'라고 불평했던 내가 참 부끄럽다.

그래도 그 때는 춥지는 않았는데...

 

추운 가을에 내리는 비, 더 추울 겨울에 내릴 비는 정말 고통스럽고 걱정된다.

그렇다고 가만 집안에 앉아 있을 수도 없고...

'그냥 대충 보고 그냥 가자'고...

'거기는 안가면 안되겠냐'고 투덜대는 나를 보고 남편은 또 핀잔을 준다.

다른 사람들은 얼마나 여행을 떠나오고 싶어하는데 고작 이 정도 가지고 게으름 피우냐고.

'그게 아니라 진짜 춥고, 힘들다'고 항변해도 묵묵부답.

'그러면 사진이라도 그만 찍고 그냥 가자고 해도

 찬바람 탱탱 부는 비오는 거리에 기다리고 섰는 나는 아랑곳 하지 않은 채 자기 할 일만 한다.

고작 내게 해 주는 거라고는

한국에서 가져온 1000원짜리 검은 고구마 판매용 촌스러운 장갑을 선심 쓰듯이 건네주는 일밖에.

(사실 한국에서 짐 쌀때 장갑은 뭐하러  챙기냐고 내가 핀잔을 좀 주기는 했다...더구나 그렇게 촌빨날리는 걸 챙긴다며.)

 

여행 나오기 전에는 한국에서 나도 제법 우아한(?) 편이었는데

여기서는 무슨 초등학생처럼 야단을 다 맞고...

여행이 별걸 다 경험하게 한다.

 

'바람이 조금 불거나 추운 것은 괜찮다. 비만 내리지 않는다면...'

우리 둘의 요즘 가장 큰 희망사항이다.

 

별 걸 다 경험하게 하는 여행....

아주 작은 것에 굉장히 흥감해 하며 감사하는 법을 배우는 여행이기도 하다.  

소박한 나라에서 소박한 꿈을 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