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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95 (10월11일)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의 국경, 타트라 산맥을 넘어

프리 김앤리 2009. 10. 14. 05:28

 

타트라 (Tatra)는 폴란드와 슬로바키아의 국경지대에 위치한 알프스 산맥의 한 자락이다.

총 면적의 3/4은  슬로바키아에, 나머지 1/4은 폴란드령에 속한다.

 

'유럽의 곡창지대'라고 불리우는 폴란드는 국토 대부분이 넓고 넓은 벌판, 논밭이다.

그런데 슬로바키아와 접해있는 남부는 폴란드에서는 보기 드문 산악지형이 펼쳐진다.

바로 타트라산맥.

그곳에 스키와 등산으로 유명한 자코파네(Zakopane)가 있다.

2001년도에는 동계 유니버시아드 대회가 열렸던 곳이란다.

우크라이나에서 만난 미하우도, 러시아에서 만난 크라쿠프대학의 교수 마틴도

'자코파네'로 가라고 했다.

한국 사람들이 크라쿠프로 단체로 여행을 와서는

아우슈비츠와 소금광산만 휙 돌아보고 그냥 돌아가는 게 너무 안타깝다고

꼭 '자코파네'에 가야한다고 몇번씩이나 우리에게 강조했었다.

가을의 자코파네는 정말 아름답다고, 가서 꼭 등산을 하라고...

 

우리가 만난 현지인들이 추천하는 곳은 항상 아름다웠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한계도 있었다.

이란사람들이 추천한 정말 아름답다는 식물공원은 우리나라에선 흔히 보는 공원이었다.

황량한 사막과 황무지가 국토의 대부분인 이란인들에겐 나무가 많고 꽃들이 만발한 공원은 아마 가장 좋은 곳이었을지

몰라도 우리에겐 봄 가을에 흔히 볼수 있는 곳이었다.

국토의 대부분이 평원인 폴란드 사람들에겐 조금만 높은 산도 아주 좋을 것이란 반신반의의 생각을 가지고

우리는 자코파네로 간다.

 

<삶이 견딜수 없이 힘들게 될때, 항상 자코파네가 있다> 

자코파네 버스 정류소에 내리니 멋진 사진이 우리의 마음을 들뜨게 한다.

자코파네의 산.

'저 능선을 따라 우리도 등산을 하리라'

'언제 등산을 하고 아직 한번도 못했지?

 스위스의 체르마트, 융플라우, 노르웨이 스타방에르 근처의 산에 올라가고 나서 벌써 몇달이나 된 것 같다.

 저 산을 올라야지...'

 

그런데

자코파네의 밤은 비가 내리고 있었다.

숙소 앞 밤 거리에는 안개가 자욱하게 끼어 있었다. 

'설마 내일 아침에는 비가 개이겠지...'

 

폴란드에는 '몸과 마음이 지쳤을때는 자코파네로 가라'는 말이 있을 정도로

자코파네는 폴란드 사람들에게는 사랑받는 마을이다.

아니 정확하게 말하면

'삶이 견딜수 없이 힘들게 될때, 항상 자코파네가 있다'는 속담이 있단다.

그래서인지 외국인 여행자 이상으로 폴란드사람들이 많이 보인다.

 

안개가 자욱한 거리에

자코파네를 사랑하는 사람들의 발걸음이 분주하다.

안개에 젖은 자코파네의 분위기에 여행자들이 들떠 있는 듯

안개비를 맞으면서 할일없이 그냥 걷고 있다.

혹시 내일도 비가 와서 산엘 오르지 못할까봐 걱정스런 눈으로 거리를 바라보는 우리와 다르게

여기 사람들은 왁자지껄 시끄럽게 흥겨운 걸음을 옮기도 있다.

자코파네에 왔다는 것만으로도 즐거운 것일까?

 

숙소의 매니저에게 물어보니 오늘, 종일 비가 왔단다.

8명이 함께 쓰는 도미토리에는 습기 가득찬 꿉꿉한 공기로 가득차있고

비를 맞고 등산을 하고 난 이후 벗어놓은 사람들의 옷가지와 양말들때문에 퀴퀴한 냄새가 진동한다.

'내일도 비가 오면 어떡하지?'

'설마... 

 우리는 산을 올라야지'

케이블카를 타고 산 중턱까지밖에 못 올라갔다는 같은 방의 프랑스 애는

그래도 거기만 해도 참 좋더란다.

내일 날씨가 좋으면 자기도 걸어서 산을 올라갈꺼란다.

카라코롬도, 안나푸르나도 티벳 산도 다 올라갔다는 등산광이다.

'우리도 내일은 산을 올라야지...'

 

안개만 가득한 밤거리로 나가 폴란드 전통식당에서 맛있는 저녁을 먹고

숙소로 돌아와 잠을 청했다.

내일은 날씨가 화창하게 개이길 기대하면서... 

 

다음날 아침.

일어나자 마자 창문을 열어보니 어제보다 비가  더 내린다.

촉촉하게 젖어가는 자코파네의 거리...

 

숙소의 매니저는 오늘은 종일 비가 내릴꺼란다.

어제는 간간히 비가 내리고 안개가 많이 끼었지만  오늘은 불행하게도 하루종일 비가 내릴꺼란다.

스키 리프트를 타고 산 중턱까지 올라갈 수는 있지만 그것 또한 권하는 일은 아니라나.

비를 철철 맞고 올라가야 하니까...

내 신발을 보더니만 혀를 끌끌 찬다.

하기야 벌써 5년째 신고다니는 이 등산화가 이제는 밑창이 닳아 비가 조금만 와도 실실 새기 시작한다.

질척거리는 산을 오르고, 신발 안으로 물이 스며들고 발가락은 언제부터인지 모르게 슬슬 붇기 시작할거고...

흐~~~

얼마만에 와 보는 산인데 바로 코앞에 두고서도 오를 수 없을 것 같다는 불길한 예감이 일기 시작한다.

같은 방에 있던 프랑스애는

일찌감치 포기하고 체크아웃해버린다.

그냥 이 곳을 떠날꺼란다. 다른 곳에도 산이 있으니까...

 

이틀을 머물면서 등산을 할 계획이었던 우리도 일정을 바꿨다.

여기는 그냥 가까운 거리를 걸어다니면서 멀리서나마 산을 바라만 보기로 하고

가까이 있다는 슬로바키아의 즈다(Zdiar)로 가기로.

 

체크 아웃을 하고 꾸려놓은 짐만 맡겨 놓은 채

자코파네의 거리로 나섰다.

비는 여전히 부슬부슬 내리고 있는데

사람들은 아무렇지도 않은 듯 거리를 걸어가고 있다.

 

여기 사람들은 정말 이상하다.

왠만한 비에는 우산도 쓰지 않는다.

그냥 맞고 걸어다니거나, 아니면 그저 비옷을 하나 걸쳐 입는 정도.

(사실 비옷도 걸치지 않는 경우가 더 많다.)

 

'옷'이라는 것에 대한 개념이 다른 것 같다.

우리나라 사람들에게는 옷차림이라는 게

외부로 드러나는 자신의 모습으로 생각하기도 하고, 어떤 사람의 빈부나 계급(?)을 판단하는 기준으로 사용되기도 하는데.

여기서는 정말 옷이라는 게 외부 자연환경으로 부터 피부를 보호하는 옷 본래의 기원을 그대로 적용하는 느낌이다.

그래서 비가 오면 옷이라는 걸로 그 비를 막아내는 것 같은 느낌.

 

우리는 비가 와서 자신의 잘 차려입은 옷을 버리면 마치 자신의 신분이, 자신의 모습이 버려지는 것 처럼 생각하는데 말이다.

그러니 오죽하면 우리나라에 이런 속담이 있을까?

'옷이 날개다'

'못 입어 잘 난놈 없고 ,잘 입어 못난 놈 없다'라는 것 같은...

 

사진은 비가 오는데도 유모차의 아이에게도 그냥 비옷하나 걸치게 하고

거리로 나선 젊은 부부의 모습이다 .

대단하다.

날씨도 쌀쌀한데...

우리나라에서는 비를 맞으면 무슨 큰일이 나는 듯이 야단법석을 떠는데..

더구나 어린아이는 더욱...

그런데 두세살 밖에 안되 보이는 아이와 비옷, 그리고 유모차....

 

'비'와 '옷'

이번 여행을 나와서 비를 만날때 마다 생각해보는 거다.

(덕분에 여기 나와서 우리도 옷에 대한 개념이 조금 바뀐 것 같기도 하다.

 원래부터도 광나는 옷, 멋진 옷이 거의 없는 우리이기는 하지만

 이번에 여행나와서 더욱 더 외부로부터 몸을 보호하는 게 옷, 원래의 기능에 더 치중하기로 했다.

 그래서 우리도 비가 조금 오면 그냥 옷으로 막아내고 있는 중.

 나는 아직 멀었고, 남편은 진작부터 적응하고 ...ㅋㅋ) 

 

하여튼 간에...

'자코파네!!!' 이거 너무 좋은 거 아냐?

숙소에서 부터 산 아래까지 걸어가는 데 진짜 아름답다.

청정의 공기란 이런 걸 두고 하는 말이 아닐까?

 

멀리 보이는 타트라 산.

오르지도 못할 산,

아니 오르지 못해서 더욱 아릅답게 보이는 산.

더욱 아쉽고 안달하게 만드는 멀리 보이는 자코파네의 높은 산 봉우리와 빽빽한 침엽수림.

 

다시 이 곳에 올 수 있을까?

언제 다시 올 수 있을까?

여기 다시 와서 저 산을 오를 수 있을까?

이 거리를 걸을 수 있을까?

우리 인생에 다시 한번 더???

 

아쉬운 마음으로 자코파네를 떠난다.

 

자코파네 거리에서 많이 보았던 노점상...

빵을 참 예쁘게도 만들었다라고 생각했었는데

빵이 아니고 치즈란다. 이름은 읽기도 어려운 OSCYPKI(오스칲키?)

이게 뭐냐고 물으니, 치즈 한조각을 잘라주며 먹어보란다.

고소하다....

 

언젠가는 다시 꼭 오리라, 저 산을 꼭 올라보리라...

기약없는 다짐을 하고 슬로바키아로 떠난다.

 

 

<슬로바키아의 타트라산, 즈다 마을>

눈을 뜨자 비가 오는 것을 보고 실망하고 있는 우리더러

자코파네의 숙소 플라밍고 호스텔 매니저는

그러면 즈다(Zdiar)에 한번 가보라고 했다.

거기는 슬로바키아인데 산맥 저쪽 편이니까, 어쩌면 비가 조금 덜 내릴지도 모른다고.

 

어차피 슬로바키아의 브라티슬라바가 다음 목적지이니

그것도 좋겠다.

즈다. 난생 처음 들어보는 마을 이름이다.

이것 또한 '비오는 자코파네가 우리에게 주는 선물'이다.

 

자코파네에서 1시간 거리.

그렇게 우리는 폴란드에서 슬로바키아로 넘어간다.

가는 길 중간중간에 타트라 산맥의 예쁜 마을들이 보인다.

 

아직도 비는 그치지 않고 있다.

차창을 두드리는 빗방울.

그래도 차 안에서 따뜻하게 바라보는 비오는 풍경은 참 좋다.

신발 밑창으로 물도 안들어오고... 으스스 추워지지도 않고...

 

폴란드에서 우크라이아로, 또  러시아, 발트해 3국, 다시 폴란드로 돌아오기까지

거의 보지 못했던 풍경, 겹쳐진 산들과 산 중턱의 나무 숲들.

약간은 어둡고 관료적이고 축축한 바르샤바와는 다른 느낌이다.

오히려 스위스에 가까운 단독전원주택이 많다.

오랜만에 산으로 가는 풍경은 정겹다.

 

자코파네를 떠난 지 30분쯤 되었을까?

드디어 슬로바키아 국경을 넘는다.

예전에는 폴란드와 슬로바키아 간의 국경에서 출국, 입국 심사도 했을텐데..

이미 유럽연합(EU)으로 하나가 된 두 나라에서는 출입국을 위한 어떤 행정적인 절차도 없다.

마치 우리나라 경상도에서 전라도를 가는 도로인 것 처럼.

 

단지 다리 하나를 건너는 정도가 서로의 국경이라는 흔적이다.

아래는 조그만 샛강이 흐른다.

이 개울 하나가 국경.

이미 대부분의 유럽이 보더(Border)에서의 경계는 사라지고 있다.  

 

즈다 마을에 도착했다.

하~~~~~~~~~

정말 좋다.

비도 거의 그쳤다.

'오늘 저녁 여기서 자고 내일 아침에는 여기서 등산을 할 수 있겠구나'

자코파네에서 비가 안내렸다면 모르고 그냥 지나쳤을 마을이다.

고맙다! 자코파네!!!

 

이 동네에는 겨울이 되면 정말 눈이 많이 오나 보다.

곳곳에 스키 슬로프가 있다.

하기야 슬로프를 타고 저 언덕배기에 올라서서 쭉 타고 내려온다면???

얼마나 신날까?

어차피 우리야 스키를 못타니 겨울이 아니어도 상관없다.

적당이 물든 단풍을 보면서 능선을 따라 등산을 하는 것만해도 환상적이리라.

아!!! 좋다.

"타트라 산맥!!! 정말 좋은데!!!"

 

마을이라는 것도 조그많다.

마을 주민이 한 100명정도나 될까?

이런 조그맣고 조용하고 깨끗한 시골마을에서 자는 건 얼마나 흥분되는 일인지...

룰루랄라 ~~~ 저절로 흥얼거려지는 콧노래를 부르며 숙소를 찾아 올라간다.

 

자코파네 플라밍고 호스텔에서 소개시켜 준 즈다의  유일한 호스텔

"The Ginger Monkey Hostel".

교회의 언덕 너머에 있는 통나무 집이다.

호스텔 이름도 참 정감간다. The Ginger Monkey Hostel.

배낭을 질질 끌고 올라가니 입구에 앉아있던 다른 게스트들이 반갑게 맞이해준다.

어쩜 사람들까지 이리 친절한지...

룰루랄라~~~

 

문을 열고 들어서니 배낭여행자들이 꽉 찼다.

'흐미~~~ 좋은 거'

'아니 이 사람들은 어찌 이런 구석에 있는 호스텔까지 알고 찾아왔을까?'

'우리나라 사람들은 잘 몰라도 다른 나라에서는 유명하나?'

'도대체 몇 나라 사람들이 있는거야? 오만 나라에서 다 온 것 같은데???'

 

배낭여행자들이 꽉 차있다는 사실에 괜히 즐겁고 흥분된다.

이 사람들하고 이 곳, 저 곳 세상 이야기를 할 생각에....

 

아!!!!!!!!!! 그러나!!!!!!!!!!!!!

배낭여행자가 꽉 찼다는 건 그리 좋아할 일만은 아닌갑다.

방이 꽉 다 찼단다.

이 호스텔 전체에 싱글 침대 딱 하나만 남아있을 뿐이란다.

 

여행자가 많다는 것에 방 없을 건 걱정 안하고 대뜸 신나하기만 했던 내가 부끄럽다.

저녁에 잘 방도 안 구해놓고 버스에 내려 멋진 산을 보면서 내일 할 등산부터 먼저 상상한 내가 참 한심하다.

으으으으~~~

 

온 마을을 다 뒤집어 봐도 오늘 저녁 우리가 잘 방은 없다.

100명도 채 안사는 것 같이 조그맣고 조용한 마을이라고 좋아한 게

고작 몇십분 전인데

'마을이 콩알만해서 호스텔이라고는 고작 달랑 하나밖에 없냐?'고 이제는 투덜대는 내 변덕이 쪽팔린다.

원래는 펜션도 있다는 데 성수기가 지나서 이제는 거의 문을 다 닫아버렸다.

흑흑흑~~~~~~~~~

오늘 밤!!! 우리는 어디서 자냐?

'비오는 자코파네가 주는 선물'이 뭐 이렇게 끝은 허무하다냐?

 

싱글 침대 하나만 달랑 남은 이름도 괴상망칙한 생강 원숭이(Ginger Monkey) 호스텔의 문 앞 의자에 앉아

툴툴거리며 즈다 마을만, 타트라 산만 쳐다본다.

호스텔 이름도 이게뭐냐? 촌스럽게... 생강원숭이 호스텔이라니...

흑흑흑~~~

 

결국 우리는 즈다에서 다시 포프라드(Poprad)로 50분 버스를 타고 나가

4시간 걸리는 슬로바키아의 수도 브라티슬라바로 가는 기차를 타야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