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188 (10월 4일)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전원도시 시굴다에서

프리 김앤리 2009. 10. 4. 22:50

키워드는 '노래'.

발트해 국가들을 여행하다보면 '노래'에 관한 이야기가 많이 나온다 .

'밤부터 다음날 낮까지 밤새도록 수많은 사람들이 광장에 모여

 독립을 외치는 자유의 노래를 불렀다는 에스토니아의 노래혁명(Singing Revolution)' 이야기.

소련도 비폭력 저항운동의 하나인 사람들의 합창을 막을 수는 없었다는 이야기.

저항의 상징으로 된 사람들의 합창은 이웃나라 라트비아에도 리투아니아에서도 계속됐다는 이야기.

그리고 결국엔 1989년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에서 부터 라트비아의 리가, 에스토니아의 탈린까지 이어지는

620Km의 긴 거리에 사람들이 인간띠를 만들어 독립을 외치는 노래를 불렀다는 감격스런 이야기까지...

 

그래서 지금도 발트해 3국에선 수만명의 사람들이 한자리에 모여 노래 페스티벌을 열고 있다는 이야기까지...

 

어디를 가나 '노래' 이야기였다.

이리도 아름다운 혁명의 이야기가 있었는지,

지금까지는 제대로 몰랐던 역사의 한 장면이었다.

 

'노래' 이야기에 흠뻑 젖은 채 찾아온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시청앞 광장에서 제일 먼저 우리 귀에 들어온 것은 젊은이들의 아름다운 노래소리였다.

악기 하나 없이 오로지 청아한 목소리로만 들려주는 라트비아의 전통합창.

무대에서 보는 화려함도, 격정적인 목소리,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는 없지만

이들의 선배들이, 그들의 선조들이 불렀을 것 같은 잔잔하면서도 뭔가 가슴을 울리는 듯한 아름다운 목소리와 선율.

'이들은 이렇게 노래라는 걸 통해 사람들과 마음을 나누며 살아왔구나'

'억눌렸던 자유를 찾기 위해, 빼앗긴 나라의 독립을 위해

민족이 하나가 되어 가장 부드러운 음악이라는 것으로 하나가 되어 있었구나'

 

차가운 날씨, 싸-한 공기를 가르는 이들의 맑은 노래소리가

리가를 떠나온 지금까지도 선명하게 기억속에 남아있다.

아름다웠다. 감격스러웠다.

 

그러고 보니 리가에서는 거리의 악사들을 많이 만난 것 같다.

유럽의 어느 곳에서도 마찬가지였고,

매번 거리의 악사들에게 감동을 받는 우리이기는 하지만...

 

그런데 리가에서는 좀 특별한 거리의 악사들을 자주 만났다.

아주 어린 연주자들.

중간중간에 틀리기는 하는 솜씨가 그다지 훌륭한 것 같지 않은 것 같은 데

골목 골목을 차고 앉아 연주를 하고 있다.

바이올린을 하는 애도, 아코디언을 연주하는 애도..

 

사진에 보이는 이애들도 마찬가지였다.

모퉁이를 돌아서는데 어디선가 들리는 "Somewhere over the Rainbow~~~".

클라리넷 소리였다.

그런데  이번에도 그리 훌륭한 연주자는 아닌가 보다.

역시...

여자 애들 둘이다.

거리에 나와서 연주를 할 정도는 아니다.

그런데 한 두소절이나 불었을까?

바람이 휭하니 불더니 땅바닥에 밟고 서있던 악보가 날아가버렸다.

ㅋㅋ

연주를 더이상 못한다.

아마 악보를 외우고 있지는 못하는 모양이다.

ㅋㅋ

옆에 서 있던 애가 후다닥 뛰어가서 날아가는 악보를 잡는다.

꺄르르르

 

 

무슨 연주자가 이리 품위도 없어야???

바람이 불어 악보가 날아가도 적어도 몇소절은 너끈하게 더 불고 있고,

옆에서 도와주는 사람이 슬쩍 다시 악보를 보면대에 끼우면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연주를 계속 이어가야 하는 데...

(이건 프로들의 이야기겠지...

 얼마나 손이 시려웠던지 장갑까지 끼고 악기를 연주하고 있는 정말 귀여운 아마추어들인데...)

 

꺄르르르...

보고 있는 우리도 우스운데

둘이는 뭐가 그리 즐거운지 계속 꺄르르르 거리고 있다.

뒤에 세워 둔 보면대는 아마 바람에 자꾸 흔들거려서 악보를 발로 밟고서 하나보다.

연주는 해야하지, 그런데 악보는 못 외우지...

 

청중을 보면서 우아하게 연주를 해야 하는데

(하기야 청중이라고 해봐야 우리 둘 밖에 없었지만)

한쪽 발로 악보를 밟고,  머리는 악보쪽으로 잔뜩 숙인 채

다시 연주를 시작한다.

"Somewhere over the Rainbow way up high

 There's a land that ~~~"

중간 중간에 삑사리가 조금씩 나기는 하지만...

 

연주를 마친뒤에 몇살이냐고 물어보니 12살이란다.

그땐 라트비아 돈을 바꿔 놓은 게 없고

마침 우크라이나 지폐가 한 장 남아있어 이걸 줘도 되겠냐니까

굉장히 좋아한다.

꺄르르르 생기발랄한 웃음소리와

약간은 허접하기는 하지만 청중에게 주는 감동만큼은 몇배하는 아이들의 연주를 다시 들으며

골목을 돌아나온다.

 

무슨 돈벌이로 나와 있는 건 정말 아닐테고...

여긴 아이들이 거리로 나와서 연주를 하고 있는 게 많지?

학교에서 숙제로 내줬나?

거리에서 연주하고 담력을 키워오라고?

아까 물어보고 오는건데...

'니네들 왜 여기 나와서 연주하고 있는거니?"

그런데 생각해보면 우습다.

기껏 나와서 연주하고 있는데 (그게 연습이건, 숙제건 간에...)

얼굴도 이상하게 생긴 동양사람들이

"왜 나와서 연주를 하냐?"는 질문을 하면 뭐라고 답해줬을까???

그래도 물어보는 건데...

 

하여튼 라트비아의 리가에서는 도착하자 마자

기분좋은 음악과 함께 시작된다.

 

발트 3국중 하나인 라트비아.

국토는 남한보다 조금 작지만 인구는 230여만명.

대구만한 인구를 가진 작은 나라 라트비아의 수도 리가.

 

구도시가 뚜렷하게 구분되어있는 에스토니아의 수도 탈린과는 달리

리가는 구도시가 있긴 하지만 현대식 건물도 중간 중간 들어서 있다.

구도시 자체로는 탈린이 예쁘기도 하지만, 도시로서는 강과 바다를 낀 리가가 더 예쁘게 느껴진다.

 

리가에 도착하고서도 비가 내리다가 그치다가 하는데

구시가를 들어가는 골목길에 빨래가 이상하게 늘려있다.

멀리서 보면 빨래이지만 가까이서 보니 빨래 모양을 한, 사람의 이목을 끄는 일종의 간판이다.

빨래줄을 걸어놓은 곳은 레스토랑.

이색적인 아이디어의 광고를 보면서 구시가를 들어선다.

 

라트비아나 리투아니아에는 호박이 많이 난단다.

넝쿨째 굴러들어오는 호박 말고 보석 호박.

길거리 노점상엔 호박으로 만든 각종 장신구들이 가장 많다.

호박 목걸이, 팔찌, 귀걸이.

여기서 노랑 호박 귀걸이나 하나 사볼까?

(여기서도 망설이기만 하다가 결국 하나도 못샀다.

 5유로 정도 밖에 하지않았는데.. 여행자란... 이거 원!!!) 

 

여기도 예쁜 벽화가 보인다.

가운데 있는 분홍색이 약간 깃든 흑백 사진과 같은게 벽화다.

 

시청앞 광장에 있는 있는 검은 머리의 집(Blackhead's House)

눈부실만큼 화려하다. 

 

블랙헤드의 집이라.

중세시절 외국상인길드 건물이란다.

리가도 한자동맹의 한 도시였는데

중세 시절의 상인에는 흑인도 있었나?

(공부를 하면서 다녀야 하는데.. 점점 상상과 의문, 짐작만으로 그냥 넘어가는 게 많아진다.

 그러면 또 어떠리.)

 

뾰족뾰족하게 만들어놓은 지붕과 붉은 벽돌 지붕이 참 예쁘다.

바로 앞에는 로랜드의 동상 (The Statue of Roland).

독일의 브레멘 광장에서 보았던 동상과 같은 인물이다.  

 

태양을 주제로 여러가지 소품들을 만들어 놓은 가게 앞에서.

노랑색의 태양에 어울리에 가게 앞에는 노랑 국화 한다발을 꽂아 둔 화병이 눈에 띈다.

 

무슨 건물인지도 모르겠다.

지붕위에 조각해 놓은 고양이때문에 찍은 사진이다.

갑자기 어릴 때 봤던 영화 '뜨거운 양철지붕위의 고양이'가 떠올랐다.

왜 , 고양이를 저 높은 곳에 세워뒀을까?

( 이것 저것 생각하며 돌아나오는데 길거리에도 고양이가 제법 많이 보인다.

  그럼 이 녀석들은 뭐지?) 

 

리가에서의 또 특별한 발견은 건물 외관의 장식들이다.

소위 '아르누보 양식 건물'

아르누보(Art Nouveau)는 1900년을 전후로 유럽과 미국에서 유행한 장식미술 양식으로,

길고 구불구불하며 유기적인 선을 사용하는 것이 특징이다.

주로 건축물의 디자인이나 실내장식, 보석세공등에 많이 쓰였단다.

고상하면서도 율동적이고 강력한 힘을 암시한다는 아르누보의 선.

그냥 밋밋한 외관이 아니라

건물 외벽을 다양하게 장식하여 아름다움을 더해주고 있다.

 

 

 

 

   

 

  

 

 

 

 

 

 

 

 

 

 

 

 

 

 

 

건물의 정 중앙에는 사람의 얼굴을.

하기야 실용성과 기능성을 중요시 하는 완전 현대식 건물이 아니면

유럽의 대부분 건물 외관이 조각품으로 장식해 놓은 것은 허다한 일이기는 하지만

인포메이션에 있는 자료에도 이 조각을 다 설명해놓은 걸 보면

리가에서는 이 건물을 대단히 자랑하고 있는 듯 하다.  

 

이번 여행 내내 생각하고 있는 '삶의 질'

도대체 어떤 걸 두고 '삶의 질'이 높다고 하는걸까?

여행오기 전에는 몰랐는데

발트해 국가에 들어와서 라트비아가 국가 부도가 났다는 사실을 알았다.

나라가 부도났으니 우리의 관념대로 한다면

나라가 엉망진창이 되어 있어야 한다.

더구나 20년전까지만 해도 소련의 한 연방국가로 독립조차 하지 않았던 나라였다면...

이전 우리의 생각으로는 '사회주의 국가'의 사람들의 삶은 형편없어야 한다고...

 

그런데 와서 보니 그건 아닌 것 같다.

그래도 구소련에서 독립한 15개국중 발트3국은 국민소득, 민주주의 정도가 최상위 그룹에 속한다고 한다.

확실히 러시아나 우크라이나 보다는 자유롭고 생활수준이 나은 듯하다

문화를 사랑하고 삶의 멋을 알고 또 즐길 줄 아는 사람들이 보인다.

이념만을 중요시하고 뭔가 통제속에 감시속에서

사람들의 눈빛이 불안하기만 해야 할 것 같았던 이전 사회주의 국가들의 거리를 보면

'느긋한 삶, 풍요로운 삶'이 뭔가를 자꾸 생각하게 한다.

건물을 하나 지어도 그렇고...

 

아르누보 양식이라는 건축물들을 실컷 보고 돌아서는데 모퉁이에 또 독특한 모양의 조각상들을 만난다.

다양한 사람들의 얼굴을 쭉 조각해놓은...

물론 길거리에서 노래를 부르고, 건축물이 아름답고, 미술품들이 즐비하다고 해서

단순히 '삶의 질'이 높은 것은 아닐게다.

그러나 한가지 분명한 것은 이들에게는 우리와 같이

아둥바둥, 무자비한 경쟁, 출세와 권력이 그리고 돈을 가장 중요하게 여기는 세상은 아니라는 거다.

그러지 않는가?

국가부도가 났다는 아이슬란드도 삶의 질, 행복지수를 따진다면 올해도 전 세계에서 3위라지 않는가?

 

Karlis Padegs 동상.

아티스트라는 데..

우리도 도시에 이런 동상 하나쯤 있으면

거리를 걸으면서 얼마나 행복할까?

 

담쟁이 넝쿨이 벽면을 거의 다 덮었다.

담쟁이에 단풍이 든 건 처음본다.

이 만큼 자라려면 세월이 어느 정도 흘렀을까?

저 건물과 함께 이 세월을 지키고 있는 것일까? 

 

리가의 성이 보이는 다우가바(Daugava)강에서 . 

 

오밀조밀 각각의 색으로 예쁘게 만들어진 에스토니아의 탈린과 다르게

리가는 시원시원하다.

그리고 아주 잘 가꾸어진 나무 숲들.

도시 전체가 공원이다.

도심 한가운데로 흐르는 조그만 샛강.

 

쭉쭉 뻗은 가로수길.

 

샛강의 라트비아식 전통가옥.

 

리가에는 마음 아픈 것도 있다.

유럽 어디에서도 볼 수 없었던, 아니 같은 발트해 국가라는 에스토니아에서도 전혀 없었던

나이 많은 구걸자들.

너무나 많다 .

따뜻해서 그런지 한 지하철 통로에는 몇명씩이나 동전을 구걸하는 할머니, 할아버지들이 있고

교회나 성당 앞에는 반드시 거지들이 보인다.

모두다 나이드신 분들이다 .

다른 유럽 나라들은 사회복지제도 덕분에 모두들 연금받으면서 여행을 다니고 있을 나이인데..

여기는 왜 이렇는지...

진짜 국가가 부도가 나서 나라에서 더 이상 연금을 주지 않는 것인지...

아니면 원래 이 나라에는 노인 연금이라는 게 없었던 것인지...

네팔이나 인도에서처럼 나이 어린 아이들이 구걸 하는 것도 마음 아팠지만

이 추운 날씨에 저렇듯 나이 드신 분이 길거리에 앉아 있는 모습은...

어찌 할 바를 모르겠다. 

 

 

<전원도시, 중세 성의 도시 시굴다>

라트비아에서도 수도 리가 말고 한군데는 다른 곳을 가고 싶었다.

리가에서 1시간 정도 걸리는 시굴다.

중세 성도 있고, 국립공원도 있어 케이블카도 타고 번지점프도 하고 여러가지 액티비티가 있는 아주 좋은 곳이란다.

 

아! 좋다.

버스에서 내리자마자 상쾌한 공기의 숲길이 우리를 반긴다.

가우야 (Gauja) 국립공원

도시 전체가 숲길이다.

 

그런데 비가 온다.

게다가 날씨도 춥고.

(날씨가 여행의 반이라더니만, 추우니까 아름다운 경치도 눈에 안들어온다. )

중세 성벽터가 남아있는 곳에서.

한여름 밤에는 이곳에서 공연도 하고 그런다는구만...

우리에게는 젖은 의자를 보여줄 뿐 앉을 수도 없게 되어 있다.

경치는 정말 좋은데... 공기는 정말 좋은데...

'이렇게 비가 와서 케이블카를 타겠어?'

국립공원 전체가 다 보이는 끝내주는 전망이라더니만

아래로 뭐가 보이겠어?

시굴다... 너도 다음에 우리를 다시 기약하는 거야?

그럼 뭐야? 여기를 한번 더 와야한다는 거야?

ㅎㅎㅎ 그렇게 좋은 일이???'

 

비가 오거나 말거나 성 앞에 있는 조각상들은 의연하다.

 

누가 찾아오든지 말든지 성터 안에 있는 레스토랑도 단정하게 앉아있고...

 

그냥 이곳 저곳을 쏘다니기만 했다.

그리고 시굴다 도시 온 천지에 널려있는 주인없는 사과나무.

비를 맞아 여기저기 사과가 떨어져 있다.

가지치기를 안해서 그런지 사과가 그다지 크지는 않다. 거의 주먹만한 크기.

도대체 이 많은 사과나무와 사과는 누굴 위한 거지?

다람쥐를 위한 건가?

 

나도 다람쥐마냥 도시 이곳 저곳을 다니면서

빨간 사과, 파란 사과 참 많이도 줏어먹었다.

그리고 집으로(? 리가) 돌아갈때는 배낭에 한가득 담아가지고도 갔다.

시굴다가 주는 자연의 선물로...

 

리가를 떠나면서 만난 아이들과 함께.

동양인이라고 아이들이 스스럼없이 우리에게 다가온다.

나이키모자에, 삼성.노키아 휴대폰을 가진 12살 소년들

이것 저것 묻는다.

중간에 있는 롭은 영어를 제법 잘 쓴다.

우리는 얘들한테서 라트비아어를 몇가지 배우고....

이렇게 라티비아 수도 리가를 떠난다.

 

한국은 '추석'이라고 여기저기서 안부를 묻는다.

'추석'

한국의 가족들도 생각나고, 보름달도 떠오르고

맛있는 음식도 생각난다.

그래서 라트비아 리가에서는 특별히 둘이만 자는 더블룸에 들어갔다.

우리 둘에게 스스로 주는 '추석 특집 선물'로.

거기도 추석을 지내는지( 그게 아니라 이미 시즌이 지나서 그렇단다 ㅋㅋ)

호스텔에는 우리 말고는 딱 한 명 더 손님이 있을 뿐이다.

달랑 세명밖에 없으니까

숙소의 매니저는 우리한테 맡겨버리고 아예 밖으로 외출해버린다.

딱 한 명 더 있는 손님조차 아침 일찍 나가서 밤 늦게 돌아오고.

100년도 더 된 건물이라는 6층 호스텔 전체가 다 우리꺼다.

우리도 추석이라고 고기도 구워먹고, 스파게티도 해먹고

오랜만에 편안하게 보냈다.

단지 그놈의 빈대벼룩만 아니었다면...

추석 선물로 들어간 더블룸에서

라트비아의 빈대 벼룩들한테 추석 특집 헌혈 왕창하고 리가를 떠난다.

 

라트비아 아따!

리가 아따!(Good Bye!)