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185 (10월 1일) 에스토니아 수도, 중세도시 탈린에서

프리 김앤리 2009. 10. 2. 02:55

에스토니아 탈린에서는 모두 나흘동안 있었다.

탈린의 구시가지는 한나절만 하면 충분히 다 돌아다닐 수 있을 만큼 자그마한 곳이었다.

그런데, 우리는?

러시아에서 워낙 많이 걸어서 피곤했던데다가, 야간버스에서 고생을 해서 하루는 숙소에서 쉬다가 자다가...

하루는 핀란드의 헬싱키를 다녀오고,

또 하루는 헬싱키에서 찬바람을 맞으며 너무 많이 돌아다녀서 피곤해서 또 숙소에서 쉬다가 자다가...

그리고 마지막날 하루동안  탈린의 여기저기를 돌아보았다.

그래서 처음 이틀 예약한 숙소를  하루 연장하고, 다시 또 하루 더 연장해서 결국엔 나흘밤을 머물렀다.

물론 숙소에서 뒹굴던 날들도 표끊으러도 나가고, 밥먹으러도 나가고 ,또 뭔가 먹을 것 사러

잠깐 잠깐  밖으로 나갔던 터라 마지막날 탈린을 돌아다니던 날에는

마치 이미 알고 있는 동네처럼, 이전부터 쭉 살아왔던 우리 동네 처럼 익숙했었다.

 

사랑스럽고, 이쁜 도시 탈린.

 

무뚝뚝하기 이를데 없는 러시아를 떠나 도착한 탈린.

어둠도 채 가시지 않은 새벽 5시 30분, 버스터미널에 내린 우리를 맞이하는 건

부슬부슬 내리는 겨울비였다.

아!! 그 처량함.

숙소를 찾아가기는 너무 이른 시각. 마침 터미널 커피숍이 문을 연다.

그리고 상냥한 점원 아가씨.

따뜻한 커피 한잔과 빵 한조각, 미소를 머금으며 친절한 안내까지 해주는 탈린의 예쁜 언니 덕분에

얼었던 몸이 금새 풀린다.

 

아!! 러시아를 떠나왔구나!

다시 친절한 동네로 돌아왔구나.

우리의 얄팍한 영어도 잘 통하는 동네, 어디서든지 미소로 사람을 대하는 마을, 그곳에 우리가 도착했구나...

 

날이 밝아오면서 눈에 들어오는 탈린의 모습은 우리가 처음 만난 에스토니아의 그 아가씨처럼

아름다웠다.

멀리 바라다보이는 발트해, 그리고 세상의 다른 어느 곳보다도 잘 보존되어 있다는 중세의 모습.

자그마한 구 도시를 둘러싸고 있는 높은 성벽과 타워의 붉은 지붕, 그리고 뾰족한 교회의 첨탑...

들어서면 전체로  밝은 분위기에 슬그머니 기분이 좋아진다는 탈린.

 

누군가가 그랬다.

에스토니아의 여자들이 세상에서 가장 예쁜 것 같다고.

내심 많이 기대를 하고 있었다.

도대체 어떤 걸 두고 말하는 걸까?

개인적으로는 아주 싫어하는 대회이기는 하지만, 미스 유니버스대회에서 제일 아름다운 미녀로 자주 뽑히는 베네수엘라의

여자들처럼 그렇게 이쁘다는 걸까?

 

그런데 와서 보니, 내가 만난 탈린의 여자들이 예쁘다고 말하는 건

그들의 입가에서 지워지지 않는 미소때문인 것 같다.

역시 웃는 얼굴은 아름답다.

(그래도 라오스의 그 순박한 미소에 따라가지는 못한다는 게 내 결론이다.)

 

탈린 시청사 광장에 들어섰을때 초코렛 버무린 아몬드를 팔고 있는 아가씨.

일반적인 미의 기준과는 다를지 몰라도

활짝 웃는 모습이 예뻐 두번이나 우리는  저 아몬드를 사먹었다.

 

탈린은 독일의 중세도시 로텐부르그를 많이 닮았다.

마을 전체가 성벽으로 둘러싸여 있는 거 하며

중간중간에 세워진 토르(타워), 토르의 빨간 지붕까지.

 

그런데 로텐부르그는 구도시 전체를 관광지화 해서

사람 사는 동네라기 보다는

관광객을 위한 가게, 식당만 있는 어딘지 모르는 인공적인 냄새가 나는 곳이었다면

탈린은 '그저 이렇게 사람들이 살아왔구나'라는 느낌을 주는 곳이다.

아주 오래전부터 이곳에서...

 

성벽안에도 집도 짓고,

 

학교도 있고.

 

한 고등학교앞.

오늘은 학교 개교기념일을 맞아 특별한 분장을 한 거란다.

매년 하는 행사라고.

아침 일찍 분장한 아이들의 웃음소리 가득한 사람사는 동네다.

 

한쪽으로는 가게도 열고,

 

여느 도시처럼 이쁜 기념품들도 팔고,

 

물건도 내다 파는 그런

사람사는 동네.

그래서 로텐부르그에서의 그 앙증맞은 느낌은 없어도

우리에게는 훨씬 마음 편안한 곳으로 다가왔다.

 

날씨도 추운데 저 가게에서 털옷이나 하나 사 볼까?

장갑이나 목도리는 어떨까?

 

사람들이 몰려오던 한여름은 지나가버리고

철지난 계절에 때늦은 관광객들만 어슬렁거리는 탈린의 한 성벽 아래에서

이리 저리 그냥 목적없이 돌아다녔다.

 

그런데 참  춥기는 하다.

진짜 털옷을 하나 사버릴까?

사서, 안입을 때는 어디다 넣어가지고 다니지?

가방이라고는 달랑 배낭 한개와 작은 쌕 한개밖에 없는데.

짐을 줄이느라고 배낭 한개만 메고 나왔는데

이제는 가방이 작아 필요한 물건을 사지도 못하는 우스운 꼴이 되버렸다.

 

그런데 도대체 이해가 되지 않는게 있다.

성벽 바로 옆에 있는 푸른 잎 융성한 나무.

지금이 털옷을 꺼내입고 털 목도리 칭칭 감는 날씨에 가당키나 한 모습인지???

우리 같으면 진작에 나뭇잎은 다 떨어지고 메마른 가지만 앙상하게 있어야 하는데...

 

푸른 잎 무성한 나무 뿐만 아니다.

초록 잔디는 어떻고.

이렇게 추운데 북쪽의 잔디는 추위에 아랑곳하지 않고 참 꿋꿋하다.

도시 전체가 다 그렇다.

낙엽에 하나둘식 떨어지기는 하지만

아직 커다란 나무에 잎은 무성하고, 초록 잔디밭은 끝이 없다.

여기는 잔디도 나무도 추위에 내성을 가지고 있나보다.

 

4월 말이나 되어서야 나무에 어린 잎들이 파릇파릇 솟아나기 시작하고

9월 말만 되면 벌써 잎이  떨어져버리는,

원래 잔디도 많이 없지만, 우리는 일년중에 초록 잔디를 볼 수 있는 시간이 얼마 안되는 것 같은데...

여기는 날씨가 추운 대신에

식물세포에게 생명력 강한 엽록체를 준 것인지...

 

성벽 밖으로 잘 가꾸어진 나무들과 잔디밭에 자꾸만 눈길이 간다.

 

여기 사람들에게도 이 정도의 추위는 아무것도 아니겠지?

일년 중에 얼음이 어는 영하의 날씨가 며칠 되지 않는 한국의 부산이라는 남쪽 나라에서

온 이방인 둘은 갑자기 닥쳐온 추위에 어쩔줄 모르고 있는데...

 

참 믿을수 없는 건 저 하늘이다 .

눈이 너무 부셔서 선글라스를 꺼내 쓰기가 무섭게

어느 새 구름이 몰려와 하늘을 시커멓게 덮어버리고 비를 흩뿌린다는 것이다.

 

탈린 구시가지를 바라다 볼수 있는 뷰포인트에서.

발트해도 바라보이는 아름다운 광경인데..

며칠간 고생을 한 나는

이날, 저 아름다운 풍경보다는 그 너머에 두텁게 깔려있는 구름이 더 두렵게 와 닿았다.

 

우리나라 같으면 저게 그냥 구름으로,

파란 하늘에 둥실 떠다니는 뭉게구름'으로 끝날 터인데

여기서는 눈 깜빡할 사이에 하늘을 뒤덮고 비를 내려버린다.

 

이렇게 갑자기 하늘이 어두워지면서...

 

나흘 있는 동안 비가 오지 않은 날은 하루도 없었다.

아니 시도때도 없이 비가 내렸다.

하늘이 개여 눈이 부셨다가, 그리고는 다시 시커먼 구름이 태양을 가리더니 비가 오고... 

하루는 좁쌀보다는 크고 팥알보다는 작은 크기의 우박이 두두둑 떨어지기도 했다.

 

그러다가 또 언제 그랬냐는 듯이 하늘이 쾌청하게 맑아진다.

날씨가 좋을 때 어서어서 다녀야지.

 

1900년에 지어진 러시아 정교회, 알렉산더 네브스키 성당 (Alexander Nevsky Cathedral)

여기도 역시 성당이다.

'신앙'과 '전쟁'

중세 역사의 중심축이다.

현대의 중심은 뭘까?

'물질적 부?' 아니 '부의 축적?'

아니면 여전히 '신앙'일까? '전쟁'도 여전히 건재할까?

우리에게는 그 어느 것도 아닌데.

그럼, 우리는 뭘까?

 

세인트 메리 성당.

 

'성 케서린의 길'

카타리나 길드의 작업장이 줄지어 있던 곳이다.

'중세의 길드'가 번성하던 골목.

지금 탈린의 구시가지에서 가장 중세다운 모습을 간직하고 있다.

 

올라브 교회(멀리 첨탑)를 지나 언덕길을 오르면서.

 

남편은 말한다.

중세에는 사람들이 먹고 입는 것에는 좀 어려움을 겪었을지 모르지만

살아가는 데는 행복했을 것 같다고.

조용하고 품위있는 중세의 거리를 걸으면서

그 시절 사람들의 삶을 떠올려본다.  

 

탈린 시청사. 

 

유럽 어디에서든 볼 수 있었던 시청사 앞 광장.

오밀 조밀 붙어 있는 공동주택들.

 

밤이면 시청사 앞 광장에 불을 밝힌다.

해가 지지 않는 여름날 밤에는 이곳에서 음악회도 열리고 춤 경연도 벌어진단다.

우리가 갔을 때는 무대를 철거하고 있었고, 광장에는 바람만 불고 있었다.

야경을 보는 것에 감사할 밖에...

 

다시 한번더 탈린 시내를 내려다 본다.

 

 탈린에서는 별 한 게 없는 것 같다.

그저 예전에 그 사람이 살았던 것 처럼,

그 거리에서 시장을 가서 먹을 거리를 사와서 장만을 하고 배불리 먹고

저녁이면 따뜻한 보금자리에서 잠을 자는 그런.

 

다음 목적지(에스토니아의 타르투)를 가기 위해 버스표를 예약하러 가고.

(여긴 탈린의 신시가지. 지금은 트램도 다니고 고층빌딩도 보인다)

그저 그렇게 며칠을 보냈다.

여행자가 아닌 것 처럼... 일상의 시간들 처럼... 

 

아주 배부르게 저녁을 먹었던 아프리칸 식당.

페리페리(?) 아니, 페페리였던가?

아프리카 향 가득한 스프와 커리를 시켜서.

 

 

<눈에 띄었던 두 가지>  

하나. 차량 출입 통제 표시.

그냥 간판 하나 달랑 놓아둔 게 아니라,

무슨 강철 말뚝을 하나 강하게 박아놓은 게 아니라

귀엽게 조각한 돌 물개 두마리를 골목 입구에 세워두었다.

'차량은 이 골목으로 들어오지 마시오'

'여기는 사람만이 다닐 수 있는 길이랍니다'

   

둘. 길거리의 꼬마들.

어느 나라든지 꼬마들은 있기 마련이다.

그런데 눈에 띈다는 건

'애들이 혼자서 길거리를 많이 걸어다니고 있더라는 거다.

물론 그동안 우리가 간 곳은 사람들의 거주지가 아니라 대부분 관광지여서 여행자들만 보이고

살고 있는 사람들의 모습이 안 보여서 그런 것도 있겠지만

어른 없이 꼬마애들이 혼자서 혹은 몇명이서 그냥 걸어가고 있는 모습이 많이 눈에 띄었다는 거다.

그만큼 '치안이 좋다는 의미'가 아닐까?

외국에서는 아이들 혼자서 그냥 돌아다니는 모습은 사실 보기 힘들다.

 

이래 저래 사랑스러운 탈린이었다.

 

 

<못다한 러시아 이야기>

러시아 여행을 생각하면서 가장 귀찮았던(?걱정스러웠던) 건 거주지 등록문제였다.

비자야 돈이 좀 들어서 그렇지, 한국에서 여행사에다 의뢰만 하면 초청장등 기타 문제를 다 해결해주니까

우리가 걱정할 사항은 아니었다.

단지 러시아를 여행하는 외국인이라면 누구든지 72시간 이내에 '거주지 등록'이라는 걸 해야한다는 게

좀 걱정스러웠다.

물론 그것도 충분히 돈으로 해결될 수 있는 문제이기는 하다.

러시아에서의 숙박시설이 호텔이라면 호텔에 일정정도 수수료만 (25달러 정도? 700루블) 내면 해결된다고 했다.

그리고 한인민박도 마찬가지. 수수료만 있으면 한방에 해결!!!

사흘을 묵으면 공짜로 '거주지 등록'을 해주기까지...

 

그러나 하루저녁에 일인당 50달러 정도를 줘야하는 한인민박이나 그보다 더 많은 돈이 필요한 호텔은 애초부터 우리의 고려 대상이 아니었다.

(모스크바, 페테르스부르그 모두 우리가 묵었던 호스텔은 일인당 하루에 17달러~18달러 정도였다.)

호스텔을 예약하려고 인터넷 사이트에 들어가니 어떤 호스텔은 거주지 등록을 해준다는 데도 있고,

그런 말이 아예 없는 데도 있고, 어디는 비자초청장은 만들어준다면서도 거주지 등록 이야기는 없고...

또 어디는 그냥 support한다고만 써 있는데 이건 또 무얼 어찌한다는 말인지도 모르겠고...

거주지 등록 대행비도 호스텔마다 다르고...

그냥 우리가 사무실로 가서 해도 된다는 말이가 싶기도 하고...

모스크바에서 한 번 거주지 등록을 하고 나면

페테르스부르그에서 다시 72시간 이상을 있으면 또 해야하는지, 안해도 되는지 그것도 모르겠고...

 

우크라이나 키예프에 앉아 한국 인터넷 싸이트 여러 곳을 가봐도

말이 오락가락... 도대체 어떻게 해야할 지 갈피를 못잡았다.

게다가 '거주지 등록'을 안하면 어마무시한 벌금을 낸다는 이야기부터

잘못하면 러시아에서 출국을 못하게될지도 모른다는 이야기까지...

 

그렇게 정확한 정보도 없이, 아무 결정도 못한 채 모스크바에 도착했었다.

숙소로 찾아간 Moscow Style Hostel의 매니저 앤에게 거주지 등록을 물어보니 아주 명쾌하게 대답한다.

- 한 도시에서 72시간 이상 있으면 외국인의 경우 거주지 등록을 해야한다.

  그러니까 모스크바에서 한번 등록을 하였다고 하더라도 페테르스부르그에서 72시간 이상 머무른다면 다시 등록을 해야한다.

- 그러나 체류시간을 계산할 때 토, 일요일은 계산에 넣지 않는다.

- 그러니까 니네는 일요일 아침에 도착했으니까(키예프에서 밤차로 넘어가서 모스크바에 도착한 날은 일요일 아침이었다)

  모스크바에서 수요일 저녁까지 머무른다고 해도 거주지 등록을 할 필요가 없다.

- 혹시 경찰이 거주지 등록증을 요구하면 기차표나 버스 표같은 이 도시에 언제 들어왔다는 것을 증명할 수 있는

  티켓만 보여주면 된다. 러시아 티켓에는 이름을 일일이 다 기재하니까.

 

명쾌하다 .너무나 명쾌하다.

그러면서 앤은 말한다.

'너희가 원한다면 700루블을 내면 거주지 등록을 해주겠다. 그러나 왜 그렇게 하겠냐?

 수요일 저녁에 페테르스부르그로 가는 밤차를 타면되는데...'

 

그런 계산이라면 일요일 이른 아침부터 수요일 늦은 저녁까지 거의 나흘을 머물러도 전혀 문제가 되지 않는다는 말이지...

오호!!! 이리 쉬운 것을 왜 걱정했을까?

그런 계산이라면 페테르스부르그에도 목요일 아침에 도착해서 목, 금 이틀만 지나면 다시 토, 일 주말이기 때문에

거기서도 거주지 등록을 안해도 된다는 말이다. 월요일 저녁에만 거기서 나오면 된다.

이런 멋진 일이!!!

이렇게 쉬운 일이!!!

 

걱정없이 모스크바를 구경하고 수요일 밤차를 타고 목요일 아침, 페테르스부르그 숙소에 도착했다.

숙박비를 계산하고 나니, 거주지 등록비로 1인당 200루블을 내란다.

이게 무슨 말?

우리는 목금토일 있다가 페테르스부르그를 떠날 거라니까

외국인이라면 무조건 해야한단다, 의무사항이라나?

무슨 소리, 72시간 이내로 떠나면 되고, 이틀 있으면 주말인데 안해도 되는 거 아니냐, 모스크바에서도 안하고 왔다...

아니다, 외국인이라면 해야한다...

'흥, 어림없는 소리!!! 그건 뭣도 모르는 여행자들에게나 통하는 이야기지...'

계속 모스크바 이야기까지 들먹이면서 안하겠다니까,

그럼 그만두란다. 출국할때 국경에서 문제가 생겨도 자기는 모른다며...

'그러면 그렇지... 이것들이 고작 몇푼 안되는 등록대행비 벌어볼려고? '

'한국가면 사람들한테 얘기해줘야지, 러시아, 떨지 말고 가라고... 일정만 잘 짜면 귀찮은 거주지 등록 안해도 된다'고.

그렇게 아무 생각없이 목, 금요일을 잘 다녔다.

 

토요일 아침. 프랑스 애들 둘이 같은 방에 들어왔다.

니콜라스와 프랑스와. 막 탈린에서 넘어오는 길이란다. 

" 니네들 거주지 등록했니?"

" 아직"

" 그거 아냐? 굳이 거주지 등록을 안해도 된다는 사실..."

주절 주절 우리가 알고 있는 여러가지 내용들을 잘난척하고 설명을 다했다.

ㅋㅋ

'니네들 우리 만난 거 행운인 줄 알아라. 돈도 아끼고, 귀찮은 일도 하나 안해도 되고...'

'좋은 정보' 고맙다는 인사까지 받으며 어깨까지 으쓱으쓱.

그런데 한참 후, 프랑스와가 걱정스런 얼굴로 우리에게 다가온다 .

숙소 밖에 붙어 있는 글에 의하면

'한 도시당 72시간이라는 말은 없단다.

 러시아에 들어와서 72시간이내에 등록을 해야한다는 말만 있을 뿐.

 그리고 자기네가 가지고 있는 프랑스어로 된 러시아가이드북에도 러시아에 입국한지 72시간 이내에 반드시 등록을 해야한다고  적혀있단다. 

 그러면서 안전한게 좋으니 자기네들은 등록을 하는 게 맞는 것 같다고.

 

'뭣이라?'

후다닥 밖으로 나가 숙소 벽에 붙어 있는 내용을 읽어보니 진짜 그렇다.

한 도시당 72시간이라는 말도 없고,

국경에서 거주지 등록증을 요구한다는 말만 적혀 있다 .

만약 거주지 등록증이 없으면 상당한 금액의 벌금을 물어야 하고, 출국에 문제가 생길 수 있단다.

 '고작 200루블(7달러, 8,400원) 아끼려다가 이거 '똥' 되는 거 아냐?

 오늘이 이미 토요일이라 관공서도 안할텐데, 내일도 마찬가지고...일요일 저녁에 탈린으로 가는 밤차도 예약해 뒀는데...'

 

구글 사이트에 들어가 영어로 된 '러시아 거주지 등록'에 관한 글을 읽어보니

러시아에서는 거주지 등록을 강력하게 권한단다. 'Strongly Recommand'

물론 거기에는 러시아 입국 72시간이내가 아니라, 러시아의 한 도시당 72시간이내라고 말하는 것 같은데

설명이 좀 애매하다.

국경에서 거주지등록증이 없으면 벌금이 100달러 정도 된다는 이야기,

그보다 더 끔찍한 건 출국이 안될수도 있다는 이야기까지...

전날까지 신나게 잘 돌아다니던 페테르스부르그도 그때부터는 눈에 잘 안들어온다.

밤에는 잠도 못이루고 뒤척이기까지...

그냥 할껄. 이제는 주말이라 할 수도 없고...

잠시 잊어버렸다가도 또 떠오르고, 또 걱정되고...

(남편은 그냥 까먹으란다. 안되면 국경에서 돈으로 해결하자고.

 200루블이면 될 것을 우리가 잘못한 죄로 30,000루블을 벌금으로 내면 될 거 아니냐고.

 설마 출국을 안시켜줄리야 있겠냐고...)

아!!! 두사람이면 60,000루블인데...

뭐 피하려다가  더 큰 뭐를 만나는 건 아닌지...

 

일요일 저녁 12시가 넘은 시각.

드디어 탈린으로 가는 러시아 국경.

밤 버스에서 내려 출국심사를 받는다.

두근두근.

앞에 있는 사람들은 모두들, 여권이외에 다른 종이들을 챙겨서 낸다 .아마 거주지등록증이겠지?

두근두근.

출국심사대 앞에서 그냥 여권과 출국카드(이건 입국할때 받는 종이다, 누구든지 가지고 있다) 만 쓱 ~ 내밀었다.

두근두근.

출국심사관이 얼국한번 쳐다보고, 여권 한번 쳐다본다.

콩닥콩닥

그러더니 그냥

"쾅!"

여권에다가 출국도장을 쾅 찍어준다.

??? 아무 일도 없다!!!

뒤따라 오던 남편도 마찬가지. 도장 "쾅!"

거주지 등록증은 물어보지도, 요구하지도 않는다.

 

뭐야? 아무일도 없잖아

떠나기 전부터, 러시아에 있는 동안, 마지막 국경에서까지...

내내 우리를 괴롭혔던 거주지등록은 아무일도 없었다는 듯이 싱겁게 다 끝났다.

그러나 이틀간 마음 졸였던 거는 무엇과도 비교할 수 없는 거였다.

 

결론.

러시아에서의 거주지 등록증.

-한 도시에서 72시간 이상 머무를 때는 반드시 해야한다.

-공식적인 가격은 아니지만 모스크바에서는 700루블, 페테르스부르그에서는 200루블 정도의 수수료를 받는다.

  호텔이나 호스텔에서 대행을 다 해준다.

-예전에는 거리에서 경찰들이 불심검문을 하여 외국인들에게 거주지등록증이 있는지 확인하기도 했지만

  요즘은 거의 하지 않는 것 같다.

- 국경에서는 세관통과시 거주지 등록증을 요구하기도 한다.

  그러나 출국심사대에서 거주지 등록증을 요구하지는 않는 것 같다.

  그때도 도시간 이동한 교통티켓이 있으면 한 도시에서 머무른 시간을 증명할 수 있다.

-그러나 이것 저것 신경쓰이면 그냥, 거주지등록을 하는 것이 마음편하다. 

 

그렇게 우리는 러시아를 떠나 에스토니아 탈린으로 들어왔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