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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81 (9월 27일) 제국의 도시,혁명의 도시,예술의 도시, 페테르스부르그

프리 김앤리 2009. 9. 27. 07:16

상트페테르스부르그!

러시아 제 2의 도시.

언제나 유럽이고자, 유럽을 닮고 (?) 싶어하는 러시아인들에게서 '유럽으로 열린 창'이라는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그 곳은 세개의 시간대가 공존하고 있었다.

그 첫째가 제국의 도시, 상트페테르스부르그.

18세기 초 표트르 대제가 이 도시를 건설하고 러시아를 서구 유럽처럼 개혁하고자 했던 시기.

그래서 도시의 이름도 표트르대제 자신의 이름(PETERS, 페테르스)을 붙여 페테르스부르그 (성 피터의 도시)라고 지었다.

러시아 제국의 영광이 고스란히 이 도시 곳곳에 남아있다.

 

다음은 혁명의 도시,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1905년 굶주린 러시아 민중들이 행진했던 다리도 여기에 있고, 황제에게 청원하려는 시위군중들에게 발포를 해

결국 러시아 2월 혁명이 일어나게 한 그 겨울궁전 앞 광장도 바로 이 도시였다.

피의 역사를 간직한 역사의 현장도 그대로...

1917년 겨울궁전을 향해 한발의 공포탄을 쏘아 러시아 10월 혁명의 시발점이 됐던 군함 아브로라호도 여기에 있고,

레닌을 중심으로 한 사회주의 혁명본부가 있었던 곳, 또한 바로 이 도시다.

혁명 이후 이 도시의 이름은 레닌그라드였다.

전세계를 놀라게 한 격동의 모습을 상상할 수 있는 곳이다.

 

그리고 아름다운 예술의 도시,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도시 곳곳에 아름다운 건축물은 물론, 무수한 극장들과 각종 공연.

세계 3대 미술관 중의 하나라는 에르미타쥬 박물관의 끝도 없는 작품들... 그리고 도시 벽에 붙여놓은 유명한 그림들.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푸쉬킨이 이 도시 출신이고 이들의 작품 배경이 이 도시였다.

차이코프스키가 이 곳의 음악원을 졸업했고,

림스키코르사코프, 무소르그스키 같은 유명한 음악가의 활동무대 또한 이곳이다.

1991년 구소련의 해체 이후, 이 도시의 이름은 다시 상트페테르스부르그로 돌아갔다.

 

상트페테르스부르그(2차 대전 이후 이 이름은 독일식이라 하여 페테르부르그로 불렸다 함) 에서 레닌그라드로

다시 상트페테르스부르그로 돌아간 도시.

(여기서 친정 아버지한테 전화를 했었는데,

 아버지는 상트 페테르스부르그라고 하니까 금방 알아듣지를 못하신다.

 그래서 '지금 레닌그라드'라고 대답해 드리니," 아아!!! 레닌그라드" 하신다.

 1924년부터 근 70년간 현세기에는 이렇게 불리웠으니 그 이름이 더 친숙할지 모른다.

 러시아 보다는 소련이라는 이미지가 더 친숙한 우리 어른들에게는...)

 

제국의 영광과, 격동의 혁명과, 아름다운 예술을 함께 가지고 있는 도시 .

상트 페테르스부르그를 만나러 간다.

 

 

<제국의 도시,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18세기초 서구와 같은 개혁을 꿈꾸던  러시아 로마노프 왕조의 황제 표트르 대제는

스웨덴을 침공하여  네바강의 이땅을 빼앗고 도시 건설을 명령하였다.

네바(네바는 핀란드어로 '늪'이라는 뜻)강 삼각주와 핀란드만이 만나는 이곳에

서유럽으로 향하는 창의 역할을 할 수 있는 도시.

서유럽 진출을 꿈꾸게 하는 도시...

 

늪에 심을 박고, 땅을 메우고, 운하를 파고, 다리를 연결하여 만든 도시.

그래서 이 도시는 무려 86개의 강과 운하가 있고,

101개의 다리가 섬과 섬 사이를 연결하고 있다.

 

도시를 건설하고 제정 러시아의 수도를 모스크바에서 이곳으로 이전하였는데

처음에는 이 곳으로 사람들이 오지 않아 강제로 이주를 시켰다고 한다.

 

사진은 네바강변에서 바라본 에르미타쥬 (겨울궁전)의 모습.

 

이 도시를 건설한 표트르 대제(피터대제, 피요트르대제.. 다 같은 말이다) 의 동상.

전제군주, 포악한 성격의 소유자라고 표현되기도 하는 표트르 대제이지만

이 도시를 건설한 황제로, 러시아의 개혁과 발전의 기틀을 만든 위대한 황제로 이 도시는 기억하고 있었다.

 

상트 페테르스부르그에는 곳곳에 표토르의 동상이 서 있다.

 

표토르 대제는 선진 문화를 배우기 위해

황제라는 신분을 숨기고 병사의 신분으로 위장, 그 때 당시 선박산업이 발달해 있던 네델란드의 선박회사에 취직한다.

그들의 선박 기술을 스스로 배운 것이다.

그리고 나머지 유럽 여행들을 하면서 러시아보다 먼저 발달한 나라의 문물을 몸소 익히고 고국으로 돌아와

그 것들을 러시아에 적용하기 시작했다.

 

그는 스스로가 몸을 낮춰 열심히 일을 했기 때문에

다른 사람들 모두에게 그런 '성실성'과 ' 전면적 헌신'을 요구했었다고 한다.

 

국가를 위해서라면 귀족들에게도 전 재산을 헌납하기를 명령하기도 하고,

국가를 위해서라면 자신의 목숨까지 받치기를 모든 사람들에게 명령하기도 하고,

그리고 국가를 위해서라는 명분으로 자신과 뜻을 달리하는 사람들을 처단하기도 하고...

이복누이가 쿠데타를 일으키자 무자비하게 진압을 하여 감금하고,

러시아의 개혁에 반대하던 아들도 처형하고 다음날 아무렇지도 않게 일을 한...

 

마음대로 자신의 전권을 휘둘렀다는 점에서는 '전제군주'임에 틀림없고, 용인할수 없는 일이지만

황제의 신분으로 스스로 노동에 참가하고 새로운 기술을 익히고 전파하려고 했던 그의 선각자적 역할은

감탄스러운 일이었다.

 

그래서 후대의 사람들은 그를 아직도 많이 사랑하고 있는 듯하다.

페트로파블로스크 요새에 있는 그의 동상.

2m도 더 넘었다는 그의 동상에 앉아 자신의 소원을 빌면 소원이 이루어진다는 이야기가 있어

왼쪽 무릎이 사람들의 손때로 반질반질하다. 

 

(어느 나라든지 상점같은 곳에서 파는 옷이나 가방, 인형 같은 곳에 새겨둔 사람들의 얼굴을 보면

 그 나라 사람들이 어떤 인물을 사랑하는 지 알수 있다.

 전 세계 어디든지 만날수 있는 인물은 남미 혁명의 아버지, 체게바라의 사진이다.

 최근에는 미국 대통령, 오바마도 간혹 보이는 것 같고.

 러시아에서 가장 많이 본 얼굴은 바로 표트르 대제였다.

 그리고 레닌, 푸틴 전 대통령...

 옐친이나 고르바쵸프, 스탈린은 어디를 봐도 찾을 수 없다.

 사람들이 존경하지 않거나 아니면 싫어한다는 이야기겠지...

 ㅋㅋ 그런데 그건 잘 모르겠다.

 또 자주 보이는 미국의 부시 사진. 존경한다는 의미인지... 아니면 그 반대인지...

 하기야 부시는 얼굴 옆에 이라크 신문기자가 던졌다는 신발이 함께 그려져 있는 경우도 있고,

 또 가운데 손가락 하나만 치켜세운 것도 같이 있는 걸 보면 마냥 존경하는 인물이라는 뜻은 아닌 것 같다.ㅋㅋ)

 

페트로파블로스크 요새.

표트르 대제가 이 도시를 건설하면서 가장 먼저 만든 것으로

여의도 공원만한 자야치 섬 전체를 요새로 만들었다.

요새에는 성당이 있고, 주변 전체는 단단한 붉은 벽돌 성으로 둘러쳐져 있다.

 

또 이 곳은 정치범 수용소가 있는 곳이기도 하다.

도스토예프스키가 바로 이곳에서 사형 집행 직전에 특별사면을 받았다.

사회주의 운동으로  죽음의 문턱까지 갔다온 그의 깊은 고뇌와 번민,

인간에 대한 깊은 성찰이 '죄와 벌'이라는 위대한 작품을 낳았으리라.

 

스웨덴이건 핀란드 건 러시아를 침공하려면 네바강의 이 지역을 지나지 않을 수 없었다.

러시아는 바로 이곳을 단단한 성벽의 요새로 만들었던 것이다.

 

요새 안에 있는 있는 성당.

파란 하늘과 금박의 첨탑이 묘하게 잘 어울린다.

 

예전에 이 성당에서는 황제들이 미사를 드렸던 곳이다.

지금은 표트르대제에서 러시아의 마지막 황제 니콜라이 2세에 이르기까지 로마노프가의 시신을 모셔둔 곳이기도 하다.

내부의 화려함이 눈부시다.

  

네바강을 사이에 두고 페트로파블로스키 요새의 맞은편에는 그 유명한 에르미타쥬가 있다.

이름하여 러시아 황실의 겨울궁전.

 

지금은 세계 3대 박물관중의 하나다.

에카트리나 여제의 명으로 18세기 서구유럽을 돌아다니며 수많은 예술품들을 사모아 놓은 곳.

전시되어 있는 그림만 해도 모두 250만점.

한 그림에 1분씩만 잡아도 다 보려면 5년은 걸린다는 곳. 

걸어서 모두 감상하려면 총 25km의 거리...

 

에르미타쥬 박물관 입구.

보통때 생각하기를 금장식이라는 게 번쩍번쩍하기만 한 것이 참 천박하게 보인다고 여겼왔는데,,,

(사실 사찰 같은데서 발견 할 수 있는 완전 금장식의 부처상은 좀...

 그리고 태국 방콕왕궁에서 봤던 온통 금장식의 건물은 오히려 품위가 떨어진다고 생각했었는데...)

 

거대한 궁전의 내부에 기둥의 일부분, 벽의 일부분으로서의 금장식은

화려함을 오히려 더 돋보이게 한다는 사실을  이곳에서 처음 느꼈다.

예전 제정 러시아 시대에 얼마나 화려하게 살았는지가 막 상상된다.

굶주림과 혹독한 추위에 시달리던 러시아 민중들이 그리고 왜 이 곳으로 행진하였는지를 짐작하게 한다.

 

또 하나의 상트페테르스부르그의 상징,이삭성당.

엄청난 무게의 48개 화강암 기둥이 성당을 떠받치고 있다.

러시아의 육중한 모습, 장엄하고 거대한 모습을 다시한번 실감한다.

 

그리고 상트 페테르스부르그에서 가장 아름다운 건물,

피의 사원(The Church of the Savior Spilt Blood)

원래의 이름은 '예수그리스도 부활사원'이다.

피의 사원이라고 불리는 까닭은 1907년 알렉산드르 2세가 이곳에서 데카브리스트 당원들에게 암살을 당한 곳이라서

그렇게 부른단다.

 

무겁고 무시무시한 이름과는 달리 건물은 세계 어디다 내놓아도 빠지지 않는 아름다움을 자랑한다.

모스크바의 바실 성당은 광장 한쪽에 있어 사람들을 품어주는 느낌이라면

페테르스부르그의 피의 사원은 네바강 한줄기의 옆에 있어 사람들과 함께 흘러가고 있는 듯 하다.

 

역사가 그대로 남아 있는 곳, 제국의 도시 . 상트페테르스부르그... 

 

상트 페테르스부르크의 중심거리 네프스키 대로에서.

300년이 다 되어가는 제정 러시아 시대의 건축물들이 곳곳에 있다.

 

네바강 변에서.

9월 중순밖에 되지 않았는데 오리털 파카를 꺼내 입을 만큼 춥다.

겨울에도 얼지 않는 부동항을 얻으려는 러시아의 노력이 이해된다.

 

 

<혁명의 도시,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네프스키 거리에서 겨울궁전으로 통하는 아치형 문

1905년 1월,

굶주리고 헐벗은 러시아의 민중들이 이길을 지나서 행진을 했을까?

 

겨울궁전(에르미타쥬 박물관)앞 광장

1905년 가퐁신부가 중심이 되어 성상과 황제의 초상화를 들고 노동자들은 그들의 요구를 청원하러 행진한다.

평화적 시위에 경찰이 총을 발포하여 100여명이 죽고, 수백명이 다친다.

소위 '피의 일요일'이 발생한 곳이다.

이 사건은 1905년 2월 혁명의 시발점이 된다.

 

 

무장한 봉기군과 정부군이 치열하게 전투를 벌였던 네프스키 거리의 밤

이곳에서 활동했던 톨스토이, 도스토예프스키, 푸쉬킨,레핀.....레닌, 트로츠키에 이르기까지

수많은 소설가, 화가, 시인, 음악가, 혁명가들이 걸었을 상트 페테르스부르그의 중심, 네프스키 거리.

 

 

이후 1917년 10월 혁명당시

배 수리를 위해 페테르스부르그항에 정박중이던 군함 '아브로라'호

아브로라호는 혁명 지도부의 지시에 의해 5명의 수병이 반란을 일으켜 군함을 장악한 뒤,

황제가 있던 겨울궁전에 단 한발의 대포를 발사한다.

이 한발의 대포를 신호로 혁명세력은 일제히 무장봉기를 시작했다고 한다.

지금은 네바강변에 있다.

많은 관광객이 찾아와 배를 배경으로 사진을 찍는다. 

건너편의 커다란  삼성 광고가 눈에 띈다.

 

표트르 대제의 동상도 많지만 러시아 혁명의 지도자 레닌의 동상도 곳곳에보인다.

아직도 러시아 사람들은 레닌을 많이 사랑하는 것 같다.

 

사진은 레닌의 동상을 청소하는 페테르스부르그의 작은 공원이다.

청소원의 손길에 정성이 보인다.

 

 

인류 역사상 최초로 성공한 사회주의 혁명의 러시아.

이제 이곳 러시아에는 더이상 체제로서의 사회주의는 없다.

 

'모든 사람이 다 평등하게 잘 살게한다'는 사회주의의 이념.

'능력만큼 일하고 , 필요한 만큼 받는다'는 이상주의적 분배는 사라지고

국가가 경제체제 전체를 관리하는 것이 아니라

개인이 자신의 부를 채워나가고, 자신의 재산 축적을 위해 이리저리 바쁘게 뛰어다니는 모습만 보인다.

 

사회주의로서는 망해버린 국가,러시아.

그런데 씁쓸하게도 사회주의의 안좋은 점은 아직도 곳곳에 보이는 듯하다.

지독한 '관료주의', 군데군데 보이는 '감시체제', 그리고 개인의 창의성을 말살하는 것 같은 획일주의...

어쩌면 사회주의를 망하게 한 진짜 원인은  여전히 남아있고

이상적인 이념은 버려버린 느낌이다.

(물론 국가가 시장경제에 개입하여 적극적인 역할을 했던 사회주의의 이념이

 지금은 국가적 차원에서의 복지체계를 만들어 낸 서구 유럽에 적용되었거나

 다른 자본주의 국가에서 받아들이는 것이기도 하니까, 망했다는 것이 전적 맞은 표현은 아니겠지만...)

 

모스크바나 페테르스부르그 같은 곳에서 그 엄청난 깊이의 지하철 역사에 있는 에스컬레이터 그 끝에는 반드시

조그만 부스가 하나 있고, 그 안에는 하루종일 에스컬레이터를 오르내리는 사람들은 지켜보는 (감시하는?) 사람이 있다.

물론 안전을 위해 그러고 있는 것이기는 하겠지만

우리가 보기에는 전혀 필요없는 일자리,관료주의의 전형인 것 처럼 보였다.

어쩌다 에스컬레이터를 타던 사람의 물건이 걸려 기계가 작동을 멈추자

사람의 안전부터 살피는 것이 아니라

마이크로 그 사람에게 고래고래 소리를 지르는 거다.

무슨 대단한 벼슬을 하고 있는 사람처럼... 일반 시민들에 대해서 마치 대단한 '완장'을 하나 차고 있는 사람처럼...

 

지하철 역이나 기차역, 버스 터미널에서 표를 팔고 있는 곳은 다 마찬가지였다.

박물관이나...등등의 입장권을 끊는 곳도 물론.

그들은 대부분이 할머니들이었는데

아마 사회주의 시절에 그 자리에 취직을 했거나 하는 사람들일 게다 .

마치 이전에 우리나라 동사무소나 기차역등에서 보이는 공무원들의 이름모를 고자세.

관료주의의 전형.

 

대신 식당이나 일반 가게에서 만나는 젊은 사람들은 그들보다 훨씬 더 밝고 친절했는데...

자율성과 개인을 이해하고 인정하는 건 사회주의 사회에서 오래 살고 있었던 사람에게는 어려운 일인가?

 

지금도 어디를 여행하든지 기차표나 버스표를 살 때 모두 자신의 신분증을 제시해야 하고,

그 내용을 표에 적는다.

국가가 한 개인이 어디로 여행하는지 다 알고 있어야 하는지...

외국인의 경우는 거주지 등록도 해야하고...

(거주지 등록의 경우는 뒤에 다시 이야기 해야한다. 우리의 경우 ㅋㅋㅋ)

 

사진은 에르미타쥬 박물관을 찾아갔을 때의 모습이다.

아주 추운 날 아침이었는데

오는 사람들을 그냥 순서대로 안으로 넣어주는 것이 아니라 줄을 세우는 거다.

밖에서 50분 정도는 더 기다렸을까?

줄을 끊어 조금씩만 넣어주고, 또 기다리게 하고, 또 조금 넣어주고, 또 기다리게 하고...

그런데 정작 안으로 들어가보니 표를 끊는 곳, 가방을 맡기는 곳,

그리고 옷을 맡기는 곳( 여기서는 반드시 윗도리를 맡겨야 한다. 박물관도 극장에서도...이것조차 개인의 선택이 없는 그들의 강요였다)

으로 나누어져 있던데...

그리 붐비지도 않았다.

그냥 넣어주면 알아서 표를 끊거나 가방을 맡기거나, 옷을 벗어 맡기거나...알아서 할텐데...

그저 줄을 세우는 거다.

줄을 세우는 사람은 폼을 잡고.. 사람들은 그 추운데서 쭉 서서 기다려야 하고...

 

모든 사람이 다 평등하게 잘 살게 한다는 그 좋은 이념은 다 사라져버리고...

관료주의와 통제, 획일주의는 아직도 남아 살아있는 것 같아 씁쓸하다.

 

 

<예술의 도시, 상트페테르스부르그>

그랬다.

모스크바 하면 뭔가 정치적인 도시 같지만,

상트 페테르스부르그 하면 정치적이지 않은 느낌.

그래서 개인적으로는 더 와보고 싶었던 도시.

 

모두들 그랬다.

페테르스부르그는 '예술의 도시'라고...

그곳엘 가면 음악이 있고, 미술이 있고, 문학이 있고... 발레... 건축...

한껏 들뜬 마음으로 이 도시를 찾았다.

 

이 도시를 예술의 도시로 만드는 데 가장 큰 공헌을 하는 것은 단연코 이 겨울궁전, 아니 에르미타쥬 박물관이다.

세계 3대 박물관 중의 하나.

소장품의 양 만으로도 대단하지만 웬만한 유명한 화가의 그림은 다 모아 두었다.

반고흐, 고갱은 물론이고 마티즈, 칸딘스키, 러시아 화가 레핀, 르느와르, 세잔느.피카소...로댕...

프랑스,이탈리아, 영국, 독일... 전시대 전나라의 작품들이 전시되어 있다.

 

특히 에르미타쥬 박물관의 작품들은 대영박물관이나 루브르 박물관, 베를린에 있는 페르가몬 박물관 처럼

제국주의 시대에 다른 나라를 침략해서 긁어 모은 것이 아니라

직접 구입하여 소장하고 있다는 것이 더 뜻깊다.

 

우선 내부의 화려한 장식이 눈에 띄기는 하다.

금으로 장식된? 황궁 내부

화려함에 눈이 어리둥절해지지만...

모든 것이 금으로 되어있으면 기둥도 천장도, 접시도 물컵까지 금으로 되어있으면

오히려 돌이 더 예쁘게 보이지 않았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벨기에에서 봤던 루벤스의 '십자가에서 내려오는 예수'를 비롯해

루벤스의 그림으로 가득 메운 방.

수많은 사람들이 그의 그림을 보기 위해 이방에 머문다.

 

피카소의 방...

 

황금으로 만들어진 공작새

러시아황실의 상징이란다.

이런 화려한 것, 정교한 것들을 많이 보아서 이 사람들의 예술적 감각이 뛰어나다는 걸까?

그래서 예술의 도시라는 걸까?

 

러시아와 나폴레옹 전쟁 당시의 장군들의 모습과 초상화가 쭉 걸려있는 방이다.

박물관을 찾는 사람들을 보면 외국인도 많지만 러시아 자국민도 아주 많은 것 같다.

나이가 든 사람들... 그리고 초등학생, 중학생, 대학생들도 그룹을 지어..

이런 것들을 자주 보아 이 사람들은 점점 더 예술적으로되는 건가?

 

그것만은 아닌 것 같다.

우리를 깜짝 놀라게 만든 건

거리의 이런 모습이다.

에르미타쥬 박물관에 있는 것과 꼭 같은 그림이 페테르스부르그 거리에 붙어 있는 거다.

한 두점도 아니고 수십점씩...

그저 그거리를 오가는 사람들은 자연스럽게 대작들을 접하게 되고

어느새 그림에 대한 감각을 키워나간다는 거다.

 

어깨에는 악기를 메고,

거리의 그림을 감상하고 있는 러시아 청년.

이 길을 쭉 따라 그림들이 걸려있다.

누구든지 볼수 있게... 누구든지 감상할 수 있게...

많은 사람들이 가던 길을 멈추고 그림을 본다.

 

길거리의 그림 전시는 모스크바에서도 볼수 있었다.

단순히 양적으로 많은 그림을 보유하고 있는 국가, 도시의 문제가 아니라

사회구조적으로 이런 밑받침이 있음을 보여주고 있었다.

 

파블로브스키 밖.

네바강이 흐르는 곳에서...

거리의 화가가 그림을 그리고 있다.

누가 보든지 말든지...

파블로브스키와 그리고 네바강...

물론 우리 사회에서도 이런 모습이 없으리란 법은 없지만...

어딘지 여유로워 보인다.

 

상트 페테르스부르그에는 미술만 있는 게 아니었다.

음악이라는 장르. 발레, 연극...등 각종 공연.

어리버리하게 돌아다니다 아무것도 못본 모스크바에서의 바보짓을 반성(?) 하면서

페테르스부르그에는 도착하자 마자 공연부터 찾아 나섰다.

'백조의 호수' 발레 공연이 있다는 미하로브스키 극장을 찾아가니 안타깝게 그 전날 까지만 공연을 했단다.

그리고 다시 10월 초순이 되어서야 있다는...

 

글을 못읽는 것은 물론 말도 한마디 모르는 우리로서 연극이야 언감생심.

오케스트라 공연을 찾았다.

페테르스부르그 필하모니가 정기공연을 하는 극장을 찾아갔는데 이건 또...

며칠 후까지 전부 매진이란다.

아니 이 사람들이 이렇게 오케스트라 공연을 좋아한단 말이야???

 

극장이 한 두개도 아니고

진행중인 공연도 한 두개가 아닌데..

거의 다 매진이란다.

 

우리도 우아하게 폼잡고 공연한 번 볼려고 했는데

할 수 없이 토요일 연주의 스탠딩 석을 살 수 밖에 없었다.

1인당 300루블(12,000원 정도).

이 날은 오케스트라 협주로 피아노 솔로 공연도 있단다.

 

저녁 7시 공연이라 6시 반쯤 극장을 찾아가는 데

그 시각 길이 새카맣다.

사람들의 물결!!!

극장들이 많이 모여있는 페테르스부르그의 뒷길에는 토요일 저녁 공연을 보러 가는 사람들로 만원이다.

이렇게 많은 사람들이!!!

 

특히 나이 많이 드신 할머니 할아버지가 많이 보인다.

두꺼운 외투를 껴입고, 목도리를 두르고, 공연자에게 줄건지 간혹 꽃을 든 사람들도 보이고...

 

1층의 좌석들이 꽉찬 것을 말할 필요도 없고,

우리에게 할당된 스탠딩 석이라고있는 2층 구석의 여러명이 앉는 기다란 소파에도

이미 많은 사람들이 기다리고 있다.

그리고 서서 있는 사람들까지...

 

이곳이 음악의 도시, 예술의 도시가 될 수 있는 건 바로 이 사람들 때문일 것이다.

수준높은 수많은 공연이 유치되는 것도 그것이지만,

이 모든 것을 다 소화낼 수 있는 관객들이 많이 있다는 사실...

새삼 러시아가 대단해 보인다.

 

이런 곳이니까 림스키코르사코프라는 사람이 탄생했겠지, 무소르그스키라는 음악가를 배출했겠지...

위대한 차이코프스키가 이곳에서 공부를 했겠지...

도시 전체의 분위기가 이러한데...

 

이날 연주 자체가 훌륭하다거나  그 솜씨에 감탄했기보다는

예술을 사랑하는 러시아 사람들에게 더 많은 감탄을 했던 것 같다.

 

공연을 보고 나선 늦은 저녁.

거리의 음악가가 들려주는 기타 소리도 흥겹다.

그리고 그 옆에서 어깨까지 들썩이며 같이 노래를 따라 부르는 젊은 여자애들...

기타 선율도 흥얼흥얼... 그리고 듣는 사람들도 흥얼흥얼...

 

그림, 음악, 발레, 연극...

페테르스부르그가 예술의 도시인 것이 틀림 없는 것은 물론 '문학' 일 것이다.

도스토예프스키의 '죄와 벌'의 무대가 바로 이 곳이다.

주인공 라스꼴리니코프가 전당포 할머니를 죽이고 내려오던 그 계단, 그리고 괴로워 하면 방황하더 그 거리...

모두 이곳에 있다.

'삶이 그대를 속일지라도...'의 푸쉬킨이 시를 써내려간 도시.

그의 부인을 사랑한 남자와 최종 결투를 하고, 그 결투로 죽음까지 맞이해야 했던 곳도 이 곳 페테르스부르그이다.

지금도 푸쉬킨의 박물관에는 그가 쓰던 물건들이 고스란히 그대로 남겨져 있단다.

그리고 또 한 사람. 톨스토이.

사회주의 혁명의 기운이 가득한 이 도시에서

사회주의의 이념을 가지고 있던 작가가 밤새 토론을 하고, 사색을 하고 , 글을 쓰고...

 

사실 여기 와서 느낀건데

 이곳의 엄청나게 춥고 긴 밤이 어쩌면 창작을 하는 사람들에게는 좋은 자연환경이었을 거라는 생각을 했다.

 아이슬란드를 여행할 때, 거기 사람들은 '책이 없는 세상은 상상할 수도 없는 끔찍한 일'이라고 말하는 걸 들을 적이 있었다.

 만약 책이 없다면 그토록 긴긴 밤을 어떻게 보내겠냐는...

 

 러시아도 마찬가지 였을 것이다.

 밖으로는 나서기도 너무나 두려운 얼어붙을 듯 불어오는 찬바람의 거리.

 길고도 긴 겨울 밤.

 그들은 책을 읽고 사색을 하고, 그리고 글을 썼을 것이다, 음악을 만들었을 것이다, 그림을 그렸을 것이다.

 그 속에서 대작들이 탄생하고... 

 

바로 이렇게 깊고 푸른 러시아의 겨울 밤. 아무도 없는 거리.

기나긴 겨울 밤.

책을 읽고... 깊은 사색에 잠기고... 

우리가 지금 받을 수 있는 이 위대한 창작물은 이 깊고 푸른 밤에서 나온 것이 아닐까...

예술의 도시, 페테르스부르그에서...

 

 

 **** 에르미타쥬 박물관과 러시아 국립박물관에서 본 여러 그림들과 조각품들은

        그냥 우리끼리만 보아 넘기기에 아까워 사진으로만 올려본다.  *******

   

모스크바 출신이자 현대추상화가의 시초라는 칸딘스키

칸딘스키의 '겨울'

 

 

 미켈란젤로의 '몸을 쭈그린 소년'

 

 로댕의 '영원한 봄'

  

 변호사를 하기위해 변호사사무실에 도제로 갔다가, 그의 재능을 알아본 변호사가 그림을 그리라고 권유해

직업을 바꾼 프랑스 화가, 프라고나르의 'Stolen Kiss' (키스를 훔치다)

 

세잔느의 '쌩 빅투와르'

이번 여행중 액상프로방스에서 쌩빅투와르 산을 눈으로 직접  보기위해 찾아갔다가

길을 잃고 이리저리 헤메다가 결국엔

산불을 감시하는 경찰에게 쫓겨난,

우리에게는 추억이 있는 그림이다.

 

고흐의 '아를의 여인들'

아를에 사는 프랑스 현지인들은 아를이라고 부르지 말고 '아흘르?'라고 하라고 시키던데

우리는 '아를'이라고 부르는 게 느낌이 더 좋고 발음하기도 편하다.

 

고갱의 '과일을 따는 여자'

 

모네의 '정원에 있는 숙녀'

참 느낌이 좋은 그림.

나무와 정원, 그림자, 흰 옷과 흰 양산..

작은 양산이 더 숙녀다워 보이는 ...

 

 

헨리 마티즈의 '춤'

 

 아이바조프스키의 '파도'

 

 미하일 레핀의 그림앞에는 대부분 가이드가 있고  설명은 길고  관람객은 많다.

 

레핀의 '볼가강에서 배를 끄는 사람들'

 

 또 다른 레핀의 작품들 앞에도 사람들은 북적거린다.

 

레핀의 '1905년 10월 17일'

무슨일이 있었기에 사람들이 이렇게 즐거운 표정을 지을까?

아마 그해 1월에 있었던 피의 일요일 사건이후 짜르가 뭔가를 발표해서인가?

 

 

 레핀의 '1901년 5월 국가 공식회의'

중앙좌석에는 니콜라이황제가 있다.

 

 '이른 봄'

러시아의 초봄은 아직 강가에 얼음과 눈이 녹지 않았다.

우리나라 그림이라면 겨울일텐데...

 

 아르키포프의 '방문객과...'

 러시아그림은 대부분 어두운 면이 많았는데...

색감과 표정이 밝다.

 

 '춤추는 사람들'

 

콘스탄틴 유온의 '화창한 봄날'

역시..

러시아의 봄은 화창한 날이긴 해도 눈이 많다.

 

비노그라도프의 '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