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173 (9월 19일) 우크라이나의 키에프에서

프리 김앤리 2009. 9. 19. 05:08

  전혀 계획하지 않았던 곳, 우크라이나의 수도 키예프에 도착했습니다.

  우크라이나는 옛소련의 한 연방으로 지금 러시아의 아랫쪽, 흑해연안에 있는 나라입니다.

  키예프는 지금 러시아의 모스크바, 상트페테르스부르그와 함께 옛 소련의 3대 도시 중에 하나였다고 합니다.

 

 

 <돈을 줘야 하는 이유, 받아야 하는 이유> 

 

 키예프의 가장 중심거리 크레쉬샤티크로 나갔습니다.

 거기에도 역시 거리의 음악가들이 있었습니다.

 벌써 찬 바람이 부는 가을 거리에 정말 어울리는 클래식 기타 연주로 우리의 마음을 사로 잡았습니다.

 처음 들어본 음악인데, 어찌 그리 분위기와 잘 맞는지...

 나도 모르게 지갑을 열어 돈을 주고 있었습니다.

 

 지하도로 들어섰습니다.

 좁고 어두운 지하도 안에서 영화 '레옹'의 주제 음악 'The Shape of My Heart"가  기타 선율로 흐르고 있었습니다.

 지나가는 사람도 거의 없는 지하도.

 기타 소리가 이 벽과 저 벽으로 부딪히면서 더 큰 울림을 만들어 내고 있었습니다.

 하마터면 길거리에 서서 눈물을 흘릴 뻔 했습니다.

 너무나 감동적이었습니다.

 빠른 손놀림과 열정적인 연주.... 우리는 또 지갑을 열었습니다.

 

 남편은 거리의 연주자들을 만나면 이렇게 말하곤 합니다.

 (물론 연주를 아주 감동적으로 잘하는 사람이라면 반드시...)

 "저런 사람들에게는 꼭 돈을 줘야 한다.

  저 사람이 이 일만을 해서 살아갈 수 있도록.

  저런 사람이 살기 힘들어서 벽돌을 지는 것 같은 공사판에서 일을 한다면 어떻게 되겠냐?

  거리의 이 많은 사람들에게 주는 행복함과 감동을 없애는 것과 마찬가지 아니냐?

  저 사람이 계속 저렇게 멋진 연주를 이 거리에서 할 수 있도록,

  저것만 하고도 살 수 있도록 그 음악을 듣는 사람들은 반드시 얼마라도 돈을 줘야 한다."

 

 맞습니다.

 저 사람은 저 연주를 계속하고 돈을 받고 살아야 하고,

 그 음악을 듣고 감동하는 사람은 돈을 내야 한다는 사실.

 

 문득 이런 생각이 듭니다.

 나는 무엇을 하고서, 돈을 받아야 하나?

 그동안 나의 일자리는, 돈벌이는 정말 합당한 것이었나?

 나도 만족스런 일이었고, 나의 그 상대는 또 행복했을까?

 나는 무엇을 하고 살아야, 다른 사람들이 내가 다른 일을 하지 않도록 

 그 일을 위해 나에게 기꺼이  돈을 줄 것인가?

 나에게는 그게 과연 어떤 일일까?

 

 나의 이 물음에 남편은 또 답합니다.

 '우리같은 사람들에게는 나라에서 여행경비를 대줘야 한다'고.

 ㅋㅋ

 이건 또 왠 궤변?

 우리의 여행이 단순히 우리 둘만의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들에게

 '세상에 대한 지평을 넓혀주는 것' 이라서 그렇답니다.

 그러면서 블로그의 글도 그냥 어디를 갔다 왑네, 거기는 그냥 좋더라 라는 식으로 무식하게 쓰지 말고

 좀 더 공부하고 좀더 생각하면서 써야 한답니다.

 그게 지금은 우리가 해야 할 일이랍니다.

 

어디선가 우리를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 우리를 지켜보고 있는 사람들을 위해

그저께 우리 방명록에 누가 남긴 글처럼

고단한 행군, 누가 부르지도 않는 행군을 오늘도 계속합니다 .

우리의 사고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그리고 우리를 응원하고 있는 사람들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

바로 그들의 응원이 지금 우리에게 주어지는 합당한 댓가(위에서 말한 돈)이기 때문입니다.

 

그런데,, 나는 앞으로 무슨 일을 해고 살아야 기꺼운 돈을 받을 수 있을까?

 

 

 <지극한 신앙, 그리고 사회주의와 자본주의가 뒤섞여 있는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가장 눈에 많이 띄는 건 성당이었습니다.

다른 유럽 도시들에서도 성당이 많이 있기는 했지만

그건 오래된 중세의 유적처럼만 남겨져 있는 것 같았던 느낌과 다르게

여기는 신앙이 사람들의 생활 중심에 있는 '현재 진행형'인 것 같았습니다.

이곳의 성당은 대부분 그리스 정교회 건물입니다.

그래서 지금까지 보아왔던 건축양식과 좀 색다릅니다.

 

사진은 성소피아 성당.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입니다.

 

유럽의 성당에서는 사실 미사를 드리고 있는 모습보다는 관광객이 더 많았었습니다.

그러나 여기는 남녀노소없이 모두 성당 입구에서 성호를 그리고

성당안에서는 촛불을 밝히고 기도를 올립니다.

성당을 나설때도 다시 성호를 그리고 기도를 합니다.

그저 성당이기 때문에 형식적으로나마 경건해지고 예를 지키는 모습은 결코 아닙니다.

 

여자들은 모두들 머리에 수건을 두르고 성당안으로 들어갑니다.

기독교 성당보다 좁고 다른 양식의 성화가 가득하지만, 이슬람처럼 여성은 꼭 머리에 스카프를 씁니다.

물론 남성도 아주 경건하게 기도를 합니다.

키예프. 우리는 여기에서 신앙심이 가득한 사람들을 만납니다.

 

동굴 수도원을 나와서 두 성자의 동상 앞에선 엄마와 아들.

청바지를 입고서도 스카프로 엉덩이를 가린 모습의 엄마.

그리고 동굴 수도원을 나오면서 아주 진지하게 성호를 긋는 모습이 인상적인 이었던 아들...

이곳에도 신앙과 가족의 행복이 가득합니다.

 

성 미카엘 성당.

푸른색의 담과 황금색 돔.

그리고 그리스 정교회 검은 복장을 한 신부님들.

한국에선 하나의 모양과 색깔의 교회와 성당들.

성당의 모양도 다 다르고 색깔도 다릅니다.

하느님의 영광을 나타내는 성당도 예쁠 필요가 있다는 생각입니다.

 

 

드니프로(Dnipro)강변에 있는 동굴 수도원 정경.

우크라이나 키예프에는 이런 황금색 돔의 성당이 400여개는 된다고 합니다.

이 나라 사람들에게는 신앙을 떼어 놓고는 생활을 이야기 할 수 없는 듯 합니다.

 

소련 연방이 해체되고 공산주의가 무너졌다고 하지만

그래도 여기, 우크라이나에서는 아직 사회주의 냄새가 많이 납니다.

 

드네프로 강가 어디에서나 볼 수 있는 저 큰 동상이 대표적인 것입니다.

일명 '러시아의 어머니'라고 불리우는 대규모 동상.

높이가 무려 62m에 무게가 530톤이랍니다.

이 동상은 '스탈린그라드 전투'에서 희생된 전쟁 영웅들을 추모하여

러시아의 볼로그라드에 세운 동상을 따라 세운 것으로 동상 아래에 있는 기념관에는

소비에트 시절에 영웅 칭호를 받은 11,600명의 군인과 200명의 노동자들의 이름이 새겨져 있습니다.

혁명과 이념의 시대가 지나고 나니,

한 도시를 내려누르듯이 엄청난 규모로 세워 놓은 모습이며

'영웅 칭호'와 같은 단어들에서 뭔가 우리는 어색한 느낌을 받습니다.

 

동상 바로 그 아래 놓여져 있는 대포, 탱크, 헬리곱터, 멀리 세워져 있는 미사일 등에서

사회주의 군사강국을 지향했던 구 소련의 모습을 봅니다.

 

그 시절엔 그랬을까요?

결연한 의지로 주먹을 꽉 쥐고, 서릿발이 내리는 듯한 엄중한 눈빛,

그리고 어디론가 달려가고 있는 모습들의 사람들을 대형으로 조각해놓고

사람들의 결연한 의지를 불태웠을까요?

그것이 매체이건, 길거리의 벽이든 선전과 선동이 중요했을까요?

이런 것들을 전 국가적인 중요한 사업으로 진행했을까요?

 

주변에 있는 조각들이 대부분 총을 들고, 수류탄을 던지고, 칼을 휘두르는 대형 조각상들입니다.

도시 전체에 스며들듯이 촘촘이 들어서있는 정갈한 그리스 정교회 성당 건물과는 또 다르게 한 쪽을 장식하고

있는 또다른 도시 키예프의 모습입니다.

 

지하철 페체르스카(Pecherska)의 입구.

구소련 시절 지하무기고 였던 곳이라고 합니다.

지하철을 타려면 끝도 없이 파내려간 에스컬레이터를 두번씩이나 타고 내려가야 합니다.

그 깊은 곳에 무기창고를 만들어 전쟁에 대비하였다니...

1917년 혁명이후 서구권의 경제적, 정치적, 군사적 봉쇄에 얼마나 엄중하게 대비했었는지...

 

하여튼 아래에서 위가, 위에서 아래를 짐작할 수 없을 정도의 깊이입니다.

짧게는 2분, 길게는 4분 이상을 탑니다.

물론 걸어다니는 사람은 볼 수가 없습니다.

너무 길어서...

 

우리가

'아직 키예프는 관료주의, 사회주의의 잔재가 많이 남아있다'라고 느낀 건 바로 이런 모습 때문이었습니다.

 

모스크바 행 야간 열차를 예약하기 위해 찾아간 티켓 오피스.

영어나 다른 글자로 된 안내문은 하나도 없습니다.

지렁이 글자?로 된 이란도 중앙역에는 영어 안내문이 일부 있었는데...

 

영어는 전혀 안통하는 데다가 딱딱하고 불친절하기 그지 없는 창구직원들.

자기들은 앉아서 손님들을 맞고 있는데,

손님 앞 쪽으로는 콩알만한 창문에 구멍만 뚫어놓고 게다가 사람들의 키 높이에 전혀 맞지 않는겁니다.

표를 사려는 사람들은 모두 저렇게 허리를 구부정하게 숙여서 얼굴을 들이밀고 일일이 물어봐야 합니다.

묻는데 그저 불친절하게 자기 할 말만 해버리고.

 

우리가 이야기 하는 '서비스'라는 개념은 전혀 없다는 것입니다.

자본주의로 편입된 지 20년이 지났는데...

한참 전에 우리나라에서 흔히 보았던 공무원들의 모습과 같다고 할까요?

무슨 대단한 벼슬들을 하고 있는 양,

완장하나 차면 아무나 깔보는 듯한 전형적인 관료주의의 모습.

물론 다 그런 건 아니겠지만

역에서 표하나 사면서 참 절실하게 느낀 점이었습니다.

(영어가 안 통하는 건 단지 우리가 불편하다는 것이었지 그다지 문제가 있는 건 아니었습니다, 사실.

 그런데 조금 더 깊게 생각하면 이것 역시 소비자의 중심에서 생각하는 건 아니라는 거죠.

 적어도 우크라이나의 입장에서 생각해보면 러시아라는 것이 외국인데

 외국으로 가는 표를 파는 창구에서는 다른 언어도 해야하는게 더 정상이 아닌지.

 런던의 호스텔에서 '우크라이나로 여행오라'고 쓰여진 관광안내서를 분명히 보았는데

 외국인 관광객을 유치하려면 뭔가 좀 준비를 해야 하는게 아닌지...)

 

우리는 어디서 모스크바행 기차표를 사야되는지 돈은 얼마인지가 제대로 알 수가 없습니다.

MOCKVA....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물었습니다.

물어도 영어를 못하니 그냥 지나가고,

MOCKVA가 모스크바냐고?

외국엔 비슷한 지명이 많아서 ...

맞다고 합니다.

 

ㅋㅋ

이야기가 이상하게 돌아가고 있네요.

결론적으로 말하면 우크라이나는, 키예프는 상상했던 것 이상으로 훨씬 아름답고 사람을 행복하게 만드는 도시였는데

아직도 남아있는 사회주의,관료주의의 모습을 말하려다 보니 매우 못마땅한 도시로 설명되고 있는 듯 하네요.

이건 아닌데..

우리 사고의 지평을 넓히고,

우리를 응원하는 사람들의 지평을 넓히기 위해서라도 정확한 묘사를 해야 하는데...ㅋㅋ

 

어디엔가 아직은 관료주의의 모습이 남아있다고는 하나

키예프는 역시 이제 자본주의의 모습이 많이 있습니다.

(물론 자본주의가 무조건 좋다는 것은 또 아닙니다.

 이것 참... 어렵네요...)

 

거리 곳곳에는 조그만 가게들이 많이 열려있습니다.

구소련이 무너지고 연방이 해체된 지 벌써 20년이 다 되어가는 동안

서방의 대규모 자본이 들어와 시장을 장악했음은 말할 것도 없고

그사이 사람들도 저마다 자신들의 재산을 늘리고 부를 축적하는 방법들을 모색해왔겠지요.

성 앤드류 교회 가는 길에는 유난히 조그만 노점상들이 많이 보입니다.

 

조그만 천막가게조차 열기 힘들면 이렇게 좌판이라도 벌여서... 

담배 몇박스를 두고 파는 할머니

파프리카를 들고 와서 파는 할아버지...

 

 

<거기도 사람들이 살고 있는 곳>

그곳 역시 사람들이 살고 있었습니다.  

우리와 똑같은...

웃고 , 떠들고 , 바쁘고....

가족, 친구, 연인...

 

성 앤드류교회로 올라가는 길에 놓여있는 한 동상앞에서.

성 앤드류 교회는 키예프에서 인기있었던 어떤 드라마의 배경무대였답니다.

그리고 이 동상은 그 드라마의 주인공들이고...

많은 사람들이 이 동상앞에서 마치 주인공이 된듯 포즈를 취하고 있습니다.

 

마치 우리나라 '겨울 연가' 촬영지인 남이섬에서

배용준과 최지우의 모습을 그대로 만들어 놓은 그 앞에 그 포즈 그대로 취하고 있는 우리나라와 꼭 같습니다.

 

이 계단을 주인공들이 오르내리는 장면도 드라마에서 나왔다는데

나도 거기에서 한번 폼을 잡아봅니다.

나는 뭔지도 모르면서...

 

주말이라 사람들 밖으로 많이들 놀러 나왔습니다.

특히 가족 단위로 나온 사람들이 눈에 많이 띕니다.

어린이 인형극 하는 극장앞에서 아이들도 동상앞에서 폼을 잡습니다.

마치 어린 해리포터를 보는 듯 합니다.

 

우리나라 백화점 지하에서 볼수 있는 비슷한 식당도 있습니다.

Food court라고 해서 각각의 부스마다 다른 음식을 팔고 있는 곳 말입니다.

우크라이나 음식도 있지만 닭튀김도 팔고, 아이스크림도 팔고, 일본식 김밥, 초밥도 팔고 있었습니다.

연어 스시를 사먹는 아가씨들도 보입니다.

그런데 젓가락질이 얼마나 서툰지

한껏 끝쪽으로 잡은 젓가락으로 김밥 하나를 겨우 들어서 간장에 찍으려다 그만 통째로 빠트려 버립니다.

아!! 짤텐데...

 

거리에서 보이는 모습도 여느 거리와 똑 같습니다.

그런데 통은 좀 큰 것 같습니다.

엣 소련의 3대 도시였다는 데 안그렇겠습니까?

 

거리에 있는 버스도 택시도 자가용도 다 똑같습니다.

이 버스는 보통 버스보다 작은 미니버스입니다.

그런데 무슨 글자인지 통 읽을수도 없다는 게 지금 우리의 고민입니다.

(러시아도 이런 글자를 쓰고 있는데... 지하철 노선표도 읽을 수도 없어서 옆 사람에게 물어보기도 힘듭니다.

 글자를 보고 알아서 내리기도, 갈아타기도... 막 헤매고 있습니다.)

 

드니프로 강에는 배도 다닙니다.

마치 우리 한강에 배가 다니듯이...

유럽에서는 물가때문에 덜덜 떨면서 이런 배도 잘 못타다가

여기에서는 제법 한시간짜리 유람선을 타는 호사도 부립니다.

(두사람이 한시간에 50그리브나. 5.8달러 정도- 6,800원)

 

키예브에 도착한 날은 아주 짧은 민소매를 입어도 될 만큼 날씨가 더웠는데

다음날부터 쌀쌀한 바람이 불어와 많이 추워졌습니다.

숙소에 있는 스텝, 줄리아 말로는

그날이 'The lsat day of this summer(이번 여름의 마지막 날)' 이었답니다.

키예프를 떠나는 마지막날은 마치 겨울이 온 것 같았습니다.

 

 

<유달스럽게 많이 보이던 결혼식>

우리 말로 길일이었는지 어땠는지는 잘 모르겠습니다.

우리가 있는 사흘동안, 키예프에는 어찌 그리 많은 결혼식이 보이던지....

이 사람들은 결혼식을 실내에서 하는 것이 아니라

모두들 밖으로 나와서 온 거리를 활보하고 다녀서 더 그렇게 느꼈는지도 모르겠습니다.

성당에서도 보이고, 수도원에서도 보이고... 다리위에서도... 공원에서도...

 

 

 친구들이 다같이 뭐라고 외칩니다.

"???"  "???" ...

그러면 신랑 신부가 행복에 겨워하면 키스를 합니다.

우리 식으로 한다면 "뽀뽀해" "뽀뽀해'... 뭐 이런 식이었습니다.

그리고 친구들은 사진을 찍고...

 

다같이 밖으로 나와 샴페인도 마시고, 초콜렛도 먹고, 빵도 먹으면서

신랑 신부와 함께 계속 거리를 걸어다닙니다.

 

또 다른 쌍...

중간 중간에 사진도 계속 찍습니다.

이건 연출하는 장면인데,

신부 친구들이 신랑 뒤에 줄 지어 서서 신랑을 잡아 당기는데

신랑은 신부가 끄는 쪽으로 따라간다는 뭐 그런...

쌀쌀한 날씨에 어깨까지 다 드러내 놓은 신부의 얼굴과 팔죽지는 추워서 시퍼렇게 변했는데도

신부, 신랑, 친구들 모두 즐거워 합니다.

 

신부는 사진사의 요청대로 온갖 포즈를 다 취하고...

연예인이 따로 없습니다.

지금 가장 행복한 모습으로...

(사실 보고 있는 우리는 추워 죽는 줄 알았습니다.ㅋㅋ)

 

신랑 신부가 이 곳은 반드시 간다고 합니다.

이름하여 사랑의 다리.

두 사람의 이름을 새긴 자물통을 다리에 채우고 그 열쇠는 던져버린다는...

(10년 전 중국의 어메이산 꼭대기에서 이런 자물통들을 처음 보고 참 웃긴다는, 그런 시도도 해볼 수 있겠다는 생각을 하기는

 했었지만... 참 식상한 건데 말이죠?

 두사람의 사랑을 겨우 이런 언젠가는 녹슬어버리고 마는 자물통 따위로 묶어 놓을수 있다는 발상이 좀... 글쎄요...)

 

이 장면에서

우리 둘은 웃으면서 알고 있는 옛날 이야기를 또 했더랬습니다.

인류문명의 발상지라는 메소포타미아 유적에서 나왔다는 그 유명한 문구.

"결혼은 참 좋은 일이다.

 이혼은 더 좋은 일이다."

ㅋㅋ

'지금 결혼하는 두 사람 앞에서 우리 둘이서 이런 이야기를 하는 건 좀 너무하지 않느냐고 킥킥대면서

"이게 뭐 우리가 만들어 낸 얘긴가?

 7,000년 전에 이미 선조들이 한 말인데...

 그렇다는 거지 뭐..."

그래도 "찌지고 볶든, 어쨋든 두 사람이 같이 행복한 건 좋은 일이겠죠?

 

동굴 수도원을 배경으로 한 공원 여기 저기에 신랑신부의 모습이 보입니다.

참... '길일'인가?

아니면 보통때도 주말에는 이렇게 결혼들을 많이 하나?

 

 

<그래도 남아있는 우크라이나의 성당 >

사흘 동안 있으면서  키예프를 다 둘러보지는 못했지만

내내 성당은 보였습니다.

그동안 보아오던 유럽의 성당과는 그 모습이 많이 다른 그리스 정교회 성당들.

참 색달라 보였습니다.

그냥 쭉!!! 사진 올립니다.

  

이름도 없는 그저 조그만 성당입니다. 

 

성 소피아 성당과 종탑.

 

성 미카엘 성당과 종탑.

 

마침 우리가 종탑에 올라갔을 때가 종을 울리는 시각이었습니다.

수사님(? 아직 학생 수사님이신가?) 두 사람이 50여개가 넘는 종에 연결되어 있는 줄을 손과 발로 눌러 종을 칩니다.

악보도 전혀 없이...

  

종을 다 치고 나서 사진 한장 같이 찍기를 청했습니다.

너무나 경건한 모습이어서...

너무나 순수하게 생긴 얼굴이어서...

 

성당 마당의 우크라이나 아줌마.

우리가 러시아 여인이라고 생각하면 떠올랐던 바로 그런 전형적인 모습입니다.

 

동굴 수도원 입구.

양쪽 벽에는 낡은 프레스코화가 가득합니다.

 

황금색 돔...

잊혀지지 않는 키예프의 모습입니다.

 

초록색 지붕에 황금색 돔...

 

여기는 아직 외국인 관광객 보다는 자국 여행객들이 더 많이 보입니다.

중국에서도 그런 생각을 했었는데...

우선 자기 나라 사람들이 먼저 자기나라를 돌아보나 봅니다.

아직 외국인들은 우크라이나에 대해서 잘 모르는 것 같았습니다.

 

동굴 수도원을 걸으면서...

내내 여름만 다니다가... 날씨가 우리에게는 너무 춥습니다.

지금이 9월인데.,.. 이 나라 사람들은 한겨울에 어떻게 사는가 모르겠습니다.

 

 

<몽골의 침략과 키예프>

사실 러시아 라는 지명이 생기기 훨씬 이전에 슬라브 민족을 중심으로 하는 키예프 공국이 먼저 있었습니다.

당시 모스크바는 키예프공국의 지방도시로에 불과했었다고 합니다.

그러던 키예프 공국이 멸망하게 된 이유는 13세기 몽골의 침략이었습니다.

그래서 그런지 키예프에는 몽골족의 분위기가 여러곳에서 보입니다. 

 

말 위에 있는 동상의 모습이 몽골족을 연상시킵니다.

 

전설속의 우크라이나의 시조 동상.

멀리는 소련 연방으로부터 우크라이나 독립을 기념하여 세운 탑도 보입니다.

 

 골든 게이트와 야로슬로브동상 .

야로슬로브는 그가 지은 성 소피아 성당 모형을 들고 있습니다.

골든 게이트는 예전 키예프공국으로 들어가는 문이었다고 합니다.

꼭대기를 황금돔으로 지어서 이름을 그렇게 붙였다고 하는데

사진 상으로는 알아보기 힘듭니다.

 

*** 우크라이나에 관해 알게 된 또 다른 몇가지.

 1. 1986년 소련 원전 사고가 일어났던 '체르노빌'이 바로 우크라이나에 있답니다.

    키예프에서는 약 100Km 정도 떨어진 곳.

    숙소에서는 체르노빌을 가보고 싶다는 사람이라면 일정정도 돈을 받고 데려다 줄수도 있답니다.

    단, 거기에서는 아직까지 슬리퍼를 신어서는 안된답니다.

    벌써 25년도 다 된 일이지만 아직도 위험한가 봅니다.

    그 때 사고가 일어났을 때 마침 바람이 다른 방향으로 불어 키예프는 별 영향을 받지 않았다고 합니다.

    체르노빌, 체르노빌 하고는 있었는데 이게 바로 이 근처에 있다는 사실은 몰랐습니다.

 

 2. 얄타회담,

     우리나라가 남과 북으로 나누어져 지금까지 살아야 하는 운명이 결정지어진 회담.

    이차대전 종전시 일본군의 무장해제를 위해 북위 38도선을 경계로 미군과 소련군의 군정을 결정한 말도 안되는 회담이

    개최된 얄타 또한 우크라이나의 한 도시였습니다.

    흑해 연안에 위치한 곳.

    키예프에서는 한참을 아래로 내려가야 하는 곳이었습니다.

    얄타가 이곳에 있었군요.

    얄타는 해안가에 위치한 데다가 날씨도 따뜻하고 경치가 좋아 우크라이나 최고의 휴양도시랍니다.

 

 3. 오데사 - 영화 '전함 포텐킨'

    우크라이나 오는 기차에서 만난 폴란드인 '안제이'는 사실 키에프보다는 오데사가 훨씬 좋다고 말했습니다.

    볼거리가 더 많다고....

    그러면서 그 유명한 영화, 모르냡니다.

    제목은 기억 못하면서 영어로 막 이야기 하는데

   '계단이 나오고... 아이가 나오고.... 굴러 떨어지는 게 나오고....'

    하여튼 굉장히 유명한 영화였는데 그걸 거기서 촬영했었답니다.

    모르겠다고 하고 그 '오데사'라는 도시만 기억하고 있었는데

    키예프를 와서 보니 그 영화가 바로 '전함 포텐킨'이었고

    그 유명한 장면은 영화의 마지막 장면으로 '아이를 태운 유모차가 마치 우리나라 남산공원에 있는 계단 같은 곳에서

    굴러 떨어지는' 거 였습니다.

    전함 포텐킨은 참 유명한 영화였는데...

    '민중반란, 오뎃사의 반란...'

    어디서 오뎃사를 들어봤나라고 생각했었는데 바로 이 영화,그리고 그 반란의 이야기였나 봅니다.

    군인들에게 상한 고기를 배급하여 , 성난 군인과 민중들이 반란을 일으켰다는...

    오뎃사도 우크라이나의 한 도시.

    흑해쪽에 있습니다.

 

 오뎃사, 얄타 가고 싶지만 이번에는 안되겠습니다

 러시아 비자 기간이 얼마 안남아서... 다시 내려 올때 루마니아에서 갈 수 있다면 가 볼까 합니다.

 거기서 가는 게 훨씬 더 가깝게 보입니다.

 

 

<잘 먹고, 잘 보고, 잘 쉬고 우크라이나를 떠납니다>

우크라이나에 들어오니 숨을 좀 쉴수 있습니다.

그동안 서유럽과 북유럽의 비싼 물가에 덜덜 떨고 있다가

먹는 것도 자는 것도 훨씬 싸져서 룰루 랄라 했습니다.

덕분에 잘 쉬고,잘 먹고, 새로운 것 많이 보고 느끼다가

이제 우리의 원래 목적지인 러시아로 떠납니다. 

 

우크라이나 전통식당에서.

보로쉬, 솔란카 등 전통 슾 , 우리나라 만두처럼 생긴 벨메니 등...

두 사람이 다 합쳐봐야 10달러도 안되는 가격으로 먹을 수 있는 식당이었습니다.

두번씩이나 찾아가서 골라먹는 재미를 맛보았습니다.

 

오늘은 수프, 야채 샐러드, 흑빵, 닭튀김, 연어구이, 가지 샐러드 등이 있네요...

 

이틀동안 머물렀던 숙소(HI INDEPENDENCE YOUTH HOSTEL), 우리 방에서.

여기서는 건방지게 더블룸에서 머물렀습니다.

다시 비싼 곳에 가면 여럿이 함께 자는 도미토리에 묵을 테니까

싼 곳에서 호사를 부렸습니다.

 

가운데는 숙소의 스텝, 줄리아.

영어가 안 통하는 우크라이나에서 영어가 제법 통하는 친구였습니다.

이 일을 시작한지 2주일도 채 안됐다고 합니다.

너무도 친절하고 너무나 싹싹해서 있는 동안(이틀 밤을 자기는 했지만 밤차를 타고 아침에 도착하고 나오는 날도 밤차를 타고

나와서 거의 사흘동안 있은 거나 마찬가지였습니다) 참 편했습니다.

줄리아도 이 일이 재미있는지 그저 싱글벙글이었습니다.

 

옆에는 폴란드 친구 미하우.

처음 '미하우'라고 해서

우리를 중국사람으로 잘 못알고 중국 인사(니하오)를 하는 줄 알았습니다.

참 유쾌한 친구였습니다.

폴란드 크라코브에서 공부하고 있다는데, 이 친구 역시 활달하고 씩씩해서 숙소 안에 있는 모든 여성들을 휘어잡았습니다.(?)

 

드디어 다시 키예브 중앙역으로 나왔습니다.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밤차를 타고 첫날 어리버리하게 도착하고 생고생을 해서 숙소를 찾아갔는데

다시 돌아올 때는 그래도 좀 의연(?)하게 왔습니다.

중앙역이 있는 지하철입니다.

중앙에 있는 M자 하나만 보고 지하철인 줄 알겠습니다.

도대체 무슨 글자인지 읽을수가 없습니다.

 

오늘 밤,

모스크바로 가는 기차안에서는 러시아 알파벳을 반드시 외워야 합니다.

이건 생존입니다.

러시아라는 또 낯선 곳에서... 약간은 두려운 그 곳에서 살아남기 위함입니다.

응원해야 합니다.

그 힘으로 또 새로운 곳으로 도전하러 떠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