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170 (9월 16일)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프리 김앤리 2009. 9. 19. 04:04

 <사람이 사는 동네, 폴란드>

6월 중순에 시작한 유럽여행,

영국과 아일랜드,스코틀랜드, 그리고 아이슬란드까지의 섬나라들을

그리고 프랑스, 독일,베네룩스 삼국 등 서유럽을

또 노르웨이, 스웨덴의 북유럽을 돌아다녔다.

어디를 가나 깨끗한 거리, 푸른 녹지, 아름다운 자연들이 있었고

어디든지 정확하고 잘 짜여진  관광 시스템으로 우리를 맞아주었다.

그 덕인지 돌아다니는 데 별 어려움이 없었고, 건강상으로도 설사 한번 안하는 편안하고 안전한 여행을 할 수 있었다.

물가가 엄청 비싸 무엇을 하던 간에 약간씩 주저주저는 했지만...

 

그런데 뭔가 좀 아쉬웠다.

사람냄새가 좀 덜한 것 같은...

여행자는 여행자이고, 그곳에 사는 사람들은 또 그곳에 사는 사람들이고.

물론 처음의 영국을 빼고는 아이슬란드에서도 차를 렌트하고 서유럽, 북유럽 내내 차를 몰고 여행을 했으니까

그랬을 수도 있다.

더구나 그 중에 제법 긴 기간은 바뀌어가면서 동행들이 있기도 해서 

우리 자체가 이미 한국인 그룹을 형성하고 있어서 다른 사람들을 만날 필요가 별 없었던 것도 있었지만...

 

늘 밝은 웃음을 띠고 있고 아주 친절한 유럽 사람들이지만

우리가 다가가기 전에는 선뜻 우리에게 다가와 주지는 않았던 사람들.

돈을 내면 낸 돈 만큼의 대접을 받는 그런 곳이라는 느낌.

 

드디어 차도 반납하고 또 다시 배낭만 울러맨 채 뚜벅뚜벅 걸어가야 하는 여행.

파리에서 베를린으로의 밤기차, 다시 폴란드 바르샤바까지의 기차로 우리의 여행이 다시 시작되었다.

 

베를린 중앙역에서 3시간 정도 기다린 것 까지 합하면 거의 24시간 만에 바르샤바에 도착했다.

저녁 7시경.

우크라이나의 키예프행 밤기차 예약을 위해  또 한시간 이상을 역에서 허비해야 했다.

키예프라고 하면 알아듣지도 못하는 데다가(알고보니 키요브라고 발음해야 했었다) 영어는 거의 안 통하고...

돈은 유로화를 안쓰는 데다가  키예프까지 가는 기차비를 알아야  필요한 만큼의 돈을 환전하는데

이리로 가라, 저리로 가라고만 하면서 시간만 허비하고...

 

아이구... 힘들어라...

"여보!!! 우리가 뭐할라꼬 여행을 왔을까?"

...

"힘든데 그만 돌아갈까?"

"어디로 가는데? 간다고 집이 있나?"

...

또 그 놈의 뻔한 레파토리를 들먹일 뿐.

그동안 차로 다녔다고 좀 편했던 어깨와 두 발이 실컷 고생하도록 만들 수 밖에 없었다.

 

'에라이 모르겠다.

 기차표는 내일 다시 나와서 끊기로 하고 그냥 예약해 둔 숙소로 가자'

파리민박집에 인터넷이 고장나는 바람에 어제 나오기 직전에 급하게 숙소를 예약하고

어떻게 찾아가는 지 대강 노트에 적어왔을 뿐이다. 물론 다 영어로.

 

숙소를 찾는 것 또한 만만찮다.

트램을 타고 오라는 데 당장 역의 앞문으로 나서야 하는지 뒷문으로 나서야 하는지 부터 헷갈리기 시작한다.

...

어떤 잘생긴 청년의 도움으로 방향 정확하게 잡아 트램타는 곳에 도착.

이제는 표가 얼만지, 어디서 사야하는지 또 모르겠다.

또 어떤 예쁜 언니가 트램에  올라타 트램 기사한테서 바로 사면 된단다.

OK!!

용감하게 24번 트램을 올라탔다.

기사 옆에 있는 창문을 똑똑 두드리니 기사가 '뭔가 안된다'는 제스츄어를 취한다.

트램 안에 있던 어떤 커플. 아마 지금은 운전중이라서 안될거란다.

트램이 정류소에 스톱하면 그 때 표를 사란다.

그래서 정차했을 때 다시 창문을 똑똑... 이번에도 역시 아까와 같은 포즈를 취한다.

어디서 표를 살 수 있느냐고 다시 그 커플에게 물어보니 '저 기사가 왜 저러는지 모르겠단다.

그러는 찰나.

트램 위로 검표원 둘이 올라탔다.

(우리는 처음에 그 사람이 검표원인줄은 모르고 표를 파는 사람인 줄 알았다)

우선 커플의 표를 받아서 자기가 가지고 있는 기계에 넣길래,

나는 돈을 꺼내가지고 "표 두장 달라"고 했다.

그러니까 뭐라 뭐라 한다.

그러자 커플 남녀 둘 모두가 또 뭐라뭐라고 막 한다.

아마 우리 둘 이야기를 하는 것 같다. 트램기사쪽을 가르키기도 하고... 또 뭐라뭐라 하기도 하고...

뭔가 심상찮다.

검표원이 매서운 얼굴로 뭐라뭐라 하더니

무임승차라며 벌금으로 100즐로티(폴란드 화폐단위)를 내란다.

(원래 트램 차비는 2.8즐로티)

 

그런데 그 다음.

놀라운 일이 벌어졌다.

트램 안의 여기 저기에 있던 사람들이 다들 검표원에게 뭐라뭐라 한다.

무슨 이야기인지는 모르겠지만 다들 우리 둘의 편을 들고 있는 게 틀림 없다.

다들 기사쪽 창문을 가르키고...

한 두명이 아니다.

저 뒤에서 앞쪽까지 나와서 말해 주는 사람. 따지듯이 또박박 말하는 사람. 화를 내면서 말하는 사람...

얼굴도 처음보는 동양인 두명을 위해 트램에 있던 그 많은 사람들이 나서주는 거다.

어떤 씩씩한 언니 한명은 거의 울먹이면서 검표원에게 상황을 설명한다.

그러면서 우리더러는 계속 미안하단다. 자기 나라가 너무 불친절하다고, 그리고 이건 너무 불공평하다고.

우리가 올라 타서 잠시동안 한 일(기사 쪽 창문을 두드린 일, 표를 어디서 사면 되느냐며 커플에게 물었던 것...)을

이 사람들은 다보고 있었다는 말인가? 그럼?

숫적으로 몰린다고 생각했던지 검표원들이 우리더러 다음 역에 내리란다.

"그래 좋다, 내린다" 하며 배낭을 다시 울러매는데

아까 울먹이던 그 언니와 어떤 아줌마가 뭐라뭐라 하며 같이 따라 내린다.

우리 둘만 데리고 내려 벌금을 물리려고 했던 검표원들에게는 참 안된 일이지만...

내려서는 더 강하게 항의를 한다.

시간은  한참 지나 밖은 이미 상당히 어두워졌는데...

드디어 검표원이 항복. 그냥 가란다.

 

아이구...

그런데 중간에 내리는 바람에 다시 트램을 타야 하는데 또 어디서 표를 사야 한단 말인가?

정류소 근처에는 표 파는데도 없구만.

씩씩한 언니는 주변을 둘러보더니 저 멀리에 표 파는 곳이 있단다.

한참을 나를 데리고 같이 걸어가 표 두장을 구입해주고는 제 갈길을 재촉한다.

(가는 길에 물어보니까 원래는 트램 기사가 표를 팔아야 한단다.

 그런데 아마 저녁 늦은 시간이라 기사한테 표가 없었나 보다. 간혹 그런일이 있기는 하다나?

 어쨋거나 그렇게 된 건 자기나라의 잘못이라며 미안하다라는 말을 몇번씩이나 한다.)

같이 따라 내렸던 아줌마도 우리 일이 잘 해결된 것을 보고 다시 자기 갈 길을 가고...

 

폴란드에 도착하자 마자 우리는 또 친절한 사람들을 만났던거다.

(너무 엉겁결에 일어나 사진 한 장 찍지 못한게 너무 아쉬울 뿐이다.)

이런 맛에 여행한다.

'낯선 사람들의 친절'

'뭔가 따뜻한 사람들의 냄새'

 

다시 트램을 타고 몇 정류소를 더가서 우리가 내리고자 했던 곳에 정확하게 내렸다.

이것 역시 트램 안에 있던 예쁜 언니의 도움이 있어서 가능한 거였다.

 

그런데 이번에는 내리고 나니 통 길을 알 수 없다는 거다.

이미 너무 어두워져 길을 분간할 수도 없는데다가 적어온 숙소 정보의 설명이 너무 어렵다.

서유럽의 어디처럼 도로 표지판이 착착 있는 것도 아니고.

 

또 누군가의 도움이 필요했다.

지나가는 사람을 붙들고 물어보니 자기도 거기가 어딘지는 잘 모르겠단다.

그러면서 혹시 숙소의 전화번호가 있냔다.

당연히!!!

이제 이 언니는 숙소에 전화를 해서 어딘지 설명을 듣고서는

우리를 거기까지 데려다 준다.

 

'아!!! 따뜻한 사람들!!!'

노르웨이, 룩셈부르크보다  조금 더  더러우면 어떠리!

스코틀랜드, 독일같은 나라보다 조금 덜 짜임새 있으면 어떠리!

소박하고 친절한 사람들이 사는 나라에서 우리는 이렇게 기분 좋게 시작하는 걸...

 

폴란드 바르샤바에서 우크라이나 키예프가는 기차 안에서.

대학까지 마치고 지난주 까지 미국 뉴욕에서 일하다가 집으로 돌아간다는 우크라이나 출신 발레리(Balerie).

폴란드 출신의 엔지니어 안제이(Andrew) 와 그의 개 매기.

4명이서 쓰는 침대칸의 같은 방 식구(?)들이었다. 

안제이는 박스째로 맥주를 사와서 우리에게 선뜻 마시라고 내민다.

발레리도 저녁이라며 햄버거를 사오고.

(여행책자 론니 폴란드편을 읽어보니, 폴란드 사람과 같이 기차를 타면 이 사람들은 먹을 것을 그리 잘 나눠먹는다고

 써있었다.)

영어, 독일어, 폴란드어, 러시아어까지 능통한 발레리는 안제이와 우리의 대화를 중간에서 통역해주면서

러시아 여행에 필요한 여러가지 단어들을  가르쳐 주며 영어식 발음을 내 공책에 일일이 써준다.

 

러시아를 여행을 마치고 발트해 연안 3국을 돌아 다시 폴란드로 들어오겠지만

폴란드를 들어오고 나가면서

정말 사람냄새를 물씬 맡는다.

(물론 이 날 저녁에는 개냄새도 한참 맡았다.

 저리 큰 개를 기차에 데리고 타다니... 선천적 개 무서움증이 있는 나는 좀 힘들었다만...

 만약 얄미운 사람이 개를 데리고 탔다면 뭔가 짜증이라도 냈을 텐데,워낙 유쾌하기도 하거니와 친절한 사람이라 그리도 못하고...

 그런데  다행이 저 개는 보기와는 다르게 정말 순하기는 했다)

 

 

 <역사의 한 자락, 바르샤바>

폴란드는 이차대전을 빼고는, 나치의 유태인 학살을 빼고는 이야기 할 수 없는 나라이다.

이차대전 당시 독일 침공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목숨을 잃었는지,

유태인 학살이라는 끔찍한 역사적 사건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희생 되었는지..

바르샤바의 곳곳에 이 때의 흔적이 있었다.

바르샤바 광장의 추모비 앞에서.

 

이차대전으로 죽어간 무명용사의 무덤 앞에는 촛불을 밝혀두고 병사들이 엄숙하게 자리를 지키고 있다.

오늘은 유치원생들이 견학을 왔다.

선생님의 설명에 아이들은 정말 조용히 듣는다.

(그렇게 봐서 그런지 다른 나라 아이들보다 훨씬 더 엄격하게 가르치는 것 같았다.

 쬐그만 아이들인데도 선생님이 말씀하는 동안 다른 장난을 치지는 않는다)

 

1944년 폴란드 봉기를 기념하는 기념탑.

폴란드내에 있는 독일군을 몰아내기위해 1944년 8월 바르샤바에서 봉기를 일으켜 성공을 거뒀으나

독일의 대반격으로 엄청나게 많은 희생자를 내고 결국엔 봉기군들이 바르샤바의 하수도 안까지 도망쳐  들어가야 했다.

결국 하수도  안에서도 수류탄이 터지고 독일군의 화염방사기가 불을 내 뿜는 시가전을 벌였다.

 

이 기념탑은 그 때 하수도에서 탈출하는 모습을 그자리에 그대로 재현해 놓은 것이다.

 

비록 봉기 자체는 실패했지만

이차대전 말기, 연합군의 한 축이었던 소련이 폴란드에 영향을 미치지 않게 하기 위해

폴란드 인 스스로의 힘으로 봉기를 일으켰다는 데 큰 의의가 있고

지금까지도 폴란드인들은 이때의 봉기를 자랑스럽게 생각하고 있다.  

 

폴란드 봉기때 참가한 소년 보이스카웃 연락병을 위한 동상.

열살도 채 안되 보이는 어린 소년 병사들이 조국의 해방을 위해 총을 들어야만 했던 시절.

소년 병사의 머리에 씌워진 철모가 얼굴을 거의 덮고 있다.

일부러 이렇게 만들었다고 한다. 그들이 얼마나 어렸던 지를 알리기 위해서.

우리가 갔던 그 날도 소년병사의 동상 아래에는 이들을 추모하는 꽃다발이 가득했다.

 

 

<화려했던 옛 시절, 바르샤바>

18세기때의 로열루트(Royal Route)

거리를 가득 메운 사람들, 그리고 주변의 화려하고 눈부신 건물들이 당시의 바르샤바가 얼마나

발전한 도시였던 가를, 그 시절의 영광을 말해주고 있다.

 

지금의 로열루트.

여전히 그 건물들이 그대로 있다.

양쪽으로 폭이 넓으면서 끝으로 쭉 뻗어있는 대로...

보기만 해도 쉬원하다.

 

케슬 광장 (Castle squere)

구시가지의 중심광장.

 

캐슬광장에 세워져 있는 지그문트 왕(King Zygmunt)의 동상.

1,644년에 세워진 동상이다. 22m 높이.

저 하늘 높은 곳에서 십자가를 들고 있는 모습이 압도적이다.

 

구시가지의 좁은 골목들.

구시가지는 이중으로 된 벽으로 둘러쳐져 있다.

한 쪽 끝은 바르샤바를 가로지는 강이 보이고...

 

바로 이런 벽.

별로 크지 않은 구시가지가 이런 벽으로 쌓여있어 아주 정갈하게 보인다.

 

골목길은 모두 차는 다닐 수 없이 사람들만 다닐 수 있다.

폴란드는 신앙심이 높은 나라여서 인지 신부님과 수녀님이 지나가는 것을 적지 않게 볼 수있다.

곳곳에 보이는 레스토랑, 기념품 가게들.

 

밖에서 바라 보는 구시가지 모습.

 

바르샤바를 선전하는 브로셔에 가장 많이 등장하는 사진.

상반신은 인간이고 하반신은 물고기인 동상이다.

 

전설에 의하면...

코펜하겐에 있는 또다른 인어와 함께 두명이었다고 한다.

그중 한명은 이곳 바르샤바의 어부에 잡혀...

어부만을 위해 아름다운 노래를 부르곤 했었단다.

그러던 어느날 인어를 탐낸 귀족이 몰래 들어와서 훔쳐 달아났다.

인어는 귀족을 위해 노래를 부르지 않았고, 거의 죽을 정도 였다.

어부들이 몰래 숨어들어와 인어를 풀어줬고,

그후 인어는 고마워서 바르샤바를 침입하는 적을 물리치기위해

칼로 방패를 들었다고 한다.

 

광장의 중심에 있는 인어상은 바르샤바의 상징이다.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과 교황 요한바오로 2세>

폴란드 바르샤바 대학 입구.

폴란드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대학이란다.

대학가라서 그런지 정문 앞에는 구 소련에서 해방되던 지난 80년대 말의 시위장면, 그 이후 선거 혁명 장면등을

게시해 놓은 것이 눈에 띈다.

 

여기 어딜 가나, 대학생들이 정치 개혁의 주역인것을...

(우리나라도 지금 그렇나???)

 

민주주의와 오렌지 혁명등에 관한 각종 게시물들.

그리고 그 앞에서 건축물을 그리고 있는 한 대학생.

 

폴란드인들이 가장 존경하고 가장 자랑스럽게 생각하는 사람.

교황 요한바오로 2세.

다른 교황들은 거의 모르겠는데.... 이 분은 정말 인자하게 보였다.

살아 생전 그의 삶도 그러하셨고...

 

 폴란드 인민문화궁전...

1950년대 구소련과 합작해서 지은 전통적인 사회주의식 건물로 현재 바르샤바에 제일 높은 건물이다.

어린 학생들이 체험학습?을 하러 많이 들어가고...

 

<폴란드를 넘어 우크라이나로>

 

우크라이나 키예프로 가는 밤기차에서.

 

사실 우리의 최종 목적지는 러시아였다.

애초에 이번 여행을 계획하면서는 노르웨이, 스웨덴, 그리고 핀란드를 거쳐 상트페테르스부르그를 통한 러시아 입국이었다.

그래서 러시아 비자 날짜로 9월 1일부터 한달동안이었다.

 

그런데 중간에 한국에 한번 들어가게 되고, 서유럽쪽으로 차를 리스해서 여행을 하게 되고,

그러다가 그 중간에  북유럽을 차로 먼저 갔다 오게 되고...

노트북때문에 9월 10일경에 프랑스 파리에는 반드시 들어가야 됐었고...

그리고 비자날짜는 다 되가고...

파리에서 며칠 쉬면서 이리저리 인터넷 서핑을 하다가 찾아낸 곳이 우크라이나였다.

우선 우크라이나는 비자가 필요없다는 사실.

(바르샤바에서 더 빨리 모스크바로 갈 수 있는 벨라루스 통과행 기차의 경우 반드시 벨라루스 비자가 있어야 했다.그래서 포기)

그리고 모스크바까지 가는 직통기차가 있다는 사실. 

언젠가 무슨 TV에선가 우크라이나가 참 좋다고 했던 것 같기도 하고....

런던에서 관광안내 팜플릿을 읽은 적이 있었다.

'좋다! 우크라이나 쪽으로 해서 러시아로 들어가자.'

 

그래서 파리- 베를린 밤차,

베를린- 폴란드 바르샤바 기차.

다시 폴란드 - 우크라이나 키예프 밤기차를 타야했다.

(이제 모스크바까지는 우크라이나 키예프에서 모스크바까지 가는 13시간 밤기차를 한번만 더 타면 된다)

 

그런데 16시 45분 바르샤바를 떠난 기차가 23시경 폴란드 국경(Dorohusk)에서 출국여권 검사를 하고

조금 더 가서 만나는 우크라이나 국경 (Jagodin)에서는 한참을 가지 않는다.

기차 안에서는 우크라이나 입국을 위한 여권 검사가 되고 있었지만

밖에서는 아주 신기한 일이 벌어지고 있었다.

기차가 역이 아닌 이상한 공장에 들어간다.

기차의 바퀴의 전부 바꾸고 있는 것이다.

 

아니 신나게 잘 달리던 기차의  바퀴를 바꾼다니?

한시간 이상을 걸려서 바퀴가 아닌 더 넓은 휠로 바꾼다.

 

함께 기차칸을 썼던 발레리가 자세하게 설명해준다.

"이건 러시아의 역사가 담겨져 있는 거다.

 러시아의 철도 선로는 서유럽의 다른 나라 철도선로보다 17Cm 정도 더 넓은데,

 그 이유는 러시아 황제의 명으로

 독일제국이 러시아로 침공하지 못하도록 철도 선로의 넓이를 다르게 만들도록 했다"는 것이다.

기차에 무기와 군인을 실어와서 대규모로 침공하지 못하도록....

 

아하!!! 그렇구나!!!

학교 다닐때 그저 러시아의 철도만 다른 나라하고 달리 조금 더 넓다고만 배웠고,

그저 그렇게 외웠었는데...

그런 역사적인 배경이 있었구나.

 

여행하면서 또 하나 배웠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