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9 지금은 여행중 /여행 하루하루

T186 (10월 2일) 대학도시 에스토니아 타르투에서

프리 김앤리 2009. 10. 3. 02:08

주로 대학생들 이야기다.

(예전에 나도 물론 그랬었지만)

유럽 여행을 갔다왔다고 하면서 10개국을 갔다왔네, 15개국을 갔다왔네 하면서

어디 어디를 갔냐고 질문하면

영국 런던, 프랑스 파리, 이탈리아 로마... 이런 식으로

한 나라의 수도만 가보고서는 그 나라를 다 가본 것 처럼 말하는 것.

한국을 이야기하면서 '서울'만 말하는 것과 꼭 같아서

부산에 살고 있는 우리로서는 어딘가 알짜배기는 다빼고 돌아다니다 온 것 같은 허망한 느낌.

 

지금 우리의 여행도 혹시 그런게 아닐까?

발트해 3국을 이야기 하면서 에스토니아는 탈린, 라트비아는 리가, 리투아니아는 빌리누스

이렇게 말이다.

하긴 외국인이 부산으로 여행와서 해운대, 금정산성, 태종대를 보고서 부산을 전부다 봤다고 한다면

어쩌면 우리는 웃을지도 모른다.

어차피 모든 것을 보지는 못한다.

볼 수 있는 것만 보고, 보는 만큼만 느껴도 된다는 생각으로 ...

 

사실, 에스토니아를 여행하겠다고 생각하면서

우리도 '탈린' 이외에는 아는 게 하나도 없었다.

어딘가 수도가 아닌, 다른 곳에 보석같은 곳이 있는지도 모르고

달랑 수도만 갔다와서는 여행한 나라 한군데를 더 하는게 아닐까? 하는 부끄러움.

탈린 이외에 에스토니아에서 가봐야 할 다른 곳이 있는건 아닐까?

 

그렇게 찾아낸 곳이 '타르투'였다.

탈린에서 버스로 2시간 30분 거리.

 

 

<타르투 대학과 에스토니아 '독립'>

스웨덴 왕국이 세운 탈린이라는 도시와는 다르게, 타르투는 에스토니아 인들이 세운 도시란다.

그래서 탈린이 에스토니아의 정치적, 경제적 도시라고 한다면

타르투는 에스토니아의 정신적,문화적 도시라고 표현한다고...

타르투에는 에스토니아는 물론 전 유럽에서 가장 먼저 세워진 타르투 대학이 있어

격동의 19~20 세기 에스토니아 민족운동의 시발점이 된 지역이기도 하다고.

 

도착하자 마자 제일 먼저 찾아간 곳이 타르투 대학이었다.

에스토니아의 많은 유명한 사람이 공부한 곳이 바로 이 곳이었다.

이 대학 출신자 중에서 노벨상을 받은 이도 있다고 한다.

구도시의 중심에, 시청 광장 바로 뒤에 있다.

 

우리나라 처럼 대학 캠퍼스라고 울타리를 쳐 놓은 것이 아니라

일반 사람들이 마음대로 오가는 거리 양쪽에 대학 건물들이 쭉 늘어서 있다.

우리로 따진다면 여기가 인문대 건물, 저기가 자연대 건물...

 

한 건물에 그려진 대형벽화가 눈에 띈다.

듣기로는 학생들이 그린 벽화라고 했는데, 숙소에 있는 매니저, 콜린이 그건 아니란다.

전문가가 그린 벽화라나?

예전의 타르투 대학과 그 앞 거리를 그려놓은 것이다.

 

밋밋한 사각형의 벽보다는

도시의 한 부분으로 자리잡아 도시의 품격을 높히는 느낌이다.

활기찬 대학생들이 많이 보이는 곳에서

시민들의 발걸음과 함께 아주 잘 어울린다.

 

더 멋진 건 같은 건물 뒷편 이 벽.

마치 사람들이 창을 열고 내다보고 있는 것 같은데

그게 아니라 크게 인화한 사진을 정확하게 잘라 각각의 창에 붙여 놓은 것이다.

 

대부분이 이 대학의 교수님들이란다.

가장 높은 곳에 있는 아치형의 사진은 이 대학의 총장( 정확한 표현이 맞는지는 모르겠다. 자기들은 '딘'이라고 표현하던데)

이렇게 사진으로 붙여 놓으니

학생들과는 따로 노는 (?) 권위만 따지는 교수님의 분위기와는 전혀 상반되는 느낌이다.

'어서 오셔요!!! 같이 공부 합시다!!!' 하고 하는 것만 같은 친근한 분위기.

 

타르투 대학의 진짜 분위기는 모르겠지만

이 벽에 걸린 교수님들의 사진 하나만으로

외부에서 보는 우리 눈에는

'권위'를 벗어버린 '함께 연구하는 선배'의 모습으로 비춰져 괜히 부럽다.

 

타르투 대학 출신의 에스토니아 민족시인 크리스티안 야콥 피터슨의 동상.

에스토니아의 민족운동을 이끌었단다.

1801년에 태어나 1822년까지 고작 스물두해를 살았던 시대의 청년.

라트비아의 리가에서 에스토니아 탈린까지 걸어다녔다는 유명한 이야기에 맞춰

그의 동상은 한 권의 책을 들고 지팡이를 들고 뚜벅뚜벅 세상을 걸어다니는 모습으로 조각되어

타르투 대학의 뒷 편 토메메기(Toomemägi)언덕위에 세워져 있다.

 

에스토니아의 역사는 스웨덴과 독일,러시아라는 강대국에게 끊임없이 지배를 받는 슬픈 역사를 가지고 있는 나라였다.

1918년부터 1920년까지 에스토니아 독립전쟁 때 희생당한 무명용사들의 위한 동상.

타르투의 거리 곳곳에는 에스토니아 독립운동에 관한 조각상들이 눈에 많이 뜨인다.

 

물론 에스토니아는 그 이후 다시 소련의 지배(? 연방)체제로 들어갔다가

1990년초에 들어서야 민족국가로서의 완전한 독립국가 에스토니아가 탄생하였다.

 

우리에게 일제시대의 독립운동은 근 100년이 다 된 우리 할머니 할아버지 세대의 이야기이지만

여기 에스토니아에서의 '독립'이라는 개념은 바로 바로 지금 세대들의

'자신이 이룩한 역사'라는 느낌이 도시 곳곳에 배여있었다.

 

 

<타르투의 여기저기>

타르투 시청사앞 광장.

'키스하는 학생' 동상.

대학도시 답다.

시청사 광장앞에 있는 동상이 '키스하는 학생'이라니...

도시 전체가 밝은 이유를 알겠다(?).

밤이면 이 동상이 세워져 있는 분수대에 화려한 조명과 함께 분수가 켜지고

키스하는 커플이 들고 있는 우산살 사이로 비가 흘러내린다. 

 

'천사의 다리'

다리를 건너오고 나서

인포메이션 센터에서 가져온 안내문을 읽으니

'다리위에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다는 전설이 있다'는 글귀가 들어온다.

다 지나와버렸는데...

 

천사의 다리 바로 맞은 편에 있는 '악마의 다리'

혹시 이 다리를 건널때 자기가 싫어하는 뭔가를 빌면

'이번에는 달아나버리게 하는 마력'이 있을까봐

다리를 건너기 전에 안내문을 읽어보는데

이번에는 아무것도 없다.

항상 뒷북이라니까...

이름때문일까 천사의 다리는 많은 사람들이 지나다는데

악마의 다리는 건너는 사람이 거의 없다.

 

타르투 대성당.

13세기 독일 기사단이 지은 성당이란다.

지금은 거의 다 무너져 폐허로 남아있고

남아있는 한쪽은 타르투 대학의 박물관으로 쓰이고 있다.

 

사람들만 다니는 거리, 꽃을 파는 노점상.

타르투에서도 역시 추웠다.

저녁 6시가 넘은 시각,

두터운 옷을 입고 사람들은 종종 걸음으로 어디론가 바삐 걸어가는데

거리의 꽃가게에는 아직도 팔리지 않은 꽃다발들이 수북하다.

 

키 큰 나무의 나뭇잎들이 아직 무성해도, 초록의 잔디가 아직까지 그리 파래도

여기도 역시 가을은 가을인가 보다

대부분 국화들이다.

 

한 다발에 25~30EEK. 3,4천원.

이렇게 꺽어놓은 꽃은 다 못팔면 어떻게 하지?

옆 노점상들은 대충 팔고, 추운 날씨에 착착 접기 시작하는데

이 아주머니는 여전히 버티고 계신다.

어깨만 잔뜩 웅크리고...

 

어디 내 집이라도 있으면

나라도 이 꽃 한다발을 살텐데...

 

 

<타르투 에마요기(Emajogi)강> 

타르투 도심 한가운데를 흐르는 에마요기강.

타르투 대학은 스웨덴 구스타프 왕조가 세웠다더니만

에마요기 강에는 러시아의 여제 '에카트리나'가 세웠다는 다리도 보인다.

 

강변을 따라 사람들이 산책도 하고 낚시도 한다.

사람들의 사랑을 듬뿍 받는 곳.

강 낚시를 하고 있는 가족들.

 

추운 날씨에도 아랑곳 하지 않고

장화를 신고  강물 속에 발을 담근 채 열심히 낚시줄을 던지던 아저씨,

결국은 큰 거 한마리 잡는다.

구경꾼이 있는 데  대어를 잡은 게 신나는지

(원래 낚시의 가장 큰 맛은 자랑맛이라고 하지 않는가?

 첫째는 자랑맛, 그 다음은 손맛, 그리고 마지막이 신선한 입맛이라나???)

사진을 찍어도 되냐는 말에 폼까지 잡아주신다.

(영어가 안 통해 무슨 고기인가 물어보지는 못했다. )

연어인가? 송어인가?

 

 

<역시 혼자서 당당하게 걸어다니는 에스토니아의 어린이들>

 

탈린에서도 많이 보았지만

타르투에 오니 아이들끼리 다니는 모습을 거리에서 아주 많이 만났다.

10살이나 채 되었을까?

어른도 없이 아이들끼리 백화점에도 오고, 거리에도 걸어다니고...

(우리나라는 주로 아이들끼리 다니는 경우는 '학원'을 가는게 아닌가 몰라???)

혼자서 다니는 애들도 많다.

역시 '안전해서'라는 생각을 먼저 했다.

 

토메메기 언덕 숲길에서 혼자서 당당하게 걸어오는 꼬마 여자애.

진짜 다부진 모습이다.

다부진 모습에서 감동하는 것이 아니라

이런 꼬마애가 숲길을 혼자 다닐 수 있는 '안전한 도시', '치안이 좋은 나라'라는 게 더 감동적이다.

사진을 찍어도 되냐고 물어니...

안된다고 한다.

된다고 하면 좀 더 멋진 포즈로 한장 더 찍고 싶었는데..

카메라부터 먼저 내밀고 물은 낯선 동양인의 잘못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