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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191(10월 7일) 발트의 길,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

프리 김앤리 2009. 10. 8. 02:20

 <발트의 길과 리투아니아 빌니우스>

 

'발트의 길'을 아는가?

 독립의 노래, 자유의 노래를 다함께 부르는 '620Km 인간 사슬'에 관하여 들어본 적이 있는가?

 

1989년 8월 23일, 에스토니아 탈린에서부터 라트비아의 리가, 그리고 리투아니아 빌니우스까지의

620Km 도로에는 200만명이 넘는 세 나라 사람들이 나와 서로 서로 손을 잡았다.

기적과도 같은 긴 인간띠를 만든 세나라 사람들은

소련 정부에게 '발트해 국가들에 대한 강제점령 사실을 인정하고, 각자 나라의 독립을 보장하라'고 요구했다.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라이스베스(laisves), 라트비아 사람들은 브리비바(briviba), 그리고 에스토니아 사람들은

바바두스(vadabus)라고 외쳤다.

서로의 언어는 달랐지만 그 뜻은 똑같은 하나였다. 

"자유, 자유!!"

그리고 서로의 손을 맞잡은 채 다함께 노래를 불렀다.

독립의 노래, 자유의 노래를...

 

그날로부터 정확하게 50년전인 1939년 8월 23일,

발트해 국가들의 의사와는 상관없이 러시아와 독일은 상호불가침조약이라는 '몰도로프-리벤트로프 조약'을 맺었다.

스탈린과 히틀러가 서로 사이좋게 그들 사이에 끼어 있는 유럽을 나눠갖자는 비밀협약을 체결한 것이다.

조약에 따라 독일은 폴란드를, 러시아는 발트해 3국을 강제편입시켜버렸다.

에스토니아, 라트비아, 리투아니 사람들은 치욕의 이날 50주년을 맞아

전세계에 소련의 발트해 3국 점령의 부당함을 알리기 위해

한자리에 모여 감동적인 인간띠를 만들고 다함께 '자유의 노래'를 불렀던 것이다.

총칼을 든 무장투쟁 혁명이 아니라 가장 평화적인 방법으로의 '민족해방투쟁'

 

훗날 사람들은 이를 두고 노래혁명(Singing Revolution)이라고 평했고, 이 길을 '발트의 길'이라고 이름지었다.

 

이 길을 따라 우리도 쭉 내려왔다.

에스토니아의 탈린에서 시작하여, 라트비아의 리가를 거쳐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 까지.

인류의 역사상 전무후무한 620Km 장엄하고 감동적인 인간사슬의 길을.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 찼던 그 길을 몇날 며칠에 걸쳐 버스에 버스를 타고.

 

' 이 먼길을 어떻게 사람들의 물결로 가득 채울 수 있었을까?'

' 도로는 마을들과도 한참 떨어져 있고 끝도 없는 숲길이었는데

  어떻게 이 먼곳까지 그렇게 많은 사람이 한날 한시에 모일수 있었을까?'...

1989년 당시에는 발트해 국가 인구의 10% 정도만이 승용차를 가지고 있어서

몇대 안되는 차로 사람들을 끊임없이 실어날랐고, 버스회사들은 버스 노선을 급하게 바꿔가면서까지 사람들을 실어날랐단다.

이날 행사에 참가한 사람들은 남녀노소가 따로 없었단다.

사람들의 행렬 100m 마다 작은 무대가 세워져 록밴드,곡예사들이 공연을 하기도 했었다.

' 이 사람들은 그 날의 그 감동적인 순간을 평생 기억하며 살아가고 있을까?'

 

그렇게 도착한 리투아니아의 빌니우스에는 안개비가 내리고 있었다.

 

발트의 길,리투아니아 인간 사슬의 시작지점이었다는 대성당 앞 광장.

그 앞에 우리도 섰다.

 

광장 바닥에는 다른 돌판과는 다른 눈에 띄는 한 조각의 타일이 있다.

이름하여 매직타일(Magic Tile).

리투아니아어로 스테부클라스(Stebuklas)라고 새겨져있다.

'스테부클라스' - '기적'

 

리투아니아 사람들은 이 광장의 매직타일에서 인간사슬띠의 출발햇고, 

이 타일은 기적의 출발점이다.

여기서 사람들은 '독립'이라는 기적을 바라며 행진을 시작했을까?

그래서 기적이 이루어진 걸까?

 

이 타일을 시계방향으로 세번 돈 다음 그 자리에 서서 소원을 빌면 이루어진단다.

우리도 각자 세바퀴씩 돌아본다.

기적은 아니지만

모든 사람들의 건강과 행복을 빌어본다.

 

그리고 발트의 길을 떠올리며, 노래하는 혁명을 생각하며... 20년전 그 날, 이 사람들의 감동을 떠올리며...

 

다음 날 ,

다시 한번 광장으로 나갔다.

대성당과 종탑이 있는 빌니우스의 광장.

( 그 사이에 스테부클라스가 씌어진 타일이 있다.) 

 

 

<또 하나의 기적>

빌니우스에는 '두 개의 기적' 이 있다.

대성당 앞 광장의 '스테부클라스'가 그 하나라면

다른 하나는 바로 이 '검은 성모상'이다.

사람들은 이 성모상이 기적을 행한다고 믿고 기도를 올린단다.

 

기적의 검은 성모상은

구시가지를 들어서는 새벽의 문(Gate of dawn, 리투아니아어로는 Ausros Vartai) 안에 모셔져 있다.

사진으로 보면 중간, 투명한 유리창 안에 성모님 상이 있다.

관광객들은 이 문을 배경으로 하고 사진을 찍고 즐거워하지만

이 곳 사람들은 여기를 지날 때 무릎을 꿇고 성호를 긋는 등 예를 다하는 모습을 종종 보았다.

 

'무슨 기적을 바라는 것일까?'

 

그런 건 아니겠지.

신 앞에서 가장 나약한 , 가장 겸손한 인간의 모습을 보이는 거겠지...

아니 어쩌면 인간의 가장 큰 두려움을 나타내는지도...

 

 

<빌니우스의 여기저기>

광장의 중앙에 있는 게디미나스 동상.

13세기 리투아니의 통치자였다.

그가 리투아니아의 수도를 빌니우스로 옮기고, 전 유럽으로 리투아니아를 알린 사람이다.

 

인포메이션 센터 앞.

리투아니아의 수도, 빌니우스는 참 크다.

어디든지 시원시원하다.

중세 도시의 성벽만 있는 것이 아니라

중세 성당도 많이 보이고, 유대인 유산도 있고, 독일의 유산도 있고, 러시아의 유산도 있고...

다양한 시대와 다양한 양식이 공존하고 있는 도시다.

 

인포메이션 센처 앞 광장에는 아이들 미술품을 엮어 만들어놓은 피라미드가 밤이면 불을 밝힌다.

그리고 저녁 늦게 까지 음악을 틀어놓고 사람들이 함께 노래도 부르고 춤도 춘다.

 

길거리 좌판과 성당.

과거와 현재가 공존한다.

 

베르나르딘 교회(Bernardine Church).

유럽을 다니다보면 교회나 성당에서 벗어날(?) 수가 없다.

라오스에서 불교사원에서 도망갈 수 없듯이...

 

구시가지가 있는 곳이라면 어디든지 성당과 교회다.

종교가 곧 생활이었고, 생활이 곧 종교였던 시기이니 만큼...

 

위 교회의 Full Name 은 성 프란시스와 성 베르나르딘 교회다.

구 소련 시절에 이 교회는 폐쇄되었는데 당시 프란시스토 수도사들은 지하운동을 했었다고 한다.

그래서 교회 건물 앞에 수도사의 동상이 만들어져 있고

그 옆으로는 무기를 들고 싸우고 있는 수도사의 조각들이 놓여져 있다.

 

중세시절에는 교회가 사람들 위에서 군림했다면

현대에 들어와서는 현실에 참여하는 교회의 모습을 많이 본다.

이게 진짜 사람들과 함께하는 교회의 모습이 아닐까?

 

참 큰 도시 빌니우스는 평지가 많은 데

몇개의 조그만 언덕들도 있다.

그 중에 하나가 '세개의 십자가의 언덕'(The Hill of Three Crosses)이다.

일곱명의 프란시스코 수도사가 이교도에 의해 고문을 받고 십자가형에 처해졌던 것을 기리기 위해 세운 십자가상이다.

 

이 언덕에 오르면 빌니우스 시내가 한눈에 다 바라다 보인다는데

우리가 올라간 날은 안개가 끼어 제대로 보지 못한게 안타까웠다.

사진을 보면 밑에 사람들이 보이는 데,

십자가상은 사람 키의 몇배를 능가하는 아주 엄청난 높이였다.

 

또 다른 언덕. 게디미나스 언덕.

언덕에 오르면 게디미나스 타워(지금은 박물관이다)가 우뚝 서있다.

대성당 광장에서 바로 오를 수 있다.

여기서도 물론 빌니우스의 전체 정경을 볼 수 있다는데

옅은 안개가 끼어있어 수려한 장관은 볼 수 없었다.

 

 

<참 희한한 곳, 우즈피오 Uzupio>

영어가이드 북 '론니'에 의하면  빌니우스에서 할 일 다섯가지 중 하나로 이렇게 적혀 있었다.

" Go abraod! Visit Uzupis in Vilinus"

 

'아니 이게 무슨 말이야?

 그럼 빌니우스에 또 다른 나라가 하나 존재한단 말이야?'

 

론니에 의하면 그 곳에는 리투아니아로부터 독립을 선언하고

자신들만의 대통령도 뽑고, 자신들만의 헌법도 만들어 그 입구에 떡하니 붙여놓았다고.

그래서 물어물어 찾아갔다.

진짜 그런 곳이 있나해서.

있기는 있었다.

간판에 '우즈피오 공화국'이라고 붙여놓기까지.

 

그런데 아무래도 좀 이상하다.

길도 똑같고, 사람들도 똑같고, 차량 번호판도 다른 리투아니아 차와 같게 LT라고 쓰여져 있다.

길가는 젊은 애들에게 우즈피스가 어디냐고 물으니까

빙긋 웃으면서 가르쳐 주는 것도 좀 그렇고.

무슨 자기들의 대통령이 있고,

'모든 사람은 행복할 권리가 있다, 또 불행해질 권리도 있다'로 시작되는 자기들만의 헌법이 있다는 것인지....

 

그런데 우즈피스 지역이라고 찾아가니 조금 웃기게는 생겼다.

사람들 사는 집 밖에 그려놓은 그림이라니....

 

숙소에 돌아와 매니저한테 물으니

막 웃는다. 

같은 나라라고. 그냥 화가, 음악가, 연극인 등 예술인들이 함께 모여살면서 자기네들 스스로 그렇게 칭하는 거라고.

약간은 '또라이-이건  내가 한 표현이 아니다. 매니저가 그랬다. a little crazy라고- 들이라고.

그런데 자기들만의 대통령이 있는 것도 사실이고, 헌법이 있는 것도 사실이란다.

우리로 따진다면 자기네들만의 규율을 가지고 있는 공동체 정도라고 할까?

 

그래도 재미있다.

론니에도 소개되어 있을 뿐만 아니라

시에서 나누어 주는 가이드 북에도 우즈피스는 엄연하게 묘사되어 있다.

'우즈피스'라는 원래의 의미는 강변을 뜻한단다.

빌니우스 도심의 샛강, 빌니아 강 너머에 조그만 마을에

예술가들이 함께 모여 사는 곳으로 파리의 몽마르뜨나 덴마크 코펜하겐의 크리스티아니아와 비교되기도 한단다.

예술가들의 독특한 발상을 인정해주는 빌니우스 시가 멋지다.

 

 

<리투아니아의 호수도시, 트라카이에서>

호수 한 가운데 중세 성이 있는 트라카이를 찾아갔다.

빌니우스에서 버스로 40분 정도 떨어져 있는 곳.

사진은 위에서 찍은 장면이다.

물론 우리가 찍은 건 아니고, 트라카이 거리에 있는 관광 안내판이다 .

(우리는 하늘에서는 찍을 수 없는 거니까)

트라카이는 리투아니아의 고대수도란다.

 

트라카이에는 카라이마이(Karaimai) 사람들이 살고 있는데

카라이마이 사람들이란 바그다드에서 탈무드에 저항하는 유대인과 히브리인이라나?

전 세계에 지금 만명 정도의 카라마이 사람들이 있는데

이곳 트라카이에 360명정도가 살고 있단다.

사진은 이 사람들의 전통가옥.

 

파란 하늘과 진노랑색의 집이 아주 잘 어울린다.

 

트라카이에 들어서는 순간,

눈이 시리도록 파란 하늘이 우리를 맞는다.

아주 상쾌한 공기.

 

맑은 하늘을 다 비추는 호수도 있고.

 

호수 옆으로는 이쁜 길도 나있다.

 

트라카이를 상징하는 건 무엇보다

호수위에 세워진 바로 이 성.

 

14세기에 지어진 성이란다.

오랜만에 만나는 맑은 하늘과 따뜻한 날씨.

리투아니아에서 보석을 만난 듯하다.

트라카이, 정말 이쁜 곳이다.

  

성을 돌아보고 호수위의 다리를 건너오는데

아주머니가 우리나라 만두하고 비슷한 뭔가를 팔고 있다.

알아듣지 못하는 말로 막 설명을 하는데

하여튼 맛있게 생긴 것 같아 하나 사먹는다.

이 이름이 뭐냐고 물어보니까

뭔가 길게 설명한다.

길게 이야기 하는 걸 보니, 이 만두의 이름은 아닌 것 같고

상상해보건데 '자기가 집에서 직접 만든 거다....' 뭐 이런 것 같다.

 

고소하다.

우리나라와 같이 만두 속도 돼지고기와 야채가 들어있다. 

하나에 3리츠(2천원쯤)나 한다.

맛있기는 한데 너무 비싼 것 같아 하나 더 사먹는 게 망설여진다.

남편은

" 이 아줌마도 분명히 20년전에 발트의 길로 나간 사람일 거다.

  그 멀리까지 나가려면 얼마나 힘들었겠냐?

  그 때 우리가 이 사람들 독립을 위해 뭐 도와준 게 있냐?

  지금이라도 이런 것 하나 더 사먹어서 도와줘야 되지 않겠냐?"는 궤변을 또 늘어놓는다.

그래, 이렇게라도 도와야지...

이름도 모르는 리투아니아 만두를 하나 더 사먹는다.

  

돌아나오며서 이 동네 애들을 만났다.

아까 찍어놓은 만두 사진을 보여주며 이름이 뭐냐고 물으니까

'키비날(Kybynlar)'이란다.

카라이마이 사람들의 전통 음식이라고.

자기네들은 카라이마이 사람은 아니란다.

그러고 보니 이 동네 곳곳에 키비날이라고 써놓은 간판을 많이 보았다.

그 만두를 파는 가게였나 보다.

아까 그 아주머니의 긴 설명도

'카라이마이 사람들이 먹는 전통 음식'이라고 설명한 거겠지?

시간을 거꾸로 돌려가며 상상한 것을 다시 정리한다.

무식한 여행자들의 세상 이해방법이다.

 

 

<일상이 여행?  여행이 일상?>

 

후배가 방명록에서 그랬다.

'일상이 여행이신 두 분~~~'

일상이 여행이라....

맞다.

지금 우리의 일상은 여행이다.

 

그런데 일상이 여행인 건 참 고달프다.

일상에서 일어나고 있는 일이 다 일어나고 있다.

손톱, 발톱이 기는 거야 가지고 다니는 손톱깍이로 째깍 깍으면 그만이지만

머리카락이 점점 길어지는 건 참 난감한 일.

한국에서는 매번 가는 미용실이나 이발소를 찾아서 그냥 깍아주세요라는 한마디만 하면 되는데

여기서는 어디로 가야할 지 망설여진다.

덥수룩하게 길어진 머리카락을 만지작 거리며

'어디 깨끗하고, 싸고, 이쁜 언니가 있는 미용실'을 찾다 찾다

결국 조금 덜 깨끗하고, 마음좋게 생긴 아줌마가 있는 미용실엘 들어갔다. 싸기는 한.

 

일상이 끼어들지 않는 그런 여행을 하고 싶다.

 

일상이 끼어들지 않는 여행,

여행만 있는 여행, 그런 건 이래야 한다.

이름도 모르는 도시에 도착해도, 멋진 호텔이 내 눈앞에 딱 나타나야 하고

문 앞에는 호텔보이가 우리가 내리는 택시 앞까지 다가와 택시 문을 열어주고

우리의 가방을 들어서 베란다가 있는 멋진 방까지 들어다 주는 것.

깨끗한 침대에서 자고 일어나면

풍성한 아침 식사가 방까지 배달되고.

그리고 길거리 까페에서 향기 가득한 커피를 마시고,

느긋하게 앉아서 해지는 노을을 바라보는...

 

그런데 짧지 않은 우리의 여행은 상상과는 다른 엄연한 현실이 존재한다.

인터넷을 통해 숙소를 예약하면서

아주 꼼꼼하게 살핀다고 살폈는데 정작 도착해보면 이런 엉망진창의 집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는 게 예사다.

 

발트의 길과 노래혁명, 기적과 같은 인간 사슬에 감동하며

도착한 빌니우스의 숙소는

마치 중국의 초대소같은, 우리나라의 허름한 여인숙 같은 곳이었다.

 

일상이 여행이 아닌

영화같은 여행이었으면 좋겠다.

 

대성당과 중세 성, 그리고 성당, 교회...

이런 사진만 매번 찍다가

빌니우스의 신시가지 높은 건물을 카메라에 담는다.

"저런 사진을 뭐할라고 찍느냐? 저런 건 우리나라에도 많지 않냐?"는 내 말에

남편은 웃으면서 대답한다.

이 사진은  두 가지 의미를 담고 있다고.

늘 구시가지 사진만 찍고 블로그에 올려서 사람들이 유럽은 온통 중세 도시 속에서만 살고 있다고 착각할 까봐

신시가지 모습도 찍어서 올려야 되겠다는 것 하나와

"우리는 언제 저런 곳에서 한 번 자보나?" 하는 의미로 고층 빌딩의 호텔 사진을 한장 찍어보는 것이라고...

'정말, 우리는 언제 저런 곳에서 한 번 자보지?'

 

마냥 놀러만 다니는 여행이 아니라

그저 편한 시간 보내려고 하는 여행이 아니라

팔자 편한 부부가 팔자좋게 떠나온 여행이 아니라

'우리 발로 뚜벅뚜벅 걸어 세상을 보겠다'고 나선 우리의 여행,

'세상이 어떤 곳인지, 정말 궁금해서 벼르고 별러서 떠나온 우리의 여행'

 

일상이 여행이든, 여행이 일상이든

힘들고 고달파도 오늘도 우리는 우리의 길을 간다.